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4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43화(342/482)
김우현은 어제도, 엊그제도, 그리고 오늘도 약속한 듯 아침이 되면 현승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뿐인가?
미팅이 없거나, 일정이 잠시 빌 때면 틈틈이 찾아왔다.
바로 ‘cafe habit’이라고 적힌 테이크아웃잔을 들고 말이다.
“또네요.”
현승이 시큰둥한 얼굴로 커피를 받아 마셨다.
물론, 이곳 커피가 맛이 좋은 건 사실이다.
또, 매일매일 사 와 주니 귀찮게 사내 카페에 내려갈 일도 없어져 좋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그녀’를 보기 위한 핑곗거리를 내게 버리는 건 아닐까? 저번에 떠나야 할 운명이니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럴 거면 같이 가서 대신 얘기해 준다고 해도, 그건 절대 안 된다며 뜯어말리니, 이거 원.
“그래도 커피 맛은 좋지?”
“그래서 사장님, 예뻐요?”
“예쁜 건 왜 자꾸 물어?”
“아니, 궁금하니까 그렇죠.”
김우현이 자신을 경계 어린 눈초리로 훑어봤다.
아니, 왜 저렇게 보시지?
현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술을 열려던 찰나.
똑, 똑, 똑-!
작업실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박 전무의 것이 아니다. 일정 간격으로 활기차게 두드리는 소리로 보아….
“작곡가님-!”
역시 제 예상대로, 정아린이었다.
“본부장님도 있으셨네요?”
“응, 아린이 오랜만이네.”
“역시 너일 줄 알았다.”
제 말에 정아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저라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노크 소리.”
“작곡가님은 노크 소리만으로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어요?”
현승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정아린은 본격적으로 호들갑을 떨어 댔다.
“와, 절대음감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긴, 그러니까 작곡도 그렇게 잘하시는 거겠죠?”
“꼭 목소리 말고도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리라는 게 있거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리요?”
“응, 걸음걸이에 따라 나는 소리가 다르고, 행동 버릇에 따라 나는 소리가 다르지.”
아예 눈이 튀어나올 듯,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치켜뜨며 다가오니 제법 무섭기까지 했다.
“와, 평상시에 그럼 그런 소리를 다 듣고 사시는 거예요?”
“의도하고 듣는 건 아닌데, 들리니까.”
“역시 천재는 다르네요. 근데 아무리 천재라도 빨래는 잘 못 하나 봐요.”
이내 정아린의 시선이 작업실 구석에 쌓인 빨래 더미로 향했다.
원래 저렇게 쌓여 있지는 않은데….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은 현승은, 옷가지를 여러 벌 챙겨와 한 번에 다시 가져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까먹고 못 들고 가서 쌓인 것뿐이다. 정말이다.
“저렇게 그냥 두면 냄새나요!”
“시끄럽고, 손에 들린 그건 뭐야?”
현승은 잔소리는 듣기 싫다는 듯, 곧장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사실 아까부터 저 봉투 속에 든 것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눅진한 버터 냄새가 폴폴 풍기는 게, 분명 먹거리가 들어 있음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요 앞 새로 생긴 카페 디저트가 엄청 맛있다길래, 잔뜩 사 왔어요.”
역시 그녀가 사 온 건 현승이 좋아하는 먹거리였다. 그런데, 잠시만… 요 앞 새로 생긴 카페라면 설마?
“habit이라고… 어? 거기 커피 드시고 있었구나?”
아니나 다를까, 제 손에 들린 커피와 같은 카페에서 사 온 음식이었고.
“응, 거기 분위기도 좋고 커피 맛도 좋고 사람도 별로 없다며?”
“잘 아시네요?”
“나 말고 본부장님이 그 카페에 대해 아주 잘 아시거든.”
그 말인즉슨, 김우현의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사 온 디저트랄 수 있었다. 근데, 엄마는 여태껏 커피만 사 온 건가? 너무 하네.
“아, 아니지.”
현승이 재차 말을 정정하려 들자, 김우현은 자신을 다급히 바라봤다.
‘무슨 말 하려고!’
라고 말하려는 듯, 입술이 달싹였지만.
“그 카페 사장님을 잘 아신다고 해야 하나?”
현승의 입이 조금 더 빨랐다.
‘쉿, 쉿!’
더 이상의 말은 안된다는 듯, 김우현은 정아린에게 보이지 않게 고개를 틀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왜냐면.
정아린은 사내에서 인싸 중에 인싸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명 사내에 빠른 속도로 소문이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장님? 카운터에 서 있던 되게 예쁘신 여자분 얘기하시는 건가? 본부장님, 그분이랑 아는 사이세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제가 자주 가서 매출 짱 많이 올려드릴게요!”
그런 김우현의 마음도 모르고 정아린은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도 전해 놓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아, 안 돼.’
아직 간단한 인사 말고는 친한 사이라 칭할 수 있을 만큼 얘기를 나눠 본 게 아닌데….
혹시라도 가서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으면 큰일이다.
그래.
더 이상 그 카페를 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아린아, 그럴 사이는 아니야.”
김우현이 완강하게 선을 긋기도 잠시.
“음? 그럼요?”
“그, 그게….”
무어라 관계를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
그때.
현승이 얄미운 시누이마냥 거들고 나섰다.
“시원하게 얘기하세요.”
“뭐, 뭘-?”
“그 여자가 내 여자다.”
“어?”
“왜 말을 못 하시냐고요.”
말릴 새도 없이 터져 나온 현승의 말에, 정아린이 손에 들고 있던 소금빵을 떨어트렸다.
“헉!”
비록 사실이 아니라지만.
저렇게 놀랄 일인가…?
어딘가 씁쓸해진 김우현이었다.
“그분이 지, 진짜 보, 본부장님 여자친구분이세요?”
정아린은 본인이 너무 놀랐나? 싶었는지 황급히 노선을 틀었다.
“어쩐지, 요즘 안경도 끼시고 좀 분위기가 바뀌었다 싶었어요! 연애하셔서 그렇구나! 축하드려요!”
하지만 이미 내상은 심한 상태였다.
“그런 거 아니야….”
김우현이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애써 부정하기도 잠시.
“그냥….”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혼자 바라보는 중이야. 정말, 그게 다야. 그거면 돼….”
그의 얼굴 위로는 아련한 미소가 떠오른 채였다.
.
.
.
대략 일주일 전이었나?
“으흠, 으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근하던 길이었다.
“어?”
사옥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처음 보는 카페를 발견했다.
울창한 빌딩 숲이 즐비한 오피스 상권과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페에 눈길을 빼앗겼다.
‘저런 데는 커피도 비싸겠지?’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김우현은 곧장 핸들을 틀어 카페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승에게 매일 사내 커피만 사 줬으니, 한 번쯤은 특별한 커피를 사 주고 싶다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리고.
으레 저런 카페는 디저트류도 많이 팔 테니, 간식으로 챙겨 줘야지.
딸랑-!
그렇게 생각하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헉!’
김우현은 그대로 몸이 얼어 버렸다.
“안녕하세요, habit입니다.”
눈부신 백야처럼 미소를 머금은 여성과 눈이 마주친 까닭이었다.
“혹시 아침 드셨어요?”
이제 갓 나온 빵을 진열하고 있던 그 여성은 쟁반과 집게를 든 채로 다가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예? 제, 제, 아침 여부는 왜….”
“안 드셨으면 저희 매장 오픈하고 처음으로 방문한 손님이시니까, 이거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아, 제가 첫 손님이군요….”
“네, 맞아요. 대신 맛있으면 회사 분들한테 소문내 주셔야 합니다?”
바보처럼 뭘 기대한 건지.
“네, 알겠습니다….”
그 여성은 자칫 잘못하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밤잠을 설칠 만큼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들고 있던 쟁반을 내밀었다.
분명 서비스용 미소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쟁반을 건네받으며 손끝이 스치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제가 직접 만든 크루아상이에요. 입맛에 맞으시면 좋겠네요. 마실 건 뭐로 준비해 드릴까요?”
김우현은 곧장 뒷주머니를 뒤적이며 지갑을 꺼내 들었다.
“아, 그럼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그러나, 곧바로 길고 쭉 뻗은 여성의 손에 의해 제지당했다.
“아니요, 첫 손님이신 만큼 제대로 서비스할게요.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 맞으시죠?”
“네….”
“자리 잡고 앉아 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원래는 현승이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 잔 사야 했지만, 당장 그런 거까지 헤아릴 정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김우현은 이미 그 여성의 얼굴에 홀려 있었기 때문이다.
백옥처럼 투명하면서도 형광등을 켜듯 환한 피부.
정갈하게 묶어 올린 윤기 나는 흑발의 머리칼.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눈과 매끄럽게 뻗은 콧날.
그리고.
붉고 도톰한 입술 사이로 보이는 가지런한 치아.
그녀는 인간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니지.
그녀는 이 세상 어떠한 것보다 고결해 보였다.
아마.
천사가 있다면 저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어떤 이도 그녀를 본다면 첫눈에 반할 것이다.
지금의 자신처럼.
김우현은 그날부터 출근길마다 그 카페를 들려, 얼굴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친절했지만, 자신에게만 친절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난 떠날 사람이야.’
그렇게 애써 마음을 억누르며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니, 만족하려 노력 중이다.
가끔 너무 벅찰 때면 수첩에,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적었다.
[ 그녀의 깨끗한 미소는 내 불결한 마음을 정화하고…. ]그건, 그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마음이었다.
순결이었으며, 자신의 낭만이자 진심이었다.
“그녀의 깨끗한 미소는 내 불결한….”
그래.
그건 그녀만을 위한 나의 세레나데….
‘잠시만?’
추억에 잠겼던 김우현이 눈을 번쩍 뜨며, 주위를 살폈다.
“우엑.”
“으으.”
현승과 정아린은 딱 붙어 앉아, 수첩 하나를 넘겨 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의 일상은 그녀로부터 시작….”
그래, 그건 자신의 수첩이었다.
“뭐, 뭐, 뭐 하는 거야!”
김우현이 식겁하며 수첩을 빼앗아 들자, 현승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한참 재밌어지려 했는데….”
혀를 한 번 차기도 잠시.
“본부장님, 지금 바쁘세요?”
“오전 시간은 좀 괜찮아.”
“정아린, 너는?”
“저도 오늘 스케줄 간만에 비어서 놀러 온 거라 괜찮아요!”
그러고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물었다.
“그럼, 가 볼까?”
“어딜?”
“어디 가요?”
아주 사악한 꼬마 악마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엄마의 일상이자, 불결한 마음을 정화할 만큼 깨끗한 미소를 가진 그녀를 보러?”
“자, 잠깐만.”
“그래요, 작곡가님! 잠시만요.”
그 말에 웬일로 정아린까지 벌떡 일어나 현승을 만류했다.
“그 헬멧은 좀 내려놓으시고, 모자랑 마스크 쓰고 가시는 건 어때요?”
만류는 무슨.
“이렇게 하면 아무도 못 알아볼 거예요! 저도 아침에 이러고 다녀왔거든요!”
“그래, 이 정도로 가려 놓으면 아무도 모르겠다.”
“본격, 본부장님 노총각 탈출 작전을 위해 출바알!”
자기들끼리 아주 신났네.
“애, 애들아….”
김우현만 웃을 수 없는 카페 나들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