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38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89화(388/482)
현승은 주먹을 움켜쥔 채 소리 없이 기쁨을 만끽했다.
꽈악!
그도 그럴 게, 현승이 만든 곡으로 주제곡 선정이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전해 듣게 되어서였다.
물론.
예상이 아니라, 확신하고 있던 일이었다. 제이블에게도, 비교해 본다던 후보곡에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다만.
롤드컵 결승 오프닝 무대를 자신이 만든 곡으로 장식한다 생각하니, 자꾸만 들떴다.
현승은 게임에 제법 소질이 있던 만큼, 한때 프로게이머를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하나─.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줄곧 결승에 오르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결승 오프닝 무대에서 선보일 곡이라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비로소.
그 바람을 이루게 된 셈이었고.
툭, 툭.
그때 현승은 자신의 작업실 소파에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빈센트를 깨웠다.
“인제 그만 일어나.”
그제야 빈센트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몇 시야….”
자다 깨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듣기 싫게 갈라졌다.
“벌써 대낮이야. 무슨 하룻밤 샜다고 이렇게 다 죽어 가?”
빈센트는 그 말에 잔뜩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되받아쳤다.
“단순히 하룻밤을 못 잔 거면 이러진 않겠지.”
“그럼?”
“너랑 녹음하느라 하룻밤을 새웠으니 이 모양이지.”
그러고는 악몽이라도 꾼 것마냥 급격히 어두워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제 겪었던 ‘다시’ 지옥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정말이지.
작업할 때, 그런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유독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광적인 것을 뛰어넘어, 어딘가 미쳐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
아이큐가 높은 나머지, 미쳐 버린 천재 과학자가 마지막 연구를 하는 것처럼 폭주했다.
성미에 어울리지도 않게, 급급해하는 모습부터.
원래처럼 목소리에 맞춰 곡을 편곡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곡에 맞추라고 하질 않나.
여하튼.
인생의 최대 역경이 새로이 갱신되는 순간이었다.
“3일이라길래, 곡 만드는데 3일이라는 줄 알았더니 녹음까지 다 합쳐서 3일일 줄이야….”
“그래서 3일 안에 보냈고, 오케이 났잖아. 중요한 건, 다 꺾어 버릴 거라는 마음이지.”
“뭐라는 거야.”
빈센트는 현승이 추상적인 말들을 늘어놓으며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다.
저런 모습이 영….
현승답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
그때 현승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탄식을 내뱉기도 잠시.
“주제곡 영상 제작 관련해서 담당자랑 얘기할 게 있는데, 연락처 좀 알아봐 줘.”
“굳이 영상까지 개입하려고?”
“이번에 곡 만들면서 머릿속으로 형상화한 장면들이 많아서 좀 전해 주려고.”
대체 언제 준비한 건지, 무언가 잔뜩 적어 둔 서류를 펄럭이며 부연했다.
쟤가 오늘따라 왜 저러는 거지?
아니.
이 작업에 왜 저렇게 집착하지?
그래.
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들이닥쳐서 왜 말 안 했냐고 따져 물을 때부터.
안 그래도 이런저런 작업으로 손도 모자란 사람이, 구태여 본인이 할 거라고 박박 우기는 것도 모자라 작업을 서두르고.
이젠 작곡 외로도 개입하겠다고 나서질 않는가?
‘이상해.’
혹시 연관된 사람이 있나? 아니, 그랬다면 현승에게 직접 작업을 요청했을 테고.
‘그럼….’
빈센트 머릿속에 떠오른 답은 하나뿐이었다.
“너 설마 롤드컵에 출전하는 선수 중에 좋아하는 선수가 있어?”
현승이 게임을 하는 모습이라던가, 선수를 응원하는 모습은 전혀 상상되지 않지만.
당장 현승이 집착하는 이유라고는 저것밖에 없었다.
“응.”
현승은 곧장 즉답했고.
“진짜?”
놀라서 재차 묻는 물음에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자들이야 으레 게임을 좋아하는 편에 속하니까 그럴 수 있지. 좋아하는 E 스포츠팀, 좋아하는 프로게이머가 있을 수….
“잠깐만….”
롤드컵 출전 선수 중에 여자 선수가 있던가?
롤이라는 게임에 관심이 많지는 않지만, 이따금 경기를 챙겨 봤을 적에 여자 선수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좋아하는 ‘남자’ 프로게이머를 위해 저렇게까지 한 거라고?
‘처음에도 의심하긴 했지만….’
이내.
빈센트가 심각해진 얼굴로 현승을 바라봤고.
“표정이 왜 그래?”
현승은 현재 어떤 오해가 만들어지고 있는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현승은 자신의 작업을 도와준 제이블을 공항까지 배웅해 주고자 했으나.
“난 미셸에게 배웅받고 싶은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미셸에게 부탁한 뒤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번 달은 미셸에게 잡일을 부탁했으니, 보너스라도 챙겨 줘야겠다.
“하─아.”
현승은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기대 젖혔다.
3일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곡을 만들고, 녹음하고, 마스터링을 끝내고는 더 나아가 영상에 들어갔으면 하는 스토리를 작성하느라 한숨도 자질 못했다.
그래서인지….
한차례 과정들이 끝나고 나니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집이나 가야겠다….”
현승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지잉!
밀물처럼 몰려오던 잠을 깨울 만큼 반가운 연락이 도착했다.
[ 안녕하세요. 레볼루션 게임즈 영상 제작을 맡은 레일리라고 합니다. 연락을 요청하셨다고 전달받고 문자 남겨 드립니다. 통화 편하실 적에 전화 주세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이왕 욕심부릴 거 제대로 부려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12년이라는 세월을 되돌아온 지도 어언 3년이 훌쩍 넘었고.
이전 삶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그 결과….
성공했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았으나, 주변 환경이 모두 달라졌다. 사람도, 지위도, 책임도.
또한.
다니엘의 사망일까지.
그러니, 이번에도 마냥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 DRY가 이번 시즌의 우승자가 될 거라고.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듀엘 선수가 영원한 숙명이라 불리던 페이스 선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어느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과거에 무언가가 바뀌면, 미래도 바뀌니까.
이번에는 시즌 주제곡이 바뀌게 된 셈이다.
아마.
본래대로라면 페이스 선수가 리더로 있는 팀 ‘TP’가 지난 시즌 우승자로서, 주제곡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모두 이번 시즌도 당연히 팀 ‘TP’가 우승할 거라 예상했다.
현승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나,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었다.
물론.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아쉽게도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다지만.
그들의 삶 속에 아주 사소하게나마 무언가 달라졌다면, 덩달아 미래 또한 바뀔 수 있다.
그게, 현승이 내린 ‘이치’였다.
하지만.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왜냐고?
현승은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듀엘 선수가 첫 우승을 거머쥐고 했던 말을.
─ 중요한 건, 다 꺾어 버리겠다는 마음입니다. 저는 다 꺾어 버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악착같이 달려왔고, 그 결과 오늘 비로소 다 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인터뷰는 현승 마음속 깊게 자리했다.
어떤 인터뷰보다 진부하지 않고, 멋있었다.
그래.
본인의 욕망을 다 드러내는 그 모습이 꽤 신선했다.
그때부터 듀엘이라는 선수에게 흥미가 생겨 후원했다.
아아.
물론, 그저 한 인간으로서.
“흐음….”
그 정도의 독기를 품은 사람이라면, 이번 생에서도 당연히 해내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무언가 마음이 안정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는 영상 제작에 개입하기로 한 거고.
또 하나는…….
톡, 톡.
현승은 생각 정리가 끝났는지,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김 이사님, 지금 제 집무실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내 전화가 연결되자, 비장한 표정으로 김우현을 불러들였다.
* * *
한인혁은 오늘도 해가 다 뜨고 나서야 커피를 사러 나왔다.
짤랑!
카페에 들어서자, 알바생은 알고 있다는 듯 바로 2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내어 주었다.
“늘 같은 거 맞으시죠?”
누군가 본다면 출근길에 잠을 깨고자, 사 먹는 줄 알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꼬박 밤을 지새운 탓에, 지독할 정도로 몰려오는 피곤함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툭.
커피를 받아 들고자, 픽업 데스크로 향하던 그때.
“죄송….”
누군가와 부딪쳐, 습관적으로 사과를 전하고자 고개를 든 순간 발견한 얼굴에, 한인혁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피곤해 보인다.”
부딪힌 상대방은 자신의 오랜 동네 친구인 김영웅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 제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걱정 고맙다.”
한인혁은 대충 대답한 뒤, 커피를 집어 들었다.
대화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이었다.
“인혁아.”
김영웅은 그런 자신을 다시금 불러 세웠고.
“너무 무리하지 마.”
속 편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알아서 할게. 연습하다 나온 거라, 먼저 간다.”
최대한 불퉁하지 않으려 했으나, 삐죽 날이 선 말이 튀어나온 탓에 한인혁은 다급히 몸을 돌려 카페를 빠져나왔다.
“하─아.”
누군가 보면 친구의 걱정을 튕겨내는 나쁜 놈으로 보일 테지만,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
김영웅은 숙명의 라이벌이자 절대 꺾을 수 없는 산이었으니까.
.
.
.
“이번에도 전교 1, 2등이 우리 반에 다 있네!”
“와아아아!”
“1등, 김영웅! 2등, 한인혁! 얘들아, 정말 고생했어.”
김영웅은 항상 1등이었고.
나는 늘….
녀석에게 가려진 2등이었다.
날 때부터 옆집에.
하필이면 초, 중, 고를 모두 같은 학교에 진학했고.
학원마저 같은 곳을 다니는 바람에, 녀석과 마주치지 않으려 다른 취미를 만들었다.
바로, 게임.
가끔 학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던 게임이었는데, 주변 친구들은 재능이 있다며 프로게이머를 해 보라 추천했다.
무엇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게임을 할 때, 살아 있음을 느꼈고 ‘승리’라는 단어를 보면 심장이 벅차올랐다.
천직을 찾은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항상 1등일 수 있는, 그런 천직 말이다.
그러나.
녀석이 또다시, 내 앞길을 막아 세웠다. 하필이면 김영웅이 나와 비슷한 시기에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것이다.
사람들은 롤 게임 역사상 진정한 ‘영웅’이 나타난 것이라며, 녀석을 응원했다.
또다.
그렇게 나는 녀석의 그림자 속에 가려졌다.
‘젠장.’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앞서나가려고 치면….
녀석은 자신이 엄두도 못 낼 기록을 세우며 더 높이 비상했다.
왜 저 녀석은 게임마저 나보다 잘하는 거야?
진짜 나보다 못하는 건, 정녕 없는 거야?
그래.
이런 부정적인 사고에 휩싸이고, 또 휩싸일 때마다 녀석이 내게 하는 말이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그 말은 나를 계속해서 자극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시험공부를 할 적에도, 운동을 할 적에도, 하물며 이젠 게임을 할 때마저도 녀석은 내게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무리해 봤자라는 건가?
정말.
무리해 봤자, 녀석을 꺾고 올라설 수 없는 건가?
“아니, 가능해.”
한인혁은 혼자 속으로 건넨 말에 단호히 답하고는, 남은 커피를 입에 다 털어 넣었다.
와그작.
그러고는 이내 얼음을 소리 내어 씹어 먹던 찰나였다.
“헐! 대박! 이번에 롤드컵 주제곡이 듀엘 선수한테 바치는 헌정곡이라는데?”
옆을 지나치던 남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만요.”
한인혁은 그런 남학생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빼앗아 내용을 확인했다.
툭─!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컵이 바닥을 향해 맥없이 추락했다.
[ 이번 시즌 롤드컵 주제곡, 작곡가 HS 참여! “듀엘 선수를 위한 헌정곡” 직접 밝혀… 화제! ]전혀 예상치 못한 기사를 보게 된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