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4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45화(344/482)
박 전무는 문득 현승이 일전에 제 목소리를 이용해 ‘Villain daddy’를 만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퍽 난감하고 쑥스러웠지만, 듣다 보니 제법 멋지고 자신에게 새로운 인생을 안겨다 줬으니 꽤 의미가 깊은 곡이랄 수 있었다.
하나.
이번 김우현의 ‘왜 행복은 너로 시작할까’는 아직 미완이지만 극악무도하다 여겨질 만큼 별로였다.
그래.
같은 남자로서, 김우현이 이 곡을 들으며 느꼈을 수치심을 상상하면, 몸이 떨릴 정도였으니까.
─ 이런, 미친…! 금은동쪽 같은 자식-!
그건 이 곡의 주인공인 김우현도 마찬가지였는지.
─ 이제 벤티 같은 소리 하기만 해! 쥐똥만 한 톨 사이즈만 사 줄 테니까-!
유달리 현승에게만 약했던 김우현이, 처음으로 악에 받친 외침과 함께, 단체 페이스 톡을 나가 버렸다.
근데, 이런 와중에도 결국 커피를 사 주긴 사 줄 거라는 거네.
‘녀석, 착해 빠져서는.’
만약 자신이 김우현이었다면 당장 녀석을 헬스장에 감금시킨 뒤, 토할 때까지 지옥의 트레이닝을 시켜 줬을 거다.
─ 에이, 시시하게 나가 버리셨네.
그러나 현승은 ‘김 엄마 수치 사건’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 고얀 놈….’
박 전무는 그런 현승을 바라보며, 세상에 둘도 없을 사악한 놈이라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이제 같은 배를 타게 된 사람인데, 저리 잔인할 수가 있나.
만약.
내일 김우현이 변사체로 발견된다면, 사인은 ‘수치사’일 것이다.
─ 자, 여러분 인트로 어떠셨나요?
이내 현승이 재생되던 음원을 끄며, 묻자 스피커를 통해 다양한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들 너무하구먼.’
박 전무만 웃을 수 없었다. 돌싱남인 자신이, 노총각인 그의 진심을 놀리면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이젠 자신과 정말 같은 식솔로 밥을 먹게 될 식구니까.
그래.
절대 녀석을, 녀석의 진심을, 녀석의 낭만을, 녀석의 깊고 넓은 사랑을 비웃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푸, 푸훕-!”
없는 건 없는 거고.
“푸하하하하하하-!”
웃긴 걸 어찌하리.
끝내 박 전무는 꾹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외려 박 전무의 웃음소리에 다른 이들이 놀라서 웃음을 멈출 정도로, 한바탕 웃어 댔다.
그러기도 잠시.
현승이 손뼉을 치며 웃음을 잠재웠다.
─ 이쯤에서 각설하고, 다들 즐거우신 듯하니, 바로 다음 스텝으로 이어 나가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카메라의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자 커피와 카페인 음료가 널브러진 책상이 보였고, 좀 치우라는 사람들의 야유가 들렸다.
─ 책상 위를 보라는 게 아니라, 작업 모니터 좀 보시죠.
현승이 다시 카메라를 전환하여 매서운 눈매를 부라리기도 잠시.
─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추상적인 단어로 얘기해 주시면, 그걸 곡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다시 카메라를 전환하여 작업 모니터 창을 보여 주었다.
‘사랑? 추상? 단어?’
박 전무는 현승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답하지 못했다.
비단, 그만 그런 것은 아닌 듯 단체 페이스 톡 방은 일순간 음 소거를 누른 듯 조용해졌다.
─ 없어요? 아무거나 던져 봐요. 이대로 본부장님의 곡을 미완성으로 내버려 두실 건가요?
현승이 재촉하자, 정아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고.
─ 몽글몽글…?
─ 몽글몽글?
─ 네, 사랑에 빠지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잖아요.
그 말에 현승이 깊은 침음과 함께 중얼거리기도 잠시.
─ 몽글몽글이라….
화면 속에 잡힌 현승의 손가락이 마스터 키보드 위를 유려하게 휘저으며 세션 칸 위로 코드를 찍어 나갔다.
탁, 타다닥, 탁.
정말, 딱 15초 정도 걸렸으려나?
─ ♬ ♬ ♬
곧바로 재생된 세션은 얼추 몽글몽글이라는 단어를 멜로디로 옮겨 놓은 것처럼 들려왔다.
─ 오, 정말 비슷하게 들리는데요?
다른 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호응했지만, 현승은 “다음.” 하고 의견을 기다릴 뿐이었다.
‘사랑을 단어로….’
박 전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몹시 인색한 만큼, 그것에 대해 남들보다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많았다.
하나, 그것을 단어로 표현하자니 감이 오지 않았다.
‘잠든 딸을 봤을 때….’
박 전무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느꼈던 순간을 떠올렸다.
늦은 밤, 잠든 딸아이의 이불을 고쳐 덮어 주고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던 순간을.
그때 박 전무가 느낀 건….
“욱신욱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마음이 아렸다.
이 어린 것을 지켜 줘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 따위가 마음을 짓누르고, 바쁘다는 이유로 이 어린것의 잠드는 순간을 함께해 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들이 가슴을 송두리째 파 버릴 듯 아팠다.
그래서, 사랑임을 알았다.
박 전무에게 사랑은 고통이자, 인내이고, 책임감이니까.
─ 욱신욱신이라, 박 전무님답네요.
그 말을 용케 주워들은 현승은 신나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탁, 타다닥, 탁.
이후 사람들은 봇물 터진 듯 하나씩 단어를 던졌다.
─ 간질간질이요.
─ 아토피 있어?
강하준의 사랑.
─ 샤랄랄라?
─ 공주병이냐?
서지니의 사랑.
─ 뚝뚝뚝뚝?
─ 응헌지호다운 답변이네.
안지호의 사랑.
─ 말, 말랑말랑이요.
─ 좀 별론데.
─ 다, 다시 해 볼게요.
─ 아냐.
윤제이의 사랑.
─ 반짝반짝.
─ 작은 별이야?
이효은의 사랑.
─ 촤아아아악, 이런 것도 되나? 내게 사랑은 파도 같은 것인데.
─ 물론이죠.
문범재의 사랑.
모두의 사랑이 모이다 보니, 세션은 점차 풍성해져만 갔다.
탁, 타다닥, 탁.
탁, 타다닥, 탁.
탁, 타다닥, 탁.
아직 완성된 결과물을 들은 것도 아니었으나, 문범재는 무언가 들리기라도 하는 것마냥 말했다.
─ 뭔가 곡이 점점 그럴싸해지는 것 같은걸?
사실 그건 이 방에 참여한 모두가 느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었지만, 점차 모인 단어로 곡의 형태가 생기고, 깊이와 결이 생길수록….
현승이 작업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현승에게 도움을 보탤 수 있음을 감사했다.
탁, 타다닥, 탁-!
이내 현승의 손이 얼추 완성된 트랙을 재생시켰고.
─ ♬ ♬ ♬
곡을 듣는 순간.
─ ♬ ♬ ♬
그들의 머릿속에서 김우현의 ‘왜 행복은 너로 시작할까?’라는 말은 잊힌 채, 각기 다른 로맨스 영화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고.
─ ♬ ♬ ♬
화면에 떠오른 얼굴들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따름이었다.
* * *
정아린은 오늘이야말로 일을 실행하겠노라 다짐했다.
그것은 바로….
현승의 작업실에 있는 빨래통을 싹 비워 주겠다는 다짐이었다.
터벅, 터벅-.
평소에도 깔끔한 환경을 중요시하는 그녀였기에, 현승의 빨래 더미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현승에게 그런 거라도 도움이 되어 주고 싶기도 했고.
터벅, 터벅-.
드디어 그 빨래 더미를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에, 걸음이 점차 빨라졌고 금세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하나.
정아린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똑, 똑, 똑, 똑, 똑!
문을 부숴 버릴 듯 두들겨도,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던 까닭이었다.
“오늘 쉬시나?”
전화해 보려 했으나, 혹시 오랜만에 쉬는 날인데 방해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도로 휴대폰을 넣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서프라이즈로 빨래 ‘싹’ 해서 가져다드리자.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현승의 작업실 문에 달린 도어락을 발견한 정아린은 어깨를 축 떨궜다.
생각보다 치밀하시다니까.
정아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어락에 손가락을 가져갔고.
삑, 삑, 삑, 삑.
가장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생일을 입력했다. 그래,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생일로 해 두실 리가 없….
띠리리릭-!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도어락은 흔쾌히 들어오라는 듯, 잠금을 해체했다.
‘정말 이렇게 단순할 수가….’
그러고 보니, 현승은 생일을 티를 내고 다니는 편이 아니다 보니, 아무나 알 수 있는 번호는 아닐 터였다.
사내에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이 태반일 테니까.
그럼, 얼른 빨래만 들고 가 보실까나.
정아린이 조심스레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부는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한 듯 고요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그리고 구석진 곳에 놓인 빨래 더미는 정아린이 우려했던 대로, 그대로 놓여 있었다.
“으이그, 정말.”
이내 그녀는 자신이 챙겨온 봉투에 색깔별로 옷을 구분하여 차곡차곡 넣어 가기 시작했고.
“어…?”
손에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잡혀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그것은, 바로….
팬티, 그래, 현승의 팬티였다.
“어머나, 세상에-!”
팬티라는 걸 인지한 정아린이 놀라서 집어 던지려던 찰나.
삑, 삑….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정아린은 제 손에 들린 팬티를 바라봤다. 이대로 만약 발견된다면 자신은 남의 작업실에 몰래 들어와 팬티나 훔치는 변태로 보일 것이다.
그럴 수는 없어…!
정아린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그대로 녹음 부스 안으로 뛰어 들어가 몸을 숨겼다.
‘아씨, 문을 닫아야 하는데….’
차마 문을 닫지 못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린 정아린은 틈을 노려보며 제발 저 문이 열리지 않길 바랐다.
한편.
식사를 끝내고 작업실로 돌아온 현승과 김우현은 실랑이를 이어 나갔다.
“진짜 내 목소리 그대로 쓰면 너랑 절교할 거야.”
“애예요? 절교하게?”
“원래 남자는 죽을 때까지 애라는 말 못 들어 봤어?”
그들의 실랑이는 ‘왜 행복은 너로 시작할까?’ 사용 문제로 시작되었다.
“그럼, 저랑 절교하면 빈치스로 이적도 안 하시겠네요.”
“그건 공적인 거니까, 지금 이 얘기와는 무관하지.”
“알겠어요, 알겠어. 그럼, 그대로 안 쓰고 오토튠 같은 거 깔아드릴게요. 그럼 되죠?”
“아, 그건 더 싫어.”
“진짜 비위 맞춰드리기 참 어려운 분이네요.”
“뭐, 인마? 네가 비위 맞춰 주기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현승은 김우현을 살살 달래기 위해, 그를 비싼 곳에 데려가 밥도 먹여 봤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기야, 다소 부끄럽긴 하겠지.
“제가요? 그럴… 음?”
현승이 뻔뻔하게 말을 이어 나가기도 잠시.
“이거 실장님이 정리하시던 거예요?”
구석에 놓인 빨래 더미가 구분되어 정리된 것을 발견하고는, 곧장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아니? 근데 진짜 내가 좀 정리해서 빨아다 주랴?”
“그래 주시면야, 저는 감사하죠.”
“하여간, 이럴 때만 공손하….”
머지않아, 이상한 점을 발견한 현승이 심각한 얼굴로 투덜거리는 김우현의 말허리를 잘랐다.
“잠시만요.”
“왜?”
“사라졌어요.”
“뭐가?”
손으로는 빨래 더미를 다급히 뒤적이며, 눈은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현승아, 뭐가 사라진 건데?”
“제 최애 팬티요.”
“팬티? 그게 어디 가겠어, 잘 찾아봐.”
“진짜 없단 말이에요.”
“그럼, 새로 사.”
“안 돼요. 그거, 여동생이 얼마 전에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주급으로 사 준 팬티라고요.”
현승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자신의 최애 팬티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번밖에 못 입었는데….”
그러기도 잠시.
“엄마.”
벌떡 일어나, 어딘가 비장한 얼굴로 김우현을 불러세웠다.
“제가 의심하는 건 아니고요.”
“어?”
“지금 입고 있는 팬티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
“그게 의심하는 거야.”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확실히 하자는 거죠.”
“참 나, 완전 내가 범인이라고 확정 짓고 있네?”
김우현은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고.
“꼭 그런 건 아니고, 제 작업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엄마뿐이니까 합리적인 추리인 거죠.”
“그래? 나밖에 몰라? 그건 좋… 큼, 흠! 아무튼 난 아니야.”
이내 짐짓 좋은 내색을 숨기며, 단호히 딱 잘라 말했다.
하나.
현승은 쉬이 물러나 줄 생각이 없는 듯,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가 재차 탈의를 요구했다.
“결백하시다면 보여 주세요.”
“내가 보여 줄 수는 있는데, 만약 아니라면 너 그땐 어떡할래?”
그 물음에 현승이 고민하기도 잠시, 곧장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하이엔드 브랜드 정장 제공.”
“콜, 후회하지 마.”
“네, 어디 한번 벗어 보시죠.”
김우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벨트를 풀고는 바지를 단숨에 발목까지 내렸고.
“자, 봤지?”
정열적인 레드 컬러의 팬티를 자랑하며 덧붙였다.
“나도 우리 엄마가 사 준 팬티 입고 왔거든?”
현승은 그런데도 아직 의심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의 정장 곳곳에 달린 주머니를 훑으며 말했다.
“그럼, 혹시 주머니도 한번….”
“이 자식이?”
“알겠어요. 그냥 믿어 드릴게요.”
“진짜 나 아니라니까?”
그러고는 억울해 죽겠다는 그의 반응이 재밌어, 등을 떠밀며 축객령을 내렸다.
“알겠으니까, 이만 가 주세요. 저는 ‘왜 행복은 너로 시작할까?’ 작업 마무리해야 하거든요.”
역시나, 김우현은 바로 발작하듯 손길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너, 너, 그거 절대 쓰지 마!”
“아, 몰라요. 나가요.”
“너, 너, 진짜 안 돼!”
“저 오늘 밤샘 작업할 거니까 내일 아침에도 꼭 habit 들려서 행복 커피 한 잔 부탁드려요.”
하나, 힘으로 현승에게 밀리기 시작한 김우현은 결국 우악스러운 손길에 의해 작업실 밖으로 쫓겨났고.
“너, 너, 이 망할, 금동이 녀석!-”
페이스 톡 사건 때처럼, 외마디 비명과 함께 문이 닫혔다.
이윽고.
다시 걸음을 돌려 작업 테이블에 앉은 현승이, 빨래 더미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근데 정말 내 팬티, 어디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