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6화(36/482)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해 본 뒤에 연락 올리겠습니다.”
차분한 투로 전화를 마친 그가 현승을 지그시 바라봤다.
반면.
문제의 근간인 현승은 평소처럼 태연해 보일 뿐이었다.
“고민이 많으신가 봅니다.”
그 말에 전남일 대표가 피식 웃음 지었다.
“고민은.”
하지만, 글쎄?
‘누가 봐도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뭘.’
내용을 떠나서 수화기에서 새어 나오던 격양된 톤만 들어 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비록 상대가 정확히 어떤 말을 하는지까지는 알아들을 재간이 없었다지만 뭔가 일이 꼬인 게 분명했다.
“모쪼록.”
그때 전남일 대표가 축객령을 내렸다.
“들어 보니 개인 앨범은 일단 응원해 보는 게 좋겠다 싶군요.”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기셨나 봅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면 안 되니까요.”
대표가 순순히 개인 앨범 제작에 대한 허락의 뜻을 밝혀 왔다.
노골적으로 말하기야 했다지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어 보였다.
“예, 후회 없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현승이 대표실을 나섰고….
“흠.”
한참 동안 현승이 열고 나선 문만 바라보던 전남일 대표가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김 비서.”
그러고는 무미건조한 투로 부연했다.
“지금 당장 매니지먼트 1팀에 맨 레코드 측에서 최초로 보내온 공문 좀 가져와 달라고 전해 주시겠습니까?”
지시로만 이루어진 대화가 종료됐고….
톡, 톡, 톡, 톡―.
대표는 제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며 거듭 생각을 정리해 봤다.
맨 레코즈는 작은 영세 기획사나 소규모 레이블이 아니다.
전 세계 음원 시장을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레이블.
그런 맨 레코즈의 대표가….
현승을 콕 찍어 협업 의사를 밝혀 왔다.
“어째서….”
현승이 지닌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한 걸까?
분명 포텐셜이 충만하다지만….
이는 전례가 없는 건 물론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어떤 인과 관계가 숨겨져 있을까?
중요한 건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머릿속에 퍼즐처럼 난잡하게 정리되어 있던 생각이 점차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현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맞다.
자신을 굴지의 매니지먼트사의 대표로 만든 직감이, 정황이, 그간의 진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지금은 현승이 하겠다는 작업을 지지해 줄 수밖에 없다.
거위가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멀리 날아가지 않도록….
제 울타리 안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만약 거위가 울타리를 벗어날 낌새를 보인다면?
“빼앗기는 꼴은 볼 수 없지.”
남에게 빼앗길 바에는 직접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는 쪽이 훨씬 나으리라 생각했다.
작금의 LS 엔터테인먼트는 그런 비정함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기업이었으니까.
여러모로.
요즘은 자신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혼란스러웠지만, 흥미로웠다.
또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항상 현승이 자리해 있었다.
소파 등받이에 편히 몸을 누인 그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천장을 바라봤다.
“HS, HS, HS….”
그러고는 주문처럼 현승의 필명을 중얼거렸다.
* * *
“HS….”
문범재는 결의에 가득 찬 손으로 가죽 재킷을 가다듬었다.
드디어.
자신의 귀를 사로잡은 곡의 주인을 만나는 날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 대중성을 가장 중요시하게 된 국내 가요계는 매번 비슷한 비트 위에,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익숙한 멜로디가 엉망진창으로 끼얹어진 고만고만한 곡들이 판을 치는 추세였다.
쉽게 말해, 가슴을 뛰게 하는 곡이 없다.
문범재는 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명곡’을 찾아 부르겠다는 일념 하나로 온 업계를 샅샅이 뒤지곤 했다.
그렇게 수년.
기준을 낮추지 않는다면 관에 눕기 전에 다시는 녹음 부스에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주변의 만류에 불안감이 들기 시작할 무렵.
딱 그 무렵에 이 곡을 만난 셈이었다.
콧대가 높기로는 업계 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LS 엔터의 A&R 팀 직원들이 입을 모아 극찬하는 천재 작곡가의 곡.
‘그 곡을 처음 접했을 땐….’
마치 탕 안에서 깨달음을 얻은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치며 사옥 곳곳을 뛰어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곡을 꼭 자신이 부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작곡가로부터 답변을 받기 전까지….
문범재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신인 시절의 마음으로 작곡가가 만들었다는 모든 곡을 몇 번이고 연거푸 들었다.
서지니, 정아린, 공효주에 이르기까지….
보유한 곡이 많지는 않았지만 전부 최소한의 히트.
나아가서는….
이례적인 메가 히트를 기록한 곡도 섞여 있었다.
그의 곡은 하나같이 결점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익숙한 전개.
소위 말하는 머니코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나 분명히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일련의 메타포가 담겨 있었으며 눈에 쌍심지를 찾고 들여다봐도 결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곡에 홀리기라도 한 건가….”
특히 그런 작곡가의 ‘개인 앨범’에 수록될 곡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 따름이었다.
오로지 흥행만을 쫓는 요즘 시대의 작곡가들 곡과는 다르게 마이너한 테마의 앨범이었다.
분명히 그저 실리를 추구하며 부와 명예만을 목표로 만든 곡이 아님에도 귀에 착착 감겼다.
그러니까, 뭐랄까?
한마디로 딱 잘라서 정의하자면….
좋은 곡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곡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으니까.
저벅, 저벅―.
문범재는 약속한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기대가 차올랐다.
저벅, 저벅, 저벅―.
얼른 ‘HS’라는 이름의 작곡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걸음이 점점 더 빨라지기를 잠시.
똑똑―!
녹음실 앞에 도착한 그는 예의상 노크한 뒤 문을 열었다.
“어? 선생님, 약속보다 조금 빨리 오셨네요?”
“차 좀 드릴까요?”
“선생님이 녹음하신다 해서 저희도 왔는데, 괜찮죠?”
넓은 콘솔 앞에 오순도순 머리를 맞대고 있던 남자들이 기척을 느끼고는 곧장 뛰어나와 인사했다.
모두 구면인 A&R 팀 소속 직원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그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찰나.
“처음 인사드리네요. 민현승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이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려온 작곡가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해 온다.
‘생각보다….’
문범재는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많이 어리네….’
제 예상이 벗어난 까닭이었다.
자신이 들은 곡은 짙은 슬픔, 애환, 절망, 후회 따위의 감정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았던가?
어딜 봐도 어린 감성은 보이지 않았기에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늦깎이 신인일 거라 여겼다.
“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작곡가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너무도 의외의 나이에 놀랐을 뿐.
“그러고 보니 녹음 당일까지 일정이 촉박해 미팅 한번 제대로 못 했네요. 당장 녹음부터 시작해 버리면 너무 정 없는 것 같은데 간단하게 담소라도 나눈 뒤에 진행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승이 향긋한 차 한 잔을 타며 물었다.
“예, 좋습니다. 말이라도 트고 시작하는 편이 서로 수월할 테니 말입니다.”
“따뜻한 차 한잔하시면서 천천히 목 푸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나이에 비해 처세가 능숙하고 여유롭다.
원로 가수.
이름 앞으로 따라붙는 수식어 탓에 베테랑 작곡가들도 제 앞에서는 바짝 얼어붙기 일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꽤 놀라운 점이었다.
“일단 부탁드리고 싶은 점이 하나 있는데요.”
“어떤?”
“혹시 말씀 좀 편하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승이 부드럽게 웃으며 부연했다.
“선생님 음악을 들으며 자랐는데 존대해 주시니 어쩐지 마냥 어색해서요.”
하기야, 제 아들보다도 어려 보였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헛기침을 한 문범재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편히 하겠네.”
한차례 “좋습니다.” 하고 답한 현승이 물었다.
“선생님의 전곡을 다 들어 봤습니다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뭐든 편히 질문하게.”
“혹시 현재 소화하실 수 있는 음역대가 어떻게 되시나요?”
그 말에 문범재가 눈매를 좁히며 답했다.
“음, 최근에 부른 곡에서는 3옥타브 라까지 소화했었지. 저음으로는 –1 옥타브 파 정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군.”
“그렇군요, 역시 대단하시네요. 그럼 선생님의 폭넓은 음역에 맞춰서 조금 편곡을 거쳐도 괜찮겠네요.”
현승이 흡족하다는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저….
과거로 돌아온 덕에 말도 안 될 만큼 넓은 음역대를 자유롭게 소화하는 문범재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냥 신이 나기만 할 따름이었다.
“아, 맞다….”
그때 문득 현승의 머리 위를 스친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이번에는 제 곡을 선택하신 겁니까?’
문범재가 자신의 곡을 택했다는 소리를 들은 직후부터 계속 마음속에 품어 온 질문이었다.
전생에서는 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 의사를 내놓던 사람이지 않은가?
현승이 망설이기를 잠시.
“혹시 제 곡을 선택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달싹거리던 입술을 열었다.
“글쎄, 이유라….”
그 물음에 문범재가 자신의 턱을 긁적이며 답했다.
“예전에 아부다비의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아주 큼지막한 유리 조형물을 관람한 적이 있네. 꽤 느지막한 오후 시간이었지, 그러니까 아주 조금만 더 지나면 노을이 지기 시작할 것 같은.”
“그런데요?”
“무수히 많은 곡선을 지닌 거대한 유리 조형물은 빛이 투과하고 또 투과한 덕에 산산이 빛나고 있었네. 천장을 뚫고 들어온 햇빛이 만들어 낸, 숨이 턱 막힐 만큼 아름답고 진귀한 장면이었지.”
그가 재차 덧붙였다.
“정말 예술 그 자체였지.”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끝맺음이 궁금한 경험담이네요.”
문범재가 씩 웃었다.
“자네 곡을 듣자마자 그때가 떠오르더군.”
작곡가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극찬에 가까웠다.
“정말 영광스러운 평이로군요.”
여전히 의문이었다.
‘무슨 차이일까….’
비록 문범재의 간택을 받은 메인 타이틀곡이 지닌 고유의 결과, 자신이 전생에서 만들었던 곡의 결이 확연히 다르다지만….
회귀 이전의 삶에서 문범재에게 제안했던 곡들 역시 퀄리티가 뒤처진다고 볼 수 없는 훌륭한 곡들임이 분명했다.
‘실제로 모두 흥행하기도 했고….’
그때, 마치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양.
“내가 찾아 헤매던 곡 같더군.”
문범재가 넌지시 해답을 줬다.
“예술성은 물론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느껴졌네. 해 봐야 흥얼거린 수준의 허밍 가이드뿐이었는데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 요즘 말로는 오그라들지만 마치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가 왕자 앞에 섰을 때의 먹먹한 침묵처럼….”
무언가.
“아.”
무언가 깨달음이 왔다.
메시지.
전생에서 자신이 만든 곡들은 성공이란 목표만을 뚜렷하게 담아낸 후크송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어렵고, 까다롭고 난해한 곡도 만들 수 있었지만, 더욱더 높은 성공률을 자랑하는 곡들만을 추구했다.
그러니.
문범재가 추구하는 ‘예술성’과는 어찌 보면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예술성이 명확히 가미되어 있는 곡들만 부르시는 겁니까?”
“예술의 의미란 참으로 다양하고 중의적이지. 역으로 묻고 싶군. 후크송은 예술이 아닌가?”
“보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평가하지 않던가요? 상업적인 성향이 짙은 가요라고들….”
문범재가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답했다.
“난 달라.”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타인의 시간을 많이 빼앗을 수 있다면 예술이라고 생각하네.”
그가 재차 미소 지었다.
“아부다비의 박물관에서 넋을 놓은 채 우두커니 서서 관리인이 폐관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릴 때까지 조형물을 관람했던 날처럼. 자네의 곡을 처음 들었던 날, 몇 번이고 연거푸 반복해서 들은 건 물론이거니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과 대면했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매끈한 사고방식이었다.
명곡을 찾아 헤매는 낭인 같은 아티스트였다.
으레 그렇듯 예술에 대한 선민의식이 있으리라 확신했건만.
‘완전히 오산이었군.’
문범재는 그런 부류의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뭐, 요즘 세대는 아이돌 그룹의 곡을 무한 스트리밍하며 듣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던가? 설령 곡 자체가 아니라 가수에게 심취해서 거듭 반복해 듣더라도 단순히 틀어 놓는 게 아니라 정말 귀를 기울여서 듣는다면 그 또한 예술이겠지.”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네요.”
“다만 내가 ‘추구하는 예술’에는 명확한 기준이 있네. 꼭 방식이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들리는 곡들이 있지. 아무런 워딩 없이, 가사 한 소절 없이, 멜로디만 들었을 때 작곡가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그런 곡들.”
문범재가 방긋 웃음 지었다.
“나는 그런 곡들만 주야장천 부른 가수로 기억되고 싶네.”
그러고는 재차 느긋한 투로 부연했다.
“늙은이 욕심일지도 모르지.”
사고방식이 매끈하고, 유연한데다가, 겸손하기까지 하다.
“존중받아 마땅한 악기시군요.”
“악기?”
“아니,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현승이 다급하게 말을 바꿨다.
”아티스트라고 표현하고자 했는데 말이 헛나왔습니다.“
이런 이들에게서는 일련의 피네스가 느껴진다.
뭐랄까….
존경해야 할 것만 같은 아우라라고 해야 하려나?
“거듭 제게 금칠을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게 답했을 뿐이네.”
“실례가 안 된다면 녹음 전에 가볍게 곡을 손봐도 될까요?”
그 말에 문범재가 의아하다는 양 물었다.
“곡을 손본다라… 설마 지금 이 자리에서 말인가?”
“네, 정확한 음역을 알고 나니 기교를 더 섞고 싶어서요.”
의아한 건 비단 문범재만이 아니었다.
“가수 앉혀 놓고, 편곡이라… 쉽게 쉽게 가는 날이 없지.”
“괜히 민현승이겠어?”
“이야, 하다 하다 이제 문범재 선생님을 앉혀 놓네.”
“심장 터질 것 같아.”
“선생님께서 화내셔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상황인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건 A&R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레 편곡이란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 아니던가?
곡을 다시 만지는 사이 문범재는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그뿐이랴?
단순히 시간문제뿐만 아니라 그간 문범재가 행한 노력을 전부 수포로 만들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원곡을 토대로 목청이 터져라 반복해서 연습했을 텐데 편곡을 해 버리면 그간의 노력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반면.
문범재는 침착한 투로 물었다.
“곡에 보탬이 되는 일인가?”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든 기다리지.”
의외의 대화 전개에 모두가 놀람을 금치 못했고.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승은 곧장 편곡에 돌입했다.
* * *
이번 녹음은 뭐랄까?
그러니까….
반전의 연속이었다.
“벌써 끝났다고?”
한참이 걸리리라 예상했던 현승의 편곡이 불과 이십 분 남짓한 짧은 시간 만에 완료됐다.
“드, 드, 들어 보자.”
이내 문범재는 물론이고 A&R 팀 직원 전원이 현승의 손에서 편곡된 곡을 경청했고….
경악을 금치 못하던 A&R 팀 직원들이 하나같이 문범재를 슬쩍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순간.
“이보게.”
문범재가 모두가 품고 있던 의문을 꺼내 들었다.
“어찌어찌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네만.”
“그런데요?”
“들을 수밖에 없는, 부를 순 없는 곡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곡으로 재탄생한 채였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기나 마찬가지인 행위였다.
“아무나 흥얼거리지 말라고 만든 곡이니까 괜찮습니다.”
이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는 곡이다.
그리고.
문범재는 제 이야기를 의도한 대로 전달할 수 있는 악기다.
대중은.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경청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 의중이 있겠지.”
그 말에 현승이 낮게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으니 곧장 시작해 볼까요?”
그렇게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됐다.
* * *
앞서 말했듯 이번 녹음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다시 해 보시겠어요?”
“흠, 다시.”
“이 느낌이 아닌데.”
원 테이크로 녹음을 마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던 문범재다.
그런 문범재가….
장장 십수 시간에 걸쳐 곡을 부르고 또 부르는 중이었다.
“다시, 천천히 다시 해 보죠.”
놀라운 점은….
끄덕―.
기분이 상할 법도 한데 순순히 녹음에 응하고 있단 점이었다.
“지금 대체 몇 시간째야?”
“열네 시간.”
“둘 다 쉬어야 하는 거 아냐?”
짧게 쉬는 시간을 가지고 있기야 했지만, 이 정도 강도의 녹음이라면 가히 강행군이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어느 한쪽이 쓰러져야 끝나려나….”
그때였다.
“좋네요.”
드디어 현승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되, 되, 된 건가?”
“드디어?”
“하, 집에 좀 가자.”
녹음을 지켜보며 덩달아 지칠 대로 지친 A&R 팀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이던 찰나였다.
앞서 말했듯 이번 녹음은 그야말로 반전의 연속처럼 보이기만 할 따름이었다.
“아니, 다시.”
이제 들으면 헛구역질이 나는 말이 흘러나왔다.
다만, 이번에는.
현승의 입이 아닌 문범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기랄.”
A&R 팀 전원이 아연실색한 얼굴을 해 보였고.
“뭐, 좋습니다.”
오로지 현승만이 입가에 미소를 활짝 머금어 보였다.
이게 끝인가 싶어 끝내려 했건만….
명물이라 평가받는 악기는 달라도 확실히 다른가 보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모두가 정말이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였으나….
그중 한 사람.
창립일로부터 쭉 근속 근무 중인 A&R 소속의 한 팀장만큼은 심각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이야, 이거 일 났네.”
그 말에 직원 하나가 되물었다.
“예? 뭐가요?”
이내 팀장이 답했다.
“교통사고라는 게 쉽게 나는 게 아니거든.”
“그럼요?”
“으레 사고란 미친 사람 둘이 만나야 나.”
“그래서요?”
그 말에 한 팀장이 답답하다는 양 혀를 차고는 부연했다.
“내가 이런 장면을 많이는 아니어도 한두 번 정도 봤거든?”
“이게 어떤 장면인데요?”
“완벽함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둘이 만난 장면 말이야.”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한차례 “어떻게 되긴.” 하고 답한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사고가 나지.”
그러고는 연거푸 뒷말을 덧붙였다.
“그것도 아주 큰 대형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