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8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81화(380/482)
현승은 오랜만에 ‘당황’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지금 부탁드리는 거 아니고, 제 부상에 대한 합의금을 정중하게 요구하는 겁니다.”
멀쩡한 것만 확인하고 가려다가, 다소 흥미로운 대화가 오가길래 아는 척해 본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갈 걸.
‘귀찮게 됐네.’
합의금으로 곡을 달라니.
몹시….
발칙한 협박이었다.
“병원비에 숙소, 비행깃값까지….”
현승이 검지로 눈썹을 긁적이며 말끝을 흐리기도 잠시.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어깨를 들썩이며 덧붙였다.
“추후 치료비 정도까지는 같이 줄 생각이기도 했고.”
“다치며 발생한 병원비나 그로 인해 부수적인 것들은 지원해 주시는 건 당연한 거고.”
그러나, 이솔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피력했다.
“저는 추후 치료비를 곡으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승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쾌하지 않은 협박을 받았음에도, 기분이 불쾌하다고 느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쪽, 뻔뻔하다는 말 자주 듣는 편이지?”
“아니요?”
“그래? 자주 들을 것 같은데.”
묘하게 재밌달까?
“그럼, 뻔뻔한 걸로 할 테니까 주세요.”
그래, 지금처럼.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여성은 눈 아래가 퀭하고 입술이 잔뜩 부르튼 채였다.
한마디로 당장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데.
눈빛만큼은 총명하게 반짝거리고 있었고.
기는 한풀 죽었지만,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줄게.”
던지듯 뱉은 말에, 이솔은 물론이고 한슬기와 성우영이 놀란 숨을 들이켰다.
“진짜요?”
“응.”
이내 현승이 천천히 끄덕이던 고개를 “뚝” 멈추고는 덧붙였다.
“대신 멤버 다 버리고, 너 혼자 부르는 조건으로.”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단호한 목소리로.
그러고는 표정을 숨긴 채, 이솔의 표정을 살폈다.
“저도 힘들지만, 우리를 믿어 주는 대표님이 눈에 밟히고, 할머니가 눈에 밟히고, 멤버들이 눈에 밟혀서 티 한 번 내질 못했어요. 책임지기로 했고, 보여 주기로 했으니까.”
아까 들었던 얘기가 떠올라, 슬쩍 떠본 얘기였다.
물론.
이솔이 이 제안을 승낙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한슬기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도 그녀의 안위보단 뉴욕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스위트룸을 더 좋아하는 듯 보였으니까.
설령….
이솔이 말을 바꾸고, 본인의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거나 나쁠 게 없었다.
“아니요.”
당연히, 굳건한 바보처럼 뱉은 말을 지켜도 이상할 건 없었고.
“그런 조건이 붙는 곡이라면 안 받겠습니다.”
“그래, 그럼.”
“예? 너무 쉽게 오케이 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울며불며 잡아야 해?”
굳건한 바보는 못내 아쉽다는 양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눈치를 살폈다.
“그건 아니지만….”
현승은 모른 척 아예 등을 돌려 버렸다.
“그럼, 추후 치료비는 네 대표님이랑 얘기해서 합의서 작성하고 현금으로 지급해 줄게.”
알고 있었으니까.
“잠시만요! 저, 잠시만요….”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이솔은 뻔뻔하고 총명하며 절대 꺾이지 않을 의지를 지녔다.
“이왕 뻔뻔하기로 한 거, 한 번만 더 부탁드릴게요.”
이솔은 고통으로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침대에서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부디 웨이썬이 다 같이 부를 수 있게 해 주세요.”
현승은 그런 이솔의 얼굴 앞에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며 얘기했다.
“만약 두 가지 조건을 네가 받아들이거나 해낼 수 있다면 곡을 줄게.”
“설마 또 혼자 부르라는 건 아니죠?”
그러고는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내젓기도 잠시.
“웨이썬 버려. 첫 번째 조건이야.”
손가락을 하나 접으며 덧붙였다.
“그건 절대 안 된…!”
이솔이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현승이 금세 입을 여는 바람에 말허리가 잘려 나갔다.
“그룹명 바꿔. 너무 구려.”
그 말에 현승을 제외한 세 사람이 작게 “아….” 하고 탄식했다. 이 점에 대해선 따로 반박할 의지를 잃은 모양이었다.
이내.
현승이 나머지 손가락을 접으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조건은, 발성과 습관 고쳐 와.”
“어떤….”
“다른 애들 발성 엉망인 건 둘째치고, 넌 발성은 좋은데 모든 소절에 전부 밴딩을 넣어. 그건 다 인지하고 넣는 거야?”
“밴딩이요…?”
“밴딩 자체를 모르는 거면, 그냥 습관인가 보네.”
“제가 사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이솔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렇지만 크게 풀이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안 배운 것치고는 성량도 좋고 발성도 탄탄한 편이야.”
“감사합니다!”
“근데 네 목소리 자체가 매력적인 건 절대 아니야.”
어차피 그런 걸 신경 쓸 현승도 아니고.
“그런 와중에 밴딩을 모든 소절에 넣어서 부르니까 노래 자체가 올드하게 들려.”
“그래서 트로트를 하라고….”
“아마 굳어진 거라 고치기 어려울 거야.”
현승은 강경한 어투로 단정 지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절도 오는 사람이, 거듭 오는 거고.
사람은 뭐든 본인 편할 대로 습관을 고착하기 마련이다. 성대라고 뭐, 다르겠나.
“그래도….”
그리고, 뻔뻔한 의지가 고착된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칠 수 있어요.”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다.
* * *
빈센트는 현승의 일을 전해 듣게 되어, 대표실을 찾았다.
“그래서 잘 해결된 거야?”
“응, 잘 마무리했어.”
그는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사람으로서, 현재 ‘VINCIS’의 주가가 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좋지 않은 이슈가 생기지 않길 바랐다.
물론.
VINCIS 대표의 비서가 과잉 진압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만든 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문제는 아니다.
“합의하면서 입단속도 철저히 한 거지?”
하나, 그런 작은 소음마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현승이 “입단속?” 하고 되묻기도 잠시.
“곡으로 입을 막긴 했으니, 입단속이라면 입단속이지?”
고개를 잘게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 말에 빈센트는 “잘했네.”라고 대답하다 말고.
“뭐─?”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듯 들썩이며 벌떡 일어났다.
“왜 걔네한테 곡을 준 건데?”
“입단속 해야지.”
“꼭 곡으로 입단속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합의금으로 해도 될 일인데….”
그러고는 언변을 토하듯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걔네 듣자 하니, 한국에서 완전 무명 그룹이라며? 그런 애들한테 곡을 줄 이유가 없잖아.”
한참 잘나가고 있는 이때.
─라는 말을 삼켰다. 현승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재밌을 것 같아서.”
현승의 짤막한 대답에, 빈센트는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다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아.
저 녀석이 재미만 추구하는 바보라는 걸 잊고 있었네.
“그럼, 내 곡은?”
빈센트가 이번에는 전략을 바꿔, 입을 삐죽대며 물었다.
“언제든지 줄 수 있다니까 그러네.”
“그럼, 나 먼저 작업….”
“얘네 먼저 해치우고, 바로 해 줄게.”
늘 뒷전으로 밀리는 듯한 기분이 든 빈센트는 이번만큼은 자기도 양보하기 어렵다는 양 덧붙였다.
“나도 이번에 엄청 중요한 작업 요청 들어왔단 말이야. 기한도 정해진 일이라….”
“어차피 걔네한테 곡 안 주게 될 수도 있어.”
현승의 애매모호한 말에 빈센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안 주게 될 수도 있다고? 그건 무슨 말이야?”
“곡을 주는 대신 내건 조건이 있었거든.”
“입막음용으로 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저 입막음용으로 주기엔, 내 곡이 지닌 가치가 합의금 수준이 아니잖아.”
빈센트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발성 습관 다 고쳐 오면 준다고 했지.”
그러고는 이내 제법 흥미롭다는 양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발성 습관을? 기한은 얼마나 주기로 했는데?”
“우선 다친 거 회복할 시간은 줘야 하니까….”
현승이 말끝을 흐리기도 잠시.
“2주 정도.”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덧붙였다.
“못 받을 확률이 높겠네.”
“그런가?”
“나처럼 발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도, 지닌 습관 자체를 없애는 건 거의 불가능해.”
“그 말도 맞지.”
“그래, 성대라는 게, 편하게 써 오던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니까.”
빈센트는 다시금 상체를 뒤로 기울이며 나른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미국 와서 괜히 다치고, 곡도 못 받고 돌아가게 생겼네. 교훈은 좀 얻었겠어.”
“교훈?”
“세상이 제 맘처럼 쉽지 않다는걸.”
현승은 그 말에 반박하듯 되물었다.
“난 좀 쉽던데?”
“사실, 나도.”
두 천재가 농담을 주고받으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이내.
현승이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넌지시 내뱉었다.
“근데, 또 간절하면 이뤄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내가 새로운 삶을 살길 간절히 바라서 돌아온 것처럼.
* * *
어느덧 약속한 2주가 지나고.
현승은 다시 이솔… 아니, ‘웨이썬’을 자신의 작업실로 불러들였다.
빈센트는 자신도 궁금하다며, 굳이 굳이 함께 참석하겠다며 자리했고.
“힉.”
그 덕분에 웨이썬 멤버들은 더 긴장한 상태였다.
아아.
이솔은 빈센트 말고 제 옆에 서 있는 비서, 미셸을 보고 더 놀란 모양이지만.
그래도.
몸은 많이 나아진 듯, 안색은 좋아 보였다.
“서론은 접어 두고.”
현승은 어딘가 소란스러운 장내의 분위기를 휘어잡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두 가지 조건 내걸었던 거 기억 나?”
“네.”
“우선 웨이썬 버리라고 한 건, 이행했나?”
“네!”
이솔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하고는, 곧장 덧붙였다.
“그룹명은 ‘포웨이’로 변경했습니다.”
그 말에 현승이 턱을 긁적이며 작게 중얼거렸고.
“작명 센스가 영….”
“너도 마찬가지잖아.”
빈센트는 현승에게만 들릴 정도로 되받아쳤다.
“HS가 뭐 어때서.”
현승이 퉁명스레 맞받아치기도 잠시.
“그래도 웨이썬보단 나으니까, 넘어가고. 두 번째 조건은 말보단 직접 들어 봐야겠지.”
컨트럴 룸 내부에 녹음 부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부스 들어가서 불러 봐.”
제대로 들어 보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이내.
웨이썬, 아니, 포웨이 멤버들은 눈치를 살피다 말고 일사천리로 부스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섰다.
“1절만 들어 볼게.”
현승이 토크 백을 통해 전하고는 헤드셋을 뒤집어쓰자, 빈센트도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똑같이 헤드셋을 뒤집어썼다.
하나.
이솔을 바라보는 빈센트의 눈동자 위로는 아무런 기대조차 없었다.
‘밴딩이라….’
발성 습관은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의식해서 조금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분명 다시 거듭될 게 뻔하다.
그러니 습관일 테고.
머지않아 다소 촌스러운 인트로가 들려왔고.
─ 바쁘게 흐르는 시간 속, 그 속에 있는 널 봤어.
그저 그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내게로 오고 있는 걸까?
다음 타자도 별반 다른 건 없었다.
현승에게 요청해, 이들이 지금 부르는 곡의 기존 음원을 들어 보긴 했다만….
크게 달라진 건 느끼지 못했다.
조금 더 정직하다?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 네가 내가 와 준다면 나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것 같아. 그러니, 이제 뜸 그만 들이고 내 손, 내 손을 잡아 줄래?
랩 하는 애는 그나마 딕션이 들어 줄 만하게 호전된 듯 보였다.
목소리 자체도 나쁘지 않았고.
이윽고.
가장 기다려 온 이솔이 마이크 앞에 한 걸음 바싹 다가가 입술을 열었고.
─ 나는 언제든 여기 있을 테니, 와 주기만 하면 돼. 나는 네가 부르면 달려갈 테니, 넌 거기 서 있기만 하면 돼.
그와 동시에….
현승과 빈센트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문득 같은 기억을 떠올렸다.
“난 좀 쉽던데?”
“사실, 나도.”
그녀가 너무 쉽게 발성을 고쳐 온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