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4화(34/482)
“형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 왔습니다.”
“야, 지금 나랑 장난해?”
“아뇨, 그냥 형님께서 주문하신 대로….”
“뜨거운 거 사 오랬잖아!”
오늘도 어김없이 오도현의 횡포가 시작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매니저는 주문 내용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오도현에게 몇 번이나 “아이스 맞으시죠?”하고 거듭 확인했다.
귀찮다는 양 언성을 높이며 맞다고 할 땐 언제고 지금은 잘못 사 왔다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다.
‘오늘인가? 내 퇴사가….’
매니저는 사직서가 담긴 안주머니 부근의 가슴께를 쓸어내리며 화를 다스렸다.
결국.
그는 다시금 밴에서 내려 카페로 향했다.
“아주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 더 주시겠어요?”
“네, 손님.”
“혹시 유황 팔팔 끓여 만든 아메리카노는 없겠죠?”
“네? 네….”
멋쩍게 “농담입니다.”하고 답한 그가 진동벨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거대한 밴.
그 안에는 자신이 상전처럼 모시고 있는 오도현이 타고 있다.
‘저 악마 같은 놈….’
오도현은 무명 시절이 짧은 가수였다.
이십 대가 돼서야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훈훈한 외모로 기획사 눈에 들면서 약 일 년 정도의 록 밴드 생활을 바로 청산했다.
그 이후에는 록 발라드 가수로 전향하여 여러 히트곡을 부르며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막 사십 대에 접어든 오도현은 미중년이라는 타이틀로 로커 출신 가수 중에서는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했다.
물론 얼굴로만 유명해진 건 아니다.
노래 실력?
정말 타고났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웠다.
한때 로커를 꿈꿔 왔던 매니저로서는 로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풀려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오도현이 한없이 부러웠다.
어쩌면.
그저 오도현이 연일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대리만족감 때문에 고된 매니저 생활을 버티고 있는 걸지도….
지이이이잉-!
매니저가 진동벨을 꽉 쥐며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진동벨이 아니었네.’
진동벨이 아니라 휴대폰이 울린 모양이었다.
[ 이번에 사내 전속 작곡가 ‘HS’ 씨가 개인 앨범을 제작 중인데 오도현 씨가 타이틀곡을 불러 줬으면 한다더라고요. 언제든지 시간 되실 때 전화 주시거나, A&R팀 방문해 주시면 더 자세히…. ]매니저는 문자를 본 순간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미.
‘HS’라는 글자에 입이 “쩍” 벌어져 가려지지도 않았지만….
요즘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다들 곡을 받기 위해 매일 그의 개인 작업실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근데.
그런 ‘HS’가 오도현을 콕 찝어서 자기 개인 앨범의 타이틀곡을 불러 달라며 러브콜을 해왔다.
비록 피처링 건이라지만 이 기회에 면을 트고 연을 만들어 두면 앞으로 곡을 부탁하기도 수월해질 터.
‘슬슬 오도현도 히트곡 업데이트할 때 됐지?’
매니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받아들고 밴으로 향했다. 아주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포근하게만 느껴진다.
“형님, 여기요!”
비록 오도현은 고맙다는 말은커녕 대답도 없이.
아니.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커피만 슥 가져갔지만….
뭐, 괜찮다.
지금은 이런 일로 감정 소비할 때가 아니니까.
“형님, 오늘 스케줄 끝난 뒤에 일정이 있으실까요?”
오도현이 여전히 스마트 폰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 “왜?” 하고 시큰둥하게 물어왔다.
“이번에 곡이 하나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혹시 스케줄 끝나고 같이 들으러….”
“누구 곡?”
“요즘 사내 작곡가 중에 제일 핫한 ‘HS’ 아시죠? 사내에서는 뜨거운 감자인데….”
“모르는데.”
“예? 서지니, 공효주, 정아린 최근에 낸 앨범은 거의 그 사람이 작업한 곡이고….”
“그래서?”
역시 말문 막는 데는 따라갈 사람이 없다.
‘참자, 참아.’
아무리 얄미워도 매니저로서는 자신의 아티스트가 더 빛나고 더 높게 비상하길 바란다.
적어도 자신이 매니저로 있는 한 이런 좋은 기회를 훨훨 날려 보낼 수는 없다.
“요즘 그 사람한테 다들 곡 한번 받으려고 난리도 아니던데요? 그런 대단한 작곡가가 개인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곡을 형님께서 불러 줬으면 한다고 간곡하게 부탁했다더라고요. 형님이 아니면 안 된다고, 꼭 형님께서 불러 줬으면 한다면서 애걸복걸….”
매니저가 그를 한껏 구슬려 봤으나….
“야.”
오도현은 이미 ‘개인 앨범’이라는 단어에 초점이 맞춰진 채였다.
“작곡가 앨범이면 피처링 건 아니야?”
그 말에 매니저가 마른침을 삼켜내고는 답했다.
“아, 네… 맞기는 한데 이번 한번 품앗이한다고 생각하시고 나면 앞으로 꾸준히 교류할 수도 있고 곡 받을 때도 어려움 없이….”
반면 오도현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였다.
“씨발, 내가 신인 작곡가 피처링이나 할 짬이야?”
“아뇨, 정말 좋은 기회 같아서….”
“기회? 이거 웃기는 새끼네? 작곡가한테나 기회겠지.”
그리고는 안대를 뒤집어쓰며 덧붙였다.
“아침부터 열받게 하지 말고 조용히 해라.”
아까운 기회였으나 더 말을 꺼내 봐야 자신만 손해였다.
‘싸이코 같은 새끼….’
오도현이 방송에서는 보여 주지 않는 악마 같은 투로 덤덤하게 덧붙였다.
“급을 생각해야지. 어디 새파란 신인 작곡가가 직접 찾아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건너서 피처링을 부탁해?”
그리고는 재차 신경질적인 투로 부연했다.
“너도 똑같은 새끼야. 우연히 히트곡 한두 개 낸 작곡가가 무슨 대수라고 기회라는 둥 떠들고 있어? 딱 보니 슬슬 거품 다 빠지고 폼 떨어질 것 같으니까 불안해서 유명 가수 이름에 편승해 보려고 발악하는 중인 것 같은데….”
한차례 “죄송합니다.”하고 답한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꾸만….
안 주머니에 고이 모셔 둔 사직서가 떠오를 따름이었다.
* * *
“이러면 오늘도 허탕인가.”
옥상 벤치에 앉아 있던 남성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는….
전설적인 록 밴드 ‘투모로우’의 보컬리스트 출신으로, 국내에서도 로커(rocker)의 대부라 불리는 문범재였다.
“후-.”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내 작곡가의 신곡을 들으러 왔으나 오늘도 헛걸음이었다.
“어떻게 된 게 노래가 다 거기서 거기냐.”
그는 신비주의 컨셉으로 데뷔 때부터 장장 30년을 음악 활동을 제외한 그 어떤 활동조차 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대중들의 18번 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전설적인 히트곡들도 보유하고 있었고.
LS 엔터의 지분을 꽤 많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로 방송활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고로.
막강한 영향력을 손에 쥔 사람이었기에 LS 엔터에서도 쉽사리 그에게 방송활동을 강요할 수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음원이나 앨범을 꾸준히 내온 건 아니다.
당초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고 애정이 충만한 까닭에 곡을 선정하고 부르는 일에 무척 까탈스러운 인물이다.
‘대충 찍어 만든 곡은 부르지 않겠어.’
-라는 대쪽 같은 신조를 지닌 그는, 요즘 “이거다” 할 만한 곡을 찾지 못한 상태였고….
흡사 구천을 떠도는 망령처럼 좋은 곡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치직-!
그는 다 태운 꽁초를 버리고 한 개비를 다시 입에 물었다.
“후-.”
사막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이유는 갈증 때문이 아니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문범재는 지금 사막을 횡단하며 오아시스와 같은 곡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목이 바싹 마른 상태였다.
“이번 공백은 유난히 긴데 좀 더 음악다운 음악 어디 없나….”
그가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향해 중얼거리던 찰나.
“현승 씨, 정말 대단하시지 않아요?”
“그러게.”
“전속 작곡가로 계약한 게 엊그제잖아요?”
하늘이 내려 준 계시처럼 어디선가 들려오는 대화 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진짜 부럽다, 잘은 몰라도 정산 예정인 저작권료 전부 다 하면 족히 십억은 넘을 텐데….”
“현승 씨가 쭈르륵 보냈던 데모곡 들었을 때 진짜 우리 다 완전 패닉이었잖아요? 천재야, 천재….”
“들어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나르시즘에 찌든 작곡가 지망생 정도로 치부했었는데 말이에요….”
“아서라, 이제 다른 세상 사람이야. 초장부터 잘될 줄은 알아봤지만 이렇게 빨리 잘될 줄은….”
슬쩍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더니 A&R실 사람들과 엔지니어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비록 대화 내용이라고 해봐야 ‘현승’이라는 인물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고 있는 게 전부였지만….
‘전속 작곡가?’
그는 이미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새로 온 작곡가가 천재라는 건가?’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곡을 깎고 다듬는 A&R팀 직원들이나 콧대 높은 엔지니어들이 입을 모아 칭찬을 늘어놓는 걸 보니….
‘확실히 실력은 있나 본데.’
그때였다.
“아참! 현승 씨, 타이틀곡은 오도현이 부르기로 한 거 맞죠?”
일순 문범재의 눈이 번뜩거릴 만한 물음이 들려왔다.
“아냐, 곡도 안 들어보고 거절했다더라.”
“분명 후회하실 텐데요.”
“내버려 둬, 전부 다 자기 복인 거지.”
나직이 답한 A&R팀 팀장이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들어 보니까 오도현이 매니저가 설득하려고 애 좀 쓴 모양인데 안 됐나 봐. 그 친구는 참 열심히 하는 친구인데 담당 가수 잘못 만나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네….”
이내 문범재가 마른침을 삼켜냈다.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한 거면 곡이 별로라서 거절한 건 아니란 뜻일 테고….’
신인 작곡가라는 이유만으로 거절했을 확률이 농후해 보였다.
‘이거, 한번 들어 보고 싶네.’
좋은 음악을 들을 때 행복하고, 그런 곡을 부를 때 더 행복한 문범재가 아니던가?
결심을 마친 그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삼삼오오 모여 선 무리를 향해 다가섰다.
“오도현이가 곡을 깠다고?”
“어라? 문범재 선생님….”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아니,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하도 떠나가라 얘기하는 통에 다 들려서 말이야….”
문범재가 본격적으로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오도현이 거절했다는 그 곡 말인데.”
“예, 선생님….”
“혹시 내가 한번 들어 볼 순 없을까?”
자기들끼리 살짝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가장 연장자인 엔지니어 한 명이 앞서 얘기했다.
“들려드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이게 작곡가 개인 앨범에 수록될 타이틀곡이라 피처링이거든요.”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곡만 좋다면야 뭐든 상관없지. 우선 한번 들어나 보자고.”
그 말에 A&R 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 앞서 나가는 질문 같습니다만, 혹시 곡이 괜찮다면….”
문범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마음이 동하면 부를 수도 있겠지.”
말을 마친 문범재가 그에게 얼른 가자며 보채기 시작했다.
가수에게 저작권료가 분배되지 않는 피처링인 만큼….
후일 자신의 곡을 부탁해 볼 명분 또한 생기지 않겠는가?
물론.
어디까지나 현승이라는 작곡가가 만든 곡이 제 귀를 만족시켰을 경우의 일이겠지만 말이다.
“엔지니어실로 가서 들으면 되나?”
결국 그들은 문범재에게 끌려가듯 옥상을 벗어났고….
‘이야….’
그런 문범재에게 끌려가다시피 옥상을 빠져나가고 있던 A&R팀 팀장은 생각했다.
‘안 될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잘될 놈은 엎어져도 떡함지에 엎어진다더니….’
오도현이 까니까, 문범재가 굴러 들어오고 있다.
아무래도….
민현승은 ‘될 놈’이 분명해 보일 따름이었다.
* * *
엔지니어실에 들어선 문범재는 콘솔 앞에 자리를 딱 차지하고 앉았다.
‘제발.’
부디 곡이 제 마음에 들기를 바라며 짧게 심호흡을 해 보이고는 헤드셋을 뒤집어썼다.
딸칵.
머지않아 헤드셋을 타고 고요한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음?”
문범재는 미세하게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나.
벌스가 시작된 순간….
곡이 주는 분위기에 압도당한 까닭인지 그의 목은 깁스라도 한 것처럼 빳빳이 굳어졌다.
곡이 하이라이트로 치닫자 격동치는 파도 속으로 잠식되어 가는 양 숨이 막혀 오기까지 했다.
곡 위로 흐르는 가이드의 목소리는 한없이 덤덤하게 느껴졌으나 역설적이게도 악에 받친 양 들려왔다.
‘무슨 곡이 이렇게….’
무겁고, 쓰라리며, 속상하다.
이윽고.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잠시.
곡의 끝맺음이 다가오자 얼굴 근육에 힘이 축 빠졌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변주로 끝이 난 까닭이었다.
마치 열린 결말로 이루어진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랄까?
그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객석을 지키는 관객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그댄 거기서도 혹시 내 목소릴 매만지고 있을까.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은 가이드 가사 한 줄에 기대어 곡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했다.
‘작곡가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나? 후회를 다룬 곡 같은데 마지막 변주를 생각하면 앞으로는 그리 살지 않겠노라는 다짐에 대한 암시인가….’
그때 엔지니어가 “선생님?” 하며 불러 대는 통에 간신히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 그래….”
이내 염려가 한가득 배 있는 투로 물어왔다.
“혹시 곡 마음에 드세요?”
“어….”
지난 반년 사이에만 수십 명의 작곡가에게 컨택을 받고 수백 개의 곡을 들어 왔던 그였다.
하지만 이런 건 처음이다.
이 곡은 딱 듣는 순간, 스파크가 터지듯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욕심이 일렁거렸다.
이 곡을….
‘꼭 부르고 싶다.’
드디어 오아시스를 찾았으니 냉큼 달려가 샘물을 벌컥벌컥 마셔서 이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혹시 말이야….”
이상하게 조바심이 나서 입안이 바싹 마르고 혀가 갈라졌다.
“이 곡을 내가 불러도 되는지 작곡가한테 물어봐 주겠나?”
“선생님, 진심이십니까? 피처링인데 괜찮으세요?”
“응, 이 곡을 내가 꼭 불렀으면 한다고 좀 전해 주게.”
그리고는 재차 강경한 투로 덧붙였다.
“최대한 서둘러서 말이야.”
그 누구에게도,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은 곡이었다.아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