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7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79화(378/482)
LS 엔터 사옥 내 A&R 실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딱 봐도 나를 위해 만든 거잖아, 모르겠어?”
“에이, 선배님! 아무리 부르고 싶어도 그건 좀….”
“그건 좀, 뭐? 뒷말 이어서 말해봐.”
“그건 좀 너무 우기고 계신 게 아닌가 싶은데….”
그 와중에 서지니와 정아린이 묘한 기 싸움을 이어 나갔고.
“이건 제가 불러도 되죠? 아무리 봐도 이건 저를 위한 곡이 맞는 것 같은데, 실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강하준은 조용히 한인규 실장을 붙든 채 종용하고 있었다.
“윤제이 선배님, 우리도 들어볼까요?”
“아, 네에….”
이효은은 먼발치에서 눈치를 살피는 윤제이를 챙겼다.
이렇게 난리가 난 이유는….
현승이 곡을 입고한 즉시, 단체 문자를 돌려버린 이유였다.
[ A&R에 5곡 입고함. ] [ 그중 택 1 ] [ 조만간 불시 테스트. ] [ 탈락 시 연주 불가 ]그런 모종의 이유로 현재 A&R실 안에서는 때아닌 입찰 경쟁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아직 늦지 않았겠지?”
그런 와중에 대선배 격인 문범재가 등장했고.
“나도 HS, 그 친구 곡을 좀 들어보고 싶은데.”
장내는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 물론입니다.”
한인규가 곧장 자리를 마련해, 문범재가 편히 앉아 들을 수 있도록 세팅을 끝냈고.
“이거, 참 오랜만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심장이 뛰는군.”
문범재는 한껏 들뜬 얼굴로 헤드셋을 뒤집어쓰기도 잠시.
“잠깐, 잠깐만….”
얼마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헤드셋을 내려놓았다.
“이 친구, 무슨 일 있나?”
“네?”
“곡이 묘하게 불안정한데.”
그 말에 한인규가 눈만 깜빡거리기도 잠시.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손뼉을 부딪치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김우현 본부장님… 아니, 김우현 이사님에게 연락해 봤는데 현재 현승 씨 심경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왜지?”
“아무래도 최근에 같이 작업한 다니엘이 사망해서가 아닐는지….”
“이런, 이런.”
그 말에 문범재가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끌었고.
“내가 그럼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모양이야.”
머지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물었다.
“VINCIS 주소가 어떻게 되지?”
“예?”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그러자, 장내에 숨죽이고 있던 이들이 번쩍 손을 들어 올리며 애원하듯 소리쳤다.
“그럼, 저도!”
“엇, 저도요!”
“아, 저도오….”
마치 그 모습이 병아리반 유치원생들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 * *
현승은 점차 정상적인 컨디션을 찾아갔지만,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무적인 일은 물론이고.
얼마 전, 작업하던 곡들을 다시 재조립하는 과정을 이어 나갔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나니, 모조리 쓰레기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뜯어내고 붙이고, 자르고, 삭제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그렇지만….
공허를 찾기 위한 여정은 아니다.
이런 곡을 LS 엔터에 보냈다는 사실 자체에 스스로 현타를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일반인이 듣는다면 그마저도 좋은 곡일 테지만, 전문가가 듣는다면 묘하게 멜로디 라인이 들쑥날쑥하게 요동치는 것을 알아채 낼 수 있을 만큼 불완전한 곡이다.
특히, 곡을 뜯고 조립하는 게 업(業)인 엔지니어들이 그걸 모를 리 없고.
악기 중에는….
문범재 정도 되면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쪽팔리네.’
현승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쓸어내리던 찰나.
똑, 똑.
짧고, 날카로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노크 소리는 이번에 새로 고용한 비서인 미셸일 거다.
“들어오세요.”
응답과 동시에, 벌컥 문이 열리고 미셸이 걸어 들어왔다.
혹시 옷장에 저 옷밖에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셸은 면접 때부터 늘 회색 정장 셋업을 고집했다.
복장 규율 같은 건 없으니, 굳이 불편하게 입지 않아도 된다고 누차 말했음에도….
또각, 또각.
그녀는 늘 무릎까지 오는 딱 붙는 H라인 치마를 입는 통에 종종걸음으로 다녔다.
보는 사람이 다 불편할 정도였지만, 이 정도 되면 개인 취향인 듯하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 와중에 성격은 또 급한지, 보폭은 좁아도 걸음은 빨랐기에 답답한 건 없었으니까.
“대표님, 당일 일정에는 따로 미팅은 없는 걸로 확인되는데 현재 유토피아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서 찾아와서 만남을 요청합니다. 알아보니 한국 내 영세한 기업인 것 같은데, 내쫓을까요?”
이내 그녀는 숨도 안 쉬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찾아온 이유를 전하더니, 붉은색 뿔테 안경을 한차례 고쳐 썼다.
“아, 들어오라고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인사와 함께 다시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미셸을 채용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불필요한 말이 없고.
눈치가 빠르며.
일 처리가 확실했다.
현승은 그런 미셸이 마음에 들었다.
아아.
이성으로서는 아니고, 비서로서.
‘그건 그렇고….’
현승은 제 예상보다 늦게 찾아온 유토피아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거의 두 달이 다 된 일이 아닌가?
그저.
옷 소매가 볼품없이 헐렁했다는 것 정도만 떠올랐다.
하필, 그게 거슬려서 마음이 약해졌고.
물론.
그렇다고 한들, 곡을 줄 건 아니었다.
만약에 한 명이라도 마음에 드는 악기가 있다면 줄 수도 있겠지만, 아니라면 가차 없이 돌려보낼 요량이었다,
똑, 똑.
머지않아 다시 미셸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탁─!
현승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헬멧을 뒤집어쓰고 난 이후에야 들어오라고 응답했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유토피아 엔터 대표가 고새 더 마른 얼굴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러게요, 포기하신 줄 알았는데.”
“일전에 대표님 같은 분을 구슬리려면, 돈 가방이 아니라 악기들의 연주를 들려줘야 한다고 하셨었죠?”
“예.”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가 했는데, 거수를 보여달라는 말씀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설마 그래서 늦으셨습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대표는 마른 목을 좌우로 흔들며 부정했고.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다니엘의 사망 소식을 접해 듣고는, 상심이 크실 듯하여 바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현승은 잠시 잊었던 다니엘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아.”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때였다.
대표가 이상하게 자신감으로 가득 찬 눈을 번들거리며 물었다.
“혹시 조금 늦었지만, 연주 한 번 들려줘도 될까요?”
“예, 그렇게 하시죠.”
“감사합니다. 얘들아, 얼른 들어와서 인사부터 드려.”
그의 말에 반쯤 열린 문밖에서 기다리던 여자들이 작업실 안으로 하나둘 들어섰고.
‘정말, 자신 있나?’
대표는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왠지 더 자신감에 가득 차 보였다. 아니, 확신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곡을 줄 수밖에 없을 거라는 듯.
“안녕하세요, 웨이썬 리더인 이솔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웨이썬에서 랩을 맡고 있는 슬기라고….”
현승이 손을 들어 “그만.”하고 인사를 중단시키기도 잠시.
“저는 악기의 소리를 듣고 싶은 거지, 품명은 알고 싶지 않으니 자기소개는 개인 SNS에서 하시죠.”
날카롭게 눈매를 좁히며 덧붙였다. 그토록 자신이 넘쳐 보이니, 실력부터 봐야겠지.
“MR은 들고 오셨습니까?”
“네, 챙겨왔습니다.”
“그럼, 바로 불러보시죠.”
이내 현승은 한쪽 다리를 꼬아 앉으며, ‘웨이썬’이라는 멤버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썩 낯익은 인물은 없었다.
한마디로….
미래에도 크게 성공할 만한 사람은 없다는 뜻이었다.
─ 바쁘게 흐르는 시간 속, 그 속에 있는 널 봤어.
자기소개마저 하지 못하고 잘린 단발의 여자가 도입부를 부르며 곡이 시작됐다.
─ 너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내게로 오고 있는 걸까?
마찬가지로 맨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자기소개는커녕 입 한 번 뻥긋해 보지 못한 긴 생머리의 여성이 다음 파트를 이었다.
‘후.’
현승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점수를 매겼다.
39점, 41점….
아이돌 그룹이란 특성상 파트가 짧아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한 소절이라도 대충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라이브로 부르는 거라면, 더더욱.
─ 네가 내가 와 준다면 나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것 같아. 그러니, 이제 뜸 그만 들이고 내 손, 내 손을 잡아줄래?
현승은 후렴을 앞두고, 튀어나온 슬기의 랩에 미간을 찡그렸다.
우선, 악기의 실력을 떠나서 이 곡이 망한 이유는 알 것 같았다.
─ 나는 언제든 여기 있을 테니, 와 주기만 하면 돼. 나는 네가 부르면 달려갈 테니, 넌 거기 서 있기만 하면 돼.
그리고, 리더인 이솔이 메인 보컬이라는 것도 알겠고.
아아.
그렇다고 노래를 빼어나게 잘한다는 건 아니다.
성량이라던가, 호흡은 좋았으나.
좋지 않은 습관을 갖고 있었다.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건 물론이고. 소절이 시작되는 구간마다 밴딩을 사용했다.
그렇게 되면….
흔히 말하는 ‘뽕짝’ 느낌이 물씬 풍기기 마련이다. 아이돌에게 나선 안 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저 ‘뽕짝’ 느낌으로 성공할 것이다.
‘이솔, 이솔, 이솔….’
제 기억이 맞는다면, 앞으로 약 3년 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크게 흥행하면서 대한민국은 트로트 열풍에 휩싸인다.
그 중심에는 ‘이솔’이 있었다.
특히, 이솔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윽고.
현승은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노래를 중단시켰다.
“그만.”
더 들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대표님, 분명 보석 같은 아이들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예?”
“아무래도 보석은커녕, 원석도 안 되는데 어쩌죠?”
목소리는 물론이고, 실력마저 변변치 않았다.
딱, 널리고 널린 악기 수준.
연주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나마 이솔이 기본 실력은 탄탄해 보였으나, 당장 트로트를 제작해 볼 생각은 없었다.
“…….”
현승의 독설에 멤버는 물론이고, 대표마저 입을 꾹 다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들은 이렇다 할 변명이라던가,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
작업실 내부로 지독한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조언 하나 해 드리자면….”
현승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솔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아이돌 관두고, 트로트 해보세요. 성공할 겁니다.”
그러고는 이내 그만 가라는 듯 문을 향해 손짓했고, 대기 중이던 미셸이 그들을 배웅해 주겠다며 나섰다.
“모두, 밖으로 나가시죠.”
그때였다.
“저, 저는…!”
이솔이 현승을 향해 다가가며 소리쳤지만….
퍽─!
얼마 안 가 팔이 꺾인 채로 바닥에 눕는 신세가 됐다.
그건, 바로….
미셸이 그녀를 단숨에 엎어치기로 제압한 까닭이었다.
‘아, 맞다. 유도 전공자라고 했지.’
현승이 다소 격한 대처에, 이제 괜찮다는 양 손짓하자, 미셸은 벌떡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헝클어진 옷과 머리칼을 정돈했다.
그 모습이 꽤나 무서웠다.
“으윽….”
고통으로 연신 신음을 토하던 이솔이 바닥을 짚은 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고.
“저는, 트로트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멤버들과 같이 웨이썬이라는 이름으로 꼭 성공…!”
이내 “퍽”하는 굉음과 함께 다시 앞으로 엎어졌다.
아무래도 기절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