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4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47화(346/482)
정아린은 며칠 전, 팬티 때문에 녹음 부스에 숨어 꼼짝없이 하룻밤을 새웠던 날이 떠올랐다.
그땐 정말 오금이 저리고, 팔다리가 마비될 것 같았는데….
차라리 그때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잠, 잠깐만요.”
정아린은 계속해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으며 애원했다.
“안 돼.”
“부디….”
“얼른, 다시.”
“자비를….”
부스 너머로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현승을 향해.
“시간 흐른다.”
그러나 현승은 일부러 시간을 보여 주며, 마음을 조급히 만들었다.
“이러다가 하루 지나가겠어.”
결국 정아린은 다시금 발에 땅을 디디며, 곧바로 몸을 세웠다.
차라리 스케줄이라도 있었으면 도망치거나 기한을 벌어 볼 수라도 있을 텐데, 하필 비시즌이라 스케줄이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야지.
─ 너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을 했지.
지금은 열심히 노래만 하면 돼.
─ 세상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고.
제발 이 구간만이라도 돌파하자.
─ 흘러버리는 시간마저 아깝다고.
그런 마음을 담아, 정아린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무엇보다.
곡이 좋으니, 이런 곡을 부르게 된 만큼 잘 해내고 싶었다.
일전에 페이스 톡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기야 했다지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는데….’
반 장난으로 시작하기도 했거니와, 사람들이 던지듯 뱉은 ‘몽글몽글’이라던가, ‘반짝반짝’이라던가, ‘촤아아악’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로 어떻게 곡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지? 싶었다.
물론, 현승이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걸 알고 있지만,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 그랬는데….
결국 그는 이렇게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까딱 잘못하면 팬티나 훔치는 변태 도둑으로 낙인이 찍힐 뻔했는데, 이 정도면 되레 상을 받은 꼴이다.
대신, 너무 호된 상이랄까?
─ 다가가도 될….
“지금 소절만 다시.”
─ 다가가도….
“뭐 해? 다시.”
─ 다가….
“숨 좀 담아, 다시.”
정아린은 계속 헤매던 마의 고비를 끝내 또 넘기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걸음을 걸어야 했다.
문득.
지치고 건조해진 눈을 비비며 부스 너머로 현승을 바라보니, 처음 작업하던 때가 떠올랐다.
“자, 내 말을 따라 해 봐.”
“네.”
“나는 한낱 ‘악기’다.”
그땐 진짜 무슨 말인가 했는데.
“말을 할 수 있는 악기가 존재할까?”
“예? 아니요.”
“그럼 악기에 인격이 있을까?”
“아니요.”
“악기는 연주자 뜻대로만 소리를 내겠지?”
“네, 그렇죠.”
설마 설마 했는데.
나름 오랜 시간 지켜봐 온 바, 그는 진심으로 가수를 ‘악기’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는 그 악기를 어떻게 연주하는 것이 최상일 줄 아는, 최고의 조율사이자 연주자라는 걸.
그리고.
생각보다 마음이 따듯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지금도 봐.
괴한이나 사생팬으로 사람들 앞에서 치욕을 겪을 뻔한 자신을 지켜 주고,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선물해 주지 않았던가?
그래, 역시 그는 천사야.
정아린이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이어 나가던 그때.
“이러다가 약속된 하루 다 가겠다.”
현승이 하품을 하며 시계를 확인했고.
“애들한테 그냥 지금 당장 작업실로 집합하라고 할까?”
이내 휴대폰을 살랑살랑 흔들며, 익살스럽게 웃어 보였다.
아.
천사라고 한 거, 진짜 취소.
* * *
현승은 작업부터 녹음까지, 갑작스레 진행된 탓에 이틀 밤을 꼴딱 새고 나서야 집을 찾았다.
정아린의 녹음 작업 종료까지는 26시간이 걸려, 약속된 하루가 경과했지만.
2시간 정도는 흔쾌히 봐주기로 했다.
작업도 예상치 못하게 빨리 끝났고, 간만에 단잠도 자고 일어나서인지 정신이 총명해지는 기분이다.
한마디로 컨디션은 최상.
“오빠, 밥 먹어!”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원한 물로 샤워까지 끝내고 나오자마자 현아의 손에 이끌려 식탁에 앉았다.
“이게 다 뭐야?”
“오빠, 며칠 동안 못 들어온 걸로 봐선 제대로 잠도 못 자면서 일했을 것 같아서 힘 좀 썼지!”
현아의 말대로 식탁 위에는 후각을 자극할 만큼 달큼한 냄새를 풍기는 불고기 유부초밥과 맑은 계란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내 현승이 계란국을 한입 떠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구내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는데?
“근데 힘 좀 기왕 쓸 거면, 더 쓰지. 너무 소박하게 쓴 거 아니야?”
식탁 위에서 절대 빠지면 안 될, 장난까지 곁들이며, 국을 한입 더 떠먹으려던 찰나.
“민현승, 국 압수.”
이미 자신의 장난에 대한 내공이 단단한 현아는, 얄짤없이 국그릇을 뺏어가 버렸다.
결국 현승의 수저는 허공에서만 맴돌았다.
이런 걸, 국물도 없다고 하나.
‘쩝.’
현승이 아쉽다는 양 입맛을 다시기도 잠시.
“알바는 할 만해?”
뒷정리를 이어 나가던 현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응, 주말만 하는 거라.”
“근데 굳이 해야 해?”
“응, 굳이 해야만 해.”
현승이 그 말에 지갑을 꺼내 들며, 재차 물었다.
“내가 주는 용돈이 부족해서 그래?”
현아는 그런 자신을 질겁하듯 바라보며, 만류했다.
“아냐! 오빠, 대학생한테 한 달에 백만 원씩 주는데 뭐가 부족하겠어. 오히려 너무 넘쳐서 문제야.”
“그럼, 왜 알바를 하냐니까?”
“어차피 나 본과 가면 공부한다고 아르바이트 못 해. 그땐 오빠한테 용돈을 받아 써야겠지.”
그러고는 차분히 부연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비교적 한가한 이때는 나도 내가 쓸 건, 내가 벌어서 쓰려고 하는 거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마.”
“공부나 하라니까.”
“공부는 어련히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현아는 전생에서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대에 붙을 만큼 영특한 아이었다.
단, 그 영특함을 널리 키워 줄 만큼 형편이 되지 않았을 뿐.
아마.
지금처럼 유복한 환경이라면, 알아서 더욱 잘하고 있으리라.
“흠….”
비록 알고 있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대신 힘든 일 있으면 바로 관두거나 나한테 말해.”
현승은 남은 유부초밥을 한입에 넣었다. 더 이상의 말은 잔소리일 게 분명하니까.
“나도 오빠 못지않게 내 앞가림 하나는 잘하니까, 너무 걱정 마.”
현아는 그 말을 끝으로 오물거리는 제 볼을 콕 찌르며 웃어 보였다.
그래.
다른 이도 아니고, 내 동생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잘 먹었어.”
현승은 싹 비운 접시를 설거지통에 담가 놓고는, 도로 방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입고 나왔다.
“오빠, 왠 정장을 입고 출근해? 이거 아빠가 사 줬다는 정장 아니야?”
그런 자신을 발견한 현아가 의아함을 품은 채 물었다.
아무래도 매일 캐주얼하게 입던 자신이 정장을 챙겨 입고 출근하려니 이상해 보였나 보다.
하지만.
그만큼 현승에게 오늘은 나름 중요한 날이었다.
“응, 맞아.”
현승은 괜스레 옷깃을 가다듬으며, 제법 비장한 어투로 덧붙였다.
“오늘 좀 중요한 일이 있어서.”
현아는 궁금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완전 멋져.”
그렇게 아침부터 완벽한 하루가 시작됐다.
* * *
현승은 옷깃을 고치며, 거대하고 두꺼운 문을 바라봤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내뱉으며, 두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터벅, 터벅.
아직 발에 길들여지지 않은 구두는 제법 불편했지만, 현승은 그런 점을 숨긴 채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빨리 오셨군요.”
LS의 사내 법무법인 쪽 사람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와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전남일이 말했다.
“앉으시죠.”
현승은 다급히 서류를 갈무리하는 남성에 맞은편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함께 동행할 걸 그랬습니다.”
그러고는 슬쩍 대표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명백히 비꼬는 어조였다.
이후 인수 과정 같은 건 번거로운 만큼, 당연히 법무 법인에 맡길 생각이었지만….
대화만큼은 둘이 원만하게 끝을 내고 싶었다.
더군다나.
다른 이에게 얼굴이 노출되는 것도 영 껄끄럽고.
“불편하시다면, 나가 보라고 하겠습니다.”
제 뜻을 알아챈, 대표가 정중한 어투로 얘기했다.
사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일 터.
현승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내저으며 답했다.
“사람 앞에 대고 불편하다고 할 수야 있나요.”
그러고는 그 남자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그냥 앉아계시죠.”
일종의 경고였다. 대화에 끼어들지 말라는, 네가 만만하게 볼 상대는 결코 아니라는.
“어차피 문제 발생 시에만 첨언하실 거 아닙니까?”
그 말에 일어나려던 남자는 주춤거리기도 잠시, 다시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머지않아.
현승이 다시 대표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제가 말한 대로 진행할 거라면, 법무 법인까지 불러들이진 않았을 것 같고… 어떤 점이 별로인 겁니까?”
“다른 건 다 좋습니다. 다만, 지분 인수인계와 관련해서는….”
“아니요.”
대표가 반박을 들기 무섭게, 현승이 말허리를 자르며 덧붙였다.
“다른 건 양보하거나 편의를 봐드릴 수 있지만 그것만큼은 저도 안 되겠습니다.”
딱히 지분이 탐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첫 발짝도 제대로 떼지 않은 이 상황에서 물러섰다간 한도 끝도 없이 물려 뜯겨 뼈밖에 남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민현승 씨.”
그때, 맞은편에 앉은 남성이 고저 없는 투로 자신을 불러 세웠지만.
“저번에도 한 차례 말씀드렸다시피, 그건 일종의 계약금 같은 것이라 얘기드렸을 텐데요.”
현승은 오로지 대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부연했다.
“제가 만든 곡을 제공해 주겠다는 합당한 명목도 있죠.”
아니, 따져 묻고 있었다.
“무엇보다 LS의 지분을 그냥 달라한 것도, 헐값에 넘기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거냐고.
“큼, 흠.”
그 말에 다시금 남성이 서류를 펄럭이며 목을 가다듬었지만, 먼저 말을 이은 건 현승이었다.
“때마침 곡도 하나 나와서, 제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LS 엔터를 통해 발매하려고 준비해 뒀는데….”
정말 못내 아쉽다는 듯, 표정 연기도 곁들였다.
“대표실 문턱을 넘자마자, 이런 얘기를 듣게 되어 매우 유감입니다.”
결국 지분 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니, 더 이상 내 심기를 거스른다면 이 곡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곡을 주지 않을 거라는 경고다.
“그건 처음 듣는 소리인 것 같은데….”
대표가 조금 당황한 듯, 눈썹을 들썩거렸다. 나중에 저 눈썹이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다.
이윽고.
현승이, 전남일과 반대로 느슨하게 풀어진 몸을 소파에 기대며 말했다.
“일종의 유작 같은 거죠.”
분명 누군가는 경거망동하다고 할 만큼 거만한 태도였지만, 전남일의 눈에는 거만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LS 엔터를 떠나기 전, 남겨진 이들에게 주고 갈 유산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그가 보여준 결괏값이, 지금 보여 주는 그의 태도를 납득시켜 주고 있던 까닭이었다.
“허….”
그저 헛웃음인지 경악인지 모를 탄식을 내뱉었다.
하나.
현승은 봇물 터진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LS 엔터와 척을 칠 생각이 없습니다. 원만하고 평등한 관계를 이어 나가고 싶죠.”
주의, 충고, 경고.
“지분은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만들지 마시죠.”
이쯤이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자신을 귀찮게 군다면, 어쩔 수 없이 칼집에 잘 갈아서 넣어 둔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어야겠지.
“…….”
장내는 알 수 없는 침묵이 감돌았다.
“…….”
어느 누구도, 침 한 번 제대로 삼키지 못한 만큼 지독한 정적이었다.
특히.
사내 법무인은 눈알조차 제대로 굴리지 못하고 경직된 채, 대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휙-.
그때였다.
“예….”
대표가 고개를 돌려 눈짓하자, 남성은 바로 알았다는 듯 펜과 도장 그리고 인주를 내밀었다.
사락, 사라락-.
몇 번을 넘기며, 이곳저곳에 서명과 날인을 찍었고.
사락, 사라락-.
그 서류가 남성에 손으로 넘어가고, 또 다시 제 손으로 들어왔다.
“민현승… 대표님도 동일하게 서명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예.”
“LS와 VINCIS 회사별로 각 한 부씩 보관하는 걸로 할 겁니다.”
현승이 안주머니에 넣어 둔 도장을 꺼내 들었고.
사락, 사라락-.
당장 손이 베일 듯한 서류를 넘기며 생각했다.
사락, 사라락-.
드디어.
사락, 사라락-.
이 기나긴 싸움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 온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