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3화(33/482)
현승은 일본 여행에서 다짐했던 대로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곡을 내 보고자 했다.
“혹시 너 또….”
김 실장은 미심쩍다는 듯 눈을 쭉 찢으며 물었다.
“기계처럼 곡 잘 찍는 가수들 두고, 폐품 데려와서 작업하려는 건 아니지?”
그 말에 정아린이 불쑥 물었다.
“실장님, 역시 저도 폐품이었던 걸까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래도 이제 재활용에 성공한 폐품이겠죠…?”
“그럼, 완벽하게 재탄생하는 데 성공했지….”
정아린의 존재를 잊고 있던 김 실장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으며 얼버무리던 찰나였다.
“일단은 문범재 씨, 윤하재 씨, 오도현 씨 정도….”
그때 현승이 무심하게 툭 가수 리스트를 읊었다.
툭 뱉듯이 뱉어낸 그 리스트 속 가수들은….
하나같이 LS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랄 수 있었다.
“웬일로 그렇게 쟁쟁한 리스트를 생각 중이야?”
“확정은 아니고 그냥 머릿속으로 스케치만….”
작곡가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군침을 질질 흘릴 정도의 가수들이었는데….
김 실장은 현승의 얘기가 전혀 비현실적이라거나 불가능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현승이라면….’
요즘 현승은 비단 사내뿐만 아니라 업계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신예 작곡가 중 하나였다.
비록 신인 작곡가라고는 하나 연달아 두 번이나 가수의 수명을 대폭 늘려 주는 히트를 기록했다.
‘커리어가 부족하지는 않지.’
더군다나 현승에게 곡을 받은 덕에 침체기를 벗어난 건 물론, 일본 진출까지 성공해 낸 서지니의 성과까지 고려해 본다면?
‘그래, 그 정도면 메가 히트라고 봐도 무방하고….’
그렇다면 제아무리 쟁쟁한 가수라 할지라도 ‘신인 작곡가’라는 이유로 단번에 거절해 버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보통 피처링을 해 줄 때는 품앗이 형태로 다음 작업을 기약하는 경우가 많으니 흔쾌히 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곡가 개인 앨범은 성공 사례가 흔치 않다.
결국 문제는 윗선이다.
보고를 올렸을 때 결재판에 잉크 한번 묻히지 못하고 돌아올지 모를 노릇이었으니까.
“아마 이번에는 결재가 쉽지는 않을 거야.”
“왜요?”
“작곡가 개인 앨범이라는 게 성공이 힘든….”
그 말에 현승이 눈매를 좁혔다.
“성공하는 게 힘들면요?”
“응?”
“실패라도 할까 봐요?”
정말 실패의 확률을 아예 배제한 것 같은 말투였다.
“저는 지는 싸움은 안 해요.”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 이야기를 담은 곡을 써내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실패하겠다는 생각으로 곡을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장담컨대 앞으로도 제 곡을 두고 성패 여부를 걱정하셔야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응?”
“곡이야 무조건 성공할 겁니다. 내는 족족 전부 성공할 거예요. 다만 문제는….”
현승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으로 부연했다.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느냐 정도?”
그간의 성과만 감안해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하아, 것 참….”
김 실장이 손을 내저으며 덧붙였다.
“일단 결심한 거 맞지?”
“네, 맞아요.”
“그래, 그럼 내가 알아서 할게.”
“괜찮겠어요?”
김 실장이 시계가 채워진 손목을 슬쩍 들어 올렸다.
“발에 땀 나도록 일하라면서?”
“예.”
“결재는 어떻게든 뚫어 올게.”
이번에는 쟁쟁한 가수 리스트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작 두 명이었지만 맡은 아티스트마다 이례적인 성공 사례를 보여 주지 않았던가?
“일단 밥이나 먹자. 시계도 받았는데 답례로 구내식당 쏠게.”
“단가가 안 맞는데요?”
“오늘 외식하고 싶은데 야간에 잡혀 있는 미팅이 있어서….”
김 실장이 “아!”하고 침음하고는 물었다.
“내일 어때? 내일 저녁에 외식이나 할까?”
현승이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내일은 안 될 것 같은데요.”
“왜?”
“영감님, 돌봐 드리러 가요.”
김 실장은 놀란 눈으로 “영감님?”하고는 되물었다.
“요즘 뭐, 자원봉사라도 하는 거야?”
현승이 고개를 내저었다.
“예? 제가요? 아뇨.”
이윽고.
“이두석 영감님이랑 바둑 두러 가야 해요.”
“돌봐야 한다는 영감님이 그럼….”
“요즘 부쩍 외로움 타시는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친 현승이 “정아린, 뭐해? 밥 먹으러 가자.”하고 말하며 먼저 작업실을 나섰고….
“네! 작곡가님!”
정아린이 그런 현승의 뒤를 병아리처럼 졸졸 쫓았다.
“허….”
그렇게 순식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김 실장은 홀로 헛웃음을 흘려 댈 뿐이었다.
‘정말 알 수가 없다….’
연예계에서 이두석 선생님을 ‘영감님’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인물은 아마 현승이 유일할 터였다.
그래, 분명히.
* * *
“영감님, 오랜만입니다.”
현승이 이두석의 집 앞에 도착하자, 그가 버선발로 마중을 나온 채였다.
“먼 길 오는 데 고생 많았네. 오늘은 날도 좋으니 밖에서 한 수 두는 게 어떻겠나?”
그런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집사는 놀람을 금치 못한 얼굴을 한 채였다.
‘선생님께서 저렇게나….’
오래도록 이두석의 곁을 지켜 왔던 그였기에 이두석의 성향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소탈하며 격식 차리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라지만 가까워지기가 쉬운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현역 시절에야 불같은 성격 탓에 다들 가까이 지내기 어려워하던 인물이었으며….
‘지금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는 않지.’
은퇴 후 칩거 생활하다시피 하고 계신 근래에는 다들 더더욱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기색이 또렷했다.
양손 가득 선물을 챙겨서 걸음 한 방송가 관계자 중 태반이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돌아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내 미리 준비해 뒀네.”
이두석과 현승은 고즈넉하게 자리한 정자에 도착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바둑판을 사이에 둔 채로 마주 앉았다.
“저번처럼 쉽게 지지 않을 겁니다.”
“이놈이, 아직도 어른을 놀려 먹네.”
서로 피식 웃으며 자리를 꿰차고 앉아 바둑돌을 가려냈다.
그 결과….
이번에는 이두석이 흑을, 현승이 백을 쥐게 됐다.
그렇게 한바탕 대국이 이어졌다.
쩔그럭, 탁.
쩔그럭, 탁.
쩔그럭, 탁.
외목, 쌍립, 화국, 미생, 우형, 장문, 환격….
“아뿔싸, 당했구만….”
이두석의 손이 갈 곳을 잃고 허공에서 우왕좌왕하기를 잠시.
“당했어.”
그가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린 말에 현승이 되물었다.
“기권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살펴보면 방법이 있겠지.”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는데요.”
“이놈아, 이럴 때는 말이다….”
이두석이 별안간 돌을 내려놓았다.
“잠깐 돌을 놓고 세상을 보는 거야.”
그리고는 저 멀리 정원을 바라봤다.
“이 널찍한 세상에서 비좁은 바둑판 안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할 이유가 대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일세.”
“말에서 뼈가 느껴지는군요”
“그래, 있다마다. 부끄럽지만 내가 그랬거든. 그때는 대체 왜 ‘생’(生)이 이기고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두석이 재차 첨언했다.
“내가 바둑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생을 닮아서야. 바둑판 위에는 잡아먹히게 되는 돌도 있고, 잡아먹는 돌도 있지 않은가? 한때는 사는 게 이기고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어. 그까짓 사소한 성패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지.”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되물었다.
“전부가 아니었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이두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아니었지. 이제 와서 보니 살아간다는 건 이기고 지는 싸움 따위가 결코 아니었던 게지….”
“풀어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모든 형국에서 이기고, 이기고, 또 이겨서 큰 집을 지어 냈다고 해서 무조건 훌륭한 경기는 아닐 테니까.”
그가 고민 끝에 다시금 착수했다.
쩔그럭, 탁.
그리고는 넌지시 말을 이었다.
“당장의 형국만 봐도 그렇네. 작금의 내 입장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는 깜깜한 형국이라지만….”
“예.”
“바둑판 바깥에서 바라보기에는 말 그대로 사소하기 그지없는 하나의 형국에 불과하지 않은가?”
현승이 곧바로 재차 착수했고.
쩔그럭, 탁.
이내 그가 다시금 덤덤하게 부연했다.
“심지어 바둑판 바깥의 세상과 비교한다면?”
“예?”
“바둑판 안에서의 일은 아무리 대단해 보인들.”
이두석이 현승과 눈을 맞추며 웃었다.
“전부 한낱 소사(小事)에 불과하겠지.”
그 말에 현승의 생각이 깊어졌다.
“전부 한낱 소사(小事)라….”
비록 착각일지는 모르나 그가 ‘연예계’ 내지는 ‘방송가’ 전체를 바둑판에 빗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두석은 그 안에서 이기고 지는 싸움을 수도 없이 반복해 왔을 노장 중의 노장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럼 어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조언을 구해 보기로 했다.
“글쎄, 늙은이 사견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가 팔짱을 끼고 바둑판을 노려보며 답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아닌가?”
“예, 그렇지요.”
“설마 혼자 잘 처먹고 잘 살겠다고 하는 일은 아닐 테고.”
“예, 맞습니다.”
이두석이 씩 웃음 지었다.
“이기는 형국에서든, 지는 형국에서든 잠시 돌을 놓고 주변을 살피는 습관을 지니면 어떨까 싶군그래.”
“돌을 놓고 주변을 살피는 습관….”
“무턱대고 앞만 바라보며 달려가다 보면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볼 여유를 잃게 되는 법이거든.”
일련의 울림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전생의 나도 그랬더라면….’
대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두석이 재차 넌지시 물음을 건네 왔다.
“자네가 살펴보기에 내 기풍은 무엇이 문제인가?”
잠시 고민하던 현승이 답했다.
“쉽게 부술 수 있는 집을 마다하고, 어려운 길을 택해 돌아가는 형태가 무르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군요.”
이두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렇게 두다 보면 꽤 멋진 기보가 완성되기도 하더군. 정말 한 폭의 작품과 같은 흑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기보가….”
그리고는 현승을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하수인 내가 감히 자네 기풍에 대해 말해도 되겠나?”
현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날카롭고, 예민하며, 잔뜩 화가 나 있네. 그리고 어쩔 땐 상당히 조급해 보이기도 하더군.”
“그렇습니까?”
“감추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양을 쫓는 이리처럼 몰아붙일 땐 여과 없이 티가 나곤 하지.”
그가 손에 쥔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장담컨대 산다는 건 절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야.”
“그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흠, 내가 생각했을 때 생을 살아간다는 건 말이지….”
그가 익살스럽게도 웃으며 답했다.
“말 그대로 살아가는 거지.”
“예?”
“산다는 건 그냥 사는 거야.”
그리고는 재차 부연했다.
“그러니 힘 좀 풀게.”
초연하기 그지없는 투였다.
“그냥 사는 일에 불과한 데 왜 그리 혈안이 되어 있나?”
현승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산다는 건 그저 사는 일에 불과한데.
“그냥 사는 일이라….”
전생의 나는.
“그렇군요.”
왜 늘 그리 바짝 긴장해 있었을까?
대체 왜 초조했으며….
무엇 때문에 다급하게도 굴었을까?
“새겨듣겠습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쩔그럭, 쩔그럭-.
손에 쥔 바둑돌을 만지작대던 이두석이 거듭 부연했다.
“그냥 사는 걸세. 가급적이면 많이 웃고, 덜 울면서, 행복하고 소소하게 살기 위해 다들 그리 아등바등하는 거겠지….”
그리고는 현승의 두 눈을 바라봤다.
“자네, 심사가 꽤 어지러운 모양인데 그럴 때는 이렇게 손에 쥔 바둑돌을 잠시 내려놓고 심호흡하며 다시 평정을 되찾는 게….”
이두석의 말에 현승이 불쑥 말을 끊었다.
“영감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만.”
“응?”
“초읽기 시간이 거의 끝났습니다.”
그 말에 이두석이 “쩝.”하고 입맛을 다시며 중얼댔다.
“안 통하는구먼.”
“예, 안 통합니다.”
“안 통할 줄이야.”
“네, 안 통하지요.”
두 사람이 약속한 양 피식피식 웃음을 흘려 댔다.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닌데도 비겁하십니다?”
“이기고 싶은 순간은 있기 마련이니….”
“이기기 위해서라면 반칙을 해도 되는 겁니까?”
그 말에 이두석이 즐거워하며 답했다.
“이놈아! 전부 다 요령껏 하는 게지! 이기고 싶으면 그깟 반칙 따위를 몇 번이고 못 하랴? 이런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상세히 일러 주어야 하니, 원 참, 이 답답하기 그지없는 놈 같으니라고…!”
문득 조금 더 자주 찾아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현승 역시….
이두석과의 대국이 뜻깊고 즐거웠던 까닭이었다.
* * *
현승은 불이 꺼진 작업실에서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 놓은 채로 콘솔에 머리를 박았다.
그런 현승의 머리 옆으로는 찌그러진 고카페인 음료수 캔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젠장.’
오랜 고민의 흔적이었다.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이번 개인 앨범은 삶을 담아내리라 결심했었다.
이전 삶에서 걸어온 발걸음의 흔적….
그 발자취를 따라 곡을 만들어 낼 생각이었다.
한데.
할 말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기나긴 새벽이 다 가도록 중심 구축이 되는 멜로디가 형성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여러 갈래로 나뉜 섹션 칸은 결국 찍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탓에 텅텅 빈 채였다.
‘그러고 보면….’
전생과 근래를 통틀어 여태껏 만든 모든 곡이 ‘머니 코드’에 초점을 둔 채로 만든 듣기 좋고 편한 노래이지 않았던가?
메시지가 담긴 곡을 만드는 것도….
제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루는 건 이번 작업이 처음이었으므로, 어찌 보면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흠.”
이번 앨범의 주제는 말 그대로 지난 생(生)이었다.
트랙이 전개되어 감에 따라….
다루는 감상과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뀌어 간다.
초반 트랙에는 막 성공을 거둔 어린 작곡가의 들뜬 마음을 전부 담아내 볼 요량이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거액이 저작권료라는 명목하에 통장에 꽂히기 시작하고….
만인으로부터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며 흥에 겨워 밤을 새워 가며 일하던 시절을.
뭐든 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오만하면서도 풋풋한 감정들을 담고자 했다.
‘중반부부터는….’
성공을 거둔 이후에 찾아왔던 지독한 무료함과 매너리즘에 대해 다룰 예정이었다.
동력을 잃고 방향을 상실한 채 기계적으로 후크송을 찍어 내던 시절의 감상들.
가장 사랑했던 취미가 직업이 되어 버리며 느꼈던 형용키 힘든 감정들에 대해서.
‘마지막은….’
앨범 후반부의 주제는 ‘후회’였다.
실제로….
전생의 끝자락에 서 있던 현승은.
‘모든 걸 후회했었지.’
어찌 온 사방에 날 선 말을 뱉으며 살았을까?
왜 그리 표독스럽게 굴었던 걸까?
대체 어째서 그토록 모두에게 매정했던 걸까?
돌아보면.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대중에게도….
친구들, 동료들, 그 밖의 동종업계 종사자들.
심지어, 가족에게조차도.
늘 예민했으며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굴어 댔다.
바쁘다.
덧없는 말로 소중한 이들을 멀리하며 살아왔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만큼 큰 죄를 저지른 적은 없다.
입대를 피하고자 비리를 저지른 적도….
음주운전이나 폭행, 마약 같은 범죄 따위에 휘말린 적도 없다.
다만.
너무도 많은 이들로부터 미움을 샀다.
모두가.
자신의 몰락을 바라게끔 만든 바 있다.
전부 그 덕이다.
그 덕에 자신은 더는 작곡을 할 수 없게 됐다.
모든 이들이 등을 돌려 자신을 떠났으며….
아버지는 병상에서 쓸쓸히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아직도 기억한다.
고작 자그마한 이사 박스 하나에 담긴 아버지의 흔적들.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지던….
소박하고, 보잘것없던 그의 옷가지와 짐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제 악보들을 기억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아버지는….
제 악보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셨다.
모든 악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잘 기억나지도 않을 선율을 그리고 또 그려 보셨으리라.
“후, 다시-.”
현승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가장 어려운 타이틀곡부터 찍어 보자….”
으레 말하듯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은 인내와 끈기뿐이다.
처음부터 다시….
현승은 비록 느리지만 원하는 방향에 맞춰 정확하게 타이틀곡을 차근차근 조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딸깍-.
여타 앨범과 달리 타이틀곡을 맨 ‘마지막 트랙’에 배치하고자 결심한 채였다.
또한, 타이틀곡의 주된 주제는 자신이 전생의 끝자락에서 느낀 바 있는 후회였다.
무엇을 가장 후회하는가?
너무 많은 이들을 적으로 돌린 걸 가장 후회할까?
아니면.
기어이 대중에게 외면받게 됐음을 가장 후회할까?
아니다.
현승이 가장 후회하는 건 아버지였다.
손때가 잔뜩 탄….
모퉁이가 너덜너덜해진 악보들.
아버지.
아버지께서 보낸 시간이 자신의 후회였다.
당신이 홀로 보냈을 시간이 후회됐다.
외롭고, 고독하며, 쓰라렸을 시간이 후회된다.
딸깍, 딸깍-.
타이틀곡에 대한 구상을 얼추 마친 현승이 잔잔하기 그지없는 피아노 전주를 바닥에 깔았다.
곡의 기틀이 되어 줄 터였다.
연달아 그 위로 어울릴 법한 온갖 악기의 음률을 차례로 하나씩 끼얹어 보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거칠게 마모되어 삐죽 날이 선 멜로디 라인이 귀를 찔러 댔다.
현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껏 매몰된 채 응어리진 감정을 섹션 위에 그려 나갔다.
“다시.”
섭식 행위도, 수면도 잊은 채 작업에 집중했다.
“다시….”
현승은 타이틀곡을 몇 번이고 완성했으나 다시금 몇 번이나 모두 지워 버렸다.
“흠, 이번에는 얼추 비슷했는데….”
머릿속에 어슴푸레하게 맴도는 곡을 완벽히 꺼낼 수만 있다면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몇 번이고 답습할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현승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방금 막 완성된 수십 번째 타이틀 곡을 재생시켰다.
탁.
스피커를 통해 칠흑같이 어두컴컴한 밤을 걷는 듯한 분위기의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피아노 전주, 묵직하게 깔린 콘트라베이스의 선율, 역설적이지만 격양되어 있으면서도 진정된 음률….
후회로 점철되었던 현승의 지난 삶이 그대로 녹여진 음계들이 조화롭게 울려 퍼져 댔다.
이윽고, 마무리.
모두가 예상했을 고요하고 음울한 느낌의 아웃트로 대신 돌연 변주가 이어지며 희망스럽기 그지없는 음률이 울려 댄다.
회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대한 암시였다.
모든 후회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기회.
“하아, 됐다….”
이 정도면 고작 4분짜리 곡 안에 말하고자 했던 바를 전부 다 담아낸 것 같아 보였다.
몰락.
올라설 땐 보이지 않았으나,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 앞에서야 보이기 시작했던 것들.
후회.
늙고, 병든 건 물론이거니와.
기를 쓰고 외면한 채.
멀리 배척해 왔던 제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조우했던 때의 형용키 힘든 불쾌함.
슬픔….
모든 걸 되돌리고 싶다던 미련한 생각까지 전부 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타이틀곡으로 더없이 제격일 터였다.
이제….
타이틀 곡명을 정해야 할 시간이다.
“흠.”
생에 대한 전반적 후회가 담긴 곡이라지만 가장 큼직한 주제인 ‘아버지’와 관련된 제목을 붙이고 싶은 곡이었다.
– Dear Father.
파일명을 적어 본 현승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쉬운데….”
그 뒤로도 몇 개의 가제가 입력됐다가 삭제됐다.
“아.”
그때 현승이 무언가를 떠올린 양 침음했고….
타닥, 타다닥-.
곧장 키보드를 두들겨 파일 넘버 옆으로 곡명을 작성한 뒤 저장했다.
이윽고.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재깍”거리던 타이머를 멈춰 세웠다.
37시간 32분 8초….
타이틀 곡.
단 한 곡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