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3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39화(338/482)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현승은 동생 현아로부터 온 톡을 확인하고자 창을 켰다.
“어?”
그러나 현아의 새로 온 톡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쌓일 대로 쌓인 빈센트의 톡이었다.
아, 맞다.
계속 확인한다고 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잔뜩 쌓인 채였다.
‘이런.’
원래 같으면 기분 내킬 때만 확인했겠지만, 이제 동업자이자 파트너인 만큼 중요한 내용일 수 있으니 확인해 봐야겠지.
아아.
마지막으로 온 톡도 이미 하루가 지난 채였지만.
사옥 외관 공사는 끝났어.
내부 인테리어 들어갔어.
시간 나면 꼭 한번 와서 봐.
현승은 천천히 눈으로 훑으며, 턱을 긁적였다.
갈까, 말까.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가자.
그래도 자신이 앞으로 다닐 회사인 만큼, 탄생 과정을 눈으로 담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미숫사라 영입 관련해서라던가, 유니스 유통 라인 계약 관련해서 얘기를 좀 나눠 봐야겠고.
이제 정말 애들 말장난처럼 해선 안 되는 거니까.
근데.
미숫사라랑 빈센트, 두 사람 원래 마주치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사이 아니었나?
스륵, 스륵-.
우선 현승은 맨 위에 도착한 현아의 톡을 클릭했다.
미리 보기로 보이는 글자가 심상치 않던 까닭이었다.
오늘은 꼭 들어와.
안 그러면.
오빠가 최애하는 만화책 한 장씩 찢을 거야.
동생의 귀여운 협박이 담긴 톡이라고 치부하기엔, 1이 없어지기 무섭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그래.
여동생의 새하얀 손가락 사이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만화책.
그중 가장 좋아하는 명장면이 담긴 한 장이 붙들려 있는 사진.
‘안 돼.’
당장이라도 ‘부와아악’ 하는 소리를 내며 찢길 듯 아슬해 보였다.
‘절대 안 돼.’
다른 장면은 다 그렇다 치더라도 저 장면만큼은 안 된다. 남자의 로망, 남자의 낭만, 남자의 의리가 담긴 그 장면만큼은.
이건 현아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
알겠어.
갈게.
내려놔.
다급히 답장을 보낸 현승이, 곧장 차 키를 집어 들었다.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 * *
단숨에 집 문 앞까지 당도한 현승이, 떨리는 손으로 도어락을 풀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민현아.”
그러고는 곧바로 여동생의 방으로 향했다.
“뭐야, 없잖아.”
하나, 방 안에선 인기척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아예 없었다는 듯, 이불마저 가지런히 정리된 채였다.
“뭐지?”
현승이 캄캄한 집 복도를 타고 거실로 향했다.
그곳에도 현아는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없었다.
다들 어디 갔지? 장 보러 간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주방에선 조금 전까지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던 것마냥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폴폴 풍겨 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현승이 그 냄새를 따라 주방으로 향하자, 널찍한 식탁 위에는 식탁보가 얹혀 있었다. 그냥 밥 먹으러 들어오라 한 건가?
그래.
온 김에 밥이나 먹고, 미국 갈 짐이나 싸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현승이, 주방 불을 켜던 찰나였다.
빵! 빵! 빵!
돌연 등 뒤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다발적으로 들려왔다.
“뭐, 뭐야….”
현승이 크게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
그와 동시에 칠흑같이 어두운 동공이 확장되며 진자운동을 벌이듯 빠르게 흔들렸다.
“오빠!”
─ 아들.
그도 그럴 것이.
“대표님이 된 걸 축하해.”
여동생이 초 하나가 깊게 꽂힌 홀 케이크를 든 채로,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촛불보다 따사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도 함께.
“뭐 하고 서 있어? 초 불어야지.”
현승은 얼떨떨한 얼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촛농이 흐르고 있는 홀 케이크를 내려다봤다.
크리스마스에 가족끼리 초를 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자신만을 위한 초를 켠 케이크라니….
무엇보다.
생일도 아니고, 대표된 것을 축하하는 케이크라니.
“부, 불어야지.”
왠지 낯설고, 묘한 기분이었다.
“잠깐, 잠깐!”
그때 현아는 자신의 가슴팍을 살짝 밀어내며 물었다.
“오빠, 소원 빌었어?”
“아니?”
“에헤이, 얼른 빌어.”
“뭔 소원까지 빌어. 이게 무슨 생일 케이크도 아니고….”
“미국이라 고사는 안 지낼 것 같아서, 일부러 돼지 얼굴 케이크로 준비해서 콧구멍에 돈도 꽂아 놨는데 사업 잘되게 해 달라고 빌어야지!”
현아의 말대로 고개를 내려보니 케이크는 귀여운 돼지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콧구멍에 돌돌 말린 오만 원이 꽂혀 있는 건 다소 잔인해 보였지만.
그래도.
여동생이 마음을 담아, 이리저리 알아보고 주문했을 과정들이 눈에 훤해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래, 그러니 나도 마음을 담아 감사를 전해야겠지.
“현아야, 너 얼굴로 주문 제작해서 만든 케이크 아니었어?”
“뭐-? 너 진짜 죽을래?”
“난 진심으로 그런 줄 알았는데….”
일순간 얼굴이 시뻘게진 현아가 자신을 향해 씩씩거리며 달려들었고.
“민현승, 너 이리 와!”
널찍한 집에서 시작된 추격전.
“잠깐.”
그 추격전이 끝난 건 현승이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선 때였다.
“민현아, 너.”
현아는 별안간 낮게 깔린 오빠의 목소리에 쫓던 발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렸다.
왜냐면, 그가 무엇을 물어볼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으니까.
“내 만화책 어딨어?”
“그, 그게.”
“에이, 설마 아니지?”
그리고, 잘못한 게 있었으니까.
“오, 오빠아, 그게….”
현승은 말꼬리를 늘리는 현아를 바라보며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늉만 한다는 게, 끄트머리가 아주 사, 살짝….”
아무 일도 없지 않다는 것을.
.
.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온 가족이 식탁 앞에 둘러앉았다.
그래 봐야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자신이지만, 왠지 식탁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이거 내가 오늘 다 준비한 거야!”
“네가?”
“응, 진짜 일일이 다 만들었어.”
“먹어도 되는 거지?”
“아 씨, 먹지 마!”
아버지가 음식을 앞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남매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기도 잠시.
─ 아들, 진심으로 축하해. 너무 멋지고, 장하고, 내가 뭘 이뤄 낸 것도 아닌데 감격스러울 정도야.
두툼하고 윤기가 흐르는 갈비찜 한 조각을 제 밥 위에 올려 주셨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보다 더욱 따듯하게 저며 오는 미소와 함께.
─ 감사해요.
현승이 갈비찜을 한입에 집어넣었다. 오물거릴 때마다, 동생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별게 행복이냐, 이런 게 행복이지.
현승은 근래 다소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 모든 응어리가 싹 해소되듯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 저 내일 미국 가서 제 사옥 좀 체크하고 오려고요.
─ 벌써 공사가 완성된 거야?
─ 아직은 아닌데, 얼추 외관 공사는 끝난 모양이더라고요. 영상 통화로 보여드릴게요.
─ 기다리마, 조심해서 다녀오고.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제 손등을 가볍게 두들겨 왔다.
응원, 걱정, 위로 같은 감정들이 한데 섞인 손길이었다.
“오빠, 오빠!”
그때 둘의 대화를 엿보고 있던 현아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물었다.
“나 따라가면 안 돼?”
“응, 안 돼.”
“아, 왜 안 돼!”
“안 되면 안 되는 거야.”
단숨에 거절당한 현아는 볼을 부풀리며 잔뜩 삐진 티를 냈다.
데려가고는 싶지만….
그냥저냥 작업을 위해 가는 게 아니라 사업적인 이야기를 나누고자 가는 만큼 여동생을 달고 갈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요즘 부쩍 해외에서도 얼굴이 알려졌다보니, 마냥 편하게 같이 다닐 수 없기도 했고.
“오빠, 미워!”
현승은 현아의 복어마냥 부푼 볼을 콕 찔러 보고 싶단 생각을 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나중에, 다 완성되면 그때 초대할게.”
더 놀렸다간, 정말 볼이 터질지도 모르니까.
* * *
현승은 간단하게 짐을 추려, 미국 땅을 밟았다.
앞으로는 자신이 자주 밟게 될 땅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뭐, 그렇다고 엄청 설레는 건 아니고.
빈센트가 알려 준 주소지로 향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다행히 택시 기사는 동양인인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기에, 조용히 갈 수 있었다.
달리는 동안, 높은 빌딩들이 눈앞을 스쳤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공사 라인이 쳐진 사옥 앞이었다.
높은 빌딩은 아니었지만, 대략 5층 정도로 이뤄진 건물은 꽤 호화로운 저택처럼 보였고.
촌스럽지 않은 오렌지 빛깔이 섞인 벽돌을 쌓아 만든 외벽이, 제법 하이틴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너무 딱딱한 회색빛 건물이 아니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왔어?”
그때 인부들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고 있던 빈센트가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색을 띠며 다가왔다.
“어때, 제법 멋있지?”
현승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여기서 칭찬을 보탰다간 빈센트의 어깨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부 구경시켜 줄게.”
빈센트는 심드렁한 반응에 다소 실망한 듯 보였지만.
금세 의기양양해진 어투로 자신을 안으로 이끌었다.
저벅, 저벅.
그러나 자신 있는 어투와 달리, 아직 내부는 완성이 안 된 채였기 때문에 외부보다 형편없었다.
콘크리트 벽면이 여과 없이 속살을 비추고 있었고.
아직 반밖에 안 올라온 가벽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다.
대체, 뭘 구경하라는 건지.
빈센트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가이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우리 로비야. 사옥 분위기에 맞춰 엔틱한 호텔 로비 느낌으로 꾸며둘 생각이야.”
“여기는 구내식당인데, 맞춤 주문하는 방식으로 할 생각이야.”
“여기는 중요한 손님 맞이하는 접견실이고, 어, 저어기 복도 끝방이 대회의실이야.”
하나, 어떻게 꾸며질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상태에서 듣는 설명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테리어 감각이 그다지(*몹시) 좋지 못한 현승이었기에, 무어라 더 보탤 말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으로 담으며 걸음을 옮기기도 잠시.
“자, 여기가 메인이야.”
빈센트가 제법 완성된 문틀의 형태를 띠는 방 앞을 가로 막고 선 채로 두 손을 파리마냥 비벼 댔다.
그 모습이 꽤 실적 좋은 상인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뭔데?”
현승이 대충 눈짓으로 얼른 보자며 문을 가리켰고.
“하여간, 재미없다니까.”
빈센트가 눈을 째리며, 천천히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자, 네가 쓰게 될 대표실이야.”
오래된 나무 테가 돋보이는 문이 척 보기에도 묵직한 무게를 드러내며 서서히 열렸고.
“음?”
내부는 여태 봐온 곳들과 확실히 달랐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사람의 온기는 당연히 없었지만, 당장 사람만 들어와 앉아 있으면 원래 사용해 오던 집무실처럼 보일 정도로 완성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때, 대박이지?”
빈센트의 말대로 한눈에 봐도 멋스러운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넓은 통유리창 너머로 숲이 울창하게 늘어져 있던 까닭인지,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을 들게 했다.
그리고.
탁한 레드 컬러의 카펫이 온 바닥을 덮고 있다 보니, 오래된 산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으며.
짙은 갈색 톤으로 맞춘 가죽 소파는 척 봐도 값비싼 느낌을 자아냈다.
“내가 이날을 위해 미리 주문해서 맞춰 놨지!”
빈센트의 말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고급스러운 나무를 깎아 만든 명패가 보였다.
“멋지네.”
하나, 현승의 반응은 이게 다였다.
“아니, 반응이 그게 끝이야? 내가 일부러 대표실만큼은 서둘러서 완성해 달라고 한 거란 말이야!”
“고생했네.”
“아니, 진짜 그 반응이 다야?”
현승은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고.
“아니다, 아니야.”
빈센트는 그런 현승을 보며 앞으로 자신과 동업자로서 제법 많이 부딪힐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다 각오한 일이다.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디라고 하질 않나?
“조금 더 둘러 볼래?”
빈센트가 한 발짝 물러서며 물었고.
이내.
현승이 고개를 내저으며 되물었다.
“여기 말고, 더 중요한 곳이 있을 텐데?”
그 물음에 빈센트가 “더 중요한 곳?” 하며 현승과 눈을 마주했고.
흠칫.
어딘가 서슬 퍼렇게 날이 선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왜, 저러지?
빈센트는 그의 눈빛의 의미도, 말의 의미도 알 수 없었다.
“어, 더, 중, 중요한 곳?”
왠지 물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안 물어서도 안 될 것 같았기에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하아….”
그러자 현승의 입술 사이로 예상된 한숨이 터져 나왔고.
머지않아.
아주 잘생기게 찡그려진 눈썹을 들썩이며 물어왔다.
“내 작업실은 어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