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35)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36화(335/482)
대표실을 찾아가기 전.
“남이 보면 상당히 오해할 수 있는 그림이거든요.”
현승은 박 전무의 우락부락한 팔뚝에 갇혀 있었다.
얼마나 단단한지, 꼭 쇠사슬로 몸이 묶인 것 같았다.
“그러니 좀 놔요.”
“안 돼.”
“진짜 숨 막혀요.”
“참아.”
요즘 운동을 쉰 탓인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자신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는 그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무님, 이러려고 운동하는 거죠?”
“그래, 인마.”
“아, 엄마가 뭐라고 좀 해 봐요.”
현승은 곧장 엄마 찬스를 쓰기 위해 김우현을 바라봤지만.
“내가 전무님한테 어떻게 뭐라 해….”
그는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좀 놔주세요.”
결국 현승은 자신이 졌다는 듯 그를 달랬다.
이렇게 안 하면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거짓말, 그대로 대표실까지 박차고 달려갈 거잖아.”
“아니,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그 정도 경우도 없을까 봐요.”
“그럼, 약속해. 대표실을 찾아가는 건, 날을 잡은 이후로… 야!”
박 전무의 팔이 느슨해지던 그때.
“그러다가 늙기밖에 더해요?”
현승은 잽싸게 품을 벗어나, 작업실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인마-!”
“금동아!”
뒤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열심히 쫓아오지는 않았다.
사옥 안인 만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을 테니까.
그렇게.
현승은 곧장 대표실이 있는 층으로 향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아아.
전화부터 해 줘야겠지.
─ ♬ ♬ ♬
경쾌한 컬러링이 들려오기도 잠시.
─ 왜.
인사말 대신 불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삐진 것 같지.
“설마 거기는 아직도 밤인가?”
─ 아니, 이른 아침이야.
“잘됐네. 그럼, 좀 길게 말할게.”
현승이 말을 이으려던 찰나였다.
─ 안 돼. 짧게, 본론만 해.
빈센트의 단호한 대답이 말문을 막았다. 퉁명스러운 것보단, 몹시 바빠 보였기에 현승은 바로 수긍했다.
“그럴 생각이었어.”
빈센트는 자신을 레이블 사옥 공사는 물론이거니와 단독 유통 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현장과 미팅을 오가는 중이었으니까.
제 수고까지 덜어 주고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나는 오늘 LS 엔터 대표에게 계약 해지와 더불어 레이블 ‘VINCIS’ 설립에 관해 얘기할 생각이야.”
제 말에 반대편 수화기에서는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고.
─ 타이밍이 잘 맞았네.
이내 빈센트가 호기로운 어투로 덧붙였다.
─ 나도 지금 오스틴에게 전속 계약 해지와 함께 레이블 ‘VINCIS’ 설립에 관해 얘기하러 가는 길이었어.
“마침 잘됐네.”
─ 응, 해지 위약금만 물어준다면 별 탈 없이 끝날 것 같아. 오스틴은 우리 일을 유치하게 방해할 위인이 아니거든.
“만약 방해한다면?”
─ 마냥 당하고 있을 성격은 못 돼서. 너도 그럴 텐데?
“그렇긴 하지.”
현승이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하기도 잠시.
“근데 내가 너한테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야.”
뒷말을 잇자, 빈센트가 “그럼?” 하고 되물었다.
이윽고.
현승이 휴대폰을 반대 손으로 고쳐 들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얘기하는 대로 오스틴에게 전해.”
* * *
“제안이 있습니다.”
현승은 전남일의 속을 읽기 위해, 두 눈을 정확히 마주했다.
그러나.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 하나 읽어 낼 수 없었다.
뭐, 당연한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런 동요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태연하고, 고요했다.
현승은 왠지 김이 팍 식는 느낌이 들었다.
계획과 달리, 홧김에 찾아오긴 했다지만.
분명 많은 각오가 담긴 걸음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남일은 놀라는 기색은커녕, 무슨 제안인지 되묻지도 않고 있지 않나?
마치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는 사람마냥.
“드릴 말씀과 제안 중 어떤 것부터 들어 보시겠나요?”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현승이었다.
“우선 전하고자 하는 말부터 듣는 걸로 하죠.”
전남일은 올곧게 자리한 입술을 열어 차분히 답했다.
참 대표다운 어투였다.
쉽게 흥분하지도, 조급함을 티 내지도 않은 채 존칭을 유지하면서도 위압감이 흐르는.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간단히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승도 그런 전남일을 따라 허리를 곧게 편 채, 사뭇 진지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올해 전속 계약을 마지막으로 LS 엔터와의 전속 계약 해지를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전남일이 눈매를 좁히며, 곧장 되물으려 했으나.
“혹시 다른 곳에서…….”
현승이 한 손을 들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한 가지 더, 저는 이곳을 나가 레이블을 차릴 생각입니다.”
그 말에 전남일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렇…군요.”
그러고는 느릿하게 텀을 두고 답했다.
“제가 설립할 레이블은 미국 소재로, 빌보드를 주 무대로 활동할 생각이기 때문에 크게 부닥칠 일은 없을 겁니다.”
제 말에 전남일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그 웃음 끝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이내.
전남일은 다시금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그럼, 제안은 뭡니까?”
현승은 대답 대신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사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아, 물론 웃을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자꾸만 나오려는 걸 어쩌겠나?
“제가 설립할 레이블과 LS 엔터가 협업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가까스로 참아 낸 현승이, 깊은숨을 몰아쉬며 말을 마쳤다.
이 제안을 하기에 앞서 즐거웠던 모양이다.
사실 이건, 갑작스레 생각해 낸 제안이었다.
TM 엔터테인먼트 덕분이랄까.
조금 더 우회해서, 안전하게 갈 방안이 떠오른 것이다.
“음?”
눈치 빠른 전남일이 이번만큼은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애매한 침음을 내뱉으며 자신을 바라봤다.
그럼, 또 설명해 줘야지.
“한국 내 무대를, LS 엔터를 통해 진행하고 싶거든요.”
“이유는?”
“별다른 이유가 있나요. 일 처리를 잘하잖아요.”
특별히 립서비스도 더해서.
아아.
물론 사실에 기반한 칭찬이다.
“만약 내가 그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떡하실 겁니까?”
그렇게 묻는 전남일의 눈매가 자신을 당장이라도 꿰뚫을 듯 매섭게 번뜩거렸다.
하나.
현승이 누군가? 그의 눈빛 하나에 꿈쩍하기는커녕, 되레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 선택까진 염두에 두고 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제가 절대 거절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셨나 봅니다.”
“뭐, 어느 정도는요.”
“제가 아는 민현승 씨라면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전남일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으나, 아까처럼 위협적인 기운은 거둬진 채였다.
“LS 엔터는 일 처리가 확실하죠. 그러니, 사적인 감정으로 민현승 씨의 제안을 받아 줄 수는 없습니다.”
이내 그는 외부 기업을 상대하듯 아주 상투적인 어투로 덧붙였다.
“다시 날짜 잡고, 협업 계약서를 두고 얘기하는 걸로 하죠.”
이 정도면 됐다. 그렇게 생각한 현승이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예, 그럼 이만.”
“아, 잠시만.”
전남일이 자신을 불러 세웠고.
“혹시 사내 아티스트도 데려갈 생각입니까?”
어떤 고저도 없이, 마치 남 일인 양 물었다.
“그래 볼까 했는데요.”
그 물음에 현승이 즉답하자, 전남일이 이번에는 제법 재밌다는 듯 피식 웃어 보였다.
“그 친구들이 계약 기간은 채워야겠다네요. 이후에 그 친구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현승도 이 모든 게 남 일이라는 양 뒷머리를 긁적이며 심드렁한 어투로 덧붙였다.
“협업하게 된다면, 굳이 넘어올 이유가 없어질지도 모르죠?”
전남일이 이젠 제법 커진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고 박장대소를 한 건 아니다.
터져 나온 웃음을 한 번 털어 낸 것뿐이었다.
머지않아.
다시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협박을 잘하시는 듯합니다.”
“협박이 아니라, 고민을 줄여드리는 겁니다.”
현승은 그 말을 끝으로 인사를 전하며 돌아섰다.
아니.
돌아서려 했다.
“아, 맞다.”
불현듯 떠오른 사실에, 현승은 다시 몸을 돌려 물었다.
“임직원은 그냥 사직서만 제출하면 되는 거죠?”
전남일은 방심하고 있었는지, 불쑥 던진 질문에 본인도 모르게 “허어….”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 문제도 다음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하죠.”
현승은 처음으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대표실을 나섰다.
* * *
같은 시각.
한국과 달리, 넓게 이어진 통창으로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 쏟아지는 이곳은 바로….
유니스 뮤직 그룹 사옥 내 대표실이었다.
“와서 앉아.”
빈센트는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오스틴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오늘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빈센트도 반가운 내색을 비추며, 자리에 앉았다.
퍽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들고 온 참이지만.
“원래 대표와 전속 아티스트가 자주 만나기는 어렵지. 서로 바쁘니 말이야.”
“그것도 그렇네요.”
가벼운 인사치레로 시작된 대화가 이어지기도 잠시.
“이제 슬슬 내게 미팅을 요구한 이유를 들어 볼까.”
오스틴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맞췄다.
그 순간, 느슨했던 분위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마치.
그의 눈빛이 제 살갗을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자신이 알고 있는 데이비드 오스틴이라는 사람은….
영악했다.
나쁜 의미로 얘기한 건 아니다. 이렇게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저.
계산과 결정이 빠르고,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뭘 먼저 들으시겠습니까?”
“매를 먼저 맞을 건지, 사탕을 먼저 먹을 건지 묻는 건가?”
그렇다면, 그가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빠르게 계산해서 결정을 내리게끔 해 주면 될 일이다.
“그런 거죠.”
“그렇다면 매부터 맞아야지.”
빈센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제 전속 계약 해지를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제 말에 오스틴은 놀라기보단, 정갈하게 세팅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이거 참, 아직 계약 기간이 반년은 남은 걸로 아는데….”
그러고는 깍지를 끼우며 물었다.
“누군가?”
그의 목소리를 이미 사옥 지하를 뚫을 듯 착 가라앉아있었다.
“누가 겁도 없이 유니스 뮤직 그룹 소속 아티스트를 상대로 템퍼링 작업을 친 거지?”
원래 같으면, 제아무리 빈센트라도 한기가 도는 저 물음에 몸을 흠칫 떨었을 거다.
그만큼 지금 장내의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은 채였다.
하나.
지금 빈센트는 세상 무서울 게 없는 20살 청년처럼 당당한 위세를 뽐내고 있었다.
“매를 맞아,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으니 사탕을 드리겠습니다.”
마치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아니.
천군만마라도 이끌고 온 사람처럼.
“그 겁도 없는 누군가는 바로 작곡가 HS입니다.”
“뭐? 지금, 뭐라고….”
빈센트의 당당한 대답에, 오스틴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작곡가 HS와 함께 독립 레이블을 설립할 생각입니다.”
“자, 잠깐.”
“내겐 엄청난 경쟁사가 생긴 꼴인데, 이게 왜 사탕이지?”
그러고는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다급히 물었다.
오스틴은 너무 놀란 나머지, 본인이 닦지 않은 손잡이를 짚었다는 사실마저 망각했다.
‘음?’
그 모습에 빈센트도 따라 놀란 듯, 그의 손을 바라봤다.
결벽증이 심한 그로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사탕까진 아니더라도….”
그만큼 지금 오스틴의 사고가 고장 났다는 거겠지.
“경쟁사가 아니라, 협력사라는 단어로 순화해서 말씀드리면 조금 달콤하게 들리실까요?”
빈센트는 익살스럽게 말꼬리를 늘리며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오스틴이 “그럼….” 하고 운을 떼기 무섭게, 뒷말을 덧붙였다.
“유니스 뮤직 그룹에게 저희 레이블인 ‘VINCIS’의 유통 라인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아주 좋은 특권을 쥐여 주듯, 유혹적인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