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6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65화(364/482)
박 전무는 알람이 울리기 무섭게 몸을 일으켰다.
사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늘 정해진 루틴대로 살아오다, 돌연 새로운 환경에 놓여 잠을 이루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편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아이들은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데리고 계신다는 거였다.
아직 생활 루틴을 잡지 못한 채로 아이들까지 챙기려면 아마 아침부터 전쟁통이었을 터.
이내.
나갈 채비를 서둘러 끝내고는, 거울 앞에 섰다.
그러고는 짙은 남색 계열의 수트에 어울릴 것 같은 넥타이를 골라, 반듯하게 둘러맸다.
이러고 있노라니….
왠지 처음 출근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땐.
정장은커녕, 제대로 된 옷 한 벌이 없어, 최대한 단정해 보이는 옷을 골라 입었었는데.
그마저도 옷차림이 왜 이렇게 후줄근하냐며 선배에게 따가운 핀잔을 들어야 했었다.
이젠.
고급 하이엔드 정장은 물론이고, 시계부터 넥타이핀 하나까지 명품이 아닌 게 없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 전무는 이 정도로 만족하고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꽈─악.
이내 단단한 주먹을 말아 쥐며,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바라봤다. 한국에서는 정해진 루틴대로 답습만 해도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고, 그 탓에 일부 안일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살아선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일터.
더군다나 새로 모시게 된 대표는 자신을 믿고, 파격적인 조건을 앞세워 스카우트해 줬으니.
자신 또한 이전만큼만 일하면 안 될 일이다.
생존을 위해 이빨을 드러낸 야수처럼.
더욱 표독스럽게 ‘VINCIS’의 몸짓을 키워 내리라.
끼이이익─.
박 전무는 그런 결심을 다지며, 집을 나섰다.
* * *
박 전무와 김 이사는 첫 출근과 동시에 대표실을 찾았다.
인사 겸 처음으로 맡게 된 작업에 대해 듣기 위함이었다.
“아….”
김우현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탄식했다.
조금 전.
현승으로부터 다니엘 작업을 맡게 된 연유를 전해 들은 까닭이었다.
은퇴와 유작.
그 두 단어 앞에서 쉽사리 뭐라 의견을 보태기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기로 했고….”
그때 상석에 앉은 현승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곡 발매와 동시에 단 한 차례의 콘서트를 진행하려 합니다.”
박 전무는 그 모습이 퍽 낯설면서도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공연은 다니엘이 소속된 기획사에서 준비하는 거지…요?”
그래서인지, 박 전무는 자신도 모르게 존대로 말끝을 맺었다.
“박 전무님?”
현승이 그런 박 전무를 이상하다는 양 바라보기도 잠시.
“갑자기 왜 징그럽게 존댓말 하세요? 오늘 아침에 뭐 잘못 드신 거 아니에요?”
소름이 돋았는지 팔뚝을 쓸어내리며 질책했다.
“이제 네가 대표이사가 된 이상, 사내에선 존댓말을 하는 게 조금 더 모양새가….”
“제가 어색해서 싫습니다.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그냥 늘 하던 대로 하시죠.”
박 전무가 무어라 말을 덧붙이려 했지만, 현승이 말허리를 딱 잘라 완강히 거절했다.
“그래, 인마.”
결국 박 전무는 못 말린다는 양 피식 웃으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아무래도…
녀석이 대표인 이상, 수직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따름이었다.
김우현도 그런 둘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던 그때.
“아, 그리고.”
현승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자료 몇 장을 테이블 위로 뿌리듯 올려놓으며 부연했다.
“본래 콘서트는 아티스트 소속사 측에서 진행하는 게 맞지만, 우리가 준비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김우현과 박 전무가 동시에 튕겨 오르듯 상체를 들어 올렸고.
“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다니엘 소속사가 돈이 없을 리도 없고.”
“그러니까, 콘서트 한번 준비하는데 비용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둘이 만류하려 말을 보태 봤지만….
“걔네가 준비하면 제가 보기에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아서요.”
현승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결정 내린 뜻이니, 굽히지 않겠다는 듯한 제스처였다.
“하여간….”
그런 현승의 고집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한 번 더 만류했을 테지만.
“어차피 제 돈으로 하는 거니까, 다들 불만은 없으시죠?”
둘은 그럴 생각도 없다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승이 이미 하기로 결정 한 이상, 말린다고 한들 소용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똑, 똑, 똑.
그때 별안간 대표실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박 전무와 김우현은 궁금증이 서린 얼굴로 문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고, 현승은 누군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레 들어오라 말했다.
“오늘은 작업 안 하나?”
그러자, 다니엘이 대표실 문을 대차게 밀고 들어오며 물었다.
“우선 인사부터 해.”
현승은 그런 다니엘에게 박 전무와 김우현을 소개했다.
“여긴 너도 알지? 우리 레이블의 자랑인 Villain daddy, 박태묵 전무님이고, 이쪽은 그냥 김우현 이사님.”
“아니, 난 왜 그냥 김우현 이사야?”
“그래, 우현이도 ‘행복이’라고 별칭 하나 붙여 줘.”
“그건 사양할게요.”
그들을 훑어보던 다니엘이 “오─!”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기도 잠시.
“두 사람은 혹시 술 좋아하나?”
곧장 곁으로 다가와 어딘가 신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왕 이렇게 파티원이 모이게 된 거, 오늘은 작업 대신, 거하게 파티나 여는 건 어때?”
현승이 그런 다니엘이 못마땅하다는 양 고개를 내저었고.
“그냥 작업실 가서 목이나 풀고 있는 게 어때?”
“네가 대표실로 오라며? 그리고 나 방금 왔어.”
이내 괜히 불렀다는 듯, 온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축객령을 내렸다.
“맥주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으려면 그편이 나을 것 같은데.”
다니엘이 날카로운 인상과는 안 어울리게 입술을 삐죽거리기도 잠시.
“간다, 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대표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현승이 안 보는 틈을 타, 중지를 치켜올리고는 들킬세라 도망치듯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다니엘이 생각보다 유쾌한 사람이었네.”
“그러게요. 상상했던 모습과 많이 달라요.”
그 모습을 본 박 전무와 김우현은 웃음을 참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니엘은 정말 한때 음악 시장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만큼 전설적인 뮤지션이다.
그가 중년에 접어든 이때까지도 그를 뛰어넘을 뮤지션은 아직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런 전설적인 이가….
현승의 협박 한마디에 소심하게 중지를 한 번 들어 올리고는, 줄행랑을 치는 꼴이라니.
이거, 참.
다니엘이 의외라고 해야 할지, 현승이 현승답게 사람을 잘 구슬리고 있다고 해야 할지.
장내에 옅은 웃음기가 깔리기도 잠시.
“그건 그렇고.”
박 전무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테이블 위에 흩어진 서류 꾸러미를 집어 들며 물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사가 어디라고?”
그런 그의 얼굴은 마치 열의에 가득 찬 신입사원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 * *
제임스는 HS의 작업실에 설치해 둔 캠을 수거하기 위해 ‘VINCIS’ 사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스튜디오 ‘HIL’ 소속 카메라맨인 그는….
이번 다니엘 은퇴작 다큐멘터리를 맡게 되었다고 했을 때, 제 손으로 역사에 남을 만한 장면을 담아내리라 열의를 불태웠었다.
그러나.
작업 과정을 관찰 캠으로 진행하게 되어, 그 열의는 얼마 안 가 ‘파르르─’ 식어 버렸다.
그래도.
아예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작업 과정을 제외하고는 촬영할 수 있기도 했고.
오늘처럼 카메라를 수거하는 날, 혹시나 추가 촬영을 진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그래, 그래.”
제임스는 희망에 가득 부푼 채, 엑셀을 보챘다.
‘오늘이야말로!’
그리고 머지않아 ‘VINCIS’ 사옥에 도착했다.
왠지 레이블 사옥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제법 있는 미술관이나 예술관처럼 마당은 꽃들과 나무로 조경되어 있었고.
성전의 문처럼 거대하고 새하얀 문 옆에는 안 어울리게 최첨단 보안 시스템이 달려 있었다.
“베, 벨을 누르면 되나?”
누르면 바로 보안 시스템이 작동할 것만 같은 느낌에, 제임스는 가장 초인종처럼 보이는 버튼을 조심스레 누르고 응답을 기다렸다.
─ 누구시죠?
이내 인터폰을 통해 누군가 물어왔고.
“HIL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수거차 왔습니다.”
신원과 방문 목적을 밝히자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오.”
제임스는 생각보다 최첨단으로 이뤄진 사옥에 혀를 내두르며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올렸다.
로비는 마치 중세 시대 유럽 왕실처럼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뭐랄까….
천천히 앉아서 티타임을 즐기고 싶은 분위기랄까?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카메라를 수거함과 동시에 혹 추가 촬영을 따 갈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근데….”
제임스가 숲속에 버려진 산장처럼 인기척 하나 없는 로비를 두리번거리던 때였다.
“어디로 가야 하지?”
위층 계단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터벅, 터벅.
미팅 때 봤던 헬멧남(*HS)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안녕하세요!”
“올라오시죠.”
HS는 인사치레는 필요 없다는 듯, 다시금 계단을 올랐다.
“네, 네!”
제임스는 그런 HS를 놓칠세라, 바로 뒤를 쫓았다.
“혹시 지금도 다니엘 님과 작업 중이신가요?”
그러고는 뒤까지 바짝 따라붙으며 물었다.
“예, 그런데 아마 오늘 녹음 작업이 마지막일 것 같으니, 수거해 가셔도 됩니다.”
HS는 제임슨의 기대와 욕심으로 얼룩진 표정을 보지 못한 채, 설렁설렁 대답하며 앞서 나갔다.
그렇게 작업실 앞에 다다를 때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오늘은 제가 직접 두 분 작업 과정을 좀 담아 가도 되겠습니까?”
제임스는 제 어깨에 들린 카메라 가방 끝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부디 허락이 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우─뚝.
HS는 걸음을 멈춰 선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필 헬멧을 쓰고 있는 통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꼴─깍.
그렇다 보니, 제임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HS의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뭘 묻습니까?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오신 거잖아요.”
“예?”
“그래서 무겁게 카메라 가방 챙겨오신 거 아닙니까?”
HS의 대답은 비수처럼 날카롭게 날아왔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몰라도, 썩 고운 표정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제임스는 오늘 촬영은 글렀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아, 이건 혹시나 하고….”
“마음대로 하십쇼.”
“죄송…, 예? 찍어도 됩니까?”
“예, 그렇게 하세요.”
그러나, 생각 외로 HS는 간단히 허락했다.
그는 정말 상관없다는 듯, 다시 걸음을 돌렸고.
제임스는 HS가 혹여나 마음을 바꿀까 다급히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며 쫓았다.
띠리리릭─.
이내 어느 문 앞에 도착한 HS가 지문을 입력하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드디어…!’
오늘에야말로 자신이 직접 다니엘의 작업 과정을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며 기대에 부풀어 카메라를 들어 올린 찰나였다.
콰아앙─!
돌연 굉음이 들려왔고.
“엣치스! 나 더 이상은 못 참아!”
앵글 안으로 잔뜩 성이 난 다니엘의 얼굴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