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5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60화(359/482)
“본인이 만든 곡인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다니엘은 자신이 혼나 본 적이 언제인가에 대해 기억을 곱씹었다.
우선 최근 10년, 아니, 20년 안으로 혼났던 기억이 없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혼날 나이도 아니었다. 불혹이라는 나이를 지나, 중년이 된 이 시점에 혼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가정도 없으니, 와이프하게 혼날 일도 없고.
부모님도 일찍 여읜 탓에 잔소리를 듣고 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녹음하는 과정에서 혼나 본 적은, 결단코 없었다.
“아무리 연습 삼아 녹음해 보는 거라지만, 좀 심한데?”
적어도 오늘 전까지는.
“그 정도는 아닐 텐데.”
“그 정도야.”
“제대로 들은 거 맞나?”
“똑똑히 들었지.”
다니엘과 HS는 부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런 HS를 바라보며,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려고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다.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는 행위라고.
아주 간혹 그런 작곡가들이 있기야 했으니까.
“어떤 점이, 구체적으로 그렇게 별로인 건데?”
“시작부터 음정 핀도 나갔고, ‘you─.’ 할 때 호흡도 너무 떨려서 불안정해. 그뿐만이 아니라, 두 번째 소절 시작할 때는 아예 힘이 빠져서….”
그런데, 그는 쉴 새 없이 별로인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내가 직접 들어 볼게.”
다니엘은 이제 됐다는 양, 한 손을 들어 HS의 말허리를 자르며 요청했다.
“그래.”
HS는 곧장 조금 전 녹음한 테이크를 재생시켰고.
─ ♬ ♬ ♬
다니엘은 그가 했던 지적을 천천히 곱씹으며,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혹여 괜히 트집 잡는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뭐라 할 생각이었다.
하나.
고작 세 소절로 이뤄진 테이크였지만, 그 속에 HS가 말한 ‘오류’가 모두 담겨있었다.
“아.”
재생이 끝나자, 다니엘은 바보처럼 탄식을 내뱉었다.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한 것이, 자신의 목소리에 여실히 담겨 있었고.
그런 것도 스스로 못 깨닫고, 큰소리를 친 것에 대한 창피함이 몰려온 까닭이었다.
“잠시 쉬었다 하지.”
다니엘은 짐짓 태연한 척, 부스 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오늘 술을 못 마셔서 그런 것 같은데, 맥주 한 병만 좀 마시면 안 되나?”
그러고는 자신이 오늘 미리 챙겨 온 맥주병을 붙들고 물었다.
원래는 오늘 작업이 다 끝나면 기념 삼아 한 잔 마시려 한 건데, 당장에 민망함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술기운이 필요했다.
“그럼, 지금까지는 쭉 취한 채로 녹음해 왔던 건가?”
“보통 맥주 정도는 곁들이며 했지?”
“가수가 술이 없으면 노래를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왜 말이 안 돼?”
이내 다니엘은 나무라기만 하는 HS에게 반박하듯 덧붙였다.
“보통 예술가들은 영감이 안 떠오르면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그런다잖아. 으레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감수성도 더 짙어지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잖아.”
“너무 앞뒤 다 막혀서 빡빡하게 살면 안 답답해?”
“이제 곧 카메라 앞에서 모든 과정을 담아내야 할 텐데, 매번 술에 취해 있을 건가?”
HS는 되레 그런 자신을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필름인데, 늘 만취 상태면 좋겠어?”
다니엘은 ‘마지막 모습’이라는 말에 몸을 흠칫 떨기도 잠시.
“알겠어, 알겠다고.”
이내 져 준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두 가지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하나는─.
이번 앨범 작업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거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그게 자신의 마지막 일생을 담은 영상일 것이라는 것.
그래.
마지막 일생을 담은 영상인데, 이왕이면 맨정신인 게 낫겠지.
다니엘이 체념한 듯 고개를 잘게 끄덕이던 찰나였다.
“그럼 이렇게 하지.”
제 얼굴을 살피던 HS가 무심히 입을 말을 이었다.
“앞으로 약속된 작업 날마다 안 늦고 온다면 맥주 한 병 정도는 허락해 줄게.”
별안간 자신에게 썩 반가울 만한 제안을 해 왔다.
그러나.
다니엘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중에 말 바꾸는 거 아니고?”
자신이 본 녀석은 남에게 동정 따위를 베풀 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번 안 된다고 한 것을 번복해, 늦지만 않으면 마시게 해 주겠다니.
퍽 수상하지 않은가?
“제대로 녹음할 준비를 갖춰 오면 진짜 마시게 해 줄게.”
HS는 통 크게 배려해 주겠다는 듯 인자한 표정으로 답했다.
정말인가─?
그래, 녀석의 성향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노래만 잘한다면야 별 터치를 안 할 것 같기도 하고….
“그거야, 당연하지.”
이내 호기롭게 대답하는 다니엘을 보며, HS가 딱 잘라 덧붙였다.
“대신 논알콜로.”
이럴 줄 알았다.
그래.
그럴 놈이 아닌데.
“안 먹고 말지.”
다니엘이 빈정이 상한 듯 소파에 늘어지자, HS가 사뭇 엄격해진 얼굴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다니엘, 이 세상에 술 마시는 악기가 있을까?”
“무슨 소리야?”
“난 아직 못 봤거든?”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다니엘은 “나도.” 하고 대충 맞장구치며 HS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역광으로 인해 그림자가 드리운 HS의 얼굴은 앳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살벌함이 감돌았다.
“그러니까. 근데 왜 이번 악기는 자꾸 술타령을 하는 거지?”
이내 HS는 그런 얼굴보다 더 살벌하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고.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그 기세에 눌린 다니엘은, 짐짓 아닌 척 HS의 시선을 피하며 불퉁하게 반문했다.
머지않아.
HS는 컨트럴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덧붙였다.
“이만 맥주병 내려놓고, 부스 안으로 들어가란 소리야.”
왠지 어기면 큰일이 날 것처럼 공포가 일렁이는 목소리였다.
* * *
마테오는 두꺼운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맨 채, 집을 나섰다.
거리로 나오자.
찬 바람이 팔뚝을 스치고, 숨결에 따라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춥네.”
원래부터 집 밖으로 잘 나가는 편은 아니라지만, 이렇게 몸이 움츠러들 정도에 추위가 들이닥치는 날이면 더욱 나오기 싫었다.
하나.
오늘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기에, 억지로 걸음을 보챘다.
“에스프레소 한 잔 부탁드려요.”
카페 안에 들어선 마테오는 자연스럽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했다.
톡, 톡.
그러고는 구석진 자리에 등을 지고 앉아 있던 남성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들겼다.
“아마 이곳에 당신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모여들 거야”
이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남성과 눈을 맞췄다.
“이곳에 제가 앉아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할 걸요?”
“그렇긴 하지.”
“저는 그런 빈틈을 이용하는 거죠. 생각보다 잘 먹혀요.”
그러자, 남성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익살스럽게 웃어 보였다.
짙은 눈매 옆으로는 어느새 세월의 흔적이 가득히 자리했다.
다니엘.
20대 중반에, 처음 만났을 땐 아주 반짝반짝 빛나던 놈이었다.
화려하고, 독특하고,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르는 탁구공 같았다.
데뷔 앨범을 제작할 때도….
별안간 술을 잔뜩 퍼먹고 작업실에 찾아와, 지금 목소리가 딱 본인의 젊음을 나타내고 있다며 바로 녹음을 해 달라고 하질 않나.
또 언제인가는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났다며 돌연 잠적하여 버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천방지축을 의인화해 놓은 것 같은 놈이었다.
그랬던 놈이….
이젠 맨얼굴로 앉아 있으니, 아저씨티가 났다.
중년이란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그럴 만하지.
‘나이만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니엘은 폭풍우가 내려치던 어느 날 밤에 소식을 전해 왔다.
본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아무래도 술을 너무 많이 먹은 것에 대한 업보인 것 같다고.
다니엘은 그 와중에도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본인의 유작 앨범 준비를 함께해 달라고 했다.
잔인한 놈이지 않은가?
어떻게 첫 앨범을 작업해 준 자신에게, 마지막 앨범마저 해 달라고 할 수가 있는지.
그래서 단칼에 거절했다.
물론.
숱한 밤을 지새워 고민했다.
끝내 ‘할 수 없다’로 결론이 났지만.
“그래서 녀석은 잘 만나 봤고?”
상념을 끝낸 마테오가 뜨거운 커피를 홀짝 들이켜며 물었다.
“네, 선생님 말씀대로 성격 이상한 놈이더라고요.”
“그렇지.”
“그래도 실력이 좋으니 영 밉지 않더라고요.”
그 말에 마테오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별안간 HS의 얼굴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얄밉지만, 진심으로 미워하기 어려운 그 얼굴이.
“선생님도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는군요.”
다니엘이 따라 웃기도 잠시.
“부탁한 지 얼마나 됐다고, 제가 보냈던 트랙을 다 뜯어 고쳐 온 거 있죠? 그 와중에 놀리는 것도 아니고 기본 멜로디 라인은 그대로 살려 둔 거 있죠.”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곧 죽을 자를 위한 배려인가.”
그 말이 끝나자,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하여튼, 감사합니다.”
자칫하면 길어질 뻔했던 침묵을 먼저 깬 건, 다니엘이었다.
“HS, 소개해 주셔서.”
“뭐, 그런 걸로.”
마테오가 어깨를 들썩이며, 별일 아닌 양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저는 죽는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화려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거든요.”
하나, 다니엘은 진심이라는 듯 바싹 마른 손으로 제 손을 붙들며 재차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가만 보면.
다니엘은 예전부터 이런 말들을 참 잘했다. 아니, 이런 말들이라기보단 느끼는 감정에 대해 직설적으로 표현한다고 해야 하나.
그건 그렇고.
죽어서도 화려한 인생이라니… 무슨 말이지?
스─윽.
마테오는 문득 생겨난 궁금증에, 시선을 옮겼고.
“곧 알게 되실 거예요.”
다니엘은 그 시선을 읽은 듯 즉답했다.
“그럼, 이만 일어날게요.”
그러고는 이내 선글라스를 집어 들며 인사를 전했다.
“벌써 가나? 오랜만인데 조금 더 얘기하고 가지, 그래.”
“저도 선생님하고 조금 더 노닥거리고 싶은데, HS가 늦으면 맥주 한 모금도 안 줄 거라고 으름장을 놔서요.”
그 말에 마테오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 하고 되물었다.
“아니, 글쎄 나이도 젊은 놈이 얼마나 빡빡한지, 작업할 때 술 한 모금도 못 마시게 하더라고요.”
맞다, 다니엘은 술에 미친 놈이었지.
언젠가는 술이 없으면 노래가 안 된다며 말 같지도 않은 생떼를 부려, 크게 혼낸 적도 있었다.
결국 자신은 다니엘의 고집 앞에서 포기했지만.
HS는 그런 걸 받아 주거나, 져 줄 놈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나름 협상한 게, 맥주 한 병인데….”
다니엘이 보여준 메시지만 봐도 알 만하지 않은가?
1분이라도 늦으면
맥주 한 방울도 없음.
*주의*
음주자 작업실 출입 금지
자신과 작업할 때도, 물 한 모금 먹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던 놈이다.
“그마저도 이렇게 협박하니, 서러워서 못 살겠네요.”
“다니엘이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네.”
“아니, 곧 죽을 사람한테 너무 빡빡한 거 아닙니까?”
일순 마테오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곧 안 죽어.”
분명 다니엘은 농담으로 한 말일 텐데, 마테오는 차마 단순한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어넘길 수 없었다.
“선생님….”
“그러니까,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강경한 투로 다니엘을 다그친 마테오는, 이내 자신이 하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다니엘의 바싹 마른 목에 단단히 감싸 주며 덧붙였다.
“그래도 곧 죽을 사람처럼 한번 제대로 날뛰어 봐.”
그 말에 다니엘이 답했다.
처음 만났던─.
20대처럼 해맑은 미소로.
“네,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