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3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35화(334/482)
한편.
레이블 작명 권한의 기회마저 빼앗긴 빈센트는 풀이 죽은 채였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습관처럼 흥얼거리던 콧노래가 뚝 끊겼고.
평소보다 더 당찼던 걸음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하나.
그에 앞서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사옥 로비를 가로질렀다.
터벅, 터벅.
자신이 몇 년간 몸을 담았던 유니스 뮤직 그룹 사옥 로비는, 거니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어깨가 올라가는 규모의 사옥이랄 수 있었다.
웅장하고, 장엄했다.
하지만 빈센트는 이 로비 따위에는 이미 흥미가 떨어진 채였다.
‘아냐, 괜찮아.’
그 순간 빈센트는 좋게 생각하자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래, 뭐 VINCIS도 나쁘지 않아.
내 이름 같고 좋지. 암, 그렇고 말고.
‘VIN으로 시작하는 게 어디야.’
이윽고.
자신이 설립할 사옥 로비에 대문짝만하게 걸릴 ‘VINCIS’ 로고를 상상하며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다시금 힘이 바싹 들어간 두 다리를 휘저어 단번에 복도 코너를 돌려던 찰나였다.
“아.”
동시에 튀어나온 사람으로 인해 빈센트의 걸음이 주춤하고 멈췄다.
“앞 좀 보고 다녀.”
그건 바로 사라 스튜어트였다. 예쁘지만 날카로운 고양이 같은 그녀의 얼굴 위로는 잔뜩 짜증이 서려 있었다.
“너야말로 눈도 큰데, 앞 좀 제대로 보고 다니는 건 어때?”
빈센트는 그런 그녀에게 바로 반문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얼굴이었다.
아니, 오히려 신나 보였다.
오늘, 그래, 딱 하필 오늘! 사옥에 오자마자 처음 마주친 사람이 사라 스튜어트라니!
사라 스튜어트는 그런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잠시.
“fuck….”
늘 그랬듯 습관처럼 욕을 중얼거리며 자신을 지나쳤다.
“아, 맞다.”
빈센트는 그냥 보내 줄 마음이 없다는 양, 무언가 떠오른 듯 은근한 어투로 그녀를 불러세웠다.
“축하해?”
그 말에 사라 스튜어트는 걸음을 우뚝 멈춰 세우고는 고개만 틀어 자신을 바라봤다.
저 새끼, 왜 저래?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네가 부른 곡, 빌보드 차트에 3위로 올라섰던데?”
“허, 오늘은 아무래도 미숫가루 먹다가 코로 나오겠네.”
그러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뭐지, 신식 농담인가.
“다른 곡에 밀려서 계속 4위 언저리에만 머물렀었잖아.”
제 말에 사라 스튜어트의 미간이 얼핏 찌그러지는 게 보였다.
그러나 빈센트의 입은 그 정도로 멈춰 줄 생각 따위 없다는 듯 곧바로 뒷말을 덧붙였다.
“근데 이번에 새로 업데이트된 차트 보니까, 드디어 마테오가 부른 곡 제치고 3위로 올라섰던데?”
“역시, 축하가 아니라 시비였네.”
“아니, 진짜 축하해 주는 건데 섭섭하게 그러기야?”
사라 스튜어트는 짜증보다 그의 익살스러운 웃음이 걸린 입꼬리가 상당히 거슬렸는지.
“오늘 진짜 뭐 잘못 먹었어?”
이상한 눈으로 제 얼굴을 훑어보며 재차 물었다.
“부패된 미숫가루라도 먹은 거야?”
왜 뭐든 미숫가루랑 연관을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참, 선배로서 마음도 몰라주고 말이야.”
여하튼 사라 스튜어트의 예쁜 눈매가 매섭게 올라갔으니 이쯤에서 멈춰 줄 생각이다.
아아.
이 말을 빼먹었네. 다소 유치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게 다 HS의 능력과 인기 덕분이니 감사히 생각하라고.”
“뭐?”
“다음 앨범부터는 네 능력으로만 한번 준비해 봐. 그래도 명색이 싱어송라이터잖아.”
“내가 알아서 해.”
“그래, 수고하고 난 오스틴하고 미팅이 있어서 이만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사라 스튜어트를 지나쳐가는 빈센트의 얼굴 위로는….
피식.
승기를 거머쥔 자의 미소가 은은하게 걸려있었다.
* * *
전남일은 푸르스름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흐음….”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집무실이자, 대표이사실은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참 좋은 방향으로 나 있는 것 같다고.
마치.
제 인생의 방향과 같이 아주 드높고, 장엄하게 펼쳐져 있달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그렇듯,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전남일의 인생 또한 그랬다.
19살.
아름답지 못했던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성인이 되기 전 어느 날이었다.
‘내가 있을 곳은 없어.’
전남일은 날 때부터 고아였다. 고아원 앞에 버려졌으니, 고아원이 고향이자 부모였다.
한 번의 입양 그리고 한 번의 파양.
그 이력은 전남일의 발목을 붙잡고, 절대 고아원을 벗어날 수 없게끔 만들었다.
파양의 이유는 간단했다.
‘“애가, 너무 애답지 않아요! 그냥 조숙한 정도가 아니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침하다고요!”
새로운 가족과 어우러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별수 있나.
날 때부터 고아였고, 고아원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못했다.
단순한 야생의 섭리처럼,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곳이었다.
전남일은 싸움을 잘하지도 못하고 체격도 왜소한 탓에 늘 고아원생들의 타겟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과 맞서 죽어라 싸웠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때려눕힌 다음 굴복시켰다.
그렇다고 일진 놀이를 하고 다닌 건 아니었다.
그저….
제 음식을 탐하거나, 자신을 방해한다면, 가차 없이 대응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단, 문제가 하나 있었다.
조용히 왕처럼 군림하며 편히 지내온 고아원 생활을, 성인이 되면 모두 끝내야 한다는 거였다.
전남일은 다른 고등학생들과 달리, 영특하고 계산이 빨랐던 만큼 신속 정확 하게 판단을 내렸다.
그래.
더 머무를 방도를 궁리하기보단, 더 빨리 이곳을 벗어나 자신이 다시 군림할 터전을 찾기로 택한 것이다.
그렇게.
전남일은 19살 생일날, 무작정 고아원을 나왔다.
물론.
진짜 생일은 아니고, 고아원 앞에 버려진 날이었다.
그리고 늦은 새벽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건물에 몸을 숨기고 잠을 청하던 어느 날.
“여기 숙박업소는 아닌데.”
우연히 만난 한 남자.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 인마.”
그 남자를 만나며 그의 세상은 크게 뒤바뀌었다.
아니.
전남일은 새로 살아갈 터전을 찾게 된 것이다.
“먹고 잘 곳을 제공할 테니, 일 하나 해 볼래?”
“뭔데요?”
“당장 어려울 건 없고, 그냥 운전만 잘하면 돼.”
굶지 않고, 따듯하게 잘 수 있다면 뭐든 하고자 했지만….
하필 그가 요구하는 건 자신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운전 못 하는데.”
“몇 살인데?”
“19살이요.”
“생일은 지났고?”
진짜 생일은 아니지만, 서류상 생일은 지났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당장 면허 학원 등록하러 가. 비용은 내 줄 테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버렸다.
그의 이름은 이두석.
그때부터 그의 등을 보고 따라가며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힘이라는 건. 능력이라는 건….
누군가에겐 큰일처럼 보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결해 버릴 수 있는 것.
그리고.
제 앞길을 방해하는 것들을, 단순한 무력이 아닌 권력으로 굴복시키고, 눈앞에서 치워 버릴 수 있는 거였다.
그래.
전남일은 그에게 배운 힘을 토대로 새로운 터전을 세웠다.
그게 바로….
지금에 LS 엔터테인먼트다.
어느덧 대한민국 3대 연예기획사로 우뚝 성장한 LS 엔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남일이 사활을 걸고, 불굴의 의지로 키워 온 곳이다.
업계에서 소문이 파다했던 이두석을 필두로 그의 애제자라 알려진 전남일이 세운 엔터인 만큼 설립과 동시에 경계하는 곳이 많았다.
그 경계는 곧 공격으로 돌아왔고.
전남일은 고아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두석에게 배웠던 것처럼 살기 위해 그들과 맞서 싸웠고.
그들을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눈앞에서 치워 버렸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정상을 향해 달려왔고.
비로소.
이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딱-!
이내 전남일은 손가락을 튕겨 유리창을 두들기며 상념에서 깨어났다.
유리창에는 제법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온도 차로 인한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또르르륵.
물방울 하나가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던 찰나.
똑, 똑, 똑.
제 직속 비서가 노크와 함께 들어와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대표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전남일은 대답 대신 누구냐는 듯, 비서를 바라봤다.
“작곡가 HS 씨입니다.”
말을 전하는 비서의 입꼬리는 왠지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전남일이 그를 총애한다는 사실을 어깨 너머로 봐 왔기에, 다소 갑작스러운 방문이지만 반길 것이라 여긴 까닭이었다.
하나.
전남일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렇지만, 거절하지도 못했다.
“들어오라 하세요.”
지금, 이 순간 불현듯 이두석이 했던 말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다만, 그전까지는 그저 믿고 지켜봐 주게나.”
그때 대표실의 거대한 문이 열리고, 민현승이 걸어 들어왔다.
여타 다른 이들은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고, 구부정한 어깨로 조심스레 다가오곤 했는데.
그는.
늘 자신에게 올 때 당당한 걸음으로 박차듯 다가왔다.
그래.
그런 점이 처음에는 신기했고, 호기심이 동했고.
그러다가 탐이 났고, 어느 날부턴 두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은 경외감이 제 몸을 감쌌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민현승은 자신을 향해 긴 다리를 휘적이며 다가왔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대표님.”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가볍게 목 인사를 전하며, 소파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 앉아도 되겠습니까?”
전남일은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지금껏 자신이 먼저 그를 불러들였다면, 오늘은 처음으로 그가 먼저 찾아온 날이다.
그 말인즉슨.
무언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는 거겠지.
“흐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눈빛만 봐도 단순히 가벼운 조언을 구하러 온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먼저 묻지 않았다. 자존심을 세우는 건 아니다.
달그락.
전남일은 물음 대신 미지근해진 차가 담긴 찻잔을 내밀었다.
“다소 식었지만, 드시죠.”
현승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일 뿐, 찻잔에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시선을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당장 할 얘기가 있다는 듯, 이글거리는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전남일은 그런 현승에게 가볍게 물었다. 물론, 마음마저 가벼운 건 아니었다.
“다름 아니라, 긴히 드릴 말씀이….”
현승이 별안간 말끝을 흐리기도 잠시.
“제안이 있습니다.”
정확히 시선을 마주하며 뒷말을 덧붙였다.
그 순간….
자신을 번뜩이며 바라보는 현승의 얼굴 위로.
“그래야, 그 친구가 어느 날인가 네 둥지를 떠난다고 한들 네가 일궈 오고 지켜 왔던 그 둥지를 추락시키진 않을 테니까 말이야.”
자신을 향해 일침을 날리던 이두석의 얼굴이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