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2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27화(326/482)
현승의 강행군 진행 소식을 듣게 된 조예리가 차마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하던 그때.
“뭐 해?”
현승이 가까이 오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시간 얼마 없어.”
굳이 바쁜 시간 쪼개 가며 이곳에 온 건, 단순히 조조 모녀의 화해나 돕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며칠 전.
조경미에게 활동 소식을 묻고자 연락했다가 알게 된 두 가지 소식을 떠올렸다.
둘이 첫 무대로 유명 라이브 뮤직 토크쇼 ‘선율의 오선지’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한 번의 연습도 없이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것.
그 소식을 전해 듣게 된 현승은, 말도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은 정말 MR 대신 직접 섹션 연주에 맞춰 백 프로 라이브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
그게 이 프로의 암묵적인 룰이자, 오래된 전통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연습 한 번 없이 올라간다고? 하물며, 솔로곡도 아닌 듀엣곡을? 한 차례도 안 맞춰 보고?
고작 리허설 한두 번 맞춰 보는 걸로는 절대 현승이 원하는 퀄리티의 무대는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나.
조경미에게 먼저 딸에게 연락해서 당장 만나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딸을 대하는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었으니까.
먼저 연락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죄스럽게 여길 그녀였다.
결국.
현승은 곧바로 자신도 그날 현장에 가겠다는 말을 전했고.
“우선 각자 한 번씩 단독으로 불러 보고 바로 듀엣 구간 맞춰 볼게요.”
그 말을 지키듯, 지금 이곳에 MR까지 챙겨 오게 된 것이다.
현승에게는 난제와 같던 곡이다.
녹음은 제법 완벽하게 끝마쳤다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망가진다면 결국 곡의 퀄리티가 갉아 먹힐 거다.
그 꼴은 자신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차마 볼 수 없었다.
물론.
당장 이렇게 강행군식으로 디렉팅을 봐 준다고 한들, 본 무대에서 감정선이 어그러지기라도 한다면 아무런 소용 없겠지만….
모녀가 용기 낸 첫걸음이 엉망진창이어선 안되니까.
“쫄보 먼저.”
현승이 조예리를 턱으로 가리키고는, 휴대폰을 조작했다.
이내.
MR이 흘러나왔고, 조예리는 아무런 준비도, 마이크도 없이 노래를 시작해야만 했다.
─ 아무것도 모른 채 그리워만 했어.
그러니, 제대로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만.”
결국 한 소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승이 손을 들어 올리며 노래를 멈췄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오기 전에 목도 안 풀었어?”
조예리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승은 상체를 뒤로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벽 보고 나는 쫄보다 만세삼창 하면서 목 풀고 와.”
“네?”
“나 두 번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제 말에 조예리는 그 자리에서 주춤거렸고.
“저, 저기, 그건….”
조경미는 그런 자신을 만류하듯 불러 세웠다.
“쫄보.”
하나, 현승은 조예리의 고조할머니가 오더라도 봐 줄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만으로 창피하면, 무대는 어떻게 설래?”
결국 조예리는 벽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고.
“나는 쫄보다! 나는 쫄보다! 나는 쫄보다아아아아아아-!”
대기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목을 풀었다.
혹 옆 대기실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
‘뭐, 내 알 바는 아니고.’
현승이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다시 휴대폰을 조작하며 말했다.
“자, 다시 와서 배에 힘주고 시작해 봐.”
조예리는 별안간 군기가 바싹 든 일병처럼, 퍼뜩 달려와 바로 섰다.
아무래도 조금 전 자신이 비아냥거리며 했던 말이, 자극제라도 된 모양이었다.
이내.
장내에는 다시금 MR이 흘러나왔고.
탁, 탁, 탁.
조예리는 흘러나오는 MR에 맞춰,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췄고.
─ 아무것도 모른 채 그리워만 했어.
이내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첫 소절을 내뱉었다.
─ 아무것도 모른 채 미움만 키웠어.
녹음할 때보다 톤이 더욱 안정된 걸로 보아, 그래도 연습은 제법 많이 해 왔던 모양이다.
아아.
그렇다고 기특하다는 건 아니다. 당연한 거니까.
─ 아무것도 모른 채 미움만 키웠어.
현승이 백 퍼센트까진 아니어도,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그때.
─ 그렇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너무 훌쩍 커 버렸어.
조경미는 그런 조예리를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는 양,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유달리 예뻐 보이나 보다.
* * *
눈을 제대로 뜨기가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는 조명.
그 아래에는 조예리와 조경미가 메인 MC인 유재우의 오른편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조경미 님과 함께 듀엣을 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땐, 진짜 믿기지 않….”
조예리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MC가 건네는 질문에 준비해 둔 멘트를 이어 나갔다.
비록 시간이 부족한 탓에 듀엣 파트를 완벽히 맞춰 보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토크쇼 전체를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그녀는 현역 아이돌이다. 무대 위에서 표정 관리는 이미 배인 습관과도 같았다.
그에 반해.
조경미는 어딘가 어설펐다. 분명 그녀는 조예리보다 훨씬 더 많은 무대에 오른 바 있는 베테랑이다.
그뿐이랴?
기자회견부터 단독 인터뷰 그리고 온갖 토크쇼 출연 이력도 상당한 그녀였다.
“저, 저는 정말 놀라서… 아니, 신기하고.”
그런데 횡설수설하는 건 물론이고, 시선 처리마저 불안정했다.
흘깃.
그래, 지금처럼 제 눈치를 살피느라고.
‘안 되겠다.’
조예리는 결심한 듯, 본격적으로 토크쇼의 흐름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었다.
최대한, 조경미에게 질문이 가지 않도록 제 선에서 컷하면서.
“이번 ‘늦었지만 다시 한번’이라는 곡을, 누군가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라고 해석하던데….”
“어, 그건 노코멘트로 둘게요.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도록.”
“그럼, 혹시 예리 씨는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말을 잘 이어 나가던 조예리가 별안간 어두워진 표정으로 “저는….” 하고 망설이기도 잠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나누는 대화 정도로 생각하며 불렀습니다.”
금세 싱그러운 미소를 띠며 답했다.
“오, 정말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경미 씨는요?”
그때 MC가 조경미를 향해 물었고.
“저는 정말 딸과 엄마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불렀던 것 같아요.”
여태껏 눈치를 살펴오던 그녀가 이 질문만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그 대답에 조예리는 놀랐는지, 흠칫 몸을 떨었지만 이내 능글스러운 얼굴로 말을 보탰다.
“나이 차이가 좀 나서 그런지, 엄마랑 딸처럼 호흡이 척척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제야 MC는 만족스럽다는 양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이내 큐 카드를 넘기며 준비된 멘트를 이었다.
“자, 그럼 ‘늦었지만 다시 한번’을 안 들어 볼 수가 없겠죠.”
적절한 타이밍에, 드디어 무대를 선보일 차례가 왔다.
“듣기로는, 너무 영광스럽게도 두 분이 발매 후 첫 무대를 선보이시는 거라고 하던데….”
“네, 아시다시피 조경미 님이 워낙 바쁘시다 보니, 모든 방송을 다 출연할 수는 없었어요.”
조예리는 반짝이는 눈으로 객석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렇지만 라이브 무대는 꼭 한번 선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곡도 워낙 좋으니까.”
“아, 또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기엔 우리 선율의 오선지만 한 곳이 없죠.”`
“네, 그래서 무조건 선율의 오선지만큼은 출연하고 싶었어요.”
그러고는 MC에게 얼른 무대를 시작해 달라는 사인을 보냈다. 더 이상 떠들었다간, 노래를 부르기도 전에 목이 쉴 것 같아서였다.
‘속성 디렉팅만으로도 힘들다고….’
정말이지, 조예리는 이러다 무대 위에서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이윽고.
MC의 멘트와 함께, 무대 위로 암전이 찾아왔다.
─ 짝짝짝짝짝-!
기대감이 서린 박수 소리가 촬영장 천장을 타고 울려 퍼지던 그때.
─ ♬ ♬ ♬
잔잔한 선율과 함께 무대 위로 새하얀 조명이 떨어졌다.
─ 아무것도 모른 채 그리워만 했어.
조예리는 두 손으로 소중히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 아무것도 모른 채 미움만 키웠어.
조예리의 베이지색 머리칼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고.
─ 아무것도 모른 채 미움만 키웠어.
점차 자신감이 붙었는지, 여린 손가락이 멜로디 라인을 그려 내듯 공중을 휘저었다.
그래.
비록 고단하긴 했어도, HS의 속성 디렉팅을 한 차례 받은 이후여서인지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마구 솟구쳤다.
─ 그렇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너무 훌쩍 커 버렸어.
이내 도입부를 훌륭하게 잘 끝낸 것이, 스스로 자랑스러웠는지 조예리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
머지않아.
켜져 있던 조명이 서서히 꺼지고, 또 다른 조명 하나가 무대 위로 쏟아져 내렸다.
─ 네 조그만 손을 붙잡으면 아스러질까 두려웠어.
그 아래는 단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소프라노의 여왕 조경미가 자리하고 있었다.
─ 네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온 시간.
조예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서 있는 곳을 바라봤다.
지닌 성량 자체가 달라서인지, 이전에 부스 너머로 들었던 것과 확연히 차이가 난 까닭이었다.
‘어….’
하나, 고개를 돌린 순간 조경미와 정확히 시선이 맞물렸고.
─ 결국 네가 필요할 땐 옆에 있어 주지 못했어.
조경미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노래를 이어 나갔다.
─ 혹시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함께 손잡고 걸어 주지 않겠니.
아니, 오히려 또렷이 바라보고 싶다는 양, 눈매를 좁혀 가며 어둠 속에 서 있는 자신을 집요하게 쫓았다.
─ 더 늦기 전에, 네 작은 손 한 번 붙잡아도 되겠니.
조경미의 손끝은 우아하게 공중을 휘저으며 곡을 절정으로 이끌었고.
─ 모든 게 처음인 인생에서,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겠니.
이내, 금방이라도 숨이 꺼질 듯 처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가는 손가락을 뻗었다.
─ 내 목숨과도 같은 너를 잃지 않을 기회를….
그와 동시에 조예리의 머리 위로도 다시금 조명이 쏟아졌고.
─ 우리는 너무 돌아와 버렸으니까.
조경미는 그런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자칫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에 홀려 박자를 놓칠 뻔했다.
─ 버려진 시간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선 안 되지, 첫 라이브 무대니까.
이내 조예리 또한 절정을 향하는 곡처럼, 조급히 걸음을 옮겨 조경미와 마주 섰다.
─ 우리에게 웃을 날만 남았기를.
─ 우리에게 행복할 날만 남았기를.
호흡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마주한 조예리와 조경미.
그 둘은 대중이 아닌 서로에게 속삭이듯 한 소절씩 주고받았고.
─ 앞으로는 네 곁에 함께할 테니.
격해진 감정 속에서, 조경미가 조예리의 작고 여린 손을 부여잡은 채 제 파트를 끝냈고.
─ 두 손 꼭 잡아 줄래요.
조예리는 놀랄 새도 없이, 다음 파트를 이어 나가며 잡힌 손을 살짝 돌려 그녀의 손을 꼭 붙잡았다.
소프라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 때문인지 마냥 부드러울 거라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손은…
제법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짝짝짝짝짝-!
조예리는 무대 위에 그림자가 걷어지고, 모든 조명이 다 켜지고 나서야 붙들고 있는 두 손을 발견했다.
‘조금은 더 잡고 있어도 되겠지.’
쏟아지는 박수 소리 앞에서, 조예리는 조경미의 손을 붙잡은 채 대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던 중.
무대 아래, 구석진 곳에 서 있던 HS를 발견하고는 싱긋 웃어 보였다.
이윽고.
조예리는 그에게만 보일 정도로 입술을 뻥긋거렸다.
‘고마워요.’
정말, 진심이었다.
HS 덕분에, 늦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을 수 있었으니까.
비록,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줘서 참 고맙다고,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