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6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67화(366/482)
VINCIS는 제법 회사다운 모습을 가꿔 나가고 있었다.
그 속에는 김우현의 노력이 있었다.
김우현은 사내의 내실이 단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출근과 동시에 사무직원과 보안요원을 직접 채용하여 교육을 진행했고.
또한.
다른 의미로 가장 핵심 구역인 구내식당을 운영해 줄 업체 또한 일일이 비교 분석하여 선정했다.
추가로….
카페를 관리해 줄 이도, 유명한 바리스타로 데려왔고.
그렇게.
VINCIS는 차츰 레이블로서 구색을 갖춰 가고 있었다.
“혼자 어딜 그렇게 빨빨 돌아다녀?”
박 전무는 VINCIS 로비를 가로지르는 김우현을 붙들고 물었다.
출근 이후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 통에 얼굴 한 번을 맞대기가 어려웠던 까닭이다.
“밥값 해야죠.”
하나, 김우현은 그 말을 남긴 채 또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민현승이 사람 보는 눈은 있어.”
박 전무는 그런 김우현의 뒷모습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김우현이 요령 피우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미국에 온 이후로 더욱 열의로 들끓었다.
애사심이나 사명감 때문에도 있겠지만.
아마 그보다는 ‘현승’을 위하는 마음일 확률이 농후했다.
머지않아….
박 전무 또한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나도 밥값 좀 해야지.”
* * *
현승은 작업실이 아닌 대표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이제 대표가 된 이상….
귀찮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떠넘긴 채, 자신이 원하는 작업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락, 사락─.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만큼, 글자가 빼곡히 담겨 있는 서류를 넘기던 찰나였다.
똑, 똑!
짧고 둔탁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현승은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기에, 문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이내.
문이 열리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도 잠시.
“그러고 있으니, 제법 대표 같은데?”
정수리 위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고개를 올려 보니 박 전무가 능글스럽게 웃고 있었다.
“대표 같은 건 뭐예요?”
현승이 결재판을 닫으며 물었다.
“나도 아직 어색해서 그러지.”
그 물음에 박 전무는 현승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으며, 부연했다.
“작업실이 아닌 책상에 앉아, 후드 대신 수트를 입고, 헤드셋 대신 볼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저도 좀 안 맞는 옷을 입은 것마냥 어색하고 불편하긴 합니다.”
현승은 매지도 않은 넥타이를 풀듯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몸에 딱 맞는 셔츠가 몹시 답답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대표란 자리가 원래 좀 숨이 탁탁 막혀 오는 자리지.”
그 모습을 보던 박 전무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하지만, 이렇게 단추를 풀어 줄 사람이 있으면 좀 괜찮지?”
그러고는 이내 현승이 단단히 끼워 놓은 맨 윗단추를 풀어 주며 소리 없이 웃었다.
현승이 아주 조금 놀라기도 잠시.
“예, 그러네요.”
입꼬리가 반듯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맞다.
대표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건 맞지만, 오로지 혼자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도와줄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질 않은가?
이젠 혼자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그때.
박 전무가 별안간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로 올려두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유능하기까지 하면 숨통이 트이겠지?”
한쪽 눈을 찡긋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그네슘이 부족하신가.’
현승은 그런 박 전무를 이상하게 바라보다 말고.
“이게 뭐죠?”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아, 이제 서류는 그만 보고 싶은데.
사락─.
그렇게 생각하며 서류를 들여다보자, 눈에 익은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아주 익숙한….
“판 좀 키우고 싶다며? 이왕 할 거, 제대로 하자고.”
현승이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고, 박 전무는 안 그래도 거대한 풍채를 부풀리듯 어깨를 들썩거리며 첨언했다.
“다니엘 다큐멘터리 넷플렉스 전 세계 동시 판매 확정되었어.”
그저 자신의 ‘업’을 찾아 준 다니엘이 유작을 준비한다고 해서 다큐멘터리 한 편 남겨 주고자 했던 거였다.
누가 보든, 말든 흥행과 상관없이.
다니엘이라는 뮤지션을 기록해서 남겨 두고 싶던 맘이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OTT 플랫폼 1위 기업인 ‘넷플렉스’에서 다니엘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된다니….
분명 엄청난 파급력이 있을 터였다.
“전무님….”
현승이 잠긴 목소리로 박 전무를 불러 세웠고.
“감동할 거 없어.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미국 와서도 운동만 하시면 어쩌나 했는데….”
짐짓 감동받은 표정을 지으며 이죽거렸다.
“뭐, 인마?”
“대표한테 인마라뇨.”
“언제는 하던 대로 하라며?”
물론, 고마운 것도 사실이었다.
“화 그만 내시고, 오랜만에 같이 운동이나 하실까요?”
아아, 감동한 건 진짜 아니고.
* * *
[ 다니엘, 이번 앨범이 은퇴작이라 밝혀 충격.. ]기사는 빠르게 퍼져 나갔고.
[ 다니엘, 은퇴 앨범 작업 과정 담은 다큐멘터리 ‘넷플렉스’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 확정.. ]전 세계는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다니엘의 ‘은퇴’ 소식으로 인해 슬픔에 잠겼고.
또.
누군가는 엄청난 다큐멘터리가 나올 것 같다며 기대했다.
그리고, 지금.
“싫어요.”
현승은 몹시 귀찮아하는 중이었다.
“한 번만….”
HIL 스튜디오의 메인 작가인 캐서린이 찾아와, 개인 인터뷰를 한 번만 해 달라고 통 사정을 해 대는 까닭이었다.
“다니엘 먼저 인터뷰하시죠.”
“나 이미 했어.”
“그럼, 다니엘의 전 여자친구분들 인터뷰는 어때요?”
“내 전 여자친구들이 왜 나와?”
“아니면 마테오 영감은 어때요? 둘이 꽤 각별해 보이던데.”
“선생님은 절대 안 할걸?”
현승이 어떻게든 피해 가고자, 다른 이들을 나열했지만.
다니엘이 족족 태클을 걸었고.
“대중들은 다니엘 님의 앨범을 직접 맡고 디렉팅한 작곡가님 인터뷰를 더 원하지 않을까요?”
캐서린 또한 현승을 정확히 응시하며 거듭 부탁했다.
“헬멧을 쓰셔도 좋고, 짧게라도 괜찮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꼿꼿이 세우고 있던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동시에 쏟아진 머리칼이 바닥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딱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옆에서 다니엘이 얄미운 시누이마냥 거들었다.
“숙녀분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한 번 해 주지 그래?”
현승이 그런 다니엘을 날카롭게 째려보기도 잠시.
“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니엘 때문이 아니더라도, 간곡하고 정중한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기 퍽 난감했던 까닭이다.
“알겠으니까, 이만 고개 드시죠.”
현승은 결국 마지못해 허락했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캐서린은 긴 생머리를 펄럭이며,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거참….
고개 좀 드시라니까.
.
.
그렇게 촬영은 현승의 작업실에서 진행되기로 했다.
간단히 조명과 카메라 세팅이 끝나자, 현승은 소파에 여유롭게 앉아 있던 다니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만 나가지?”
“왜?”
“용건 끝났으니까.”
다니엘은 나가기 싫은지, 악착같이 버텨 보려 했지만.
머지않아.
현승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밀려 밖으로 쫓겨났다.
“아니, 잠시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작가 캐서린과 카메라맨 제임스는 놀라우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애써 꾹 눌러 참았다.
일순 장내에 정적이 드리웠고.
그제야 현승은 헬멧을 뒤집어쓰며, 무어라 말해야 할지 차분히 머리를 굴려댔다.
사실,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렇지 않겠나?
불과, 얼마 전까지 다니엘과 현승은 남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고.
서로 마음을 나눌 만한 얘기를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래 봐야….
다니엘이 만났던 여자 얘기 또는 마셨던 위스키의 가격.
그도 아니면, 본인이 소유한 섬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전경이 몹시 끝내주고.
물이 맑고.
바람이 포근하다고.
꼭.
콘서트 멋있게 끝내고, 같이 가자고.
그래.
약속 하나 나눈 사이일 뿐이다.
“혹시 바로 시작해도 될까요?”
그때 캐서린이 물었다.
“예, 시작하죠.”
현승은 쉴드를 “탁” 소리 나게 닫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카메라맨은 현승의 얼굴을 담을 수 없어 아쉽다는 양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버튼을 눌렀다.
이내.
붉은빛이 깜빡이며 촬영이 시작됐고.
“다니엘 파커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캐서린이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진 뒤, 대답을 기다렸다.
“음….”
그러나, 대답 대신 장내에는 깊은 침음만이 흘렀고.
“잠, 잠시 시간을 드릴까요?”
캐서린이 침묵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는 것이리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차라리 잠시 촬영을 멈추고 본인이 직접 대사를 정해 주는 게 원활하게 끝날 수 있을 테니까.
“다니엘 파커 씨는 참 철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 현승은 언제 침묵했냐는 듯 현지인 뺨치는 발음을 구사하며 말문을 열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참 술을 좋아해요.”
딱히 톤에 높낮이가 있진 않았지만, 어쩐지 현승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은은히 깔려 있었고.
“오죽하면 녹음할 때도 술을 마시게 해 달라고 해요.”
머지않아….
“그뿐입니까?”
질색이라는 양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여자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잠시 쉬는 시간이면 전에 만났던 여자에 대한 추억에 잠겨선….”
그 모습에 캐서린과 카메라맨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거 못 쓰겠는데?’
둘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길 기대했다.
서로 목소리를 높여 가며 싸우던 장면과 교차 편집하면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을 거라고.
하나.
지금 인터뷰로 보아, 그랬다간 둘의 ‘불화설’이 나오기 딱 좋은 그림이 연출될 터였다.
“사실 나이도 좀 많으시잖아요?”
그런 둘의 마음도 모르고, 현승은 계속해서 신랄하게 다니엘의 뒷담을 이어 나갔다.
그러기도 잠시.
“근데.”
일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단번에 분위기를 뒤집었고.
“작업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사람의 시선 또한 다시 현승의 얼굴(*헬멧)로 향했다.
“그가 철들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기에….”
그들은 모르겠지만.
현승은 헬멧 안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의 다니엘 파커가 될 수 있던 거라고.”
이내 캐서린이 원하던 장면이 나왔다는 양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가볍게 박수를 보내던 그때.
“아, 그리고….”
현승이 무언가 할 말이 떠올랐는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하고 싶던 말이 있었는데 여기서 해도 되죠?”
* * *
다니엘은 신발 앞코를 차며 기다렸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 굴욕적으로 쫓겨나지 않았던가?
‘망할 녀석.’
현승이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라도 알아야, 돌아가서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업실의 문이 열리고 캐서린과 제임스가 흡족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어? 안 가셨어요?”
그런 다니엘을 발견한 캐서린이 물어왔지만.
“안에 두고 온 게 좀 있어서.”
다니엘은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기에, 대충 둘러대며 다시 작업실에 발을 들였다.
“왜 아직 안 갔어?”
헬멧을 벗고, 땀을 닦아 내던 현승이 그런 다니엘을 발견하고는 눈매를 좁히며 덧붙였다.
“얼른 가서 콘서트 연습이나 좀 더 하지 그래.”
“인터뷰 잘했나? 네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너무 걱정되더라고. 그래서, 뭐라고 했어?”
다니엘은 현승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계속 묻고 싶던 말을 토해 낼 뿐이었다.
“뒷담화 좀 했지.”
“거짓말 마.”
“아닌데? 진짜야.”
현승이 어깨를 들썩이며 익살스럽게 덧붙였다.
“꼭 넷플렉스 공개되면 확인해 봐.”
그 말에 별안간 다니엘이 작업실을 빠져 나갔다.
쿵─!
그러고는 이내 닫힌 문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치사하긴.”
지키지 못할 약속이 하나 더 늘어 버린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