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1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20화(319/482)
현승은 강을 찾았다. 그 옆으로는 자신보다 한 뺨 작은 아버지도 함께 서 있었다.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그저 가을의 시린 바람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자신과 아버지의 사이를 채워 나갔다.
─ 나, 왔어요.
그때 아버지의 주름진 손이 인사를 전한다.
─ 오늘은 아들이랑 왔어요.
허공을 휘젓던 손은, 머지않아 제 어깨를 두른다.
그러고는 자랑스럽다는 듯 가볍게 주물러온다.
─ 날이 제법 추워졌어요. 거기서는 따듯하게 지내요.
어머니를 향한 안부 인사는 그걸로 끝이 났다.
대신 아버지는 고요하게 물결치는 강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없어서 슬프겠지.
어쩌면 긴 세월을 함께 보냈으니, 더 슬프고 힘들었을 거다.
그러나.
어린 핏덩이들을 거두느라 마음껏 슬퍼할 시간도 없으셨겠지.
─ 아들도 여기 와서 앉아.
하물며,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아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연하게 참아내셨을 거다.
직접적으로 얘기한 적은 서로 없었지만, 아버지라면 그러셨을 거다.
툭.
이내 현승은 아버지 옆에 나란히 자리를 깔고 앉았다.
동시에 바람을 따라, 강이 방파제를 때리며 철썩거렸다.
`
“…….”
현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곳은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뿌려준 곳이니까.
그리고.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 말인즉슨, 현승이 전 삶에서 죽은 곳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마주하기 괴로운 공간일 이곳이, 이젠 괜찮았다. 되레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이젠 다 괜찮아졌으니까. 아니, 괜찮아질 거니까.
그때.
아버지가 한쪽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말을 건넸다.
─ 아들, 너에게 한가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현승은 대답 대신, 시선을 맞추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웃음기 없이 진지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 아주 어릴 때, 네가 자주 잠을 설쳤었는데, 혹시 기억나니?
─ 그랬었죠.
─ 잠결에 네가 계속 ‘엄마’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건, 엄마뿐이니까.
현승이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자신이 엄마와 관련된 악몽을 꾸던 날이면 아버지는 어떻게 아시고 조용히 등을 두들겨 왔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많이 설치지 않고 다시 잠든 날도 제법 많았다.
─ 근데 얼마 전에 아들이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냐고 물었잖아? 그때도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건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다 전달할 수가 없는 마음이니까.
아무래도 아버지는 얼마 전, 자신이 작업을 위해 ‘어머니’와 관련해 물었던 일을 계속 신경 쓰고 계셨던 모양이다.
하기야, 언급조차 잘 하지 않던 아들이 별안간 진지하게 방문을 두들기고 들어와 물었으니 적잖이 놀라셨겠지.
─ 그런데, 정말 한 가지 확실하게 얘기해줄 수 있는 건….
아버지가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손을 멈추기도 잠시.
─ 네 엄마는 죽음에 대해 절대로 아들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오히려 죽는 순간까지도, 네 걱정을 했겠지.
자신과 지그시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 위로는 다시금 따스한 온기가 담긴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 하필 날 닮아, 숫기가 없는 너를. 유치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너를. 엄마 밥 아니면 잘 안 먹으려고 하는 너를, 죽어가는 순간에도 걱정만 했을 거야.
동시에 미안하고, 걱정되는 마음마저 가득 담긴 얼굴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괜히 코끝이 뜨거웠다.
─ 엄마에 대한 죄책감은, 이제 그만 이 강에 버려두고 가.
현승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강을 바라봤다. 철썩이는 물결에, 죄책감이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다.
토닥, 토닥.
아버지는 수어를 다 끝낸 이후에야, 자신을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등을 가볍게 두들겨왔다.
내가 아직도 애인 줄 아시나 보다.
그래도 싫지 않으니, 남사스러운 건 잠시 잊기로 한 뒤, 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래.
이제 정말 과거도, 전생도 그만 다 보내줘야겠다.
* * *
현승은 늘 찾던 한식당을 찾았다. 약속된 시간보다 30분가량 빠르게 예약을 잡아뒀다.
“오랜만이시네요!”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 종업원을 바라보다,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이군.’
김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여자.
“혹시 오늘 일행분은 언제쯤 도착하실까요?”
“30분 정도 뒤에 올 겁니다.”
“그럼 오시는 것에 맞춰, 코스 내어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종업원은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갔다.
식기류가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 위로 놓인 컵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괜찮나?’
현승은 물을 마시려다, 그곳에 비친 자신을 보고는 갑자기 머리칼을 다듬기 시작했다.
머리칼로 시작된 행위는 옷매무새를 따라 신발 끈으로 향했다.
똑, 똑, 똑-!
그때, 예상치 못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일행분 오셨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온 종업원의 목소리에, 현승은 적지 않게 당황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들어오세요.”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20분이나 넘게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뭘, 이렇게나 서둘러 왔는지.
‘아직 준비 안 됐는데.’
그러나,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문이 활짝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그래.
전생 속, 환하게 피었던 나의 꽃.
“안녕하세요!”
그녀는 여전히 씩씩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온다.
“먼저 와 계실 줄은 몰랐어요! 되게 빨리 오셨네요?”
“네, 그쪽도 좀 빨리 오셨네요.”
“성격이 급해서요!”
“그래 보입니다.”
“사실 기대돼서 도저히 약속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더라고요.”
현승은 짐짓 태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뭐가 기대됩니까?”
“HS 씨 얼굴이요!”
당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건 참을 수가 없었다.
“예?”
그녀는 적잖이 놀란 자신을 보며, 싱긋 웃으며 부연했다.
“팬미팅 직캠 보고 정말 잘생기셨다고 생각했는데, 공항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존재감이 확실하시더라고요. 근데 이렇게 보니 진짜 말도 안 되게 잘생기셨네요.”
그놈의 직캠, 진짜.
“사람 앞에 두고, 그런 얘기를 되게 잘하시는 것 같아요.”
“좀 솔직한 편이죠!”
현승은 그녀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다 말고, 피식 웃어 버렸다. 하나도 변한 게 없어서였다.
늘 먼저 오는 것도 그렇고, 잘생긴 걸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솔직하게 조잘거리는 것도 그렇고.
“저기, 작곡가님.”
웃음의 의미를 알 리가 없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고 자신을 불러 세웠다.
“오늘 근데 저만 따로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뭐예요?”
그 물음에 현승이 입을 꾹 다물자, 그녀는 둘만 보는 게 불편하다는 말처럼 들렸을까 봐 곧바로 말을 정정했다.
“저야 좋지만, 사실 저보단 감독님들을 만나는 게, 작곡가님에게는 더 도움이 될 만남이라는 걸 아실 텐데 굳이 저만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조금 이해가 안 돼서요.”
현승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주 잠시 고민했지만, 사실 지금 본인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냥 정리하고 싶어서요.”
“예? 뭘요?”
“이제 그쪽 번호 차단할 겁니다.”
이 정도만 말해도 알아듣겠지.
“어….”
그녀는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선뜻 대답을 잇지 못했다.
“혹시 제가 너무 귀찮게 해드려서 그러시는 거죠? 정말,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그러기도 잠시, 벌떡 일어나 테이블에 머리통을 박을 기세로 고개를 재차 숙여댔다. 아, 저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현승은 곧바로 그런 그녀의 어깨를 붙들어 제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괜찮으니, 좀 앉으시죠.”
“아니에요. 제가 너무 저희 생각만 하고, 귀찮게 한 것 같아요. 제가 감독님들한테 잘 말씀드려서 이제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가 진정되었는지, 다시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동그란 눈을 마주하며 물어왔다.
“근데… 왜 이렇게 정성스럽게 밥까지 사주시면서 까시는 거예요?”
“네?”
“그냥 차단하면 될 일인데, 굳이 이러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아서요.”
이건 제 예상에 없던 질문이다. 마치 소개팅에서 만난 여성에게나 들을 법한 질문.
“그건….”
현승이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입을 열려던 찰나.
똑, 똑-!
때마침,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종업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제 소스로 맛을 낸 훈제 연어 샐러드 먼저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예쁘게 플레이팅 된 애피타이저와 덜어 먹을 그릇을 놓아주고는 퇴장했다.
어찌나 빠른 손놀림으로 세팅해 주시는지, 현승은 생각할 시간조차 벌지 못했다.
“우선, 여기까지 왔으니 식사부터 하시죠.”
현승은 대답은 잠시 밀어두기로 하고, 샐러드를 먹기 좋게 그릇에 덜어 앞에 놔주었다.
비록 그녀는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릇을 받아 들며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이내.
포크로 샐러드를 엉성하게 콕콕 집어 먹는다. 그 모습이 몹시 토끼 같아 보여, 소리 없이 웃었다.
하얀 얼굴에, 불그스름한 뺨 그리고 포크를 쥐고 있는 작고 여린 손까지 기억 저편으로 잊힌 줄 알았던 것들이 눈 안에 가득 차오른다.
기억이란 놈은 참 무서운 것 같다.
뒤를 이어, 코스 요리가 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 나오자 그녀는 언제 심각했냐는 듯, 신난 얼굴로 음식들을 해치웠다.
정말이지, 내숭이라는 건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아주 맛있게 먹고는 립스틱이 지워지는 줄도 모르고 휴지로 입가를 닦아낸다.
저렇게나 잘 먹을 줄은 몰랐다.
그래.
전생에서는 밥 한 끼조차 사 줘본 적 없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이제야 사주네.’
현승은 만족스럽다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맞다.
그땐 가진 게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된 밥 한 끼 사 줘본 적도 없고 커피 한 잔도 사줘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게 가장 찝찝하고, 마음에 걸렸다.
“이제 차단하는 주제, 정성스레 밥까지 사주는 이유에 대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현승이 손수건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냥 마지막으로 밥이라도 사주고 싶었어요.”
그녀는 제 말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듯 보였지만, 전생에서 스쳐 지나간 연에 대한 마지막 예우이니 그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이로써.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아졌다.
* * *
작업실로 돌아온 현승은, 곧장 미국 시각을 검색해 봤다.
다행히도 한참 활동 시간인 낮이었다.
현승은 우선 [ 김 엄마 ] 라고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
신호음이 한참 흐르기도 잠시.
“어, 금동아.”
투박하지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같이 식사 어떠세요?”
자신의 물음에 김우현은 곧바로 “좋지! 점심에 시간 비워둘게.”하고 대답해 왔다.
그렇게 통화는 짤막이 끝이 났다.
‘이제….’
현승은 다시금 연락처를 뒤졌다.
그러고는 이내.
한 연락처 위에 손가락이 멈췄다.
“흐음….”
현승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냅다 전화를 걸었고.
뚜르르르르-!
액정 화면 위로는 저장명이 크게 떠오른 채였다.
[ 고흐아니고빈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