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8화(38/482)
화려한 샹들리에가 밝게 비추는 연회장 안.
쨍―!
격식 차린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채 서로 샴페인 잔을 부딪쳐 댔다.
국내 유명 작곡가들이 친분 도모를 목적으로 분기마다 꾸준히 주최 중인 연회였다.
취지는 좋았지만….
사실상 이름을 좀 알린 작곡가들끼리 발매 일정을 몰아주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이게 누구야?”
그런 이유로….
“제이블, 같이 한잔하자.”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곡가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제이블의 옆자리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기 일쑤였다.
“조만간 개인 앨범 낼 거라는 소문이 돌던데?”
“언제 내는지 슬쩍 귀띔 좀 해 줘.”
“맞아, 우리도 알아야 좀 피해서 낼 거 아니야.”
제이블은 모여드는 사람들 틈 속에서 여유롭게 미소를 머금고 샴페인을 들이켰다.
“뭐, 준비하고는 있지….”
자신이 올해 연말쯤에 개인 앨범을 발매하리란 소문이 온 업계 전체에 알음알음 퍼진 채였다.
그리고 자신을 의식한 타 작곡가들이 연거푸 발매를 미루고 있다는 사실도 접해 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겠지.
‘뭐, 물론….’
자신에게 정확한 일자를 말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애초에 제이블은 이런 모임에 하등 관심조차 없었을뿐더러….
알고 지내는 작곡가들과의 관계에 큰 애착을 두지도 않았다.
이윽고.
제이블이 손에 쥔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근데 언제 발매할지 확정된 게 없어서 미안하네.”
그래도 그들은 실망한 기색조차 비치지 않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아니야, 우리 사이에 미안하기는.”
“맞아, 네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
“대신 일자 픽스되면 꼭 좀 말해 줘!”
주변에 서 있던 고상준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개자식, 이미 작업도 다 끝냈으면서.’
그는 얼마 전 유통사를 통해 제이블의 발매 소식을 전달받고는 곧장 자신이 참여한 앨범을 기약 없이 미뤄 놓은 상태였다.
대충 예상 날짜라도 잡혔을 터인데….
저렇게 아닌 척하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제이블을 보고 있자니 얼굴에 샴페인이라도 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우 같은 새끼, 혼자 다 해 먹으려고….’
고상준은 그런 심경을 억누른 채 제이블에게 말을 건넸다.
“제이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HS라고 들어 봤지?”
그는 제이블의 신경을 톡톡 건드리기 위해 말을 이어 나갔다.
“슬슬 우리 모임에 초대할 때 되지 않았어?”
그가 던진 미끼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아, 나도 그 사람 들어 봤어. 서지니, 정아린, 공효주 곡 연달아 히트시켰다며.”
“히트뿐이겠어? 요즘 일본 가면 열 걸음에 한 번씩 서지니 곡이 들려온다잖아.”
“나도 들은 거긴 한데, 아예 정아린은 그 사람이 발굴해서 데뷔시킨 거라던데?”
그에 따라 제이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HS.
현재 왕성히 활동 중인 작곡가라면 모르는 이가 없으리라.
제이블 또한 몇 번 들어 본 이름이었다.
올해 들어 갑자기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온 신예 작곡가.
그런 만큼….
HS의 등장이 위협적이지 않은 작곡가는 없을 것이다.
작곡가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소문도 왕성했고….
그의 다음 작업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는 이들도 많았다.
“HS….”
화두에 오른 이름을 한 번 되뇐 제이블이 곧장 샴페인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그러고는 언제나 그랬듯 들이킨 샴페인과 함께 그 이름은 말끔히 잊어버렸다.
“맛있네….”
이 업계는 곡은 별로라도, 운과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지며 성공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반대로.
제아무리 유명 작곡가의 곡이라도 타이밍이나 운이 따라 주지 않아서 쪽박을 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제이블은 그런 수많은 경우의 수를 뚫고 ‘실패 없는 작곡가’라는 칭호를 얻었다.
작곡에 대한 천부적인 능력.
늘 자신을 따라오는 운.
그리고 대중들의 큰 관심까지….
작곡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그는 자신과 경쟁할 만한 사람은 없다고 자부했다.
그저….
드높아진 인기를 만끽하면서 매일 쌓여 가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더 재밌게 사는 일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그런 제이블에게 고상준이 도발을 걸어왔다.
요즘 떠오르는 신예 작곡가를 앞세워 자신을 살살 긁어 보려는 추잡한 심산이 너무 눈에 훤했다.
그 꼴이 우스워 어떻게 엿을 먹여 줄지 고민에 빠진 제이블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래, 상준아. 네 말이 맞아.”
그러고는 고상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이죽거렸다.
“들어 보니까 네 곡보다 낫던데 자격은 충분하지.”
고상준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저 새끼….’
사실 제이블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고상준의 곡은 물론….
HS의 곡 또한 들어 보지 않았다.
고상준은 제이블의 말이 자신의 속을 긁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자존심이 상했다.
제이블은 고상준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며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렸다.
“다들 상준이 말대로 그 작곡가를 멤버로 초대하는 사안에 대해선 불만 없는 거지?”
이윽고.
쨍―!
다시금 허공에서 여러 잔들이 맞닿은 지금.
고상준은….
제이블을 노려보며 이를 바드득 갈 뿐이었다.
* * *
김 실장은 사내 복도를 상념에 잠긴 채 거닐고 있었다.
터벅, 터벅―.
지속적인 회유에도 불구하고 현승은 끝내 제이블과 시기를 맞춰 발매하겠다고 선언했고.
이후에는 뭐라도 씐 사람처럼 끼니도 거른 채 최종 수정 작업에 시간을 모두 쏟아붓고 있었다.
물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수정할 수 있다지만, 애초부터 현승이라면 그런 곡을 넘기지도 않았을 터.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납득 가진 않았지만, 대표의 결재까지 다 이루어진 마당이니 말릴 수도 없었다.
“휴….”
김 실장은 근래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승 때문에 부쩍 늙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그의 귀를 사로잡을 만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저번에 대표님의 직속 비서가 맨 레코즈에서 온 공문을 가져갔다는 거 들었지?”
“대박, 그럼 박 전무님이 2팀으로 온 공문을 중간에 가로챘다는 것도 들킨 거 아냐?”
“그럴걸? 당분간 회사 분위기 흉흉하겠네. 잠잠해질 때까지 사리고 다니자고….”
매니지먼트 1팀 직원들이 자판기 앞에서 캔커피를 마시며 조잘거리고 있었다.
‘하?’
김 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흘릴 뻔했다.
그도 그럴 게….
저들의 대화가 사실이라면 박 전무가 원래는 2팀에 왔어야 할 맨 레코즈의 공문을 가로챘다는 거고.
그런데도 얼마 전 회의에서는 보란 듯이 1팀의 공인 양 낯짝 두껍게 거드름을 피워 댔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비록.
박 전무가 거친 성정의 사람이긴 해도, 수완이나 처세술만큼은 좋은 사람이니,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KOK’를 통해 접점을 만들었으리라 지레짐작했건만….
‘그럼 그렇지….’
김 실장은 앞으로 박 전무를 더욱 경계해야겠노라고 다짐하며 걸음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그나저나 나는 이해가 잘 안되네. 맨 레코즈는 왜 하필 2팀을 ‘콕’ 찝어서 보냈을까? 보통 회사 간의 협업이면 그럴 필요 없는 거 아냐?”
1팀 직원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고 그 말에 다른 직원이 되물었다.
“그, 서지니 때문 아냐?”
“서지니?”
“지금 일본에서 대박 냈잖아.”
그때 또 다른 직원이 말을 끊었다.
“아냐, 그 사람 때문이겠지.”
김 실장은 ‘그 사람’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사람? 서지니 말고 일본 활동 중인 사람 또 있어?”
“왜, 있잖아, 2팀 소속 작곡가.”
“아아, HS 말하는 거 맞지? 그 사람은 갑자기 왜?”
“서지니 곡 만든 사람이잖아.”
말문을 연 직원이 거듭 설명을 부연했다.
“사실 맨 레코즈 공문 처음 받았던 게 나였거든. 거의 받자마자 바로 빼앗겨서 제대로 읽지는 못했는데, 양사 간의 협업을 제안한 게 아니라 HS의 곡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서 그래.”
김 실장은 ‘HS’라는 단어가 들려오자 숨을 죽였다.
“아무튼 사달이 나도 이미 났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단 말이지? 전무님이 중간에서 공문 가로챈 덕에 까딱하면 맨 레코즈와의 협업이 물 건너갈 뻔했던 상황인 셈인데….”
1팀 직원들은 김 실장이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쉴 새 없이 속사정을 늘어놓았다.
“음, 대표님께서 너무 바쁘시니까 아직 제대로 확인을 못 해 보신 거 아닐까?”
“그러면야 천만다행인데, 난 괜히 1팀 전체가 다 찍히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뭐, 폭풍 전야 같은 상황 아닐까? 이러다가 한바탕 난리 나면 우리만 피 보지….”
“하긴, 전무님 성격에 어디 화풀이 안 하고 배기겠어? 애꿎은 우리만 죽어나겠지.”
김 실장은 직원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결국.
맨 레코즈가 공문을 통해 찾는 건, 2팀이나 1팀이 아니라 ‘HS’ 단 한 사람이라는 거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하필 ‘HS’가 속해 있는 2팀이 아니라 1팀에 발송되었다는 얘기였다.
‘박 전무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었군.’
그런데 대표는 어찌 알았는지 공문을 가져갔고, 그 뒤로 아무런 리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랄 수 있었다.
확실히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분명 대표님이라면….’
단순히 바쁘다는 이유로 공문을 대충 읽거나 미루어 둘 사람이 아닐뿐더러, 관계를 잘 쌓아 둔다면 일본 시장 진출에 있어 크나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맨 레코즈사의 공문이 아니었던가?
‘상황은 진즉 다 파악하셨을 테고….’
그런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건 그저 박 전무에게 압박을 주려는 의도일 터였다.
‘가끔은 침묵이 고함보다 무서운 법이니까.’
대표님다운 처사였다.
물론.
박 전무도 대표님의 저의를 모를 리 없을 터.
‘결국 대표님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받은 셈이네….’
비록 박 전무는 맨 레코즈와의 협업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뻔한 바람에 암묵적인 경고를 받았다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실제로 결과만 좋았더라면 아무런 탈 없이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승이는….’
정작 사건의 중심에 있었지만, 맨 레코즈로부터 공문이 온 사실은 아예 모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바로 달려가서 다 얘기해 주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대표님이 전달하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경거망동해서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머지않아 알게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때를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정말 대단해.’
현승이 아무리 세간에 알려지기 싫어하는 성향일지라도, 결국 낭중지추라는 말처럼 두각을 드러내고.
결국 외부 작곡가와 협업하지 않기로 유명한 맨 레코즈로부터 먼저 러브콜을 받아내지 않았는가?
이런 걸 보고 ‘될놈될’이라고 하나?
‘대단하긴 해…’
문득 현승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때.
주머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이 세차게 울렸다.
지이이이이잉―!
문자를 확인한 김 실장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
[ 한 팀장: 실장님, 드디어 제이블 발매일 잡혔어요! ]‘왜지?’
이유는 명확히 할 수 없다지만….
‘어쩌면….’
현승이 정말 제이블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차오를 따름이었다.
“밥때 됐는데 연락이나 해 볼까….”
그렇게 김 실장이 현승에게 연락을 해 보려던 참이었다.
[ 최 이사님 : 어디야? ]제 직속상관 격인 최 이사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고….
[ 최 이사님 : 민현승, 또 사고 쳤냐? ] [ 최 이사님 : 왜 말을 안 해?] [ 최 이사님 : 제이블이랑 붙는다면서? ] [ 최 이사님 : 긴급회의 소집됐다. ] [ 최 이사님 : 얼른 대표실로 와. ]무어라 답장을 하기도 전에 연달아 몇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 * *
‘대체….’
김 실장의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자신은 뒤숭숭한 마음을 다잡고 현승을 꼬셔 구내식당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최 이사로부터 ‘긴급회의’가 소집됐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대표실로 올라왔는데….
‘이 정도면 임직원 회의잖아….’
대회의실의 자리를 각각 차지하고 앉아 있는 임원진들부터 가장 중앙 상석에 앉은 대표까지….
김 실장은 그 사이에서 침 삼키는 소리조차 편히 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결정권이 있는 실무진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중역, 대표마저 한자리에 모인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가 현승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그때.
김 실장의 시야 속에 저 멀리 앉아 있는 박 전무가 들어왔다.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알다니….’
박 전무는 그답지 않게 대표와 먼발치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잔뜩 풀이 죽어 보였다.
김 실장은 며칠 전 복도에서 들었던 매니지먼트 1팀 직원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눈치가 보일 만하지….’
박 전무는 현승에게 쥐어진 기회를 빼앗은 거나 진배없었고, 그에 따라 대표로부터 경고를 받은 차였다.
이 와중에 대표가 현승의 앨범 발매 일자를 명목 삼아 임원진 급의 회의를 주최했으니 더 눈치가 보일 터.
‘그래, 당분간이라도 그렇게 숨 좀 죽이고 계세요….’
김 실장이 애써 웃음기를 감추던 찰나였다.
“다들 이미 전달받아서 알고 계시겠지만….”
전남일 대표가 느릿한 투로 말문을 열었다.
“오늘 회의의 안건은 HS의 개인 앨범 발매 일정입니다.”
대표가 현승을 총애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 확인된 순간이었다.
일순간….
대회의실 안에 감돌던 부산스러운 느낌이 착 가라앉았다.
“그 친구는 무조건 제이블과 동시기에 앨범을 발매해서 맞붙어 보고 싶은 것 같더라고. 직접 불러 앉혀 놓고 설득도 해 봤는데 아무런 근거 없이 마음을 돌리게 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
그가 모여앉은 이들을 쭉 둘러본 뒤에 되물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 보고 싶은데.”
대표의 물음에 침묵이 돌기를 잠시.
“그건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전무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사견이었다.
‘일이 잘못 꼬여서 경고받은 차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 될 게 뻔한 일에 눈치만 보고 조용히 입 닥치고 있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제이블과 붙는다는 건 1팀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어렵사리 말꼬를 열었다.
그때였다.
박 전무의 직속 라인이랄 수 있는 강 이사가 이죽거리는 투로 말을 보탰다.
“야, 김 실장. 너는 어린애 하나 컨트롤 못 해서 이렇게 중요한 사람들을 다 모이게 만든 거야?”
울컥 짜증이 치솟은 김 실장의 상체가 앞으로 쏠리자, 큼지막한 손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사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시고, 저는 박 전무님과 의견이 다릅니다.”
제작기획본부의 총괄을 맡은 이성한 본부장이었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진다면 지는 대로 얻을 게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침착한 투로 대표와 박 전무의 눈을 번갈아 맞춰 가며 말을 이었다.
“지금껏 보여 준 성과를 참작했을 때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당장 앞에 사익도 중요하지만 잘 농익을 수 있도록 믿고 지원해 주면 후일 둥지를 떠날 생각도 안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에 박 전무가 한층 격양된 목소리로 피력했다.
“아니, 본부장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번번이 속 썩이는 놈이니 차라리 이참에 한 번 기를 꺾고 풀을 죽여 놓는 편이….”
그때.
박 전무의 천적이랄 수 있는 최 이사가 말을 끊었다.
“박 전무님, 사익과 효율도 좋지만, 본부장님의 말씀대로 훗날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최 이사, 네가 그렇게 무르니까 그 녀석이 천지 구분 못 하고 계속 날뛰는 거 아냐?
그는 결국 울컥 치솟는 화를 참아 내지 못하고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점차 첨예해지는 분위기 속에….
하나같이 대표의 눈치를 살피며 둘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이미 흥분 상태인 그들은 시야가 좁아진 상태였다.
“얼씨구? 박 전무님은 공문 빼돌린 것도 모자라서 회의 중인데 말을 참 편하게 하시네요?”
“뭐? 말조심 안 해?”
“틀린 말 했어? 도벽도 그 정도면 중증이야. 대체 뭘 잘했다고 언성을 높이는데―?”
둘의 대화가 의견 충돌을 넘어서 유치한 말싸움으로 번져 가던 찰나였다.
“그만.”
대표가 테이블을 “탁―!” 내려치며 고조 없는 투로 얘기했다.
“회의 중에 뭐 하시는 겁니까?”
그의 고압적인 한마디에 장내를 뜨겁게 달구던 열기가 일순 차갑게 가라앉았다.
“일단 곡을 들어 봐야 뭔가 결단을 내릴 수 있겠네요.”
그러고는 김 실장에게 시선을 옮기며 덧붙였다.
“김 실장, 지금 당장 민현승 씨의 개인 앨범 수록곡 좀 들어 보고 싶은데.”
그 말에 모두의 이목이 김 실장에게 집중됐다.
“바로 A&R 팀에 이야기해서 USB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김 실장은 곧장 한 팀장에게 연락하여 다급한 목소리로 짧게 지시를 내렸다.
‘부디 빨리 좀….’
제법 쌀쌀해진 날씨임에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똑똑―!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한 팀장이 대회의실로 조심히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그러고는 USB 하나, 무선 헤드셋 하나를 내려놓고는 뒷걸음질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후,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김 실장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내며 물었다.
“대표님, 헤드셋으로 들으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죠.”
그 말에 곧장 노트북에 USB를 연결한 뒤 대표에게 헤드셋을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대표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곤 반듯하게 포마드로 세팅된 머리 위로 헤드셋을 뒤집어썼다.
‘오래 다니다 보니 내가 이런 광경도 보게 되는구나.’
딸칵―!
김 실장은 자꾸만 엇나가는 손을 부여잡은 채 겨우 스페이스 바를 눌러 곡을 재생시켰다.
그와 동시에….
대표의 눈이 사르르 굳게 감겼다.
한번 눈썹을 들썩이더니….
표정에는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톡, 톡, 톡, 톡―.
전남일 대표는 읽을 수 없는 표정을 한 채로 일정 박자에 맞춰 테이블을 두드려 댈 뿐이었다.
이윽고.
탁―!
대표가 헤드셋을 소리 나게 내려놓더니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 실장이 마른침을 삼켜 내고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이거 큰일인데.”
대표의 입에서 흘러나온 짤막한 평가에 박 전무가 활짝 화색을 해 보이던 찰나였다.
“민현승한테 미안하게 됐어.”
말을 마친 전남일 대표는 김 실장과 눈을 맞췄다.
“김 실장님, 이거 아무래도….”
“예, 대표님.”
“해 볼 만한 싸움 같은데?”
그 말에 장내에 희비가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