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3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33화(332/482)
김효섭은 자꾸만 입 안이 바싹 말라 가는 기분에, 찻잔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호록, 호록, 호록.
조금씩 끊어서 수시로 마셔 대기를 반복하던 그때.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안지호가 들어왔다.
“이제 곧 도착하실 것 같아요.”
그 말에 김효섭은 찻잔을 내려놓은 뒤, 옷깃을 다듬었다.
안지호가 곧 도착한다고 소식을 전해 온 인물이 바로, 작곡가 HS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찾아오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소식을 전한 안지호마저 본인도 이유는 모르겠다며, 우선 만나 보라고만 했으니까.
어찌 보면….
여러 의미로 제 생명의 은인 같은 존재이니 갑작스레 만난다고 한들 전혀 문제 될 건 없었지만.
그냥 의아했다.
자신을 왜 만나자고 하는 걸까? 설마 이제 잘되었으니, 곡에 대한 판매료를 청구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친 것도 사실이다.
제아무리 은인의 부름이라도….
가장 최악의 상황을 제일 먼저 염두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바닥의 순리 같은 거니까.
“대표님?”
안지호는 그런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왜 이렇게 긴장하셨어요?”
그렇게 묻는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못난 대표 만나, 오랫동안 고생만 해 온 녀석.
뭐가 좋다고 저리 웃는지.
김효섭은 그런 안지호를 보고 있노라니, 온몸을 감싸던 긴장감이 일순간 싹 가라앉았다.
“아닌데? 완전 편안하게 티타임 즐기던 중인데?”
“에이, 거짓말. 완전 목석처럼 앉아 계시던데요?”
“그런 게 아니라,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던 거야.”
능청스럽게 대답한 김효섭이, 안지호를 따라 웃어 보였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지만 유달리 아프고, 유달리 예뻐 보이는 손가락이 있는 것처럼.
김효섭에게 안지호 또한 그런 손가락이었다.
그룹 내 다른 애들보다 유달리 아프고, 유달리 예쁜.
그렇다 보니.
안지호를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절로 웃음이 나왔다.
힘든 일이 있어도, 안지호만 보면 이상하게 힘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멤버 중 마음은 제일 여린 놈이, 맏형이자 리더랍시고 멤버들 다 챙겨 가며 부족한 지원에도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고.
되레 ‘더문’을 포기하지 않아서 감사하다며, 성공하면 크게 갚겠다고 큰소리치던 놈이다.
그리고.
그 말을 보란 듯이 지켜 내고 있는 독한 놈이기도 하고.
“어, 오신 것 같아요.”
때마침 안지호의 휴대폰이 울렸고.
“마중 나갔다 올게요.”
신난 얼굴로 대표실을 박차고 나갔다. 첫 만남부터 삐그덕거렸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녀석은 HS를 상당히 믿고 따르는 모양이다.
HS의 방문 한 번에,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뛰쳐나가는 걸 보면.
머지않아.
대표실 문 너머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똑,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HS가 귀찮다는 듯 안지호를 비롯해 다른 멤버들을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끼이익, 쿵-.
마치 그 모습이 어린이들의 영웅이라도 된 것마냥 보였다.
아아.
어린이는 당연히 안지호를 필두로 한 더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내 HS는 반듯한 자세로 인사를 건네왔다.
“아이고, 먼 길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제가 가도 되는데… 우선 여기 와서 편히 앉으세요.”
김효섭은 그런 HS와 맞절이라도 할 기세로 저자세를 취하며,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그렇게까지 친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HS는 그런 제 태도가 심히 부담되었는지,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 그래도 저에게 있어선 은인 같으신 분인데….”
“제가 동정해서 곡을 준 게 아니니, 엄밀히 따지자면 은인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곡을 준 것뿐이고, 성공한 건 더문이니까 더문에게만 감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러고는 이내 제 앞에 놓인 찻잔으로 시선을 옮겼다.
김효섭이 그 시선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사용하지 않은 찻잔 하나와 주전자를 집어 들며 물었다.
“따듯한 차라도 괜찮으시면 한잔 드릴까요?”
“무슨 차입니까?”
“네? 따듯한 페퍼민트….”
“아, 저는 민초파가 아니라 괜찮을 것 같습니다.”
김효섭은 이 순간 고민했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뭔가 분위기를 풀고자 한 농담 같긴 한데….
얼굴이 너무 진중한 탓에 농담으로 들리지 않은 까닭이었다.
“혹시 커피는 없나요?”
“뜨거운 믹스 커피라도 괜찮을까요?”
“아니요, 저는 얼죽아라서요.”
또,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에 김효섭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치를 살폈다.
분명 예전에 봤을 땐, 상당히 거만하면서도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사람이지 않았던가?
고새 컨셉을 바꾼 건가.
HS라는 인물의 성향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40대의 끝자락을 향해 가는 김효섭으로선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운 화법인 까닭이었다.
“하, 하하… 얼죽아시구나.”
어색한 웃음이 끝나자, 장내에는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동시에 김효섭의 등 뒤로는 차가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대체 뭐지?’
조심스레 눈동자를 굴려 HS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던 그때.
“산더미 같던 빚은 다 갚으셨나요?”
HS가 고저 없는 투로 물었다. 딱 보기에도 영세하긴 하나, 빚이 산더미 같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안지호가 얘기해 준 건지, 아니면 눈치가 빠른 것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추가 질문이 날아왔다.
“사옥 이전은 언제 하십니까?”
“아직 그 정도의 여유는 없어서 내년 정도에 새 사무실을 구할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HS는 제 물음에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금 입술을 꾹 다물었다.
뭔가 고민이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단순히 안부 차 들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침묵이 지속되자 김효섭의 입 안은 다시금 바싹 말라갔다.
호록, 호록, 호록.
장내에 차 마시는 소리만 들리던 그때.
“사실 고민 많이 했습니다.”
철옹성마냥 굳게 닫혀 있던 HS의 입술이 조심스레 열렸다.
얼마나 무거운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 건지,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지하 터널을 가로지르듯 무거웠다.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욕심이 좀 나더라고요.”
김효섭의 귓속에 ‘욕심’이라는 단어만이 윙윙 울려 퍼졌다.
자신이 우려했던 바와 같이, 이제 곡에 대해 청구하러 온 것일까?
김효섭은 자신이 지금 내어 줄 수 있는 여윳돈이 얼마나 되는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아마.
모두 끌어오더라도, HS를 충족할 수 있을 만한 금액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의 몸값은 그때보다 시세가 또 올랐을 테니까.
달, 달, 달.
김효섭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다리를 떨어 대자 HS는 그 모습을 천천히 훑어 내리며 말을 이었다.
“저 아직 얘기 시작도 안 했는데, 왜 떨고 그러세요.”
“아, 죄송합니다. 얘기하시죠.”
“지금 분위기가 마치 제가 사채업자가 된 것 같아요.
“네? 아, 아닙니다. 원래 당연히 드렸어야 하는 건데….”
HS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뭘 주시려고요?”
“네? 그야, 당연히 주신 곡에 대한 비용을….”
“그건 일전에 안 받는다고 얘기하지 않았던가요?”
“아, 그, 그러셨죠. 근데 방금 욕심이 나셨다고….”
그러고는 이내 말허리를 자르며 답답하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제가 욕심이 난 건, 돈이 아닙니다.”
돈이 아니라고? 그럼, 뭐가 욕심이 난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가진 것 중 HS가 욕심을 낼 만한 건 딱히 없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효섭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요동치던 찰나.
“저는 더문과 TM 엔터테인먼트가 욕심이 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HS의 입에서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 방, 방금 뭐라고 하신 건지….”
“더문이랑 TM 엔터테인먼트가 욕심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이해하기 어려우실까요?”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분명 예의를 갖춘 말투였지만, 왠지 위압적인 분위기에, 김효섭은 왠지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40대나 돼서, 20대에게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는 게 창피할 법한 얘기겠지만….
정말 HS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일전에도 한번 느꼈지만, HS는 일순간 장내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러니.
곡의 히트를 떠나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일 테고.
“정확히 어떤 것이 욕심이 난다는 걸까요? 일정 지분을 원하시는 건지, 아니면 아예 경영권을 쥐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하나, 김효섭도 그저 그런 배 나온 40대 아저씨가 아니었다.
비록 영세한 매니지먼트의 대표라고는 하나 이 바닥에서 20년을 넘게 살아남은 사람이다.
어떻게 성공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를 잘 아는 사람이란 말이었다.
“그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김효섭은 살아남기 위해, 눈을 번쩍 뜨며 힘을 주었다.
“아.”
HS는 그런 자신을 보고는 작게 놀란 듯 탄식을 내뱉기도 잠시.
“그렇군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김효섭은 그 웃음이 재수 없다기보단 한층 분위기가 풀어지는 전환점처럼 느껴졌다.
“지분 인수는 진행할 테지만 그건 남은 빚 갚고 사옥 이전하는 데, 사용하시고.”
제 느낌이 맞았는지, HS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경영권은 가져갈 생각 없습니다. 그저 제 회사 산하로 들어와서, 함께해 보자는 제안을 하는 겁니다.”
“예? 자, 잠시만요.”
김효섭은 뜻밖의 제안에 놀라서 되물었다.
“제 회사라면… 혹 LS 엔터 산하로 들어오라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혹시 실망하셨나요?”
“아, 아니요. 그건 아니고! 그럼 어떤 회사를 말씀하시는 건지….”
예측 불가능한 대답들이 돌아오자, 김효섭은 말끝을 흐리며 HS의 입술을 바라봤다.
차라리 얼른 저 입에서 얘기가 나오길 기다리는 게 현명한 것이라 판단 내린 까닭이었다.
“조만간 미국 내 레이블을 차릴 겁니다. 만약 TM 엔터가 산하로 들어오게 되신다면, 더문의 해외 진출도 유리해지겠죠.”
이번에는 ‘해외 진출’이라는 단어가 귓속에 때려 박혔다.
아주 달콤한 꿈 같은 말이면서도, 현실성이 떨어져 섣불리 되물을 수조차 없었다.
왜, 그런 제안을 해 주시는 거죠? 혹 TM 엔터의 모든 지분을 원하시는 건가요?
-라는 물음은 목구멍 안에서만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따로 바라는 건 없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HS가 곧바로 뒤이어 말을 이었다.
“지분 또한 일부만 정확히 계산하여 인수할 생각이고, 경영권이나 체제는 일절 건드릴 생각 없습니다.”
“그, 그럼 저는 뭘 하면 되는 거죠?”
“지금처럼 더문을 믿어 주고, TM 엔터를 잘 키워 주시면 됩니다.”
이 바닥에서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고 배웠다.
세상은 서로의 이득에 의해 이해타산이 맞아야만 손을 잡고, 함께 공생하는 것이라고.
근데.
이건 후해도, 너무 후한 조건이었다.
비록 산하라고는 하지만, 경영권이나 체제는 일절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지분 또한 정당하게 인수 절차를 밟겠다고 하질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정말 그의 말대로 남은 빚을 다 처리하는 건 물론이고,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전 또한 고려해 볼 수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자신이 자식처럼 아끼는 더문의 해외 진출 또한 꿈꿔 볼 수도 있을 거고.
“그, 그럼….”
김효섭은 의심과 설렘이 뒤엉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조심스레 열었다.
“저는 뭘 하면 되는 거죠?”
혹시 모를 일이지 않나? 지분의 100퍼센트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고, 본인이 원하는 아티스트로 전속 계약을 체결해 놓으라고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러나.
HS는 끝까지 제 예상과 기우를 벗어났다.
“지금처럼 TM 엔터와 더문을 잘 키워 주시면 됩니다.”
“왜, 왜 이런 기회를….”
“기회 아니고, 제안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연락하세요.”
정말.
이렇게나 예측 불가능한 사람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