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5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59화(358/482)
HS는 다니엘이 붙들고 있는 손을 가볍게 툭 쳐 내고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시죠.”
이내 다니엘도 곧장 HS를 따라 걸음을 옮겼고.
“혹시 몰라 말해 두는데, 저는 여자 좋아합니다.”
앞장서서 걷던 HS가 던진 말에, 발끈하듯 받아쳤다.
“여자는 내가 더 좋아해.”
“오, 얼마나요?”
HS는 제법 흥미로운지, 별안간 걸음을 우뚝 멈춰 세우고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는 중독적인 것을 좋아해. 그중, 여자는 특히 가장 중독적이야. 그래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여자 앞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되곤 하지.”
다니엘이 거들먹거리며 말을 늘어놓을수록 고글 너머로 보이는 HS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아, 이게 아닌데.’
게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말하다 보니, 정말 여자에 미친 놈이 되어 있었다.
“아무튼.”
다니엘은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난 절대 게이가 아니야.”
“예, 그런 것 같아요.”
HS는 흥미가 떨어졌는지,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장서서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숨이 벅차기 시작할 때쯤에서야, HS의 걸음이 멈췄다.
그를 따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니, 문 앞에 ‘HS studio’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색안경일지는 모르겠지만, 팻말 디자인마저 구렸다.
끼이익─.
아무튼 HS의 작업실로 추정되는 곳의 문을 열었고.
‘오?’
다니엘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좋은 내부에 감탄했다.
뭐야, 인테리어 비용을 여기다 전부 쏟아부은 건가?
아무리 대표라지만….
다른 곳은 화이트와 우드 톤으로 촌스럽게 맞춰 놓더니, 본인 작업실은 네이비 톤으로 세련되면서도 도시적인 느낌으로 해 놨네.
무엇보다─.
세팅된 장비나 악기 또한 잘 모르는 이가 본다고 하더라도, 비싸 보이는 것투성이고.
‘치사하군.’
다니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녀석은 본인만 좋은 걸 독차지하려고 하는 좀스러운 놈일지도 모른다고.
“앉으세요. 음료는 없고, 물 드릴게요.”
그때 HS는 멍하니 내부를 구경하던 자신에게 앉으라며 손짓했다.
“술은 혹시 없나? 이왕이면 좀 독한걸로.”
자리에 앉은 다니엘이 처음 꺼낸 물음이었다.
제정신으로는 차마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 얘기할 용기가 차마 나지 않던 까닭이었다.
“나 그런 거 안 마시는데.”
그러나, HS는 술 대신 생수병 하나를 건넸다.
“아니, 젊은 작곡가가 작업실에 술 한 병도 없어?”
“작업실에 술이 왜 있어요?”
“보통 안 풀리면 가볍게 한 잔씩 걸치면서 하잖아.”
“술 안 마셔도 잘 풀려요.”
다니엘은 자신의 앞에 앉은 HS란 사람은 참 재미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술을 아예 안 하나?”
“마실 줄은 아는데 맛없는 건 싫어해서요.”
그도 그럴 것이─.
“담배는?”
“안 해요.”
“여친은 있고?”
“아니요.”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안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대체 무슨 낙으로 살아?”
“맛있는 거 사 먹고, 일하고.”
“아니, 그런 게 무슨 낙이라고.”
다니엘이 콧방귀를 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일하는 게 재밌고,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나 HS는 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 친구가 뭘 모르네.”
다니엘은 그런 HS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앨범 성공적으로 발매하고 내가 인생의 낙과 재미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줄게.”
그러고는 HS가 아직 어려서 놀 줄도 모르고 우직하게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너드남’인 것 같으니….
자신이 그런 녀석을 위해 직접 인생을 알려 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 놓은 섬이 하나 있거든?”
더군다나 작업을 도와준다고 하니, 자신도 무언가 도와주긴 해야겠지. 폐 끼치고는 못 사는 성격이니까.
“전용 헬리콥터 타고만 갈 수 있어. 거기 가서 비싼 위스키도 퍼먹고, 수영하고, 독한 시가도 피우고 예쁜 여자들이랑 노는 거야.”
“곧 죽는다면서 그런 와중에도 그런 건 생각이 나시나 봐요.”
아, 맞다. 어차피 얼마 못 살지.
“난 죽는 건 별로 안 두려워.”
다니엘은 잠시 잊고 있던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그저 죽으면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를 더 이상 즐길 수 없다는 게 서러울 뿐이지.”
그러고는 이내 짐짓 태연한 척하려, 익살스레 웃으며 HS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그 재미를 아직 몰라서 그래.”
올라간 고글 너머로 보이는 HS의 눈은 자신을 지그시 응시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동자와 한참 마주하고 있던 그때.
“꼭 발매 완료되면 데려가 주시죠.”
HS가 짤막이 대답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성공적으로 발매하면 꼭 데려가 줄게.”
이윽고.
제 말에 HS는 헬멧을 벗으며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건 당연한 거고요.”
.
.
.
자신감 넘치는 HS를 보며, 혹시 허세면 어쩌지 –하고 생각했던 건, 정말 쓸데없는 기우였다.
“…….”
헤드셋을 통해 HS가 들려 준 자신의 트랙은 편곡을 넘어, 새롭게 탈바꿈을 한 상태였다.
“잠, 잠깐만….”
다니엘은 헤드셋을 허겁지겁 내려놓으며 물었다.
“내가 보낸 트랙을 조금만 손본 거라고 하지 않았어?”
“네, 그랬죠.”
“이건 편곡 수준이 아닌데?”
“기본적인 멜로디나 분위기는 지켰으니, 편곡이죠.”
그러고는 이내 뻔뻔하게 잘생긴 HS의 얼굴을 바라보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테오가 왜 HS를 성격은 이상하지만, 실력만큼은 괜찮은 놈이라 설명했는지 점차 알 것 같았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 듯한 태도부터.
빳빳하고 재미없는 성향이지만, 뻔뻔할 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면모까지.
아마.
그 모든 건, 지금 자신에게 들려 준 실력으로 비롯된 것이겠지.
“설마 별로예요?”
그때 HS가 자신을 향해 물었다.
이마저도 이상했다.
‘혹시’도 아니고 ‘설마’란다.
마치.
자신의 곡이 별로일 리가 없다고 확신하듯 말이다.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럴 줄 알았어요.”
HS는 당연한 반응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니엘은 그런 HS를 바라보다,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과 패기.
저 나이 때만 가질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스─윽.
한쪽 벽면에 설치된 전신 거울로 시선을 옮기자, 빼빼 마르고 주름진 중년의 남성이 보였다.
그건 바로, 제 모습이었다.
제법 관리를 한다고 했거늘, 매섭게 덮쳐 오는 세월을 온전히 빗겨 나갈 수는 없었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멋지고 빛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도 물론 자신의 명성은 여전했으며, 자신의 노래를 기다리는 이들이 줄을 섰지만.
이제 다니엘에겐 그럴 만한 젊음도, 패기도, 하물며 허락된 시간조차 얼마 되지 않았다.
“설마 근데 이게 완성이라고는 안 하겠지?”
다니엘은 괜스레 이죽거리듯 HS에게 물었다.
“이제 완성은 악기가 해야죠.”
“악기? 세션 부르려고?”
“아니요, 여기 앞에 있잖아요.”
그러자, HS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고.
“작업실에 악기가 많긴 하네, 다 연주할 줄 아는 건가?”
“네, 저는 소리 좋은 악기라면 다 연주할 수 있거든요.”
점차 속을 알 수 없어, 음흉해 보이려던 그때.
“제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요.”
HS가 짐짓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이번 악기는 어쩐지 저만 보기 아까워서요.”
“그게 무슨 말이지?”
“악기의 마지막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과정을 전 세계 사람이 보면 좋겠달까?”
표정보다 더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이윽고.
공중에서 둘의 시선이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저에게도, 다니엘에게도 후회 한 점 남지 말아야 할 작업일 테니까.”
HS가 소리 없이 웃으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 * *
기다란 회의 테이블 상석에 자리한 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자신의 양옆으로 길게 앉은 이들은 머리통 위에 돌덩이라도 내려앉은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무도 이 문제를 해소할 만한 아이디어가 없으신 건가요?”
이내 팀의 물음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누구에게서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때.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작가 캐서린이 조심스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요, 캐서린.”
팀은 곧장 그녀를 가리키며 말해 보라고 재촉했다.
그래.
그녀라면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할지 몰라.
“편하게 얘기해 봐요.”
팀은 잔뜩 기대감이 내려앉은 눈으로 캐서린을 바라봤고.
“그게….”
캐서린은 자신을 바라보는 대신, 책상 위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로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다큐멘터리 시장 자체가 작아지고 있다 보니, 규모가 축소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 같습니다.”
그 말에 팀은 잘게 주억거렸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곡을 찔렀다.
점차 OTT 문화가 발달하면서, 젊은 연령층은 TV 대신 휴대폰이나 태블릿으로 여러 나라에 드라마나 영화를 손쉽게 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다큐멘터리의 인기는 절감되어 갔다.
자극적이고 신선한 드라마와 영화가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데 정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는 몇 없겠지.
“그렇다고 없는 허상 속 이야기를 만들어, 자극적으로 제작하는 건 저희가 추구하는 신념과 어긋나고요.”
“그렇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겠지만, 차라리 트렌드에 맞게 다른 장르로 진출을 해 보는 것도….”
“정녕 그게 맞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잠자코 듣고 있던 팀이, 캐서린의 말허리를 자르며 물었다.
팀은 감독으로서 몇 차례나 이례적이랄 수 있는 성적을 낸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이런 시장의 흐름을 몰랐을 리는 없다.
그저.
아직 다큐멘터리를 봐 주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팀은 자신이 은퇴하는 그날까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었다.
“네, 저는 그게 우리 제작사이자 스튜디오인 HIL을 지키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하나, 캐서린은 그런 자신의 마음보다는 회사를 지켜 내겠다는 사명감이 더 깊은 모양이다.
소신껏 발언을 마친 그녀는, 무례하게 들렸다면 죄송하다며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아닙니다.”
이내 팀은 침울해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순.
그 은퇴가 지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정말이지.
획기적이고, 뜨겁고,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욱 자극적인 소재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런 기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우선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으니, 다음에 다시 기한을 잡아 회의를 진행하는 걸로….”
팀이 회의를 끝내고자 말문을 떼어 내던 찰나.
똑, 똑, 똑.
회의실 문 너머에서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직원이 서류 하나를 든 채로, 자신을 향해 달려왔다.
“회의 중에 너무 죄송합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만 보더라도 다급한 사안으로 찾아왔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마침 회의가 끝나서요.”
이내 팀은 직원의 손에 들린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아! 방금 넘어온 공문인데….”
그 시선을 읽은 직원은 허둥지둥 서류를 건넸다.
“다니엘 파커가 소속된 레코드사에서 온 공문인데, 내용이 좀… 하여튼, 얼른 읽어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별안간 ‘다니엘 파커’라는 이름 하나에 장내 안으로는 크고 작은 술렁임이 일었고.
머지않아.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팀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진짜… 하늘에서 떨어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