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7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80화(379/482)
─ 하루아침에 부모를 다 잃은 불쌍한 아이.
우리 동네 사람들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어찌나 불쌍하게 여기는지.
동네 슈퍼를 운영하던 점박이 아줌마는 내가 갈 때면 소시지를 하나씩 챙겨 줬고.
철물점을 운영하던 김 씨 아저씨는 간혹 집에 고장 난 곳은 없는지 봐주러 오곤 했다.
나는 그렇게 동정 어린 호의를 받을 때면 생각했다.
‘부모가 없으면 불쌍한 건가?’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다 죽는 거 아닌가? 슈퍼집 이 씨 아줌마도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철물점 김 씨 아저씨는 장가도 못 간 노총각에 병든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렇게 치면, 그들도 불쌍한가?
아니.
아무도 그들을 불쌍해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딴 동정은 필요치 않았고, 고아라는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는 할머니가 있으니까.
“할머니, 밥 먹자!”
자신이 차린 밥상을 보며 할머니는 해맑게 웃으셨다.
언제 이렇게 다 커서, 밥상을 차릴 수 있게 된 거냐며 대견스럽다는 듯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내가 꼬옥 성공해서, 할머니 호강시켜 줄 거야.”
“어이구? 그 말만 들어도 배가 다 부르다, 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절대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해!”
할머니는 내 전부였다.
“너는 반 애들이랑 싸우지 좀 말고, 사이좋게 지내그라.”
“아니, 애들이 자꾸 먼저 시비를 걸잖아.”
“거, 반 애들 다 한번 싹 데리고 국숫집 온나.”
“할머니, 나 이제 고딩이야. 초딩 때처럼 반 애들 다 국수 먹이면서 나 잘 부탁한다고 하려고? 우린 뭐 땅 파서 장사하나.”
“얼씨구? 우리 아가, 이제 장사꾼이 다 됐네, 아주?”
“나, 할머니 닮아서 완전 장사꾼 기질 타고났잖아.”
비록 부모님은 없었지만, 빈자리를 전혀 못 느끼고 자랄 수 있도록 모든 걸 다 해 주신.
작은 국숫집 하나를 운영하시며, 쉬는 날 한 번 없이 사시면서 힘든 티 한 번 내지 않고.
“우리 아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아.”
사랑으로 키워 주신 나의 할머니.
“가수… 거, 꼭 해야겠지?”
그런 할머니가 어느 날 퉁퉁 부은 내 종아리를 주무르며 물으셨다.
그날은….
일당 십만 원짜리 지방 축제 무대를 하고 늦게 들어온 날이었다.
“아이다, 못 들은 거로 해라….”
할머니는 어딘가 쓸쓸한 손길로 내 등을 다독였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꼭 성공해서 효도하겠다며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 놨지만, 이렇다 할 정식 방송 무대 한 번 서 보지도 못한 주제에 관두겠단 말도 못 했으니까.
“우리 아가, 한다면 하는 아니까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거야.”
할머니는 그런 나를 더 응원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할머니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재롱을 부리는 게.
그런 날 보고 웃는 할머니를 보는 게 너무 좋아서.
가수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
허황한 꿈이라는 것도, 험난한 길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겐 믿어 주는 할머니가 있으니 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할머니의 불안함을 엿본 그 순간부터….
균열이 생겼다.
그만둬야 하나? 이대로 다 포기해야 하는 건가? 우리 그룹은 정말 성공할 수 없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룹의 리더다. 애들은 다독이고 이끌어도 모자랄 판에 먼저 무너져 버리면….
‘남은 애들은?’
내게 멤버들은 친자매와 같았다. 비록 피를 나눈 것도, 몇십 년을 함께 한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오로지 ‘음악’이라는 매개체 하나만으로 똘똘 뭉쳐 손잡고 같은 길을 나아갔다.
그렇게….
누군가 넘어지면, 붙들고, 일으켜 가면서 모두 발맞춰 걸어오길 2년.
겨울 끝에 봄이 오듯, 대표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얘들아, 우리 미국 가자.”
처음에는 미국 진출을 노려 보자는 말인 줄 알고, 드디어 대표님이 미치셨나 싶었다.
다른 아시아권에서 데뷔하고 인지도 쌓아서 한국에 되돌아오는 경우는 왕왕 봤어도….
미국부터 진출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내가 비행깃값은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까, 너희는 늘 해 왔던 대로, 아니, 그보다 딱 3배만큼만 열심히 준비해 줄 수 있겠니?”
다행히도 미국에 진출해 보자는 말은 아니었다.
대신 더 파격적인 말이긴 했다.
“진, 진짜, 진짜, 그분이 저희를 보자고 하신 거예요?”
“그래, 들어 보고 마음에 들면 곡도 주실 것 같아.”
바로, 대한민국 대표 탑 작곡가이자 현 미국 ‘VINCIS’ 레이블의 대표이사인 HS를 보러 가자는 말이었으니까.
그것도….
그의 앞에서 실력을 입증해 보여야 하는 자리.
단순히 실력을 보여 주고 곡을 받는 게 아니라.
우리 ‘웨이썬’의 미래가 달린 자리인 셈이었다.
그래.
데뷔한 지 2년 동안 빛 한 번 못 본 그룹이라도….
그의 곡을 받는다면 메가 히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포트라이트 한 번은 받아볼 수 있지 않겠나?
“얘들아, 우리 한 번만 더 맞춰 보자.”
나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애썼을 대표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걱정하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더 나아가….
웨이썬의 성공을 위해서 무조건 잡아야 할 기회였다.
“언니, 우리 조금만 쉬자.”
“딱 한 번만 더 하고 쉬자.”
아르바이트마저 관둔 채, 자고 밥 먹을 시간 아껴 가며 연습에 매진했다. 코피가 나고,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탈수가 와도 멈추지 않았다.
“아, 얼른 미국 가서 엣치스 실물 보고 싶다!”
“어차피 헬멧 쓰고 다니지 않아?”
“눈 마주치면 기절해서 쓰고 다니는 거라던데?”
“에이, 그건 좀 오버 아냐?”
다들 한참 이성에 호기심이 많을 나이다. 단 한 장의 프리뷰만으로 수만 명의 팬이 생길 만큼 잘생겼다는 ‘HS’를 보러 가는 것이니 들뜰 만도 했다.
“헬멧을 쓰고 있던, 벗고 있던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우리가 곡을 받냐, 못 받냐가 중요한 거지.”
물론, 나는 제외였다. 오로지, HS에게 인정받아, 곡을 받아 내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어쩌면….
내 일생에 다신 오지 않을 기회일지 모르니까.
“그만.”
그러나, 결국 기회를 눈앞에서 놓쳐 버렸다.
“대표님, 분명 보석 같은 아이들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쓰라렸다.
“아무래도 보석은커녕, 원석도 안 되는데 어쩌죠?”
늘 우리가 최고라 말해 주던 대표는 고개를 숙였고,
“당신은 아이돌 관두고, 트로트 해 보세요. 성공할 겁니다.”
리더인 나는, 멤버들을 볼 명목조차 없었다.
아이돌에게 ‘트로트’를 해 보라니.
성공할 거라 덧붙인 말 때문에 칭찬처럼 보였지만, 결국 아이돌로서 가망이 없으니 접으라는 소리였다.
이대로 끝인가?
할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손녀가 되기 위해, 공부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꿈을 위한 노력.
뭐, 하나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물며 최근 두 달간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그 노력의 시간이 허무하게 증발해 버렸다.
어떠한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무너졌다.
물론.
내가 택한 길이고, 내가 못 해서이긴 하지만….
이젠.
나도 조금 지친 것 같다.
“저, 저는…!”
그러니, 성공해야만 해.
“저는, 트로트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멤버들과 같이 웨이썬이라는 이름으로 꼭 성공…!”
성공해야만 하는데….
점차.
눈이 감겼다.
.
.
.
“헉─!”
이솔이 눈을 번쩍 뜨며 묵힌 숨을 토해 냈다.
“하아, 하아….”
이상하게 조금 전까지 뜀박질한 것처럼 숨이 벅찼다.
“언니, 괜찮아?”
그 모습을 발견한 슬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 슬기야….”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이솔은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스─윽.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와 팔에 꽂힌 링거만 보더라도 병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상한 게 하나 있다면, 드라마 속에서 회장님들이나 이용할 법한 1인 병실이라는 거?
22년을 살면서 입원해 본 경험도 거의 없지만, 이런 병실은 구경조차 해 본 적 없었다.
“헉!”
이솔은 용수철이 튕겨 오르듯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
자신이 이런 곳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놀란 까닭이었다.
여기 하루 입원비는, 우리 할머니가 국수를 몇백 그릇을 팔아도 안 될 만큼 비싼 곳이다.
“나 여기 왜 있는 거야?”
슬기가 기겁하는 얼굴로 자신을 말려 세웠고,
“언니, 그렇게 일어나면 안 돼!”
“어?”
“지금 갈비뼈에 실금이 가서….”
부연이 끝나기도 전에 별안간 통증이 밀려왔다.
“윽!”
이솔이 흉통을 감싸며 신음을 흘리자, 병실 문이 열리며 대표인 성우영이 뛰어 들어왔다.
“솔아!”
“대표님, 저, 왜 1인실에 누워 있어요? 얼른 퇴원 처리해 주세요.”
“병원비는 걱정하지 말고, 며칠 입원해서 푹 쉬어도 돼.”
성우영은 당장 튀어 나갈 듯한 이솔을 다독이며 천천히 부연했다.
“네가 HS 대표님한테 다가가는 걸, 비서분이 위협하는 상황이라 생각하시고 제압하는 과정에서 네가 다쳐서 데려오게 된 거야.”
이솔은 그 얘기를 듣자, 다시 한번 엎어 내쳐지던 상황이 떠올라 “윽.” 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서 병원비는 전액 다 내주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성우영은 그런 이솔을 천천히 뒤로 눕히며 말을 잇기도 잠시.
“갈비뼈에 작은 실금이 간 것도 맞지만, 기절한 직접적인 이유는 과로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하더라.”
한 텀 쉬고는 어렵사리 덧붙였다.
“그러니 우리 이제 좀 편하게 쉬자, 솔아.”
아니, 어렵게라도 꺼내면 안 될 말이었다.
“됐고, 지금 가현이랑 유진이는 어디 갔어요.”
“솔아.”
“다시 한번만 기회 달라고 제가 부탁해 볼게요.”
“솔아.”
“편하게 쉬자고요? 대체 뭘 해 봤다고 쉬는데요?”
이솔의 목소리는 고저 없었지만, 분기가 가득 배어 있었다,
“제대로 된 음악 방송을 한 번 나가 보지도 못했는데, 뭘 편하게 쉬자는 거냐고요.”
“솔아….”
“저도 힘들지만, 우리를 믿어 주는 대표님이 눈에 밟히고, 할머니가 눈에 밟히고, 멤버들이 눈에 밟혀서 티 한 번 내질 못했어요. 책임지기로 했고, 보여 주기로 했으니까.”
이내 점차 격양된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려 왔다. 차분하고 싶었는데, 결국 참지 못한 배신감이 쇳소리를 타고 터져 나왔다.
“그런데, 적어도 그런 제게 대표님이 먼저 포기하자고 하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솔이 고통마저 잊은 채, 씩씩거리던 그때.
짝, 짝, 짝.
문 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고.
“대표보다 가수가 더 낫네.”
그곳엔 훤칠한 남자가 문에 기대 서 있었다.
분명 처음 보지만, 처음 보지 않는 얼굴….
HS였다.
“네 대표는 말랑하고, 뻗댈 줄밖에 모르길래 애들도 다 이상한 자신감에 취해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성우영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지만.
“넌 그래도 좀 재밌네.”
HS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 비서가 다치게 한 건 미안하고, 대신 병원비랑 돌아가는 비행기는 전부 비즈니스로 끊어 놨어. 네가 입원해 있는 동안, 다른 애들이 묵을 숙소도 잡아 놨고.”
“혹시, 우리 애들 숙소에 가 있나요?”
“응, 신나서 숙소로 뛰어 들어가던데? 생각보다 멤버 간에 사이가 썩 좋진 않나 봐?”
“아니에요.”
“아니긴, 네 옆에 앉아 있는 애 말고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관광할 생각뿐이던데?”
“아직, 애들이 어려서….”
“야무진 줄 알았는데, 너무 대표랑 똑같구나? 그냥 여기 탈퇴하고 트로트로 전향하라니까.”
이솔이 한쪽 눈썹을 들썩이기도 잠시.
“저기요.”
HS를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아까 저한테 다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죠?”
“응, 다친 건 사실이니까.”
“그렇죠, 저는 지금 무려 갈비뼈 부상을 당했죠.”
“실금이라던데?”
“아무튼, 다친 건 다친 거잖아요.”
그 말에 HS는 설렁설렁 고개를 주억거렸고.
이내.
그의 고개가 뚝 멈춰선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니까 저희한테 곡 하나만 주세요.”
이솔은….
“그 부탁은 거절한 걸로….”
“부탁 아니고, 제 부상에 대한 합의금을 정중하게 요구하는 겁니다.”
할머니에게 인정받은 장사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