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3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31화(330/482)
아직 대표가 오지 않은 회의실 안.
회의가 시작된 건 아니었지만, 착 가라앉은 공기는 장내를 더욱 엄숙하게 만들었다.
하나.
그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까톡! 까톡!
연신 울려 대는 알림 소리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며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 접니다.”
현승이 제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자, 최 이사는 피식 웃어 보였고.
“현승아, 이제 무음으로 전환하는 게 좋지 않을까?”
김우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런 현승을 타일렀다.
“네.”
현승은 의외로 고분고분히 그 말을 따라 보였다.
‘웬일이지?’
선뜻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지만, 한 차례 안심하던 찰나.
“오셨습니까.”
문이 열리고 전남일 대표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가장 상석인 중앙에 앉아,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찬찬히 훑었다.
그러던 중, 시선이 멈췄고.
그 끝에는 현승이 앉아 있었다. 대체 자기가 왜 여기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간 얼굴로.
“참석해 주셨군요.”
그러나, 그건 착각이라는 듯 현승이 대표의 말을 받아쳤다.
“오라고 하시니까.”
날이 선 어투가 다분히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제가 부른 이유는 아십니까?”
하나, 전남일은 동요되는 기색 하나 없이 되물었다. 물론, 그렇다고 친절함이 배인 말투도 아니었다.
“알 리가 없죠.”
“그렇군요.”
“말씀해 주실 겁니까?”
“나중 순서입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찰나의 호흡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둘은 서로 즉답을 이어 나갔다. 마치 부딪쳐도 소리가 나지 않는 칼처럼.
분명 공중에서 날카롭게 날붙이가 부딪힘에도 불구하고 “챙, 챙!”-하는 날카로운 굉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헙.”
그 모습에, 권 상무가 헛숨을 들이켰다. 대표님에게 저런 어투로 대하는 사람을 처음 본 까닭이었다.
권 상무는 아시아 진출을 위함이라는 좋은 명목을 삼아, 중국 거대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에게 접대하러 다닌 탓에, HS를 직접 마주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금쪽이 성격을 모르니, 그럴 수 있지.
스-윽.
하지만 오늘은 김우현도 제법 놀란 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따라 전남일도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까닭이었다.
회사 내에서 대표가 현승을 총애한다는 건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단순 소문이 아니라, 그건 실제였다. 그런 대표가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현승에게 적대적인 느낌을 풍겼다.
아아.
물론 오늘은 현승이 먼저 삐딱선을 타긴 했지만.
그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성적이 잘 나오는 현승인 만큼 그마저도 당찬 패기라 여겨 주던 대표가 아니던가?
‘정말 눈치를 챈 건가?’
안 그래도 요즘 현승의 앨범이 잘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가 저런 스탠스를 취하니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덜, 덜, 덜.
테이블 아래로 김우현의 다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비단 김우현만이 그런 건 아니었다.
박 전무의 다리 또한 함께 리듬을 맞추며 흔들렸다.
“이제 그만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둘이 자세를 고쳐 잡은 건, 대표의 말이 떨어진 이후였다.
* * *
“연말 일정은 그렇게 픽스하는 걸로 해서, 본부장님이 각 팀에게 보고서 받아서 전달해 주시는 걸로 하죠.”
회의는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다.
“또 다른 안건 있으십니까?”
서로 의견을 얘기하고, 절충하고, 최종적으로 대표가 결정을 내렸다.
“없습니다.”
박 전무는 이 찜찜한 회의를 얼른 끝내기 위해, 선 대답 후 다른 이들을 눈빛으로 종용했다.
‘얼른 없다고 해.’
이내 다른 사람들도 차례대로 없다며 대답을 이었고.
“그렇군요.”
대표는 고개를 잘게 주억이며, 나긋이 말을 이었다.
“그럼, 회의는 이쯤으로 하고….”
그런 그의 시선이 현승을 향했다.
“이 자리를 빌려, 중대 발표를 할까 합니다.”
그 시선을 따라 다른 이들도 일제히 현승을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 위로는 궁금증이 그득그득 차올랐다.
대표의 노골적인 시선으로 인해, 중대 발표의 주인공이, 현승인 걸 뻔히 알 수 있었으니까.
물론, 두 사람만 제외하고.
‘설마, 설마.’
김우현은 잠시 멈췄던 다리를 덜덜 흔들었다. 아니, 이 정도면 공포감으로 떨리는 걸지도 모른다.
“비록 저의 독단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사측을 위해 내린 결론이오니 이해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대표의 늘어지는 서론에,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무엇보다.
저 말은 본인이 결정한 사항에, 반대 의견 따위 받지 않을 테니 그냥 조용히 받아들이라는 무언의 압박과도 같은 말이지 않은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김우현은 눈매를 좁힌 채, 조심스레 대표의 얼굴을 살폈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늘 저 표정인 사람이니까.
우선 앞에 늘어놓은 얘기들로 추론해 봤을 때, 자신이 우려하던 얘기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만약 아니라면 그건 그거대로 불안한 요소다.
지금, 이 순간.
대표의 입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저는 저기 앉아 있는 작곡가 HS, 아니지, 민현승 씨를….”
전남일이 한 차례 뜸을 들이기도 잠시.
“사내 이사로 올릴 생각입니다.”
회의 시작 전 보여 줬던, 위압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 보여 줬던 태도는 단순 테스트를 위함이었던 것처럼.
“자, 잠시만요.”
그 말에 권 상무가 자동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은 사내 전속 작곡가가 아닙니까? 그, 그런데 어찌 사내 이사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말까지 더듬는 걸 보면 적지 않게 당황한 모양이다.
그래.
너무 당황해서, 대표의 경고마저 무시해 버린 그였다.
“분명 발표하기에 앞서, 이해해 주시리라 믿겠다고 했는데.”
대표의 서늘한 시선이, 권 상무를 향했다.
“아무래도 상무님은 이해가 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어투가 어찌나 흉흉한지.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닐 텐데 말이죠.”
더 이상의 반대표가 나오지 못하도록, 대표가 일부러 더 고압적인 태도로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 탓에 장내의 분위기는 일순간 을씨년스러워졌다.
이내.
대표는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손뼉을 가볍게 맞부딪치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가진 회사 지분에 일부를 양도하면, 사내 이사로서 자격은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표에게 지분을 양도받은 인물은, LS 엔터 설립 이래 단 한 차례도 없던 일인 까닭이었다.
하물며, 풍문으로도 들어 본 적 없었다.
설립할 적부터 함께 한 이두석, 박 전무, 최 이사 또한 설립 시 배당받은 것일 뿐.
대표에게 직접 양도받은 것은 없었다.
특히.
전남일은 거대 자본 기업이자, 투자 회사들에게 배당한 지분과 사내·외 이사들의 몫을 제외한 나머지 50%를 모두 차지하고 있는 대주주였고.
몇 차례나 다른 대기업들이 지분을 갖고, 앞다투어 밀고 들어오려 했지만, 전남일은 악착같이 지켜 냈다.
그런 그가….
지금 지분을 양도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아마.
그만큼 현승을 놓치기 싫어진 거겠지. 황금알을 낳다 못해, 날갯짓마저 화려한 거위를.
“민현승 씨의 능력에 대해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저보다 잘 아실 테니까 말이죠.”
마지막으로, 전남일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을 만큼 달콤한 칭찬을 쏙쏙 골라 곁들였다.
김우현은 만약 자신이 현승이라면, 레이블을 차리겠다는 계획은 당장 때려치우고 LS 엔터의 사내 이사 자리를 택했을 것이다.
안정적인 길일 테니까.
이윽고.
주변에서 “네, 맞습니다.” 하는 대답이 터져 나오던 찰나.
“그런데요.”
현승이 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만약 제가 사내 이사 자리를 거절한다면요?”
그 물음에 박 전무는 자신도 모르게 “이크!”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얼굴을 감싸 쥐었고.
‘아.’
김우현은 이미 포기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현승은 정말 궁금하다는 양 재차 물었다.
“그럼, 어떻게 되나요?”
제 얼굴 위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사 자리도, 지분도 거절한다면요.”
뻔뻔하리만큼 말간 얼굴을 한 채였다. 물론, 몰라서 묻는 건 아니다.
현승은 바보가 아니니까.
전남일 대표가 당장 적대감을 드러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물며 수상함을 느끼고, 제 뒤를 캐낸다면 레이블을 차릴 예정이라는 것쯤 금세 알아내겠지.
비록 제 계획은 모조리 무산시키진 못하더라도, 일을 어렵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무엇보다.
말도 안 될 만큼 파격적인 혜택과 지원을 해 주겠다고 나섰는데, 다 보는 앞에서 거절한다는 건….
어찌 보면 대표의 체면마저 뭉개 버리는 행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승은 제 이름으로 레이블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이상, 뜻을 굽힐 생각은 없었다.
하물며, 같이 뜻을 해 주려는 사람들을 확인한 이상 더더욱.
“진심으로 물으시는 겁니까?”
일순간 착 가라앉은 대표의 물음에, 현승이 “네.” 하고 짤막이 즉답했다.
조만간 나갈 사람이, 지분까지 받는 건 너무 염치가 없지 않나?
심지어.
자신만의 새로운 둥지를 만들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러는데….”
대표의 말이 잠시 늘어졌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대표라지만, 그도 조금은 당황했는지 눈꺼풀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딱히 거절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왜죠?”
그래도, 다행인 건 대표는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었다는 거다.
불쾌감을 드러내기보단, 어떠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들어 봐 주겠다는 태도로 자신을 바라봤다.
“지금의 저는 LS 엔터의 지분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건 아까도 설명했다시피….”
“제 능력에 대한 자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우현의 다급한 손이 테이블 밑으로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자신을 말렸지만.
“무엇보다 저는 LS 엔터의 이사가 될 마음이 없습니다.”
현승은 계속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듯, 말을 이었다.
“제안 주신 것은 감사하나, 거절하겠습니다.”
다 진심이었다.
감사한 것도.
거절하는 것도.
이내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대표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흐음….”
그러나, 부정적인 마음을 억누르듯 깊고 긴 침음을 흘릴 뿐 더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툭-, 툭-.
이때에도 김우현은 테이블 아래로 제 손을 어르고 달래듯 다독였다.
마치 오늘은 이만하면 충분하니, 그만하라고 말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이러면, 더 하고 싶은데.
현승은 간질거리는 입술을 꾹 깨물며 참아냈다.
그래.
자신만이 걸린 문제가 아니니까.
드르르륵-.
그때 의자가 뒤로 끌리며 발생하는 마찰음이 들려왔고.
“오늘은 이쯤에서 하고, 다음에 다시 소집하겠습니다.”
대표는 황급히 회의를 중단하고는 장내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다른 임원진들 또한 그를 따라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후….”
“하….”
남은 것은 오로지 박 전무와 김우현 그리고 자신뿐이었다.
“왜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그래요?”
일순간 둘의 시선이 동시에 얼굴로 꽂혀 들었고.
핀잔이나 구박이 돌아올 거라 예상했던 바와 달리.
“잘했다, 잘했어.”
“우리 금동이, 기특해.”
진심 어린, 칭찬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