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8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83화(382/482)
현승은 퍽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찾아온 이는 총 6명.
보낸 곡은 총 5곡.
결국 남은 사람은 1명.
그러한 이유로….
모인 악기들은 입을 모아 강력히 피력했다.
“난 정말 욕심부리지 않고, 5번 트랙만 딱 부르겠네.”
문범재는 5번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고.
그래서인지 5번을 부르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다만.
중독성이 강하고 트랜디한 분위기인 3번 트랙은 경쟁이 치열했다.
우선 강하준과 서지니 그리고 정아린, 셋이 묘한 신경전을 벌여 댔고.
그런 혼란을 틈타, 윤제이는 2번을, 그리고 이효은은 4번을 선택했다.
사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들 진정하고.”
어차피 곡은 다시 재창조되고 있는 것을.
“알아 둬야 할 게 있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현승을 향했고.
“보낸 곡은 폐기 처분할 거야.”
일순 모든 이들의 얼굴 위로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문범재는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양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줄 알았지.”
역시 그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던 모양이다.
하나….
다른 이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대체 왜?’
의문이 머릿속을 휘감았지만, 나서서 묻는 이는 없었다. 어차피 현승이 그렇게 하겠다고 한 거면, 그렇게 될 거다.
번복하지 않을 테니까.
그저 마음이 조금 쓰리고, 안타깝고, 아쉬울 뿐.
“쩝.”
서지니가 참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쩝.”
현승이 그런 서지니를 따라 입으로 소리를 냈다.
엄청 미안한 건 아니지만.
원치 않게 실망감을 안겨 준 꼴이 되었으니 아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누굴 특정하고 맞춤으로 만든 곡이 아닌 만큼, 그 누구도 백 퍼센트 소화해 낼 수 있는 곡이 없을 거라 판단했고, 그래서 새로 다시 만들기로 했다.”
현승이 기뻐할 틈도 주지 않고 부연을 이어 나갔다.
“그때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답지 않게 실수를 범했다.”
영 못 들어 줄 수준은 아니라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곡이었다.
그러니, 실수가 맞다.
답지 않게 약한 소리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에겐 왠지 해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고작 약한 소리 한 번 했다고, 걱정으로 어그러진 얼굴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걱정돼, 바쁜 시간을 쪼개 가며 태평양을 건너왔을 이들이다.
제 부탁이라면 곧바로 달려와 두 손 두 발 걷어붙이고 도와줄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굳이 숨길 이유도 없으며,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곡 또한 줄 수 없었다.
“조만간 다시 A&R 통해 전달할 테니, 각자 여행이나 좀 즐기러 가지.”
말을 끝낸 현승이 미셸을 향해 눈짓했고.
“미셸, 배웅 좀.”
그들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축객령을 당한 이 상황에도 기분이 상해 보이기는커녕.
“저녁이라도 같이 먹게, 작업 끝나면 연락 주세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기다릴게요.”
끝까지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래.”
강하준의 말에 현승이 대충 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리기도 잠시.
“아.”
무언가 떠올랐는지, 문범재를 불러 세웠다.
“문범재 선생님, 아까 욕심 안 부리신다고 했죠?”
“그, 그러긴 했지….”
“참고로 다시 보낼 트랙에 선생님 곡은 없으니, 젊은이들을 위해 양보하세요.”
그 말에 문범재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한국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후배들 앞에서 체면을 지키기 위해 조급해 보이지 않도록 애써 왔지만.
문범재는 본인 귀에 ‘좋은 곡’은 절대 물고 놓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5번 트랙….’
그런 문범재의 귀에 하필 ‘5번 트랙’이 들어왔고.
그 곡만 아니었다면 후배들에게 양보해 주는 양 뒷짐 지고 물러나 있었을 거다.
하지만.
폐기하기로 결정된 이 마당에, 새롭게 만들어질 곡마저 전부 양보해야 한다니.
나이 많은 것도 서러운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나도 마음만큼은 청춘이고, 젊은이야!”
문범재는 끝내 참지 못하고 소리쳤지만.
얼마 안 가, 후회했다.
현승이 곧바로 받아친 말 때문이었다.
“대신 이번에 받은 5번 트랙 부르세요.”
“어? 정말?”
“예, 불완전한 곡이라는 걸 아시면서도 택하신 거잖아요. 선생님이 그런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그 말이 맞았다. 문범재가 5번 트랙을 고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5번 트랙은….
마치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리는 덤프트럭 같다고나 할까?
모든 트랙에 현승의 온전치 못 한 심리 상태가 녹아져 있었다면, 그 곡은 날것 자체였다.
그래서 더 끌렸다.
괜한 도전 정신 같은 게, 불쑥 튀어 올랐다. 그런 곡을 쓴 현승이 걱정되면서도, 참 이기적이게도 이 곡으로 같이 미쳐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저 흥분해서 미칠 것 같은 거 말고, 눈앞이 노랗게 번져 나갈 때까지 모든 걸 쏟아부어 보고 싶었다.
그래.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다니엘과 현승처럼.
“무엇보다….”
그때 현승이 다시 한번 입술을 열었고.
“선생님이 완전하게 만들어 주실 테니까.”
문범재는 소리 없이 미소 지으며 본인의 가슴팍을 가볍게 두드렸다.
“당연하지.”
그 모습이 퍽 듬직해 보일 따름이었다.
* * *
현승은 누구보다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우선.
포웨이에게 약속한 곡을 작업했고.
그 외로 LS 엔터에 새롭게 보낼 곡은 물론이고, 문범재가 부를 5번 트랙도 다시 한번 편곡을 마쳤다.
그동안.
빈센트는 몇 번이고 찾아와, 언제쯤 본인 작업을 해 줄 수 있냐며 닦달했고.
그런 그에게 포웨이 작업과 더불어 한국 악기들 작업까지 더해진 사실을 전하자….
“넌 진짜 나쁜 놈이야.”
입술을 댓 발 내밀고 간 뒤로는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신경 쓸 현승도 아니었기에 작업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미셸, 포웨이 내일 작업 1시로 잡아 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LS 엔터에서 보낸 계약서도 곧 도착할 테니 확인해서 결재 서류 올려 주고.”
“네, 알겠습니다.”
미셸은 오늘도 같은 정장 차림과 같은 얼굴로 똑 부러지게 대답만 할 뿐이었다.
일전에 그런 미셸을 향해 장난을 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실까요?”
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로봇처럼 안경을 추켜올리며 물어왔더랬다.
그 뒤로 장난치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로봇과는 사무적인 얘기만 하는 게 맞지.
“혹시 제가 확인할 서류가 있습니까?”
현승의 물음이 떨어지기 무섭게, 미셸은 옆구리에 끼워 놨던 결재판들을 내밀며 즉답했다.
“예, 작업하시는 일주일 동안 보류되어 있던 결재 서류들이 있습니다.”
그 모습에 현승이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리기도 잠시.
“하….”
갑자기 눈알이 뻐근해져 오는 느낌에 콧대를 지그시 눌러 압박했다.
“그건 그럼 제가 집 가는 길에 확인하겠습니다. 늦었으니, 이만 퇴근하시죠.”
그러고는 이내 결재판을 챙겨, 사옥 주차장으로 향했다. 본래 현승이라면 확인하고 집에 갔을 테지만….
[ 민 대표님, 당장 집에 안 들어올 시, 저번에 차마 다 못 찢은 만화책을 고구마 구워 먹는 땔감으로 쓸 예정이라는 것을 미리 고지 드립니다. ]현아로부터 온 협박 문자가 제법 살벌한 탓에, 더 늦어졌다간 정말 고구마를 맛있게 구워 먹고 있는 사진이 도착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 곧 집으로 향할 예정이오니, 너른 마음으로 선처 부탁드립니다. ]현승이 그런 여동생의 비위를 맞춰 주듯 답장을 보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 보면….
마냥 언제 오냐고 칭얼대던 시설이 귀여웠다.
현아는 투정 따위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사실을, 반복된 학습을 통해 깨달았고.
이젠 영악하게 자신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이마저도 보고 싶다는 투정일 테지만.
탁─!
이내 현승이 뒷좌석에 올라타자, 운전기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핸들을 고쳐 잡았다.
“자택으로 모실까요?”
그 물음에 현승이 “네” 하고 짤막이 대답하고는 결재판 위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 운전기사는 필요 없었지만, 김 엄마의 강제 고용으로 인해 생겨났다.
앞으로 필요해질 일이 많을 거라나, 뭐라나.
그래도.
지금처럼 집도 가야 하고, 결재도 밀린 상황이 되니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락, 사락.
고급 승용차와 고급 인력이 만난 덕분일까?
사락, 사락.
현승은 흔들림 없는 편안함 속에서 느긋하게 결재판을 확인해 나갈 수 있었다.
그때였다.
“어?”
별안간 현승의 눈매가 확 좁혀지기도 잠시.
“다시 사옥으로 가 주세요.”
“네?”
“지금 당장 차 돌리라고요.”
어금니를 아득 깨물며, 그에게 당장 유턴할 것을 지시했다.
지금 당장 만화책의 생존 여부보다 중요하게 확인해야만 할 일이 생겨 버린 탓이었다.
* * *
소피아는 찌뿌둥해진 몸을 기지개로 풀기도 잠시.
“이제 가야지.”
이내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섰다. 그녀는 김우현이 처음으로 뽑은 직원이었고.
소피아는 일이 끝나기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진득한 성향 탓에, 늘 퇴근이 늦어지기 일쑤였다.
“아, 피곤해….”
다크서클이 턱까지 어둡게 내려온 소피아가 로비에 접어들던 찰나였다.
끼이익─.
이 회사에 대표인 HS가 사옥 문을 박차고 들어왔고,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소피아는 멀찍이서 고갯짓으로만 인사를 전했다.
원래 같으면 사내에서조차 얼굴 한번 보기 어려운 대표이자,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핫한 인물인 만큼, 어떻게든 친근하게 다가갔을 테지만….
‘무슨 일이시지?’
왠지 뿜어내는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기에 쉽사리 다가갈 수 없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스쳐 지나가야겠노라 생각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터벅, 터벅.
소피아는 왠지 섬뜩한 기운에 고개를 들었고.
어째서인지.
HS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던 찰나였다.
“저기요.”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지금 빈센트 어딨는지 아십니까?”
HS는 실제로 자신의 앞까지 단숨에 다가와 자신을 붙들고 물었다.
“네? 빈센트 님이요? 어, 그, 그게… 개, 개인 작업실에 있을 겁니다.”
확실하진 않았다. 그를 사내에서 본 건 지금으로부터 약 8시간 전이었으니까.
하지만.
뭐라도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래.
설령 빈센트가 사내에 없어서 추후 자신에게 불똥이 튄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대표는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목덜미를 물어뜯을 짐승처럼 아슬아슬한 눈빛을 하고 있었기에 당장 목숨을 챙기는 게, 더 중요했다.
“감사합니다.”
이내 대표가 그 말을 끝으로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고.
“하아….”
소피아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순간 모든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그제야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잠식했다.
아아.
까딱 잘못하면 내일 사직서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 * *
소피아의 걱정과 달리, 빈센트는 실제로 자신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다만.
별안간 현승이 자신을 찾아와 따져 물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빈센트, 나한테 왜 미리 얘기 안 했어?”
“대뜸 밤늦게 찾아와서는 무슨 소리야?”
“진짜, 너무하네.”
“너무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니야?”
빈센트는 너무하다는 말에 왠지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와, 되려 따져 물었다.
“내 작업해 주겠다고 해서 투자하고 만든 레이블인데, 다른 사람들한테 밀려서 여태껏 새 곡 구경도 못 해 본 거 알아?”
다만, 현승은 그런 빈센트의 투정을 들을 여유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고.
“모르겠고.”
이내 손에 들린 결재판을 흔들며 격양된 투로 되물었다.
“이렇게 중요한 건 말을 했어야하는 거 아니야?”
이쯤 되니 빈센트는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니, 뭘 했어야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잘못한 것도, 실수한 것도 없었다.
“뭐, 뭘!”
빈센트는 현승이 흥분해서 달려드는 모습을 처음 봤기에 지레 겁을 먹었고.
“내가 너한테 대체 무슨 말을 안 했는데!”
괜스레 큰 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러자.
일순간 장내 안으로는 둘의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고.
“진짜 몰라서 물어?”
머지않아 현승이 결재판을 테이블 위로 집어 던지며 덧붙였다.
“회사로 롤드컵 OST 제작 요청건 들어온 거, 왜 말 안 했냐고!”
왜 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
그런 현승의 얼굴이 정말 오랜 동료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깊은 상심에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