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6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62화(361/482)
문주혜는 해가 다 저물고 나서야,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채 힘없이 집으로 향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책가방은 물론이고 어깨마저 무거워졌다. 내년이 되면, 이제 고3이니 별수 있겠나.
좋아하던 노래도 안 듣고, 덕질마저 중단했다.
비록,
남들은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출발점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이왕이면 최선을 다해 보는 것이 좋겠지. 우선 오늘은 집에 가서 바로 씻고 자자.
꾸─욱,
피곤한 몸을 억지로 달래 가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도 잠시.
“아, 씨….”
버튼이 눌리지 않아, 고개를 들어보니 ‘점검 중’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안 그래도 너무나 고된 하루인데, 이젠 엘리베이터마저 말썽이라니.
하물며.
문주혜의 집은 17층이었다. 단순히 “운동 삼아 걸어 올라가지, 뭐.” 하고 넘길 만한 층이 아니었다.
“순간이동 하고 싶다.”
당장 바닥에 누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이 날씨에 노숙을 했다간, 입이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니 애써 계단으로 걸음을 돌렸다.
“빨리빨리 좀 고쳐 주시지….”
투덜거리며 계단을 오르다 보니 점차 숨이 벅차올랐다.
“하아, 하, 하아아─.”
분명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점퍼 안으로는 더운 습기가 차는 것이 느껴졌다.
6층, 9층, 11층, 13층….
어느덧.
16층을 지나, 17층에 도달했다.
“허어억, 허어억─.”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체력이 엉망이 되었는지 쉬었다 오르기를 반복했음에도 폐가 찢어질 듯 아팠다.
띠리리링─!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심장을 부여잡기도 잠시.
“다녀왔습니다아….”
집 문을 열자마자, 그대로 거실로 향해 소파에 쓰러졌다.
온도 차로 인해 안경알에 뿌옇게 서리가 껴,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당장 고단한 몸을 뉘고, 쉴 곳이 필요했으니까.
“이것아, 발이라도 좀 씻고 누워!”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가 그런 주혜의 등짝을 때리며 소리쳤다.
“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진짜, 조금만 쉬고….”
“아무리 힘들어도 손, 발 씻고 누울 힘도 없어?”
주혜는 계속되는 엄마의 닦달에 귀를 막았다.
“주혜야, 문주혜.”
“안 들린다─.”
“아니, 좀 봐 봐.”
“안 들어─.”
엄마가 그런 주혜를 재차 흔들어 대기도 잠시.
찰싹─!
등짝을 세게 때리고는, TV 화면을 가리켰다.
“아니, TV 좀 보라고!”
“TV는 왜.”
“저기 맛있어 보이지 않아?”
주혜는 엄마의 말에, 귀찮다는 양 고개를 돌렸고.
화면 속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칡냉면이 보였다.
“뭐, 좀 맛있어 보이기는 하네.”
“조만간 한번 먹으러 갈까?”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언제 가?”
불퉁하게 말했지만, 주혜도 먹고 싶기는 한지….
슥, 슥-.
아직 뿌연 안경을 대충 교복 셔츠 소매로 닦아 낸 뒤 일명 ‘면 치기’를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맛있게도 드시네, 들.
“그래도 바람 쐴 겸 가족들끼리 한번 가면 좋잖아.”
엄마가 꼬드기듯 주혜 옆구리를 쿡 찌르며 제안했고.
“아니, 안 간….”
이내 주혜는 더 이상 보다간 당장 먹으러 가고 싶어질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잠시, 잠시만.”
화면 속에 맛있다며 연신 엄지를 들어 올리는 어르신들 사이로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아니.
낯익은 하관이라고 해야 하나?
이내.
주혜는 언제 피곤했냐는 듯, 말똥해진 눈으로 TV 화면을 가리켰다.
“저, 저기, 저어기…!”
“그래, 저기 가자고.”
“부, 분명, 저 사람….”
주혜는 안경을 다시 꼼꼼히 닦아 내고는, TV에 빨려 들어갈 듯, 앞으로 튀어 나갔다.
“눈 나빠져, 이리 와서 봐!”
뒤에서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 왔지만….
“확실해.”
주혜의 시선은 TV에 고정된 채였다.
명확히 말하자면─.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에게.
“미, 미친.”
화면이 계속 빠르게 변환되다 보니,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 전국 맛집 도장 깨기 프로젝트를 구상하다가 여기가 엄청 오래된 맛집이라길래 꼭 들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지않아 남성의 인터뷰 화면을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날렵한 턱선과 도톰하게 균형 잡힌 입술.
그리고.
낮고 허스키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목소리.
분명,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매일 밤, 사진 하나 붙들고 잠을 설치게 했던….
고단한 자신의 하루에 늘 활력소가 되어 주었던….
─ 이 정도면 됐죠? 저, 이제 음식 나와서 이만 카메라 좀 치워 주실래요?”
작곡가, HS인 게 확실했다.
“너 근데 피곤하다며, 안 자려고?”
이윽고.
주혜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우리도 저기 가자.”
* * *
주혜는 결국 부모님을 졸라, 당장 주말에 <지리칡냉면>을 먹고 왔다.
단순히 그냥 가서 먹고 왔냐고?
아니지.
HS가 앉았던 자리에서 먹고 왔다.
그러기 위해.
부모님의 유난 떤다는 핀잔을 들어가며 오픈 런을 뛰었지만….
맛도 훌륭하니, 이 정도면 다녀올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 속상할 따름이었다.
Joo @joovely mar.1
전국맛집지도라는 프로그램 알지?
ㅈㄹㅊㄴㅁ이란 맛집 소개됐는데
거기에 HS 왔었음 확실함
영상 속 남자가 하관이
리얼 순도 백프로 갓치스임
그래서 같은 자리에서 먹구옴ㅋ
cover
공부 때문에 지웠던 스위터를 다시 깔고,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글을 남겼지만….
⤷ HS가 칡냉면 먹으려고 첩첩산중을 오른다고?ㅋㅋㅋ진짜 개연성 좀 생각하구 말해
⤷ 지금 HS 미국 아님?
⤷ ㅇㅇ그럴걸
⤷ 지금 뜬 기사 좀 봐ㅋ 엣치스 미국에서 레이블 차리자마자 다니엘파커 앨범 제작중임
⤷ ㅋㅋ왜ㅋ아주 다니엘파커랑 먹으러 간 거라고 하지?
⤷ 이 친구 망상이 좀 심하네;; 이제 공부한다고 스윗 비활 탄다더니.. 그것도 망상 아님?
⤷ 애들아적당히패..걍팬심에그렇게보일수도있지..
너무 오랜 시간 활동을 안 해서인지, 화력도 세지 않을 뿐더러 애초에 믿는 사람도 없었다.
이유는, 딱 2가지였다.
1. HS가 칡냉면을 먹으러 갔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아서.
2. HS는 현재 미국에 진출해 작업 중이라 한국에 없으니까.
이 점에 대해 부정하는 건 아니다. 자신도 처음에는 자신이 헛것을 보는 건가 했으니까.
HS는 왠지….
사람의 무결한 피만 먹고 사는 뱀파이어처럼 생겼달까?
그러니.
첩첩산중에 칡냉면을 먹으러 가서 면 치기를 한다니, 영 이질감이 드는 상황이긴 했다.
[ HS, 미국 내 레이블 ‘VINCIS’ 설립! 동업자는 무려 ‘팝의 황제’ 빈센트 마흐…. ] [ 작곡가 HS, 미국 레이블 설립 이후 첫 작업 ‘다니엘 파커’ 앨범 제작 진행…. ]또한, HS가 현재 미국에서 다니엘 파커 앨범 작업 중이라는 걸 당일 기사를 통해 알게 되기도 했고.
하지만.
보통 촬영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에 방영되지 않나?
그럼.
그땐 작업 전일 수도 있고, 한국에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지 않나?
“진짠데….”
주혜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HS’로 보여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안 되겠어.’
망상증 환자 취급을 받는 이 상황에선 뭐라도 해야 했다.
‘신뢰.’
주혜는 남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일에 엄청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
이윽고.
주혜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잠시.
찰─칵!
버튼 조작키를 눌러, 보고 있던 화면을 캡쳐했고.
머지않아.
계정에 새로운 게시물을 업로드하기에 이르렀다.
“좋았어.”
그런 주혜의 얼굴 위로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 채였다.
* * *
김우현은 이제 정말 한국 생활을 다 정리했다.
이제 할 일이라고는 예약해 둔 비행기를 기다리며….
‘정말 예쁘다.’
매일 아리따운 단비 씨를 보러오는 것뿐이었다.
그래, 요즘 김우현의 낙이라면….
출근 대신 카페 ‘habit’으로 출석 도장을 찍은 뒤, 커피 한 잔을 시켜 둔 채 노트북 너머로 단비 씨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거랄까?
이제 곧 못 보게 될 얼굴이라 생각하니 더 빛이 나는 듯했다.
그건 그렇고….
이 금동이 녀석은, 왜 연락 한 번을 안 하는 거야.
[ 작곡가 HS, 미국 레이블 설립 이후 첫 작업 ‘다니엘 파커’ 앨범 제작 진행…. ]먼저 물 건너가 이렇게 거대한 일을 벌여 놓고는, 아무 일 없는 듯 고요히 침묵하다니.
하물며.
어제 보낸 톡도, 엊그제 보낸 톡도, 며칠 전 보낸 톡 옆에도 ‘1’이라는 숫자는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으유.”
김우현이 일방적인 톡 방 위로 꿀밤을 놓던 찰나.
지이이잉─!
액정이 전환되며,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이제 지겹도록 보게 될 박 전무였다.
“여보세….”
─ 너 어디야?
“예? 저는….”
─ 어디냐고, 인마!
그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어딘가 격양된 목소리였다.
“사옥 근처 카페입니다.”
─ 이 와중에도 havit이야?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우선 갈 테니까, 기다려.
그 말을 끝으로 박 전무는 통화를 종료했고.
정말.
머지않아 그는 다급히 카페 문을 열고 나타났다.
“커피로 드시겠어요?”
김우현은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땀을 흘리며 들어온 박 전무를 살피며 물었다.
“됐고, 우선 앉아 봐.”
하나, 박 전무는 뭐가 그리 급한지 맞은편도 아닌 자신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고.
마침 노트북도 있으니 잘됐다고 덧붙이며, 자신이 남겨 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아, 그래서 그냥 시켜드린다니까.
이내 김우현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을 마른침과 함께 삼켜 냈고.
탁, 타다다닥.
박 전무가 노트북을 요란하게 조작하기도 잠시.
“이것 좀 봐 봐.”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며 부연했다.
“어떤 스윗터가 칡냉면을 먹고 있는 이 남자가 HS라고 계속 글을 올리고 있나 보더라고.”
김우현은 박 전무의 손가락 끝에 보이는 남자를 유심히 살펴 댔고.
“어? 분명….”
머지않아, 놀란 듯 입을 틀어막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 속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고개를 숙인 남성이 너무 익숙한 하관을 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아니.
너무 자주 봐서 절대 몰라볼 수가 없는 하관이지.
“나도 딱 보자마자 알겠더라.”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박 전무가 고개를 잘게 끄덕였고.
“녀석은 왜 제 성정에도 안 맞는 인터뷰 같은 걸 해서….”
이내 혀를 끌며, 한숨 섞인 핀잔을 늘어놓았다.
“어차피 얼굴 대충 팔렸으니, 이제 막 나가자는 거야, 뭐야?”
“근데, 전무님….”
김우현이 그런 박 전무를 조심스럽게 불러 세웠다.
“사람들도 안 믿는 눈치고, 무엇보다 칡냉면을 먹으러 간 게 딱히 잘못한 일도 아닌데 뭐가 문제인 거죠?”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뭐 저런 걸 했냐고 물을 수야 있다지만 나무랄 일도, 이렇게 성을 낼 일도 아니지 않나?
“김우현.”
박 전무는 갸웃거리는 자신을 답답하다는 양,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되물었다.
“HS가 이제 그냥 작곡가야?”
“예?”
“HS는 이제 한 기업의 대표야.”
그러고는 차분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로 부연했다.
“근데 그런 대표가 첩첩산중 올라가서 칡냉면 면 치기를 했다고 하면 영 가오가 안 살잖아, 가오가.”
김우현은 황당하다는 듯 박 전무를 바라봤지만.
그는 마치 중대하고 위급한 사안을 처리할 때처럼,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혹시 모르니 녀석한테 연락해서 본인 맞는지 확인하고, 스윗터한테 글 내려 달라고 요청해.”
“제가 봤을 때, 그렇게까지 조치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몇 번을 말해. HS는 이제 VINCIS를 대표할 얼굴이야. 난 이제 VINCIS의 전무니까, VINCIS의 얼굴을 지켜 줘야 할 의무가 있어.”
이내 박 전무는 결의에 가득 찬 주먹으로 테이블을 “쿵.” 하고 내리치며 주억거렸다.
아, 맞다.
전무님은 ‘사명감’에 무척 진심이신 분이었지.
“예… 확인 후 조치하겠습니다.”
김우현은 우선 그의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테이블은 좀 살살 쳐 주세요….”
“뭐?”
“우리 단비 씨가 소중하게 하나하나 고른 테이블이란 말이에요.”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