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77)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78화(377/482)
혹시.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되었다는 말을 들어봤는가?
복권 따위에 당첨되어 졸부가 되는 케이스 말고.
재벌과 결혼하여 덩달아 재벌이 된 케이스 말고.
자고 일어났더니─.
3대가 놀고, 먹어도 충분할 정도의 억만장자 말이다.
현승은….
서명 한 번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진짜, 이게 말이 돼?”
김우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붙잡은 채 물었다.
진짜 질문은 아니고, 그저 믿기지 않아서 하는 말이었다.
“그러게요.”
현승이 아무런 영혼 없이 대답했다.
“넌 이걸 보고도 안 놀랐어?”
“놀랐죠.”
“근데 반응이 뭐 그리 덤덤해?”
“좋아하면 더 이상하죠.”
그 말에 김우현은 ‘아차’ 하며 겸연쩍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승이 소유권을 이전받은 모든 것들이, 단순 재산 분할도 아니고 다니엘의 ‘유산’이지 않은가?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남들이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할 거다.
태평양 내 별장이 딸린 개인 소유의 섬은 물론이고.
전용 비행기와 전용 헬기.
또한, 미국 내에서도 인구 밀집이 가장 높은 뉴욕과 LA 내 빌딩 몇 채를 받게 된 셈이니까.
그뿐이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대기업의 주식 대부분을 소유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현승이 받은 재산의 값어치를 따지자면, 걸어 다니는 대기업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제아무리 천문학적인 저작권료를 벌어들이는 현승이라도, 이 정도의 재산은 없었다.
왕족도 아니고, 재벌 2세도 아니고, ‘가수’가 지니고 있던 보유 재산이 이 정도라니….
그래도.
다니엘이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가 생전 음악 시장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아니까.
대체 불가능한 뮤지션.
전설적인 뮤지션.
앞으로 다신 없을 뮤지션.
모두 그를 칭하는 말이었다.
많은 이들은 그를 동경하고, 선망하며, 존경했다.
그에 따른 방증으로.
다니엘의 추모 행렬은 끝이 날 줄 몰랐고.
전 세계적으로 그를 향한 추모 기금이 모였다.
그렇게 그는….
많은 이들의 추모를 받으며, 한 편의 역사가 되었다.
그 사실이 다소 슬펐지만.
역사라는 건, 자고로 남은 이들이 기억하기에 존재하는 것이니 그는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현승의 추억 속에서.
* * *
LS 엔터 사옥 내 당직실.
한인규는 요즘 부쩍 밤새는 날이 많아졌다.
“하, 피곤해….”
그나마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는 게 전부였지만.
A&R 2팀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좋은 곡을 찾아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김우현이 나간 뒤 생긴 빈틈을 무리해서라도 메꿔야 했으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다.
안 그러면, 남은 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할 테니까.
무엇보다.
엔지니어들이 쉬쉬하고 있다지만, 계속 ‘HS’를 그리워하는 듯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HS’의 곡을.
그들이 HS의 곡을 작업할 때처럼 눈을 반짝이며 작업할 수 있는 ‘좋은 곡’을 찾기 위해.
한인규는 회사로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곡을 귀에 이명이 들릴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러나.
손익분기점은 넘길 수 있겠다 하는 곡들만 간간이 있을 뿐, 이거다! 할 만한 곡은 없었다.
물론.
매년 HS에게 일정 곡을 수급받기로 했다지만, 필요할 때마다 달라고 종용할 수도 없고.
미국에 건너가 처음 함께 작업한 다니엘이 얼마 전 사망했으니 HS도 정신없을 터였다.
저벅, 저벅.
그래, 이대로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기대어 갈 수도 없으니 오늘도 찾아봐야지.
혹시 또 아나?
오늘 기적처럼『 팝니다. 』라는 제목의 형편없고, 싸가지 없는 메일 한 통이 와 있을지.
데모 3곡 샘플.
곡당 300만 원에 매절할 생각.
만약 구매 의사 있을 시 연락 요망.
작곡가 HS, 010-XXXX-XXXX.
어느 날, HS가 곡을 보내 왔던 것처럼.
피식.
한인규가 별안간 떠오른 옛 기억에 실소를 터트리며 A&R 실로 들어서던 찰나였다.
“으어어억!”
3년 차 막내인 조윤찬이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괴성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덩달아 뒤로 넘어간 의자 바퀴에선 ‘끼익, 끼익’ 하고 듣기 싫은 마찰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놀란 한인규가 헐레벌떡 그를 향해 달려갔고.
“시, 실, 실장님….”
조윤찬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저, 저어기….”
한인규도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옮겼고.
이내.
들고 있던 목베개를 툭 떨어트렸다.
『 팝니다. 』
너무 익숙한 제목의 메일이 들어와 있던 터였다.
“크, 크, 클릭해 봐.”
한인규는 무언가에 홀린 듯 메일을 확인해 보라며 종용했고.
올해 할당량 5곡 세트
반응 좋을 시 +@
작곡가 HS, 010-XXXX-XXXX.
그 메일 속에는….
조윤찬.wav
기연선.wav
설우석.wav
이진효.wav
김보성.wav
엔지니어들의 이름으로 된 음원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고.
머지않아.
한인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심, 심봤다….”
* * *
다니엘이 떠난 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나 흘렀다.
현승은 어느 때보다 작업에 열중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죽을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시작한 작업이었고, 누차 인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끝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떠났기에 꽤 괜찮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 되뇌었다.
하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마음처럼 쉬이 될 리가 없었다.
한때 동경했던 사람이기에 너무 쉽게 마음을 열었고.
정을 붙였고.
약속하고, 추억을 만들고야 말았다.
그 대가로….
깊은 그리움과 아쉬움이 남았다.
현승은 갑작스레 생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실제로 바쁘기도 했다.
우선 LS 엔터와 약속된 작업을 해치우고자 서둘렀고.
다니엘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되고,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자신을 비롯해 ‘VINCIS’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탓이었다.
그에 따라 여러 기업이 협업을 제안해 왔으며, 전 세계 아티스트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좋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전 세계적으로 팬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다.
누군가 듣는다면, 그게 대체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현승에겐 아주 큰 문제였다.
아이돌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걸까.
그 시작은….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을 장식한 장면 하나 때문이었다.
언제 찍혔던 건지.
자신과 다니엘이 공연을 끝낸 뒤, 무대 위에 쓰러지듯 누워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장면이 다큐멘터리의 클로즈 영상으로 쓰였고.
그에 따른 여파는 강했다.
파파라치마저 생긴 바람에, 회사 근처도 쉽게 나가지 못할 지경이라면 이해가 쉬우려나?
이젠, 뭐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어차피 조용히 살기는 그른 것 같고, 이렇게 된 거 받아들이는 게 맘 편할 테니까.
똑, 똑, 똑.
그때 작업실 문 너머로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들어오세요.”
현승은 목에 걸치고 있던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금동아, 차량 대기시켜 놨어.”
갈 곳이 있었으니까.
“네, 잠시만요. 메일 하나만 보내고 출발하죠.”
“그건 그렇고,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묻는 김우현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우현은 현승을 오랜 시간 봐 온 만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
지금 현승은 재미를 느끼고 있지 않다.
“저는 늘 이랬는데.”
“그렇긴 한데….”
“근데, 커피는요?”
본래 작업은 무리해서 하는 편이었고, 말린다고 한들 듣지도 않으니 포기한 상태지만.
보고 있노라면….
재밌어서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어딘가 초조해 보일 정도였다.
아마.
다니엘이 떠나 상심이 큰 탓이겠지.
“여기.”
김우현은 그런 현승을 위해 본인이 해 줄 수 있는 게.
고작 커피를 사다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서글펐지만.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현승 또한 내색하지 않고, 혼자 이겨 내고 있으니까.
“자, 메일 다 보냈고.”
그때 현승이 손뼉을 “짝!” 하고 부딪치며 일어섰고.
“술은 사 오셨죠?”
여느 때와 같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연하지.”
이내 김우현이 봉투를 흔들며 호쾌하게 대답했고.
동시에─.
비록, 큰 도움이 못 되더라도, 항상 현승의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 주겠다고 다짐했다.
* * *
사십구재(四十九齋)
기독교 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한 미국 땅에서 할 짓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어쩌겠나?
그저 보고 싶어서 핑계 한번 만들어 본 것이거늘.
털─석.
현승은 다니엘의 무덤 앞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러고는.
비석 앞에 블루투스 스피커 하나와 소주 한 병 그리고 담배 한 갑을 올려 놓았다.
그가 생전에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술, 담배, 음악.
하나같이 중독성이 강한 것들이고.
─ ♬ ♬ ♬
그중, 가장 중독이랄 수 있는 다니엘의 곡을 틀었다.
─ ♬ ♬ ♬
현승이 들고 온 스피커에서는 다니엘이 생전 발매한 곡들이 연거푸 흘러나왔고.
쫄, 쫄, 쫄.
이내 챙겨 온 종이컵에 소주를 넘칠 듯 따랐다.
물론.
다니엘은 맥주나 위스키 같은 것들을 좋아했지만. 그래도 소주의 맛을 알려 주고 싶었다.
술을 좋아하는 만큼, 소주도 엄청 좋아했을 텐데.
촤락, 촤락.
현승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무덤 위에 소주를 뿌려 댔다. 역한 알코올 향이 코를 후벼 팠지만, 이상하게 달큼하게 느껴졌다.
꼴깍, 꼴깍.
현승은 종이컵 안에 남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역시나, 달았다.
착각이 아니라, 혀에 닿는 맛 자체가 달콤했다.
‘어… 이상하다?’
현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모금, 두 모금, 이내 남은 술을 병째로 들고 마셔댔다.
술을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니엘과 붙어 다니다 보니, 중독되어 버린 모양이다.
“하.”
현승은 돌연 미간을 찡그리며 윽박을 내질렀다.
“뭐, 닮을 게 없어서 이따위 걸 닮아?”
비석에 대고 하는 얘기인지, 무덤에 대고 하는 얘기인지, 하늘에 대고 하는 얘기인지.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그런 술주정뱅이 닮아서 뭐 좋다고?”
참고, 참아 왔던 말이 샘물처럼 터져 나올 뿐이었다.
“인터뷰 영상이라도 좀 보고 가지. 뭐 그렇게 급해서 빨리 갔어? 내가 뭐 얼마나 괴롭혔다고?”
현승은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집착적으로 따져 물었다.
“다른 악기들에 비하면 얼마나 편의를 봐준 줄 알아?”
누군가 보면 원한 관계가 찾아왔다고 생각할 만큼.
“그래, 내 탓이 아니야. 그게 다 술을 그렇게 퍼마셔서 그래.”
불퉁한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악에 받쳐 있었다.
“난 이제 술 절대로 안 마실 거야. 그래서 네 말대로 혼자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 거야.”
현승이 ‘악’이라는 응어리를 씹어먹듯 이를 박박 갈아 대기도 잠시.
“절대, 안 무너지고.”
별안간 끊어진 고무줄처럼 몸을 축 늘어트렸다.
“이번 생은 누구보다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점차 그 몸은 봄바람을 만난 여린 잎처럼 잘게 떨려 왔고.
“진짜, 정말, 잘 살고 갈 테니까….”
머지않아 거대한 파도를 만난 돛단배마냥 마구 들썩거렸다.
“그러니까….”
이윽고.
꽉 깨물려 핏기가 사라진 입술로 많이 늦은 인사를 전했다.
“다음에, 우리, 꼭, 다음에 보자….”
그러고는 이내 푹 떨궜던 고개를 들며 웃어 보였다.
드디어.
다니엘을 편히 보낼 수 있게 됐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