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8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84화(383/482)
현승은 전생에서부터 소문난 ‘히키코모리’였다.
음주가무는 물론이고.
필요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인맥을 늘려나갈 생각도 안 했으며.
가족관계마저 소원했기에 작업을 하는 시간 외로는 ‘게임’에 미쳐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동물의 섬’이고, 또 다른 게임으로는 ‘롤’이 있었다.
정말이지.
청춘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때 ‘마스터’ 등급까지 찍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롤드컵 개최 측에서 OST 제작 요청을 했었다.
어떤 작업보다 떨렸고, 좋아하는 팀이 오르는 경기인 만큼 온 힘을 다해 만들었다.
그러던 중….
하필 ‘CS 엔터 대표 사망 사건’이 터지게 되면서, 계약은 무산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정식 공개는커녕, 휴지통에 박혀 버렸으니.
한(恨)으로 남은 작업이었다.
그래.
전생에서 그토록 깊게 서린 한(恨)을 드디어 풀 기회가 주어졌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사실이 현승을 격양되게 했다.
“회사로 롤드컵 OST 제작 요청 건 들어온 거, 왜 말 안 했냐고!”
사실 빈센트에게 화낼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빈센트는 자신이 ‘롤’에 미쳐있었던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테니까.
하지만.
제작 요청서 속 실연자 란에 ‘빈센트’가 적혀 있었기 때문에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래.
거듭 자신을 찾아와 작업을 닦달할 때 ‘롤’이라고 한 번만 언급해 줬더라면 모든 일을 다 재치고 나섰을 텐데….
“어…?”
모든 작업 과정 순서가 정해진 이때, 하필!
“롤드컵처럼 규모 큰 작업은 말을 해줬어야지.”
“아니, 내가 계속 중요한 작업 있다고 얘기했었잖아.”
빈센트는 황당하다 못해 억울했는지, 잔뜩 볼멘 목소리로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라며 중얼거렸다.
“그게 롤드컵인지 몰랐지.”
“들으려고도 안 했잖아!”
결국 빈센트는 참지 못하고 바락 소리쳤다.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이제 와서 나한테 따지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
현승은 더 할 말은 없었다 사실 빈센트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찾아와 자신을 닦달한 것도 사실이고.
중요한 작업이라고 했던 것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그래.
빈센트 탓은 아니다.
“됐고, 이 제안서 아직 유효한 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놓치고 싶지도 않다.
“어,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고 있었어.”
“네가?”
“그래, 그러니 이 시간까지 작업실에 있지.”
아니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작업이다.
“내가 할게.”
드디어 한(恨)을 풀 기회니까.
“너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악기들 많잖아.”
“괜찮아. 이 작업은 무조건 내가 할 거야.”
“무리야.”
“아니? 그냥 지원군 하나 부르면 돼.”
자신만만한 대답에 빈센트가 “지원군?”하고 되물었으나….
“있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짤막이 대답할 뿐이었다.
“아무튼 넌 그냥 목이나 풀고 기다리고 있어.”
빈센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기도 잠시.
“아, 올해 롤드컵 OST는 무조건 우리 VINCIS가 진행할 거라고 다시 한번 전해.”
사활이 걸린 일인 양,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덧붙였다.
“알겠지? 롤드컵 OST, HS가 만들 거라고.”
그러고는 그 말을 끝으로 작업실을 나서버렸다.
탁─!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빈센트는, 이내 서명이 완료된 제안서로 시선을 옮겼고.
“하여간, 진짜 종잡을 수가 없는 놈이야.”
터져 나오는 헛웃음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 * *
다음 날.
현승의 부름에 따라, 포웨이는 다시 한번 VINCIS 사옥 내 작업실을 찾았다.
그녀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얼굴 위로 웃음이 만개한 채였다.
이솔만 다소 초조해 보일 뿐.
미셸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터라, 알 수 없는 긴장감마저 안은 채 작업은 시작되었다.
“곡은 다 완성돼서 너네만 준비되면 바로 녹음 작업 들어갈 거야.”
‘완성’이라는 단어 하나에도 그녀들은 까르르거리며 좋아서 발을 굴렀지만.
현승은 그런 걸 봐줄 만큼 여유가 없었다.
“좋아할 시간에 들어보고 얼른 본인 파트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네네!”
이솔은 군기가 바짝 든 일병처럼 몸을 곧게 서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이솔보단 다른 이들이 걱정이긴 한데….
말했다시피, 현승은 현재 그걸 일일이 지적할 만큼의 여유가 있지 않았다.
“파트는 내가 임의로 나눴어. 각 인원이 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곡을 만들기도 했고.”
이내 현승이 트랙을 재생시키기 위해 마우스를 잡으며 덧붙였다.
“그러니, 파트 따위로 군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일종의 경고였다.
별 시답지 않은 걸로 시간을 뺏는다면, 작업 자체를 무산시켜버릴 거라는 경고.
“그럼, 각자 악보 들고 본인 파트 잘 들어놔.”
일전보다 더 무겁고 날카로워진 분위기에, 포웨이 멤버들은 그제야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
이내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스피커를 통해 아련한 짝사랑이 떠오르게 만드는 레트로풍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 ♬ ♬ ♬
곡은 전체적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멜로디로 이뤄져 있었다.
─ ♬ ♬ ♬
신디를 중심으로 디스코 비트와 함께 중간중간 펑키한 비트로 경쾌하게 변주를 주어, 곡을 환기했다.
─ ♬ ♬ ♬
한마디로 여자 아이돌이 선보일 수 있는 러블리하면서도 귀여운 포인트는 다 담은 곡이랄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포웨이 멤버들은 이미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입을 틀어막은 채 곡에 젖어 있었다.
탁─.
둔탁하고 날카로운 클릭 소리가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기 전까지는.
“각자 본인 파트, 제대로 들었나?”
현승의 허를 찌르는 물음에 다들 ‘아차!’ 하는 얼굴로 우물쭈물할 뿐.
자신 있게 들었다고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물론.
이솔은 곡이 시작된 이후로 줄곧 악보만 뚫어져라 봤으니, 당연히 들었을 테지만.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느라고, 파트까지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한 번만 다시 들어볼 수 있을까요?”
멤버들을 대신해 고개를 숙이며 부탁해 왔다.
현승이 그런 이솔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기도 잠시.
“그러던가.”
다시 한번 트랙을 재생시켰다.
이솔이 짊어지고 있는 ‘리더’라는 무게감이 다소 안쓰럽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사실.
곡 한 번 더 들려준다고 문제 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곡을 받아본 적이 처음일 테니 들뜨는 이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머리로만.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현승에겐 그걸 모두 다 이해하고 기다려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탁!
곡의 아웃트로가 전부 끝이 나기도 전에, 현승의 손에 의해 트랙은 맥없이 뚝 끊겼고.
“이제 각자 파트 먼저 녹음 따보는 걸로 하지?”
이내 현승이 손가락으로 가현을 가리켰다.
“저, 저, 저부터요?”
“응.”
“아, 그, 그게….”
중고 신인이라고 치부하기도 애매할 정도의 경험이 없는 신인인 만큼, 달랑 2번 들은 곡을 부르라고 하는 건 다소 잔인한 말일 수 있으나.
“못해도 되니까 우선 들어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현승답지 못한 처사일 수 있으나, 파트 배분 자체를 ‘이솔’ 위주로 잡아뒀으며.
소리가 독특한 편인 한슬기를 환기용으로 배치했으니 나머지 둘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래.
최대한 단점은 감추고, 장점을 살려야만 이 곡이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이 곡으로 포웨이는, 대표의 바람대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될 거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성공’을 하고 싶다고 했지, 진정한 가수로 거듭하고 싶다고 한 건 아니니까.
현승이 해 줄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다.
그마저도….
이솔이라는 악기에게 흥미가 생겨서이지 포웨이 자체에 흥미가 생긴 건 아니었다.
한 번의 기적으로 만들어진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이제 저들이 하기에 달린 거고.
“바로 시작할게.”
이내 무미건조한 그 말을 끝으로 가장 기대감 없는 녹음이 시작되었다.
* * *
한 편.
제이블은 창문 밖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다 실소를 흘렸다.
“아.”
그러다 웃음을 뚝 그치고는,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뭐 하고 있는 거냐.’
조울증이 온 것마냥 웃다가 정색하다가를 반복하던 그는, 이내 눈을 감았다.
별안간 제이블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구경하게 된 건, 다름 아닌 현승의 연락 한 통 때문이었다.
[ S O S ]그래, 고작 이 한 통에 바로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을 만큼 웃겼다.
자신을 호출한 이유는 말을 안 해 준 탓에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미국으로 떠나기 전 협업을 맺은 상태이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 그래서다.
현승이 걱정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협업 관계인 만큼 일 때문에 자신을 부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 가는 거다.
물론, 그런 게 아니라면….
꽈─악.
자신을 농락한 대가로 가만 안 둘 테지만.
머지않아.
제이블이 탄 비행기는 미국 땅에 착륙했다.
“아으.”
아무리 좋은 퍼스트를 타고 왔어도, 긴 시간 비행은 피곤한 법이다.
제이블은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풀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정말.
이래서 장시간 비행은 절대 안 하고 싶었던 건데.
‘별 볼 일 없는 일이기만 해.’
이윽고.
제이블은 이를 바득 갈며, 택시에 몸을 실었다.
.
.
.
VINCIS 사옥 앞에 도착한 제이블은 현대적이지 못한 구조물이라며 혀를 차고는, 사옥 문 앞에 호출 벨을 눌렀다.
마치.
사옥이라기보단, 은퇴한 거물 회장님댁에 온 기분이랄까.
끼이익─.
대체 누가 이렇게 세련되지 않게 인테리어를 한 건지.
“쯧.”
연신 혀를 차며, 구시렁거릴 때쯤 문이 열리고 은빛에 가까운 금발을 꽉 틀어 묶은 여성이 자신을 반겼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이블은 자신이 올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기다렸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저를요─?”
이미 여성의 얼굴에 시선을 빼앗긴 채라, 그런 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이런, 숙녀분을 기다리게 하다니, 죄송합니다.”
제이블이 별안간 목을 가다듬기도 잠시.
“저는 HS와 비즈니스 파트너인 제이블이라고 합니다.”
손을 바지춤에 대충 닦고는 최대한 점잖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여성은 그런 손을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네, 압니다.”
형식적이면서도 정형화된 톤으로 응대했다.
“대표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릴 테니 따라오시죠.”
제이블은 민망할 법도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다는 양, 손을 주머니 안으로 찔러넣었고.
또각또각.
앞서 걸어가는 여성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그래.
현승이 자신을 부른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자신을 먼 타국까지 오게 한 신의 뜻은 아마 저 숙녀분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