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7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74화(373/482)
다니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쁜 삶을 살았다.
방송이나 공연 스케줄로 바쁜 건 아니었다.
단지─.
생각보다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은 까닭이었다.
와이프, 자식, 부모….
혈연은 없으니 꽤 심플할 줄 알았건만, 착각이었다.
우선.
가장 먼저 정리한 건, 병원이다.
“잘 지내세요.”
계속 자신을 보살펴 주던 주치의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는 재차 항암을 권유했지만, 완강히 거절하자 끝내 항복을 선언하고 마지막 인사를 받아 줬다.
“줄 수 있는 게, 진통제밖에 없네요.”
주치의는 좋은 사람이었다. 비밀로 해 달라는 자신의 부탁을 지켜 주기 위해 여러 편의를 봐줬다.
덕분에 병원을 들락거리는 몇 개월 동안 간호사들조차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병원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이후에는….
잊고 지냈던 친구들을 만났다.
사실 친구‘들’이라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적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줄곧 유명인으로 살아오다 보니 사람과 가깝게 지낼 수 없었다.
그마저 있는 친구들도, 그들이 하나둘 결혼하고 나서는 거의 왕래한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들의 와이프가 자신을 만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은 탓이다.
미혼에, 술과 여자를 좋아하니 그럴 만도 했다.
“콘서트 꼭 가고 싶었는데, 애들이랑 놀아 주기로 한 날이라.”
“근데 영상 보니까 진짜 멋지긴 멋지더라. 역시, 다니엘이야.”
긴 시간 보지 않은 탓일지….
“나중에 봐, 다니엘.”
“아니.”
“뭐가 아니라는 거야?”
결국 암에 ‘ㅇ’ 자도 꺼내지 못하고.
“그냥….”
제대로 된 인사조차 전하지 못한 채.
“다들 잘 지내라고.”
홀로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가진 모든 재산을 정리해 나갔다.
자산관리사에게 맡겨 놓은 부동산, 주식, 재산 그리고 따로 보유한 금괴 및 보석까지.
추가로.
사후에 발생될 모든 저작료를 포함해 모두 정리했다.
사회에 환원한 건 아니다.
그럴 계획도 없다.
그 정도로 착하지는 않다.
그냥─.
주고 싶은 이들에게 나눠 주고 떠날 요량이었다.
자신을 대신해.
값비싼 술을 사 마실 때.
여자 꼬실 때.
사치스럽게 쇼핑할 때.
편히 쓰라고.
모든 일정을 끝내고 집에 들어온 다니엘은 곧장 거실에 놓인 캘린더로 시선을 옮겼다.
스─윽.
현승과 약속한 날이 어느새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 허구 아님? ] [ 허상 아님? ] [ 허언 아님? ]현승이 하루에 한 번씩 약 올리듯 문자를 보내는 통에, 잊으라 해도 잊어버릴 수 없었다.
“하여튼.”
다니엘은 오늘도 와 있는 문자에 ‘딱대’라고 짤막이 답장을 보낸 뒤 소파에 앉았다.
“하아─.”
그러나 당당하게 보낸 답장과 달리, 다니엘은 깊은 상념에 젖은 한숨을 토해 냈다.
어찌나 한숨이 깊은지.
한숨 한 번에 족히 3살은 늙은 듯, 수척해졌다.
‘젠장.’
그러고는 이내, 볼품없이 바싹 말라 버린 자신의 허벅다리를 노려보다가, 주먹으로 내리쳤다.
분명 현재 지닌 모든 힘을 가했으나, 아프지 않았다.
이게 문제였다.
전용 헬기도 준비되었고, 고용인들에게 전해서 섬 내 개인 별장 채비 또한 끝냈다.
맘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으나….
갈 힘이 없다.
그런데.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루마다 체력이 달라졌다. 마치 하루가 지날 때마다 일 년씩 늙어 가는 기분이다.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고 그리 호언장담했거늘.
막상 죽음의 문턱 앞에 서니 두려웠다.
죽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프고 싶지 않았다.
생전 쳐다도 안 보던 트로피들이 오늘따라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자신의 삶을 대신 말해 주는 듯, 화려한 빛을 뿜어냈다.
‘내일 죽더라도 괜찮으니….’
부디 저 트로피들처럼 반짝이며 죽게 해 주세요.
부디, 부디, 부디!
미망에 사로잡혀 잠시나마 지독히 부러워했던.
그리고 또 한없이 존경하는 청년에게 추억 한 번 선사해 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세요.
‘제발.’
다니엘이 자리에 주저앉아, 믿지도 않던 ‘신’이라는 존재를 부르짖으며 한참을 기도하던 찰나였다.
띵─동!
갑작스럽게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누구지?’
현재 라이언즈는 일 때문에 영국을 갔다 온다고 했고, 최근 택배를 시킨 적도 없으니….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 사람이 없었다. 너무 상념에 빠져 있던 탓인가? 다니엘은 혹시 그림 리퍼(*Grim Reaper)가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내.
조심스레 인터폰으로 문밖을 내다봤고.
“헙─!”
정말 로브를 둘러쓴 검은 형체가 서 있었다.
덜, 덜, 덜.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정신마저 쇠약해진다고….
지금 다니엘의 눈에는 인터폰 화면에 비친 형체가 목숨을 수확하러 온 사신처럼 보였다.
─ 문 열어.
머지않아 인터폰을 통해 낮고 음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날 데리러 온 거야.’
다니엘은 너무 놀라,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 문 열라고.
서늘한 목소리 탓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 안 열어?
사신(*추정)은 거듭 문을 열라며 재촉했고.
다니엘은 팔로 땅을 짚어 가며 뒤로 물러섰다.
“가, 가라고! 안 돼!”
사람이 너무 무서우면 오히려 용감해진다고.
“아직은 안 돼!”
다니엘은 서슬 퍼렇게 날이 선 눈으로 소리쳤다.
─ 뭘 안 돼?
그때였다.
─ 나 화장실 급하니까 빨리 열어.
인터폰 속 형체가 로브를 천천히 벗으며 얼굴 윤곽을 드러냈다.
“어?”
다니엘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눈매를 좁힌 채, 앞에 선 남성을 면밀히 뜯어 봤다.
깊게 음영이 드리워진 눈매.
오뚝한 콧날.
적당히 도톰한 입술.
그리고 당장 소멸할 듯 작은 얼굴 크기까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현승이었다.
다니엘은 현승이라는걸 인지한 순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거리가 꽤 되는 현관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끼이익─!
그러고는 이내 문을 열어 주자, 현승은 마치 제집인 양 밀고 들어와 화장실이 어디냐며 닦달했다.
“저, 저기.”
그런 현승이 너무 다급해 보인 탓에, 다니엘은 얼떨결에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켰고.
머지않아 화장실에서 볼일을 해결하고 나온 현승은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 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늦었어?”
현승이 손에 묻은 물기를 대충 털며 물었다.
“뭘 딱히 하진 않았는데….”
“보나, 마나 술 마셨겠지.”
“아니, 술은 안 마셨는데….”
“여자랑 있는데 방해했나?”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캐묻는 말에, 다니엘이 순순히 대답해 주기도 잠시.
“그것보다 내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라이언즈한테 물어보니까 친절히 주소 찍어 보내 주던데?”
“아….”
“비밀번호까지 알려 주려고 하길래 그건 됐다고 했어.”
다니엘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라이언즈, 이 자식….’
그는 현승을 만난 이후로 완전히 빠져 버린 듯, 입이 마르도록 현승을 칭찬하고 추켜세웠다.
그러니 현승에게 자신의 정보를 팔아 버린 거겠지.
그래.
작곡 실력은 물론이고, 사업가로서 대처 능력이 무척 대범하고 뛰어나다나 뭐라나….
그리고.
절대 척을 치면 안 될 위인이라던가?
‘여하튼, 범인은 이제 알았고.’
이제는 범행 동기를 확인할 차례였다.
“아무튼, 왜 온 거야? 오늘 약속한 날도 아니잖아.”
다니엘이 현승을 취조하듯 거리를 좁히며 물었다.
“그냥.”
현승은 그런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며 덧붙였다.
“그날 돼서 딴말할까 봐 사전 점검하러 왔지.”
하여튼, 쯧.
“속고 살 성향은 아닌 것 같은데, 의심이 참 많네.”
다니엘이 비아냥거리듯 중얼거렸다.
“나도 속은 적 있어. 아니, 많지.”
“네가?”
“응, 속아서 크게 망가져도 봤지.”
그저 농담으로 한 말이었으나, 현승의 얼굴 위로 잠시나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가만 생각해 보니, 현승은 본인 얘기를 하지 않던 편이다.
아니, 아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둠 한 점 없이 곱게 자란 왕자님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몸에 나쁜 건 하지 않고, 겸손 떨지 않고, 늘 고고한 태도였으니까.
무엇보다.
남의 눈치를 전혀 살피지 않는 듯 보였으니, 속고 상처받는 것보다 누군가를 속이고 상처를 주는 쪽일 거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찌 보면 편협한 생각일 터였다.
그래.
사람의 속이야 까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니까.
자신 또한 그래서 오해를 많이 받질 않던가?
‘괜히 얘기했나.’
이내 다니엘이 그런 현승의 눈치를 살피던 찰나.
“이왕 온 김에 술이나 한잔 얻어먹고 가도 되지?”
현승이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남의 집에 쳐들어와선 뻔뻔하긴….”
다니엘은 불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이미 걸음은 술 보관 창고로 향하고 있었다.
짤그락.
이내 가장 아끼는 양주 하나와 온더락잔 그리고 얼음을 챙겨, 다시 거실로 나왔다.
쫄, 쫄, 쫄─.
큼지막한 칵테일 얼음 하나가 채워진 잔 안으로 독한 양주를 가득 채워 가볍게 흔들었다.
그 스냅에 맞춰 잔 안에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기도 잠시, 이내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자.”
부쩍 마시기 싫던 술이었거늘, 또 이렇게 누군가….
아니.
현승과 대작을 한다고 생각하니 군침이 감돌았다.
이내.
현승이 손에 쥔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입을 열었다.
“향이….”
“좋지?”
“독해.”
그러나 향을 맡자, 미간을 팍 찡그리며 잔을 내려놓았다.
“하여간.”
다니엘이 그 모습에 혀를 차며,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오랜만에 먹는 술인 만큼, 잔뜩 기대를 품었거늘….
그다지 맛있진 않았다.
그건─.
저 앞에 한껏 인상을 찌푸린 젊고 창창한 놈 때문이리라.
“술의 풍미도, 맛도 모르는 노잼 같으니라고.”
다니엘이 곧장 제 앞에 놓인 빈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또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했다.
현승도 그런 자신을 따라 조용히 홀짝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어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온 거지?
궁금했지만….
다니엘은 말할 기력도 없었기에 텅텅 빈속을 술로 채웠다.
꼴깍, 꼴깍, 꼴깍.
연신 목구멍을 타고 술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오기도 잠시.
“확실히 집이 주인을 닮았네.”
침묵을 지키던 현승이 입을 열었다. 현승은 거실의 모든 면을 천천히 눈으로 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화려하잖아.”
“그치, 돈을 들였으니까.”
아주 느릿하게 고개를 내젓기도 잠시.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천천히 시선을 옮겼고.
“저 트로피들 말이야.”
유리 케이스로 짜인 벽면 안에 자리가 부족할 만큼 빼곡히 진열된 트로피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 집주인이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 주고 있잖아.”
“그런가?”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치열하고 애통한 삶을 살아온 지도.”
그 말에 다니엘이 놀란 듯 현승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고.
“한마디로…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의 집답달까?”
공중에서 시선이 얽히자, 현승이 씩 웃어 보였다.
다니엘은 그런 현승이 참 미형적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아름답게 조각된 얼굴이라서는 아니고.
이상하게도 보고 있으면 자꾸 탐미하게 된다.
그리고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이제 네 시대야.”
녀석은 나보다 성공할 거라고.
“너도 저기, 저 트로피들처럼 환하고 밝고 총명하게 반짝거릴 거야. 대신 그 뒷면으로는 어둡고 뽀얀 먼지가 쌓이기도 하겠지.”
한 시대? 아니, 몇 세기를 걸쳐….
“치열할 거야.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듯 애통할 거고.”
전설로 남을 사람이 되지 않을까.
“또 어느 날인가는 미망에 사로잡혀 한참 어린 천재를 질투하는 날도 찾아오겠지.”
내가 동경하고 질투했던 천재들처럼.
그래.
베토벤, 쇼팽, 모차르트, 체르니처럼.
“근데, 그 또한 느긋하게 즐겨.”
대신 그들보다 더 오래 살기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챙길 거 다 챙겨 가면서.”
하늘은 으레 천재를 질투해서 빨리 데려간다고 하던데.
녀석만큼은 하늘도 홀려, 오랫동안 곡을 만들 수 있기를.
그렇게─.
세상 곳곳에 살아온 흔적과 수많은 발자국을 새기고.
“그렇게 다 하고 천천히 와.”
아주 천천히 따라와 주기를.
그때.
나와 다시금 대작해 주기를.
아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난 술 마셨더니 너무 졸려서 이만 자야겠다.”
그 말을 끝으로 다니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니엘”
현승은 그런 다니엘의 뒤통수에 대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일 올게.”
“오지 마.”
“좋으면서.”
그러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고.
저벅, 저벅.
이내 다니엘은 기나긴 복도를 거닐어 방에 들어갔다.
끼이익, 탁─.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현승은 그가 걸어간 복도를 바라보다,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문득 시조 하나가 떠올랐다.
『 둘이 마주 앉아 술 마시니 산에는 꽃피고. 』
그땐 한낱 ‘술’을 두고 시조를 적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승이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싫어하는 편에 속했으니까.
『 한 잔, 한 잔에 거듭되는 또 한 잔이라. 』
그래서 이 시조를 지은 이백(*李白)은 술을 아주 좋아하는 주정뱅이일 거라고 짐작했었다.
오죽하면 술에 취하여 강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가 돌연 익사하였다는 전설이 있겠는가?
『 나는 취해 졸리니 그대는 먼저 가게나. 』
그런데, 이제 와 곱씹어 보니….
혹.
이 시조를 적던 날이, 이백(*李白)의 숱한 인생 중 가장 고단하고 애통한 날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지금, 다니엘처럼.
『 내일 아침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나 』
이윽고.
현승은 내일을 기약하며 빈 잔 두 개를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