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7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73화(372/482)
다니엘의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며칠이 흘렀다.
역사로 기록될 그날을 기점으로 여러 가지가 변했다.
우선.
미국 내 ‘HS’의 입지가 달라졌다는 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다.
물론 사라 스튜어트를 비롯해 빈센트 그리고 마테오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는 했다지만….
미국 현 음악 시장은 레드오션 중에서도 극한의 레드오션으로, 그 정도 성과만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 수 없는 곳이었다.
하나.
이번 다니엘 앨범 작업은 물론이고, 공연 컨설팅까지 ‘HS’가 도맡아 했다는 소식이 공개되자, 미국은 ‘HS’에게 집중했다.
덩달아 HS가 빈센트와 설립한 레이블 ‘VINCIS’의 입지도 크게 비상했다.
“아주 좋아.”
박 전무는 영어로 된 신문을 쫙 펼쳐 든 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현승은 그런 그의 손에 흉흉한 쇳덩이 대신 신문이 들려 있으니 퍽 안 어울린다 생각했으나.
“근데, 전무님….”
별도로 언급하진 않았다.
그래.
저렇게 좋아하는데 기분 망칠 필요야 없지.
“읽을 줄은 아시는 거죠?”
“뭐, 인마?”
“아니, 그냥 혹시나 하고.”
결국 입이 간질거려 한마디 하고 말았지만.
“그건 그렇고.”
때마침 빈센트가 둘 사이를 끼어들며 물었다.
“다음 작업은 계획이 어떻게 돼?”
현승이 그의 물음에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글쎄.”
어깨를 들썩이며 짤막이 대답했다.
“글쎄? 지금 글쎄라고 했냐?”
그러자, 빈센트는 갑자기 격양된 어투로 따지듯 되물었다.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현승이 질책하듯 되묻자, 빈센트는 당장 뜨거운 콧김이라도 내뿜을 듯 씩씩거렸다.
“너 기억 안 나?”
“뭘?”
“나랑 한 약속.”
“뭐였지?”
빈센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이러니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
그러고는 이내 따발총처럼 다다다다 말을 이었다.
“저번에 다니엘 작업 끝나면 나한테 곡 주기로 해 놓고선 갑자기 콘서트 땜빵 서 주면 곡 주겠다고 협박하고! 그래 놓고선 인제 와서 뭐? 글쎄?”
하나 현승은 눈 하나 깜짝 않은 채, 작게 “아아.” 하고 탄식할 뿐이었다.
“난 또 뭐라고. 그거야 샘플 만들어 놓은 것도 많으니 언제든 해 줄 수 있는 일이잖아.”
그 말에 다른 이들의 시선이 현승에게로 집중됐다.
사실 다른 가수가 저 말을 들었으면 기분 나빴을 거다.
특히.
빈센트 정도 되는 가수라면 당장 분기탱천하고도 남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들어 놓은 샘플을 주겠다는 말은, 여러 습작 중 하나 대충 손봐서 주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지 않나?
그러나.
그 말을 뱉은 이가 현승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남들에게나 습작이지, 현승이 찍어 낸 샘플곡은 거의 완성에 가까운 퀄리티를 자랑했고.
그런 샘플곡이 스크롤을 암만 내려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파일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 파일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보물상자쯤 되려나?
“후….”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빈센트는 화를 억누르듯 묵은 숨을 토해 내며 답했다.
“내가 딱 이번만 그냥 참고 넘어간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어 가던 도중.
“화내면 늙어. 박 전무님보고 뭐 느끼는 거 없어?”
현승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박 전무를 흘끔 바라봤다.
“거기서 내가 왜 나와?”
이번에는 박 전무가 붉어진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찰나였다.
똑, 똑, 똑.
대표실 문 너머에서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현승이 자연스럽게 “들어오세요.” 하고 응답하자, 김우현이 문을 열고 들어와 가볍게 목례를 전했다.
“요즘 왜 그렇게 바빠요?”
현승은 그런 김우현에게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게, 매일 같이 출근하고 있지만 그의 얼굴을 통 보기가 어려운 까닭이었다.
“대표님.”
김우현이 그런 현승을 낮은 목소리로 부르며 말을 이었다.
“내실을 잘 다져 놔야 회사가 굴러가죠. 곡만 만든다고 회사가 굴러가는 게 아니라니까요.”
현승이 그 말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건 그렇죠.” 하고 멋쩍게 대답했다. 괜히 투덜거렸다가 되레 임직원에게 대표가 꾸중을 듣게 된 꼴이었다.
하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자신이 못하는 내부적인 일을 박 전무와 김 이사가 묵묵히 대신해 주는 덕분에 VINCIS가 점차 그럴싸한 형태를 갖춰 가고 있는 것일 터였다.
그래.
모름지기, 기업이라는 건 혼자 잘한다고 잘 굴러가는 게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한국에서 우편 하나가 왔어.”
그때 김우현이 손에 들고 있던 걸 내밀며 부연했다.
“네 이름 앞으로 왔길래 우선 들고 왔어. 보낸 이가 유토피아 엔터테인먼트던데, 혹시 아는 곳이야?”
현승이 고개를 내저으며 우편물은 건네받았다.
“아니요. 처음 들어요.”
“나도 생전 처음 듣는 곳이라 검색해 봤는데, 예전 TM 엔터만큼 영세한 곳이더라고.”
“그런 것 같네요.”
“곡 좀 달라고 부탁하는 거겠지 싶어서 폐기하려다가 혹시나 해서 들고 왔는데, 폐기할게.”
김우현이 도로 현승의 손에 들린 우편물을 가져가려던 찰나.
“읽어나 보죠, 뭐.”
현승이 곧장 우편물을 뜯어, 안에 든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편지의 내용은 눈물 없이 보기 어려울 만큼 구구절절했다.
요약하자면─.
김우현의 예상대로 곡 하나만 달라는 내용이었다.
전 재산을 주겠다.
모든 걸 걸었다.
아이들을 살려 달라.
전부 전생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이다. 또한, 제 삶을 송두리째 박살 낸 말이기도 했다.
『 부디 대표님을 한 번만 찾아뵐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마지막 문장을 읽은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편지지를 테이블 위에 던지듯 올려놨다.
툭─.
정말 구구절절해서 읽을 수가 없을 따름이었다.
* * *
다니엘은 콘서트를 기점으로 점차 쇠약해지고 있지만, 임시 방편적인 치료만 거듭할 뿐.
근본적인 치료랄 수 있는 ‘항암’은 일절 거부했다.
어차피.
온몸 구석구석 전이가 된 상황이라 손을 써 볼 수도 없었고.
설령 항암으로 최대한 전이된 암세포를 잡아 수술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살 수 있는 확률은….
1% 정도 되려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도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확률 따위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항암 치료하면 머리털도 빠지니 멋도 없어지고.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
여태껏 살아온 것처럼 당당하고, 멋스럽고, 근사하고, 화려하게 걸어가고 싶었다.
비록, 지옥으로 향하는 길이라도.
─ 다니엘이 마지막 콘서트라 밝힌 ‘and again’은 끝났지만, 속속히 올라오는 영상으로 연일 화제….
TV에서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들만 흘러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발매된 앨범의 전 수록곡이 모두 차트인에 성공했다.
[ Billboard Hot 100 ]1위 And again – Daniel Parker
2위 shine brigh – Daniel Parker
3위 it gets dark – Daniel Parker
4위 childhood – Daniel Parker
5위 Turn around – Sarah Stewart (Prod. HSxMatteo)
.
.
8위 I’ll leave it – HS
9위 More than just music – Vincent Mah
10위 Black angel – Sarah Stewart
원래 같으면 당장 축배를 들었을 테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예상했던 결과라?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늘 1위를 해 왔고, 그게 당연한 설정값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지만 다니엘은 그저 ‘술’을 마실 핑곗거리가 필요할 뿐이었고.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술잔을 부딪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기운이 나질 않았다. 기력이 없는 것도 맞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정말 술 자체를 마시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게….
그저 허울뿐인 영광이라 느껴진 탓이었다.
그래.
다니엘이 제아무리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천재라 떠받들어진다고 한들 다 같은 사람이다.
남들처럼 웃고, 울고, 먹고, 마시고, 자고, 아파하는 사람.
사람은 죽을 날이 다가오면 변한다.
다니엘도 어쩔 수 없이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니, 변하는 것이다.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공포감에 압살당해 위축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왕 죽을 목숨, 한결같이 살다가 나답게 죽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건만, 암세포가 곳곳에 퍼져 쇠약해진 몸뚱어리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답지 않네.’
집 안에 술 창고를 따로 마련해 두고, 구하기 어려운 술은 병을 따로 모아 전시해 둘 정도로 술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자신이….
이러는 걸 보면, 죽음이 목전까지 들이닥친 게 확실했다.
징, 징, 징.
그때 테이블 위에 비스듬히 올려뒀던 휴대폰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하게 진동했다.
“후….”
다니엘은 누가 되었건 지금 당장 연락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에 무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 떨어지려고 하는 폰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음?”
이내 휴대폰을 집어 들자 다니엘은 언제 귀찮아했냐는 듯 저장된 연락처 하나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 NOJAM ]지난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넌 정말 재미없는 사람 같아.”
“내가 노잼이라고?”
“노잼? 그게 무슨 말이야?”
“한국에서는 재미없을 때 ‘노잼’이라고 해.”
“노잼? 노잼, 노잼… 어감이 마음에 들어.”
그 뒤로 다니엘은 현승을 ‘NOJAM’이라 저장해 둔 뒤, 틈만 나면 노잼 타령을 해 댔다.
이내 다니엘이 전화를 받았고.
─ 웬일로 조용하지? 불안하게?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 대자 들려온 첫 물음은 뜬금없었다.
하지만.
대충 무슨 의미로 묻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마.
같이 작업한 앨범이 주 단위로 새로 집계된 빌보드 차트에서 단숨에 상위권으로 등록되었는데.
자신이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먼저 연락을 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뜻하지 않게 걱정시켰나 보다.
─ 이쯤 되면 또 술 파티를 벌이자고 난리여야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잖아.
아, 그건 역시 착각인가.
“내가 뭐 맨날 술 마시는 사람인 줄 아나.”
─ 맨날 마시는 거 아니었나?
“금일은 휴무야.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 약속 언제 지킬 거야?
“무슨 약속?”
─ 네가 소유한 섬에 데려가 준다고 했잖아.
그 말에 다니엘이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 설마 허구의 섬은 아니지?
그러자 현승이 살살 약 올리듯 재차 물었다.
“아니야. 전용 헬기 띄워서 가야 하니까….”
다니엘이 말끝을 흐리고는, 달력을 살폈다.
변호사 미팅.
개인 약속.
병원 내원 예약.
언제 죽을지 몰라, 미리 정리할 것들이 많은 탓에 달력 위로는 이런저런 일정들로 빼곡했다.
이윽고.
다니엘이 휴대폰을 반대편으로 고쳐 들며 덧붙였다.
“다음 달 2일에 가자.”
그날은 다큐멘터리가 개봉하기 하루 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