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2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28화(327/482)
인기 아이돌 그룹 내 센터 멤버와 소프라노 여왕의 만남.
그건, 엄청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어찌 보면….
여태껏 음원차트 4위밖에 못 올랐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아아.
물론 그 위로 버티고 있던 3곡이 HS(현승), 마테오, 사라 스튜어트가 부른 곡이라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얘기는 또 아니지만.
하지만.
이번 영상이 단기간에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한 것으로 보아, 순위는 금세 뒤집힐 게 분명했다.
그래.
지금도 3위였던 사라 스튜어트를 밟고, 올라서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현승이 직접 부른 곡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두 손 꼭 잡아 줄래요.
김우현이 조예리와 조경미의 라이브 영상을 돌려 보기도 잠시.
“조예리, 생각보다 더 잘 치는데?”
잔뜩 들뜬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실 들떴다기보단, 먹잇감을 발견한 것마냥 안광이 번들거렸다.
단순히 인기 아이돌 그룹 내 인기 멤버라는 이유로 그런 건 아니다.
애초에 LS 엔터에도 조예리급의 아이돌이라면 있었으니까.
단지.
상상 그 이상의 가창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현승이 조예리를 두 번이나 악기로 연주한 걸 보면, 아직 보여 주지 않은 잠재력 또한 충분하다는 걸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조예리 계약 기간이 얼마나 남았지?’
김우현이 속으로 조예리가 소속된 그룹의 데뷔 연도와 평균 계약 기간을 계산해 나가던 때였다.
“추가로 속성 디렉팅해 주고 오길 잘했네요.”
아무런 관심 없다는 양, 앉아 있던 현승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저 날, 촬영 들어가기 전에 속성으로 디렉팅 봐 주고 왔거든요.”
“현승이, 네가?”
“네.”
“아니, 왜 그렇게까지….”
김우현이 의아하다는 양 되묻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지금껏 많은 곡을 만들고, 디렉팅을 해 온 현승이라지만 이후 방송 활동까지 쫓아가서 애프터서비스를 해 주는 경우는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매달리고 부탁한다고 들어줄 성향조차 아니니, 현승이 자의로 진행했다는 건데…
“그냥요.”
그때 현승이 짤막한 말 한마디로 모든 의아함을 정리해 버렸다.
마치 “재밌잖아요.”처럼,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
“그렇구나.”
김우현은 그냥이 어딨느냐 묻고 싶었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화제를 전환시키듯, 바로 실시간 음원차트 창이 띄워진 액정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현승아, 네 곡이 계속 1위야.”
그 말대로 현승이 직접 보컬로 참여한
은 발매 이후 2주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 TOP 100 ]1위 I’ll leave it – HS
2위 I’ll stay here – Matteo
3위 늦었지만 다시 한번 – 조경미&조예리 (Prod. HS)
4위 Turn around – Sarah Stewart (Prod. HSxMatteo)
오랜 세월 작곡가로서 활동해 온 마테오가 최초로 보컬에 참여했다는 것 또한 연일 화제여서인지, 그가 부른 ‘I’ll stay here’도 2위에 알박기를 이어 나갔다.
물론 현재 대세 중의 대세인 ‘HS’를 쫓아갈 만큼 뜨거운 이슈 거리는 아니었다.
그때.
차트를 곁눈질로 훑어보던 현승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여기에 제 곡이 아닌 게 없는데요?”
아, 그러네.
김우현이 바보마냥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 전부 현승이 직접 만들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참여한 곡이었다. 하물며 4위 밑으로도 현승의 곡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한마디로….
정말 쓸모없는 칭찬을 한 것이다.
“그렇긴 한데, 난 네가 직접 부른 곡을 말한 거지….”
누군가는 차트를 전쟁터라고 비유하겠지만, 현승에게 있어선 안락한 놀이터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하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을 꺼내 보는 것도 좋겠지.
“그래도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소감이 어때?”
김우현은 능글스럽게 질문을 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현승이 며칠 내내 힘겹게 사투를 벌이듯 녹음하던 곡이, 바로 ‘I’ll leave it’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
무슨 사연이 있고, 어떤 마음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어서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하지만 이제 그 사투에 대한 결괏값이 나왔으니, 소감 정도는 물어도 되지 않을까?
꿀-꺽.
짐짓 태연히 물었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현승의 입술을 바라보니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승의 입술이 조금씩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음성이 새어 나왔다.
“뭐, 그냥….”
그러나 이번에도 또 ‘그냥’이라는 대답뿐이었다.
‘분명 사연이 담긴 곡 같았는데….’
애초에 이유가 없으면 직접 노래를 부를 만한 놈도 아니고, 얼굴 좀 밝혀졌다고 가수로 전향할 리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현승의 황금빛 눈동자가 별안간 깊은 수심에 잠긴 듯 요동치고 있질 않은가?
‘그냥은 무슨.’
한 번쯤은 털어놔도 참 좋을 텐데, 어린놈이 입 한번 참 무겁다.
“너무 당연하다 이거야?”
더 캐묻는 걸 포기한 김우현은, 일부러 놀리듯 물었다.
“그런 것보단, 그냥 홀가분해요.”
그러나 현승은 진지하게 받아쳤다.
“홀가분?”
그 말대로 요동치던 눈동자도 평온함을 찾았다.
잠깐 드리웠던 그림자마저 말끔히 걷어진 채였다.
정말 홀가분하다 못해,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네, 이제야 비로소 진짜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이제 다시 원점이니까 제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몰라도 좀 재밌을 것 같아요.”
이어진 대답의 의미는 전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네, 대표이사님의 포부 잘 들었습니다.”
김우현은 현승의 편안한 얼굴을 바라보며.
“재미도 좋지만, 앞으로는 부디 사익 또한 고려해 주시는 대표님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설마 월급 못 드릴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
“에이, 설마요.”
무거워 보이던 마음의 짐을 곡 안에 두고 온 것 같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 * *
폴이 뭉근한 김이 폴폴 솟아오르는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자네답지 않게 날 자주 불러내는 것 같은데.”
그러고는 이내, 마주 앉아 있는 마테오의 앞으로 놓인 같은 잔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무엇보다 자네와 마주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는 게,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그런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묻어났다. 마테오도 그런 그를 따라 소리 없이 미소 지으며 제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올렸다.
“예전에는 이렇게나 쓰고 뜨거운 커피를 왜 마시나 했는데.”
그러고는 한 모금을 홀짝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마시다 보니 알겠더군. 뜨겁고 쓴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걸.”
“나이 오십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둘은 동시에 껄껄하고 웃어 보였다.
웃음이 점차 멎을 때쯤.
폴이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며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그도 그럴 게, 한 달 만에 만난 마테오가 완전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일 때문이 아니라면 집 밖을 잘 나오지 않는 이가, 자주 나오고.
커피는 향도 싫다며, 입에 대려고도 안 하던 사람이 에스프레소를 먹게 되었다는 것도 좀 의외였지만.
그보다.
분위기가 아예 달라졌다. 폴이 바라본 그는 어딘가 날이 서 있는 고슴도치 같았는데 지금은 보드라운 털을 자랑하는 강아지 같달까?
본래부터도 엄청 까칠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으레 작곡가라면 늘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살기 마련이니까.
그건-.
뉴욕필의 수장으로 살아온 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마테오의 입술이 열렸다.
“난 내가 훌륭하게 자란 어른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그냥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거지, 진짜 어른이었던 적이 없었더라고.”
나이 오십을 바라보며, 저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며 인정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
나이를 먹을수록 오랫동안 지켜온 제 신념과 가치관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삐죽 올라간 마테오의 입꼬리에는 자조적인 웃음이 아닌, 후회가 자욱하게 걸려 있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이내 후회 대신 희망이 가득 들어찬 입꼬리가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이젠 딸에게 진짜 어른 노릇, 아빠 노릇을 해 줄 수 있을 테니까.”
폴은 그런 마테오를 바라보다,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커피잔 너머로 바라본 그의 얼굴 위로 왠지 모르게 HS가 겹쳤다.
둘이 닮아서는 아니었다.
굳이 닮은 점을 하나 찾자면,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 정도.
그러나 이상하게도 뭉실뭉실 떠오르던 HS의 얼굴은 점점 또렷이 두각을 드러냈다.
그리고 머지않아 생각했다.
저 청년이 언제 다시 한번 뉴욕필을 불러 줄까.
그가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시작한다면, 세션으로나마 자주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HS 덕분일지도 모르겠군.”
제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마테오의 입에서 ‘HS’라는 이름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 복잡하게 얽혀 가는 둘을 멀리서 바라보며, 악연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쯤 되니, 사실 둘은 필연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네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HS를 찾아다니던 게,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별안간 함께 작업한다고 했을 땐 좀 놀랐어.”
“어린놈이 능구렁이마냥 거절할 수 없는 제안으로 살살 유혹하는데, 별수 있나? 걸려들 수밖에.”
“그자가 최지현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작곡가로서 호기심이 동한 건 아니고?”
“마냥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둘은 또다시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꽤 호탕한 웃음소리가 테라스 벽을 타고 넘어갔다.
그러기도 잠시.
폴이 오늘 오전에 새로 갱신된 빌보드 차트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제일 놀란 건, 자네가 밀리고 있다는 거야.”
“아픈 곳을 찌르는군.”
“이 와중에 아픈 곳을 더 찌르게 되어 미안하지만, 놀란 건 그자의 능력 때문이라네.”
그 말에 마테오가 미간을 찡그리며 매섭게 쏘아보긴 했지만.
정작 그 속은 텅 빈 강정처럼 어떠한 미움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테오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나?”
폴은 영문을 모르는 웃음이 이어지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니, 글쎄 말이지….”
마테오는 말을 잇다 말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였다.
“그놈이 내게 황당한 제안을 하지 뭐야?”
그러고는 생각할수록 웃긴지, 헛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나보고 지휘봉이 되어 달라나?”
그 말에 폴이 “지휘봉?” 하고 되물었다. HS가 가수 혹은 실연자(*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를 악기라 지칭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휘봉은 또 처음 들어 보는 말인 까닭이었다.
“그래, 본인 대신 악기들을 지휘해 달라더군.”
“대체 그게 무슨….”
“아주 당찬 얼굴로 미국 내 레이블을 설립해서 음악 시장을 제패할 거니까 나보고 늦기 전에 프로듀서로 들어오라더군.”
“그게 정말이야?”
“응, 내 몸값은 알고 제안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테오가 불퉁한 어투와 달리,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여하튼, 설립하고 계약금이라도 제시해 보라고 했어.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고.”
폴은 그 말에 따라 웃지 못했다.
어쩌면.
변동 없던 미국 음악 시장의 궤도가 크게 격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