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0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03화(402/482)
현승은 구태여 자리를 지키겠다고 나선 김우현을 돌려보낸 후에야 다시금 소파에 누웠다.
톡, 톡, 토토독!
그러고는 한참이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즐겼다.
최애 게임인 ‘리그 오브 레기온’이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했으니 안 해볼 수야 있나.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잘하고 계시려나?
얼마 전─.
아버지는 롤드컵 결승전을 보고 온 이후로 흥미가 생기셨는지 게임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셨다.
좀 의외였지만….
정성껏 알려드리는 건 물론이고, 열심히 키운 아이디를 흔쾌히 내어드렸다.
아마 얼마 안 가 관두실 테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적적하고 고요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즐거움이 되기를 바랐다.
【 승리하였습니다. 】
그래, 이 문구를 보면 절로 즐거우니까.
현승이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곧장 다음 플레이를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똑, 똑!
날카로운 듯 정교한 노크 소리로 보아하니….
“미셸입니다. 말씀하셨던 손님 왔습니다.”
제 비서인 미셸이, 손님을 데리고 온 길이었다.
“들어오세요.”
현승은 자연스레 옷깃을 다듬으며 뒷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를 맞이했다.
그래.
미셸 뒤를 따라 들어온 남성은, 구린 곡에 ‘HS’라는 이름을 섞은 것도 모자라, 80년대 MV 같은 영상을 찍어 올려 수치감을 안겨준 밥알이었다.
얼추 예상은 했지만, 탄탄하고 거대한 체구는 제법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어…….”
그런 남성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인사조차도.
“내가 시간을 멈추는 능력도 있었던가?”
현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아냥거렸다.
정말.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런데 저 남성은 홀로 시간이 멈춘 양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만 볼 뿐.
숨도 쉬지 않았다.
“미셸, 저 사람 땡 좀 해주세요.”
“다시 한번 얘기해 주시겠어요?”
미셸이 자신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아닙니다. 나가보시죠.”
그러고는 알겠다며 순순히 작업실에서 물러났다.
아마.
저러고선 문 앞에서 대기할 테지.
“에, 에, 엣….”
남성은 기침이라도 할 기세로 묘하게 일그러지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밥알, 기침은 제발 나가서 해주면 좋겠는데.”
그러나, 제 말에 그는 다시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밥알?”하고 되물어왔다.
“밥알 아니었나?”
“자말….”
“아, 맞다.”
현승이 그제야 떠올랐다는 양, 손가락을 튕기며 연신 “자말.”하고 중얼거렸다.
하나, 자말은 충격이라도 먹은 양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밥알…?”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인데,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현승은 그런 자말을 바라보다, 다시금 뒷주머니로 손을 가져가 안에 들어있는 것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몰라 준비한….
권총과 매우 흡사하게 생긴 가스총이었다.
현승이 제아무리 겁이 없는 사람처럼 군다 한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다.
‘어떻게 되돌아온 삶인데.’
더군다나 여기는 한국도 아니고, 권총 소지조차 합법인 나라다. 어떤 이가 총을 들이밀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밥알….”
그때 자말이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밥알….”
어지간히 상처를 입었나?
“밥알….”
그의 중얼거림이 다소 무섭게 느껴질 때쯤.
현승이 뒷주머니에서 조용히 가스총을 꺼내 들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장내.
등 뒤로 조심스럽게 가스총을 고쳐잡던 찰나.
“저를 위해 애칭을 지어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고개를 서서히 든 자말의 얼굴은 험악했지만, 눈빛만큼은 애정으로 반짝거렸다.
“밥알, 밥알… 계속 말하다 보니 입에 착 붙고, 혀의 굴림마저 마음에 드는데요?”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는데, 좀 더 무서운걸.
* * *
한편.
자말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토록 갈망했던 HS가 제 앞에 있다니 말이다.
그가 소파에 앉아서 얘기 좀 하자며 손짓하는 것도.
자신이 만든 곡과 영상을 신랄하게 깎아내리는 것도.
한없이 꿈 같았다.
“이따위 곡에 내 이름을 넣다니, 용기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객기라고 해야 할지.”
HS의 혀는 날카로운 비난을 쏟아냈지만.
“용기 있는 놈으로 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런 말은 아니고….”
“칭찬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아니, 칭찬이 아니라….”
자말의 귀에는 모조리 다 좋게만 들렸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HS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술을 열자, 자말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귀를 쫑긋거렸다.
“왜 하필 나냐?”
그 물음에 자말은 대답 대신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너 래퍼잖아. 차고 넘치는 래퍼들 다 재치고, 왜 하필 나를 가사에 넣었냐고.”
자말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기 싫은 건 아니다. 그저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려면….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까.
그래.
내가 태어났을 무렵 즈음.
우리 집은 다 쓸어가는 빈민촌이었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아빠라는 존재는 없었다.
대신.
청력을 잃은 채, 몸져누운 엄마만 있을 뿐이었다.
학교생활이라는 건 꿈꿔본 적도 없었다.
그것도 배가 불러야 할 수 있는 생각 아닌가?
당장 오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나에겐, 돈을 버는 일이 가장 우선순위였다.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구걸도 해봤고, 구두도 닦아봤고,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주유소부터 먼지가 쾌쾌하게 쌓인 공장에서 궂은일도 해 봤다.
하나.
어린 나에게, 흑인인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는 곳은 아무곳도 없었다.
결국, 점차 나쁜 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돌이키고 싶어도.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난 가난해야 하고.
왜 난 아빠가 없고.
왜 난 엄마마저 아프고.
왜 난 흑인일까?
늘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였다. 그러다 보니, 늘 그 부정의 화살촉은 엄마를 향했다.
어차피 귀가 안 들리는 엄마였기에 자신이 하는 말은 들리지 않을 테니까.
미워도 하고.
원망도 하고.
소리도 질렀다.
그러나 엄마로부터 돌아온 말은 없었다.
당연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더 망가져야 끝이 날지 모르겠는 위태로운 삶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친구 놈 하나가 뜬금없이 뉴튜버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때의 난 녀석을 비웃었다.
네가 뉴튜버를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누가 봐주기나 할 것 같냐고. 가당치도 않은 소리 할 거면 돈이나 벌라고.
녀석은 비난하는 내게 화를 내지 않았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돼.”
대신 멋쩍은 양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그래.”
그 말에 괜스레 화가 울컥 치밀었다.
제대로 살아본다고?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놈이 제대로 살고 싶다고 그게 될 리가 있냐고.
나라고 제대로 안 살고 싶었겠어?
당장 오늘 먹을 게 없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면서 제대로 산다니?
꿈 같은 소리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는데, 놈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듯 더 이상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
길거리에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영상 편집을 배우며 뉴튜버를 하고 있다고.
‘얼마 안 가, 돌아오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녀석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 뉴튜브를 계속해서 업로드했다. 오늘도, 내일도.
콘텐츠는 별거 없었다.
그냥 전 세계 곡을 들으며, 그 곡에 대한 감상평을 혼자 떠드는 것뿐이었다.
‘이런 걸 누가 봐준다고.’
하나, 녀석은 그런 제 조롱을 비웃듯 꾸준히 뉴튜브를 업로드했고 점차 인기를 얻게 되었다.
어느 순간.
세계 각지 레이블에서 자신들의 소속 가수 노래도 해 달라며 제안서가 밀려들 정도였으니까.
나는 놈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이제 좀 제대로 사는 것 같냐고.
그러나.
그 물음은 이상하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제안서에 들은 곡을 하나씩 들어보더니 거절에 대한 의사를 밝히는 녀석에게 이해할 수 없는 양 물었다.
“근데 왜 이 제안은 안 받아?”
“곡이 별로여서.”
“그래도 돈 주는 거 아냐?”
녀석은 처음 뉴튜버를 하겠다고 얘기했던 때처럼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내가 들었을 때 좋고, 행복한 곡만 하고 싶어서.”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놈은 지금 제대로 살고 있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그게, 가능한 일이었구나.
“이왕 온 김에, 오늘 촬영 같이 안 할래?”
녀석은 표정이 급격히 굳어가는 내게 대뜸 함께 촬영할 것을 제안했다.
싫어.
그렇게 얘기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산다는 게 뭔지, 얼핏 이라도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은 정말 뒤지는 곡 하나 들고 왔어. 심지어 무대 영상이니까 눈도 즐거울 거야.”
녀석은 촬영이 시작되자 눈을 반짝이며, 오늘 들어볼 곡에 대해 부연했다.
그 모습이 꽤 신나 보여서 잠자코 지켜봤다.
“K-POP이라 가사는 번역본을 자막으로 띄울 건데, 그래도 충분히 같이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가만히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했다.
K-POP.
사실 그 말에서부터 흥미를 잃은 채였다.
곡이 좋아 봤자지. 하물며 K-POP이라면.
달칵.
아무런 기대도 없는 나와 달리, 녀석은 잔뜩 신난 얼굴로 헤드셋을 뒤집어쓰며 영상을 재생했다.
─ 한바탕 시끄러운 세상이에요. 그대는 늘 고요 속에 살겠죠.
시작된 영상 속에는 한 남자가 새까만 천으로 눈을 가린 채 곡에 맞춰 몸을 휘적거렸다.
저 남자가 부른 건가?
가려놔서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앳돼 보이는 것과 달리 목소리는 사포처럼 까끌거렸다.
─ 어쩔 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서럽게 울고 싶은 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원 없이 울었었죠.
놈이 편집해 둔 덕분에 가사가 영어로 번역되어 나오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아마 당신은 몰랐을 거예요. 그래, 미워했었어요. 그냥 이건 전부 세상 탓인데.
압도적인 사운드와 영상 속 남자의 손짓에 시선을 다 빼앗겨 버린 까닭이었다.
─ 우리 살자고 되뇌던 밤에, 꼭 당신처럼 고요했던 밤에 난 들었어요.
정확히 배운 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영상 속 남자가 휘적거리는 손짓은 분명 수어였다.
─ 서럽게도 흐느끼던 당신 목소리, 당신처럼 고요한 양 모른 체 했어. 등 돌리고 눈 감고서 잠든 척했어.
대체 왜 수어로 퍼포먼스를 꾸민 건지는 몰라도.
─ 고요할 걸 알면서도 말할 걸 그랬어. 내가 와서 미안하다고. 지금에서야 못다 한 말을 읊조려 봐요.
이상하게 무언가를 얘기하고자 싶은 듯한 그의 손끝으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 우리 살자, 살자고. 되도록 덜 울고 기왕이면 자주 웃으며.
나는 눈을 감고 곡에 조금 더 빠져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들려오는 음원 속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울분을 터트리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세상을 향해.
그리고.
자신을 향해.
─ 아름답게 살려면 싸워야 한다던데, 내가 대신 싸울 테니 부디 우리 살자, 살자고.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떠, 영상 속 남자를 바라봤다.
옆에서 놈은 무대 연출이 어떻고, 곡의 구성이 어떻고 잔뜩 흥분해서 떠들어 댔지만.
그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 우리, 살자고….
화면에 떠오른 가사처럼.
그냥.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
나도, 내 친구 놈처럼.
그리고.
저 남자처럼….
─ 존경하는 나의 베토벤에게 이 무대를 바칩니다.
엄마에게 바치는 무대를 서 보고 싶어졌다.
나는 그 길로 집을 향했다.
엄마를 끌어안고, 그냥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 우리 살자. 제대로, 정말, 제대로 살아보자.”
어깨에 파묻힌 채 중얼거린 탓에 뭐라고 한 지 모를 테지만.
엄마는 마치 그 말에 그러자고 대답하는 양 등을 다독거렸다.
그날부터 모든 삶이 바뀌었다.
진작에 은퇴하고 햄버거집을 차린 형님에게 부탁해 아르바이트로 정직하게 돈을 벌고.
하루도 빠짐없이 곡을 만들고, 영상을 올렸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HS는 작곡가였다. 그것도 제법 실력 좋은 작곡가.
아무렴 상관없었다.
자신을 제대로 살아보게끔 해준 사람이니까.
“밥알, 내 말 듣고 있냐?”
그런 사람이 내 앞에 있다.
“왜 하필 나냐니까?”
이유라면 너무 차고 넘쳤다.
성공.
명예.
돈.
그는 모든 걸 갖추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게 전부가 아니었다.
HS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동경하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그는 멋진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서도 제대로 사는, 그런 사람.
“그냥….”
자말은 그 많은 말을 삼킨 채,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잘생겼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