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3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38화(337/482)
사라 스튜어트는 분통을 넘어 애석함에 잠겨 있었다.
이 감정은….
제게 치욕을 주고 떠나 버린 빈센트를 향한 게 아니었다.
바로, HS를 향한 마음이었다.
어떻게 한마디 언급조차 안 해 줄 수 있는 거지?
물론.
자신에게 그런 걸 얘기해 줘야 할 의무는 없다지만.
‘그래도….’
아예 다른 사업도 아니고, 레이블을 차리는 거라면 자신에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사라 스튜어트는 불쑥 치미는 화를 못 이기고, HS에게 전화를 걸고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하나.
손가락은 키패드 하나를 누르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설마, 데려가고 싶을 만큼의 악기가 아니라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친 까닭이었다.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HS의 입으로 확인 사살을 받고 싶진 않았다.
진짜 그런 거냐고 물으면, 아주 솔직히 그런 거라고 대답할 사람이니까.
결국.
사라 스튜어트는 한숨과 함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탁-!
그녀는 온종일 이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곡 작업을 하다가도.
스케줄에 가서도.
미숫가루를 먹다가도.
이따금 치밀어 오르는 애석함에 전화기를 들었다가, 착 가라앉은 마음과 함께 내려놓았다.
“퇴근하세요.”
모든 일과를 끝내고, 매니저를 뒤로한 채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던 사라 스튜어트는 문득 그런 기대를 품었다.
혹시.
아직 연락을 못 한 건 아닐까? 까먹었을 수도 있고.
그래!
자신이 그 정도로 별로인 악기였다면, 애초에 안 부르겠다는 자신을 설득해서 악기로 사용하진 않았을 테니까!
더군다나 이후에도 미숫가루를 인질로 잡고, 마테오와 함께 작업을 하게 만들기도 했고.
콘서트 초대에 응해 주기도, 반대로 초대도 했잖아?
‘맞아, 맞아.’
집도 초대해 줬고, 또 나름 열애설도 났던 사이인걸!
‘이 정도면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나를 제법 괜찮은 ‘악기’로 생각한다는 거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라 스튜어트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올렸고. 이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HS의 번호를 눌렀다.
그녀는 지금 자신을 스스로 ‘악기’라 지칭한 사실조차 망각한 채, 떨리는 목을 가다듬었다.
─ ♬ ♬ ♬
사라 스튜어트는 ‘받아라, 받아라.’ 속으로 주문을 외치며 연결음이 끊기길 기다렸다.
그러나.
전화는 쉬이 연결되지 않았다. 지금, 한국 시각이 몇 시지?
휴대폰을 볼에서 떼어 낸 뒤, 시간을 체크하던 찰나였다.
─ 어, 왜.
수화기를 통해 심드렁한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여, 여보세요?”
사라 스튜어트는 다급히 휴대폰에 귀를 가져다 대며. 수화기 너머의 HS를 불러 세웠다.
─ 어, 왜 부르냐고.
두 번 물어 짜증이 났는지, HS의 불퉁한 대꾸가 들렸다.
사라 스튜어트는 그 말에 “오랜만이야.” 하고 중얼거렸다.
갑자기 솟구쳐 오른 용기에 전화를 거는 거까진 좋았으나….
또.
막상 HS가 전화를 받으니,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지 퍽 막막했던 까닭이었다.
─ 뭐야, 갑자기. 너 설마 미숫가루 고새 다 먹었어?
HS는 안 어울리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자신이 영 낯설었는지, 다소 놀란 어투로 물었고.
“그건 아니고….”
사라 스튜어트가 말끝을 흐르기도 잠시.
“빌보드 차트 3위에, 내 곡이 오른 거 봤어?”
좋은 화젯거리가 떠올라, 언급했다.
─ 내가 그런 걸 일일이 체크하겠냐?
“안…하겠지.”
그러나, 그걸 튕겨 내는 듯한 HS의 말투에 사라 스튜어트는 금세 풀이 죽어 버렸다.
정말.
데려가고 싶을 만큼의 악기가 아니어서, 말을 안 하는 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빠져든 채였다.
머지않아.
수화기 너머에서 정적을 뚫고 다음 말이 들려왔다.
─ 내 앨범에, 네가 불렀는데 당연한 결과잖아.
사라 스튜어트는 갑자기 환해진 얼굴로 “어?” 하고 되물었다.
진짜 되묻는 건 아니고.
그저 놀라움과 기쁨이 뒤엉켜 감탄사처럼 터져 나온 소리였다.
지금 누군가 그녀를 본다면 흡사 ‘반려견’ 같다고 생각할 터였다.
그래.
주인장의 애정에 꼬리를 사정없이 흔드는 강아지 말이다.
─ 당연한 소리할 거면 전화 끊는다.
HS는 사라 스튜어트가 기뻐할 시간을 그리 길게 줄 생각이 없는지, 단칼에 끊어버릴 듯 덧붙였다.
“아니, 잠깐만-! 진짜 할 말이 있어!”
사라 스튜어트는 제 앞에 HS가 있기라도 한 듯, 공중에 손을 휘적이며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이내.
용기를 내어 물었다.
“혹시 빈센트랑 레이블 설립하기로 했다는 거 진짜야?”
그녀가 마음을 졸일 새도 없이, 수화기 너머에서 “응.” 하고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 빈센트가 말해 줬어?
머지않아 HS는 그렇게 되물으며 “절대 사라 스튜어트만큼은 영입하지 말자더니….” 하고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사라의 귀에는 아주 정확히 들렸다.
“지, 지금 뭐라고….”
─ 빈센트가 너한테 영입 제안한 거 아니야?
“아, 그게….”
─ 나야 대표로서 환영이지.
“잠깐만, 대표?”
─ 응, 그건 못 들었나 보네.
사라 스튜어트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멍하니 입술을 벌린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빈센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건가? 아니, 왜?
설마 단순히 나를 골려 주려고?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속으로 빈센트의 욕을 줄줄이 늘어놓던 찰나였다.
─ 안 그래도 조만간 미국 가게 될 텐데, 그때 다시 한번 정식으로 얘기해 보자고.
HS가 상황을 정리하듯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 이렇게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사라 스튜어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내며, 무언가 크게 결심한 듯 입술을 열었다.
“대표님.”
당연히 HS는 질겁하며 “뭐냐? 미숫가루 과다복용 부작용이냐?” 하고 핀잔했지만.
“정식으로 그럼 영입 제안서 주시는 걸로 알고 기다릴게요.”
사라 스튜어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정중하면서도 사무적인 어투로 말을 끝맺었다.
이 통화를 빌미로 확실히 해 두기 위함이었다.
─ 어, 뭐, 그래.
얼떨떨한 HS의 대답을 끝으로, 상투적인 인사말과 함께 통화를 끝냈다.
이윽고.
사라 스튜어트가 꽉 말아쥔 두 주먹 위로 푸른 힘줄이 불끈하고 솟아올랐다.
‘빈센트, 망할 자식.’
만약 만화처럼 효과음을 넣는다면 ‘빠직’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화가 담긴 주먹이었다.
* * *
한편.
현승은 제 사옥이 아닌, 다른 곳으로 차를 몰았다.
끼이이익-.
부드럽게 주차를 완료한 현승이 차에 내려, 익숙한 듯 걸음을 옮겼다.
원래도 자신감이 넘치는 현승이었지만, 요즘 부쩍 더 자신감이 넘쳤다.
아무래도.
원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려서인 듯했다.
그리고 으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나?
본래 목표는 전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건 한 레이블을 이끌어야 할 ‘대표’가 되기로 했으니, 이런 태도는 유지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쿵, 쿵, 쿵-!
이내 현승이 척 보기에도 철마냥 두꺼운 문을 두들기자, 부서질 듯 굉음이 울려 퍼졌다.
머지않아.
절대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부드럽게 열렸고.
“문 부서지겠다.”
익숙한 얼굴이 현승을 맞이했다.
“너무 늦게 열어 주신 것 같은데.”
“10초 걸렸다.”
그건 바로 제이블이었다.
“하여간, 성질 급하다니까.”
제이블은 핀잔을 던지며, 들어오라는 듯 먼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승이 그런 제이블을 뒤따라 작업실 내부로 들어섰다.
‘여전하네.’
작업실이라기엔 다소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공간이다.
물론.
그만큼 탐스러운 악기들이 많기도 해서, 현승에겐 놀이동산마냥 즐거운 공간이었다.
“안 그래도 바쁘신 몸이, 뭘 그리 중요한 얘기라고, 굳이 내 작업실까지 찾아온 거야?”
제이블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도, 이젠 제법 정겹게 느껴졌다.
“저도 썩 내키진 않지만, 꼭 얼굴 보고, 해야 할 얘기라서요.”
현승이 반격하듯 대답하자, 제이블은 피식 웃으며 냉장고에서 꺼낸 캔 커피 하나를 건넸다.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니면 안 마시는데.”
“그냥 주는 대로 먹고, 얼른 얘기나 전하고 가.”
제이블은 귀찮다는 듯, 퉁명스레 얘기하면서도 제 맞은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마치 전래 동화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눈을 한 채로.
“저한테 파셨던 기타, 기억나세요?”
그 물음에 제이블은 제 콧대를 움켜쥐며 답했다.
“그 일은 아주아주 후회하고 있지.”
“그래요?”
“응, 그렇게 보낼 물건이 아니었는데.”
“잘됐네요.”
현승이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다시 팔게요. 아니, 그냥 드릴게요.”
“너 왜 그러냐, 불안하게?”
“물론, 그냥 드리는 건 아니에요.”
“그럼, 그렇지.”
잠시 기대를 품었던 제이블은, 이내 잔뜩 실망한 기색을 비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또 네 팬 미팅에서 재롱잔치 떨어 달라 하려고?”
“에이, 고작 그런 걸로 그 기타를 넘겨드리진 않죠.”
“그럼, 뭔데?”
“제가 조만간 레이블을 하나 설립할 건데요.”
그러고는 손바닥을 펼쳐, 현승의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잠깐.”
현승은 그 손바닥을 치우며, 퉁명스레 말했다.
“왜 사람 말하는데 끊고 그래요.”
하나, 제이블은 아주 단호하고 완강한 투로 그런 현승을 꾸짖듯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무슨 말 할 줄 아는데, 너 그러면 안 된다.”
“대체 뭘요.”
“꼴에 선배로서 말해 주는데, 그거 옳은 행동 아니야.”
“무슨 행동이요?”
“법적인 것을 떠나, 도의적으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잠자코 그의 말을 들어 주던 현승이 옅은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김칫국 단단히 드셨네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부연했다.
“그냥 저는 제 레이블과 O&M 레이블이 우호적인 관계로서 협업을 맺었으면 했을 뿐인데.”
그러고는 짐짓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외투를 챙겨 들었다.
“그렇게 옳지 않고, 도의적으로 안 될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런 자신을 벙찐 눈으로 느릿하게 바라보는 제이블의 시선을 느끼며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나중에 시간 나실 때, 제 레이블 놀러 오면 기타 연주 한번 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말을 마친 현승이, 몸을 돌리며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자, 잠시만-!”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는 자신을 붙잡는 제이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그렇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갈래?”
현승은 불현듯 제이블이 자신을 기타로 꾀어 냈던 때가 떠올랐다.
“가. 가지고 싶어…!”
그땐 자신도 모르게 기타에 눈이 돌아가서, 군침을 질질 흘리며 가지고 싶다고 했더랬지.
지금은 그때와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그 기타는 내 손아귀 안에 있고.
‘제이블도….’
내 손바닥 안에 있지.
그는 영특하고 수완이 좋은 사람이자, O&M 레이블의 사내 이사직도 겸하고 있는 만큼 자신이 내건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으니까.
“저는 얼음 적게, 벤티 사이즈로요.”
그렇게 말한 현승의 입꼬리 위로는 승자의 미소가 떠오른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