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8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87화(386/482)
어릴 적부터 미셸을 줄곧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고리타분’이었다.
그녀가 FM적으로 클 수밖에 없던 이유는.
부모가 다 교수인 만큼, 날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건 물론이고.
군인 출신인 할아버지로부터 늘 ‘얕잡아 보이기 싫다면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덕분이랄지─.
엘리트 코스를 밟고,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았다.
최초, 최소, 최고속은 모두 그녀를 위한 단어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이 서른에 세계적인 대기업 임원 비서이자, 전략기획실 총괄 실장까지 올랐다.
하나.
너무 하나 같이 뻔하고 진부해서 염증이 났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었으며, 수습은 늘 자신의 처리였고 더러운 이면을 직면해야만 했다.
‘빈틈투성이인 사람들뿐이군.’
할아버지의 가르침과 달리, 고위직일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빈틈을 생각보다 자주 드러냈다.
심지어.
그 빈틈을 메꿀 수 있을 만한 자질이 없는 사람뿐이었다.
그저 타고나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배불리 먹고 숨기는 법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스트레스는 날로 갈수록 쌓여 갔지만, 티 내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그저 침묵하고 해결에 집중했다.
물론.
그녀에게도 나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숨구멍이 있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그녀만의 은밀한 취미였다.
그건, 바로….
퇴근 후 반신욕을 하며 노래를 듣는 것이었다.
그게 왜 은밀한 취미냐고?
그녀가 듣는 플레이 리스트 속 가수는 전부 다르지만, 원작자는 같았다.
그 말인즉슨, 원작자를 덕질하는 행위랄 수 있었다.
“흠, 흠─.”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하지 않던 그녀가 유일하게 흥얼거리는 시간.
그래.
HS의 노래는 그녀를 흥얼거리게 했다.
그녀가 HS의 노래를 접하게 된 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어느 날이었다.
자신이 보필하고 있는 사내 이사가 껄껄거리며 보던 한 뉴튜브 영상이 시작이었다.
정확히 무슨 영상인지, 무슨 노래인 건지, 어떤 챌린지인지도 몰랐다.
콘텐츠에 관심도 없었고, 유행하는 것들은 안 보고 산 지 오래였으니까.
그러나.
이상하게 그날부터 영상에서 흘러나오던 곡이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았다.
퇴근 후, 아무 생각 없이 반신욕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릴 정도로.
결국.
궁금증이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야, 그녀는 영상을 다시 찾아봤고.
늘 ‘본질’을 따지던 그녀인 만큼, 어느 나라의 노래고, 그 곡을 부른 이는 누구고 그 곡을 만든 이는 누구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봤다.
그렇게 알게 된 게, HS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상하게 ‘HS’라는 인물이 끌렸다.
뭐랄까….
왠지 자신과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비슷하다고 느꼈달까?
번역을 맡겨 가면서까지 HS의 인터뷰라든가 HS와 관련된 한국 기사를 찾아봤을 때.
그는 남들에게 많은 빈틈을 보여 주면서도, 그게 빈틈처럼 느껴지지 않게끔 했다.
도발적이고, 진취적인 행보.
그러나 신비주의적인 사생활과 완벽주의자적인 성향.
우선.
세밀하게 조사한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보면 이슈 거리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인데, 대중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석가 성향을 띤 그녀로서는 HS라는 사람이 무척 궁금함을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그는 한국 사람이며, 개인적인 친분을 만들 수도 없는 사람이지 않나?
그렇게 그의 곡을 들으며, 상상에만 가둬 놓은 채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HS가 빈센트와 미국 내 레이블을 차린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이거다.’
그래, 그에 대해 깊이 알아볼 기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공고가 뜨길 기다리기도 잠시.
때마침 비서를 구한다는 공고를 발견하자마자, 다니던 곳에 사직서를 제출함과 동시에 바로 지원했다.
그녀답지 않은 돌발적인 행동이었다.
회사는 물론이고 부모 또한 그녀를 뜯어말렸다. 옳지 않은 선택이라고.
그러나.
무를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떨어질 거라는 걱정도 들지 않았다.
그럴 리 없으니까.
그래.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HS의 성향을 파악해, 시키지도 않은 비밀 유지계약서(*NDR)를 만들어 간 덕택인지 그 자리에서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여태껏 열심히 쌓아 온 학력과 커리어가 제대로 활용되는 날이 온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비서직을 맡게 된 미셸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필요하신 점이 있다면 뭐든 얘기해 주십쇼.”
그렇게 처음 마주하게 된 HS는 예상보다 어려 보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빈틈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냈다.
“예, 당장 크게 하실 일은 없고, 작업할 때만 귀찮게 안 하면 됩니다.”
그동안 만나 온 대표들은 으레 어떻게든 기선제압을 해 놓기 위해, 번거로운 잡무부터 떠넘기기 일쑤였다.
자신이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그런데.
HS가 자신에게 지시한 건 ‘작업할 때 귀찮게 하지 않기’가 전부였다.
물론.
전에 있던 회사보다 업무 강도는 심각하게 낮은 수준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늘 작업실 너머로 흘러나오는 곡이 신비롭게 들렸다.
대표로서 자질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는 한번 작업실에 틀어박히면, 다음 날이 돼서야 나오는 것으로 본인의 능력을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사무적인 업무를 조금씩 함께 공유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점차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본인의 성향을 과감히 드러내고, 치부를 보이는 일에 거리낌이 없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이다.
그래.
그는 자신과 닮아 있었다. 루틴은 없어도, 끈기와 독기로 가득 찬 완벽주의자.
특히.
본래 한국에서부터 사업을 해 온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수완이 좋고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개인적 이슈라고는 하나도 없는.
썩기는커녕, 고이지도 않은.
청정수처럼 맑은 샘물 같은 사람이었다.
단란한 가족사진을 집무실 책상과 작업실 책상에 올려놓고 수시로 바라보는.
자신의 치마단 아래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업무 외 개인적인 심부름은 절대 시키지 않는.
그런 사람.
그래서 그녀는 세계적인 대기업을 퇴사한 것도, 이제 막 각광받기 시작한 작은 레이블로 이직한 것도.
전혀 후회되지 않았다.
그래, 저 사람이라면 평생 보필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대표님, 작업 시간을 방해해 드려 죄송합니다. 중요한 얘기 중이신 것 같아 이제야 전달해 드립니다.”
“뭐죠?”
“아까 여동생분이 전달해 달라고 하고 가셨습니다.”
“뭐, 이런 걸 또….”
HS는 귀찮다는 말투와 달리 재빨리 가방을 건네받는 것은 물론이고.
곧바로 가방을 열어 확인하며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셸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원래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었기에, 이 말을 전할지 말지에 대해 망설임이 든 까닭이었다.
그러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은 집에 들어가라고 잔소리 좀 해 달라더군요. 작업도 좋지만, 사진 속 가족을 직접 보러 가시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그 말에 HS가 조금 놀랐는지 눈썹을 들썩이기도 잠시.
“예, 알겠습니다.”
짤막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셸은 그에 따라 인사를 전하며 작업실을 나왔고.
“어, 짐 보낸 거 잘 받았어.”
문이 닫히기도 전에 들려오는 통화 소리에 싱긋 미소를 머금었다.
다시 한번.
이직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 * *
현승은 곡을 만들기에 앞서, 생각에 잠겼다.
아니.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기억대로라면, 올해 시즌에는 그저 웅장함을 앞세운 주제곡이 발표되었을 거다.
곡명이 ‘TOP’이었나?
누가 봐도 최다 우승팀인 TP를 위한 곡이었다.
그래서인지….
꽤 화제성도 좋았고, 주제곡과 발표된 MV 영상 또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하나.
아쉽게도, 현승은 TP를 응원하지 않았다.
그 뒤에 가려진 DRY라는 틈을 응원했다.
특히, 그 팀의 주장인 듀엘을.
물론 DRY는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는 팀이었다.
턱걸이로 선발되는 건 물론이고, 아슬하게 이기며 어렵사리 올라갔지만 결국 결승 한번 가지 못한 그런 팀.
그러나, 현승은 알고 있었다.
올 시즌은 DRY팀이 우승할 거라는 걸.
‘직접 가서 봤으니까.’
최약체로 올라선 DRY가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TP를 꺾고 우승할 때, 그 쾌감은 시간을 뛰어넘었어도 잊지 못한다.
아니.
달리 말하자면, 듀엘이 TP의 주장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페이스를 꺾은 그 순간을.
물론.
TP 또한 대단한 팀이며,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현승은 포기하지 않던 DRY를, 듀엘을 응원했다.
그랬기에….
한번쯤 그를 향한 헌정곡을 만들고 싶었다.
탁, 타다다닥─!
그렇게 생각이 정리된 순간, 손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탁, 타다다닥─!
머릿속에 떠오르는 서사에 따라 비트를 깔고 멜로디로 승부수를 던졌다.
탁, 타다다닥─!
전생에서는 끝내 발표하지 못했던.
빛을 보지 못하고 버려져야만 했던.
이루지 못한 바람이자.
듀엘을 위한 헌정곡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 * *
야심한 새벽.
제이블은 자신이 만든 주제곡을 듣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헤드셋을 내려놨다.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자신 넘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곧장 현승의 작업실로 향했다.
그래.
이번만큼은 절대 지지도, 놓치지도 않을 거다.
홀로 거듭해 온 작업인 만큼 제이블의 걸음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터벅, 터벅.
고새 미셸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단, 얼른 현승과 승부를 겨뤄 담판을 짓고 싶었다.
그리고.
현승의 입에서 ‘네 곡이 더 좋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
분명 그랬는데….
─ ♬ ♬ ♬
작업실 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선율에, 제이블은 당찬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휙, 휙─.
마치 마에스트로라도 된 것마냥 공중에 손을 휘적이기도 잠시.
탁, 타다다닥!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바로 마스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현승을 멍하니 바라봤다.
탁, 타다다닥!
현승의 손은 거침이 없었고.
─ ♬ ♬ ♬
다시금 흘러나온 선율은 더욱더 거침없었다.
동시에─.
눈앞에 웅장한 세계관 속에서 긴박한 전투가 펼쳐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번에도 결국 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