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7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75화(374/482)
현승의 아침은 완벽했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더니 몸은 가뿐했으며 정신은 또렷했다. 얼굴은 왜 유달리 잘생겨 보이는지.
그래서.
아버지가 사 준 정장을 챙겨 입었다. 그런데 매일 엉성하게 매던 넥타이마저 예쁘게 매듭지어졌다.
그뿐이랴?
현아가 만든 오믈렛은 이상하리만치 맛있었다.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 등짝을 맞았지만.
아무튼.
신호 마저 딱딱 맞아떨어져 준 덕분에 출근길부터 기분은 날아갈 듯 최상이었다.
그래, 분명 그랬는데….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차량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를 보고 있노라니, 다시금 기분이 가라앉았다.
“돈은 섭섭지 않으시도록 최대한 마련했습니다.”
현승은 본인을 유토피아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라 밝힌 남성을 내려보다,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아, 오늘 예쁘게 됐는데.
“오늘은 이만 가시죠.”
이내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그를 지나쳐 가려던 찰나.
“저희 아이들, 정말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입니다. 아직 세상이 그 가치를 몰라줄 뿐입니다.”
남성이 그런 발걸음을 붙들며 말을 이었다.
“성공해서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부디,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이번 앨범에 모든 걸 걸겠다는 다짐으로 어렵사리 찾아온 걸음입니다.”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좀 다른 게 있다면….
좀 더 뻔뻔하고 빳빳하다는 정도?
차라리.
구질구질할 만큼 간절히 매달렸다면 들어주지도 않았을 텐데.
본인도 염치가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남성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대사를 읊듯 부탁해 오는 탓에 이상하게 신경이 거슬렸다.
“제가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어봤을 것 같으세요?”
현승이 그런 남자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투로 물었다.
“작곡가님 같은 분이라면 수도 없이 들으셨겠죠.”
“예, 딱 귀에서 진물이 날 정도로 들었습니다.”
목소리에 높낮이는 다르지 않았지만, 비아냥이 섞인 어투였다.
“이 정도면 어디 멘트 학원에서 같이 배워오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하나같이 다 똑같은 말뿐이죠.”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섭섭지 않게 보수하겠다. 성공해서 크게 보답하겠다. 우리 애들은 좋은 곡만 만나면 성공할 거다. 이번 앨범에 목숨을 걸었다.”
전생에서부터 따지자면, 이런 부탁만 수천 번을 넘게 들어왔다.
더군다나.
현승의 전생이 나락을 향한 것도 이런 부탁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곡 안 주시면 저 죽습니다.”
또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가?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그냥 곡 하나 던져주고 말까?
“근데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현승은 최대한 톤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저한테 곡을 받으러 오는 게 아니라, 성공을 얻어내기 위해 오는 것 같단 말이죠?”
“그야, 작곡가님이 만드신 곡이 워낙 좋으니까….”
“다들 저를 무슨 ‘신’ 정도 되는 줄 아시나 봐요.”
하나, 인내심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러다가 제 곡으로 망하면, 그땐 돈 가방이 아니라 사채 계약서 들고 와서 책임지라고 하실 건가요?”
현승이 점차 격양된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그제야 남성은 고개를 치켜들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받았음에도 실패한다면, 저를 탓하겠습니다.”
“그럼 그냥 돌아가서 애들한테 본인 탓이라고 하세요.”
이제야 체면을 버리고 간절히 매달려 오는 남성에게 현승은 가차 없이 말을 내뱉었다.
“너희가 잘 안되는 이유는, 나 같은 대표를 만난 탓이라고.”
다시 차분함을 되찾았지만, 잔인할 만큼 싸늘했다.
“애들이 그렇게 반짝거리는 보석이면, 누군가는 상자를 열어 발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는 이내 콧방귀를 끼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그때를 기다려 보시던가.”
남성은 땅바닥에 닿을 듯 다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빳빳하게 뻗대던 몸을 낮게 구부려, 당장이라도 납작 엎드릴 듯 간절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제가 너무 무례하다는 거 잘 압니다. 그래서 근 일 년 동안 고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 가셨다는 소식 듣고,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거듭 고민 끝에 염치 불고하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남성의 마음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왔을 거라는 것도.
답답하고 간절한 마음에 날 찾아왔을 거라는 것도.
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잘 안되더라도, 작곡가님 탓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그땐 깔끔하게 다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부디 마지막으로 자비를 한 번만 베풀어 주실 수는 없을까요?”
다만, 그토록 바라던 곡을 안 준다면 그들은 날 이해하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아마.
침을 뱉고 돌아서거나, 욕을 하며 돌아서거나.
그도 아니면….
“…곡 안 주시면 저 죽습니다.”
협박하겠지.
“아저씨.”
“예?”
“잘 안되면 제 커리어는 어떻게 책임지실 건데요?”
이젠 당하지 않는다.
“제가 여태 낸 곡 중에 손익분기점 못 넘긴 곡이 없는데, 만약 그쪽 애들이 못 넘긴다면 저는 대표 되더니 맛 갔다는 둥, 미국 가더니 감을 잃었다는 둥 별별 욕을 다 듣겠죠.”
현승은 가히 위압적이랄 수 있는 얼굴로 점차 남성에게 다가갔다.
“그땐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남성은 그 기세에 눌러 “그, 그건….”하고 말끝을 흐리며, 현승의 시선을 피했다.
영세 엔터의 대표여서인가.
만약 전남일 대표였다면 자신이 이렇게 나온다고 한들, 눈 하나 깜짝 안 했을 텐데.
어린양처럼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때.
현승은 남성의 펄럭거리는 정장 소매를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 급격히 살이 빠졌구나.
어떻게 알았냐고?
교복도 아닌 정장을 일부러 크게 맞출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직 사회 초년생의 젊은 청년이라면 또 몰라도.
중년의 남성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이 사람은 최근에 급격히 살이 빠진 것일 터였다.
“그리고 부탁하는 방법부터 글렀어요.”
현승 또한 이전 삶에서 공황장애가 오면서 급격히 살이 빠져본 적이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저 같은 사람을 구슬리려면, 돈 가방이 아니라 악기들을 직접 앞에 데려다 놓고 연주부터 시켜봤어야죠.”
“예? 악기요?”
“혹시 또 모르잖아요? 제가 악기 소리에 홀려서 덜컥 곡을 줄지도.”
그래서, 그런 거다.
“저는 일정이 있어서, 이만”
펄럭이는 소매가 보기 거슬려서.
물론.
악기가 별로라면 아무 의미 없는 희망 고문이 되어 버릴 테지만.
* * *
한편.
다니엘은 거실 소파에 앉아, 멀뚱멀뚱 인터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일 올 것처럼 굴더니.”
혹시나 현승이 올까 봐.
“하여간, 끈기가 없어.”
불쑥 찾아온 날을 기점으로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찾아오길래 오늘도 올 줄 알았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 오늘은 정말 오지 마라. 나 일정 있으니까. ]다니엘은 먼저 문자를 보냈다. 확실히 말해두건대, 절대 심통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정말 일정이 있었다.
아아.
바깥 일정은 아니고.
달칵, 달칵.
이내 다니엘은 능숙하게 TV를 켜, 휴대폰과 연결했다.
저장해 둔 영상을 TV 화면을 통해 보고 싶어서였다.
꿀꺽.
다니엘은 왠지 모를 긴장감에, 상체를 앞으로 수그린 채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검은 화면에 버퍼링 표시만 돌아가기도 잠시.
─ 다니엘 파커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내 화면에 구린 헬멧을 뒤집어쓴 채 앉아있는 현승이 보였고.
─ 음….
녀석은 여성의 질문에 대답 대신 침음을 흘려댔다.
‘이런.’
얼마나 할 말이 없었으면, 3분가량 오디오가 비었다.
오죽하면 카메라마저 당황한 듯 미세하게 흔들렸다.
─ 잠, 잠시 시간을 드릴까요?
다니엘은 별안간 힘이 풀린 듯 소파 뒤로 몸을 뉘었다.
녀석한테 뭘 기대한 건지.
“쯧.”
사실 다니엘은 현승이 개인 인터뷰한 다음 날.
곧장 담당자에게 연락해, 영상을 받아두었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였다.
그래도.
약속했으니 참고 기다렸다.
하지만, 이젠 확신할 수가 없었다.
“꼭 넷플렉스 공개되면 확인해봐.”
녀석과 한 약속을 지킬 확신이.
그래서.
결국 오늘에서야 인터뷰 영상을 확인해 본 건데….
─ 다니엘 파커 씨는 참 철이 없는 사람입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참 술을 좋아해요.
아무래도 보지 말 걸 그랬다.
─ 오죽하면 녹음할 때도 술을 마시게 해 달라고 해요.
그래, 그냥 모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 그뿐입니까? 여자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잠시 쉬는 시간이면 전에 만났던 여자에 대한 추억에 잠겨선….
그도 그럴 게, 영상 속 현승은 익살스러운 어투로 신랄하게 자신을 까 내리고 있었다.
─ 사실 나이도 좀 많으시잖아요?
이 자식이, 진짜! 다니엘이 당장이라도 현승에게 연락해 따질 기세로 폰을 집어 들던 찰나였다.
─ 근데 작업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철들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기에….
별안간 영상 속 현승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하게 바뀌었고.
─ 지금의 다니엘 파커가 될 수 있던 거라고.
그 말에 다니엘은 괜스레 찡해져 오는 코끝을 훔쳤다.
아아.
절대 우는 건 아니다. 앞에 신랄하게 욕한 걸 들었는데, 울 리가 있겠나?
훌쩍.
다니엘이 콧물을 삼키며, 휴지를 집어 들던 그때.
─ 아, 그리고 하고 싶던 말이 있었는데 여기서 해도 되죠?
끝난 줄 알았던 인터뷰가 이어졌다.
─ 네, 물론이죠!
여성이 신난 듯이 대답했고.
─ 이 영상을 통해 다니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현승은 안 어울리게 ‘감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 어떤 점이 감사하신 걸까요?
옳지!
다니엘은 여성이 던진 질문에, 마치 자기 대신 간지러운 곳을 긁어줬다는 양 신나서 손가락을 튕겼다.
─ 사실 저는 그의 노래를 듣고 영향이 받아, 작곡가가 된 겁니다. 간접적으로나마 제 진로를 정해 준 셈이죠.
머지않아 현승이 늘어놓은 답변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리 길진 않지만, 제법 많은 시간 동안 함께 작업해 왔지만.
처음 듣는 말이었다.
─ 무엇보다 그의 마지막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차 지워지기도 잠시.
─ 그리고, 꼭 섬에 함께 놀러 가서 노을을 보며 술 한잔을 기울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서서히 구겨지더니, 아예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말하건대─.
절대 눈물이 나서가 아니다.
“내 이름 걸고 꼭 데려가 줄게.”
혹시나, 정말 만에 하나라도 한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될까 봐.
“그래, 꼭 데려가 줄게.”
불현듯 공포심이 밀려온 까닭이었다.
그래.
남자라면 자고로 뱉은 말을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이윽고.
다니엘이 고개를 들자, 영상 속 현승이 자신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 다시 정정할게요.
아니, 착각이 아니다.
─ 꼭 같이 갈 겁니다. 약속했거든요.
분명 나를 보고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