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75)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76화(375/482)
다니엘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너무 푹 잔 느낌이 든 까닭이었다.
요즘 극심해진 통증으로, 진통제를 과다하게 투여하다 보니 쉴 새 없이 잠이 몰려오고 무서울 만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늦잠을 잔 건 아니었다.
더욱 다행인 건….
아침에 눈을 떠, 햇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니까.
지잉, 지잉, 지잉.
때마침 약속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 NOJAM ]현승이었다. 그는 매일 같이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연인이라도 되는 양 틈만 나면 전화해 댔다.
귀찮기는 했으나….
아마 불안함이 깔린 걱정일 테니, 크게 내색하진 않았다.
“여보세요.”
다니엘은 잔뜩 잠긴 목소리를 애써 다듬어 가며 전화를 받았다.
─ 오, 받네? 잠수 탈 줄 알았는데.
수화기 너머에서는 현승의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또 장난을 치려는 거겠지.
허언이라는 둥, 허상이라는 둥.
“내가 하는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걸 입증할 수 있게 되었는데, 피할 리가 있나.”
─ 마지막 허풍 잘 들었으니까, 10분 뒤에 나와.
“아니, 진짜 허풍이 아니라…!”
다니엘이 그 말에 발작하듯 말을 이으려 했으나, 전화는 맥없이 툭 끊기고야 말았다.
“이걸, 진짜!”
휴대폰 액정에 꿀밤이라도 놓을 듯 주먹을 치켜들기도 잠시.
“10분 뒤?”
현승의 말을 뒤늦게 인지하고는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이내 다니엘은 엉망진창이라는 말이 절실하게 떠오르는 몰골을 확인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당장이라도 픽 하고 쓰러질 듯 창백한 안색과 황달이 떠오른 눈가.
가죽밖에 안 남은 듯 움푹 파인 볼.
거기다, 밤새 기침에 섞여 나온 피들이 바싹 말라 입가에 붙어 있었다.
자신이 봐도,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상념에 젖어 있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다니엘은 서둘러 구석구석 씻어 냈다.
만약 이런 얼굴로 현승을 맞이했다간, 섬은커녕 바로 병원에 끌려갈지도 모르니까.
“멋지군.”
이내 다니엘은 노련한 손길로 꽃단장까지 마쳤고.
거울 앞에 선 자기 모습이 꽤 만족스럽다는 양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니엘은 꾸밀 때, 가장 행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멋진 나’를 볼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비록.
아프기 전보다 볼품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근데….’
다니엘은 약속된 10분이 지났음에도 연락 한 통 없이 잠잠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냥 해 본 말이었던 건가?
하여간.
가만 보면 이 녀석이 더 허언이 심하다니까.
끼이이이익─.
이내 다니엘이 먼저 나가서 기다리다가 현승이 오면 타박할 요량으로 집 문을 박차고 나선 때였다.
“헙!”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흐흐.”
문 앞에 로브를 둘러쓴 형체가 서 있던 까닭이었다.
물론, 그 형체는 현승일 터였다.
이미 여러 차례 당해 본 바가 있기에 알 수 있었다.
“매번 놀라네.”
아니나 다를까, 현승이 로브 모자를 젖히며 물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유난히 얄밉게 느껴졌다.
정말.
여행 가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죽으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고.”
다니엘은 마뜩잖다는 양, 이마를 구긴 채 물었다.
“저번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로브는 왜 걸치고 다니는 거야?”
“알아볼까 봐.”
“그런 거라면, 차라리 모자랑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건 어때?”
대체 왜 그런 해괴망측한 로브를 쓰고 다니는 거냐고.
“그런 것보단, 이게 더 멋있잖아?”
“대체, 어디가?”
“비밀에 휩싸인 UFC 챔피언 같잖아.”
현승은 아주 뻔뻔한 얼굴로 제 턱을 쓰다듬어 보이기도 잠시.
“헬멧은 지난 콘서트로 인해 유명해져서 못 쓰니까.”
로브 안에 감춰져 있던 헬멧을 꺼내 들며 덧붙였다.
“하….”
정말, 저 헬멧은 언제 봐도 구렸다.
젊은 놈이, 하물며, 얼굴도 반반하게 생긴 놈이 어떻게 저리도 미적 감각이 없는 건지.
현승의 미적 감각을 일깨워 주지 못한 건, 죽은 이후에도 천추의 한으로 남을 터였다.
그때.
현승이 에스코트하듯 차량 문을 열어 주며 물었다.
“근데 헬기도 네 소유야?”
“당연하지.”
“알고 보니 렌트 아니고?”
“이게, 진짜.”
다니엘은 투덜거리면서도 차량에 탑승했고.
“너, 내가 가진 재산을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니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도 전용 헬기는 못 사 봤거든.”
“아직 네가 전용 헬기를 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
제 말에 현승이 작게 조소를 흘려 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허풍 섞인 말을 이어 나갔다.
“나 정도는 돼야, 전용 헬기도 협찬으로 들어오고….”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말허리가 잘려 나갔다.
“차 문 닫을게?”
“하여간, 싸가지하고는.”
첫 단추부터 삐걱거리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 * *
다니엘은 분명 현승이 헬기에서 내리는 순간, 황홀경에 젖어 탄성을 내뱉을 거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뜨거운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바다.
하얗다 못해 뽀얀 모래밭.
그리고 높이 솟아오른 야자수들이 모여 만들어 낸 그늘 속에 자리한 거대한 별장까지.
절로 “와!”라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훌륭했다.
그래.
아마 다른 이들이라면 당장 저 모래밭을 뒹굴어, 바다에 몸을 적셔 대고 있을 텐데….
“짐, 어디에 둬?”
제 옆에 선 현승은 그렇지 못했다.
“넌 지금 짐이 중요해?”
“뭐가 더 중요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와 잘게 부서지는 해변 그리고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별장을 눈에 담아내는 게 더 중요하지.”
다니엘은 연설하듯 양손을 뻗어 가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별장 앞에 우리를 맞이해 주고 있는 아리따운 여성들이 제일 중요하고.”
“여자 봐서 몹시 들뜬 건 알겠는데, 뭐든 구경하려면 짐부터 내려놔야 하지 않겠어?”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현승은 제 등판보다 작은 가방 하나를 얼른 내려놓기 위해 별장 안으로 앞서 걸어 나갈 뿐이었다.
아니, 저거, 청춘 맞아?
현승은 한참 놀기 좋아하고, 여자 좋아할 나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이미 다 놀아 본 사람마냥 무미건조하다 못해, 태양 빛에 바싹 말라 버린 모래처럼 퍽퍽했다.
정말이지.
누가 보면 여행이 아니라, 합숙소에 끌려온 줄 알 정도로.
.
.
.
다니엘은 한껏 입술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온 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니엘이라면 섬에 도착하자마자, 해변으로 달려가 오일을 바르고 일광욕을 즐기고.
아리따운 여성들과 신나게 물장구를 치다가 술 한 잔으로 더위를 식혔을 터였다.
그런데.
현승은 각자 방에서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만나자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뿐이면 말도 안 했다.
본인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리따운 여성들에게 축객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망할 놈.’
그러한 모종의 이유로, 새하얀 대리석이 깔린 거실 소파에 남자 둘이 앉아 적적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펄럭, 펄럭.
천장에 달린 실링 팬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올 정도로 고요한 거실.
‘이게 아니야.’
다니엘이 꿈꿔 오던 인생 마지막 여행은 이런 게 아니었다.
보다 뜨겁고, 보다 열정적이고, 보다 아찔한 것이다.
“야, 우리 나가자.”
참다못한 다니엘이 적막을 깨웠다.
“살 타잖아.”
“좀 타면 돼.”
“너무 더워.”
“바다 들어가.”
창과 방패처럼, 실랑이를 이어 나가기도 잠시.
“가자, 재미가 뭔지 알려 줄게.”
다니엘이 결심한 듯, 현승의 손목을 잡아 별장 밖으로 이끌었고.
“그림상 좀 그러니까 손목은 놓고 가.”
현승이 못 이기는 척 그를 따라나섰다. 터널 같은 입구를 지나, 별장을 나서자 곧바로 광활한 해변이 펼쳐졌고.
이윽고.
다니엘이 웃통을 훌러덩 벗어젖히며 말했다.
“얼른 벗어.”
현승이 그 말에 “윽.” 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바다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
“그냥 입고 들어갈래.”
“아, 몸매에는 자신 없나 봐?”
살살 약 올리는 듯한 말에, 현승의 한쪽 눈썹이 들썩거렸다.
자신? 요즘 운동을 잘 못 했다고는 하나, 박 트레이너의 수제자이거늘.
몸매에 자신이 없다니?
“그럴 리가.”
현승은 곧바로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는 성큼성큼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재수 없긴.”
다니엘은 바다처럼 드넓은 현승의 등판을 바라보다, 갈비뼈가 드러난 제 가슴팍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얼마나 놀았을까?
다니엘은 퍼렇게 질린 입술을 벌벌 떨며 도망치듯 바다를 빠져나왔다. 현승은 벌써 끝난 거냐며 이죽거리고는, 한참이나 물속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젊음이 좋긴 하네.
파라솔 아래, 벌러덩 드러누운 다니엘이 눈을 감았다.
옆에 놓인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털썩.
현승이 옆으로 와, 누웠는지 물에 젖은 몸이 모래와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좀 힘들지?”
“난 아직 멀쩡해.”
“허세는.”
“그거, 다니엘 특기 아니야?”
그 말에 다니엘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도 눈은 뜨지 못한 채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눈을 뜰 힘조차 없었다.
살락─.
바닷바람과 함께 둘의 쌕쌕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오기도 잠시.
“야, 넌 왜 작곡가가 된 거야?”
다니엘이 옆에 누워 있을 현승에게 넌지시 물었다.
“작곡을 잘하길래.”
“그게 다야?”
“응, 뭐가 더 필요해?”
“아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정적이 흘렀고.
머지않아.
현승이 입술을 열었다.
“넌 왜 가수가 됐는데?”
“노래를 잘하길래.”
“뭐야, 나랑 다를 거 없네.”
이번에는 둘이 동시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어 대는 여고생들처럼 둘은 그렇게 한참 동안 실소를 흘려 댔다.
“여기 넷플렉스 지원되냐?”
“당연하지.”
“드디어 내일이네.”
그 말에 다니엘은 대답 대신 고개를 잘게 끄덕였고.
“역사가 공개되는 날.”
현승이 그런 다니엘의 얼굴 위로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덧붙였다.
“꼭 내일 일어나면 같이 브런치 먹으면서 보는 걸로 약속하자.”
다니엘이 얼굴 위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을 뜨고는, 유치하다며 현승의 손을 치워 냈다.
“걸어.”
그러나 현승은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 별안간 손아귀에 힘을 가득 주며 재촉했다.
‘거참, 손가락 거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니엘의 손은 누군가 묶어 둔 것마냥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걸어 줘.”
별안간 현승이 한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적적하면서도 어딘가 아련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알면서 떼를 쓰듯 촉촉함이 배인 목소리였다.
“하여간, 약속 참 좋아해.”
다니엘은 결국 물을 머금은 듯 무거운 손을 들어 올렸고.
이윽고.
고리처럼 걸린 두 남자의 손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 * *
거창하게 나눴던 약속으로 놀러 온 섬이었지만.
크게 거창할 건 없었다.
바다에서 놀고, 해변에서 누워서 쉬다가 들어와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위스키를 곁들였다.
나눈 대화도 크게 특별하지 않았다.
다음에 공연을 한 번 더 하게 된다면, 어떤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던가.
다음에 또 함께 다시 작업하게 되면 어떤 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던가.
그런 일상적이면서도….
기적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늘어놓다가 어느 순간, 깜빡 잠이 들었다.
“아….”
현승은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두통에 이마를 짚은 채, 신음했다.
펄럭, 펄럭.
돌아가는 실링 팬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든 모양이다.
“다니엘.”
현승이 소파를 짚고 몸을 일으켜, 다니엘을 찾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혼자 치사하게 방에 들어가서 잔 모양이었다.
의리 없긴.
현승이 무겁게 내려앉은 발을 짚어 가며 걸음을 옮겼고.
똑, 똑.
이내 다니엘의 방문을 두들겼다.
“다니엘.”
아직 이른 만큼 좀 더 재울까 싶었지만, 어제 급격히 어두워졌던 안색이 떠올라 걱정되기도 했고.
브런치를 먹으며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아아.
물론 지금 상태로는 브런치가 아니라, 해장을 해야 할 판이지만.
“다니엘?”
그러나, 문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고.
끼이이익─.
현승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자, 침대에 곧은 자세로 누워 있는 다니엘이 보였다.
“다니….”
그러나, 더 이상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인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