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0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05화(404/482)
현승은 현아의 연락을 받자마자, 작업을 내팽개친 채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허억, 허억….”
분명 차를 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음에도 이상하게 숨이 벅차올랐다.
띠리리릭!
집 안으로 들어선 현승은 곧장 거실에 서 있는 현아를 지나쳐, 컴퓨터가 있는 제 방으로 향했다.
끼이익─.
문을 열자, 게임에 잔뜩 열중한 아버지가 보였다.
청력을 잃으신 만큼 인기척을 더 잘 느끼시곤 했는데, 지금만큼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
곧장 뒤따라온 현아가 작게 한숨을 폭 내쉬며 말했다.
“오빠가 좀 말려봐. 요 며칠 저러고 계셔.”
“일평생 술, 담배도 입에 안 대시고 중독이라는 걸 모르고 사시던 분이 저러는 거 보면, 게임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야.”
현아는 그런 제 등짝을 떠밀며 부추겼다.
“그러니까 좀 말려보라고!”
그러나 현승은 굳게 다리를 붙이고 서서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봤다.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셨겠어.’
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
형평상 대학은 꿈도 꾸지 않아봤기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기술을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죽어라 게임만 했다.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으니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그래.
그때는 게임이 삶의 전부였고.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점차 방문을 열고 나가는 날이 줄어들고.
중독이라는 벌레는 나를 좀 먹고 자라났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한 번도 타박한 적 없었다.
그저….
방문을 열고 뒷모습만 바라보다 문을 닫았을 거다.
탁─.
지금의 나처럼.
“오빠!”
현승은 현아의 등을 떠밀어 방을 나왔다.
현아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무랐다.
“말려야지! 진짜 중독되시면 어쩌려고!”
“저러다가 말겠지.”
“오빠도 저래본 적 있어서 알 거 아냐!”
“그래, 내가 해봤으니까.”
현승은 완강한 어투로 선을 긋듯 딱 잘라 덧붙였다.
“저러다가 마실 거야.”
그래, 아버지도 삶이 적적해서 잠시 소통의 창구를 찾으러 나가신 걸 거다.
아들은 일로, 딸은 학업으로.
텅 빈 이 집에서, 연고지 없는 미국이란 땅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셨을 테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나도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다려줘야겠지.
.
.
.
어차피 얼마 안 가 관두시겠지.
그래.
그러다가 마시겠지.
톡톡.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 아버지, 나와서 식사하세요.
일부러 며칠간 집에 일찍 들어와 아버지를 살핀 결과.
아무래도 중독이 확실해 보였다.
밥도 거르시려고 하다 보니, 현아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걸 컴퓨터 앞까지 가져다주길 일쑤였고.
─ 잠시, 잠시만.
식사하자는 자신의 제안에도, 아버지는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한 채 게임에 몰두했다.
스─윽.
현승은 그런 아버지를 뒤에서 지켜보며 기다렸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버지는 게임을 잘 못하셨다. 반응 속도도 느리고, 전략적으로 하실 줄 몰랐다.
하물며 사람들과 소통하며 하실 수도 없으니….
【 패배하였습니다. 】
이건, 아주 당연한 결과였다.
톡톡.
현승은 게임이 끝난 것을 확인하자 아버지를 재촉했다.
─ 얼른 식사하러 가요.
게임 채팅창 위로 패배의 원인이랄 수 있는 아버지를 향한 욕설과 비방이 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세 가족이 식탁 앞에 둘러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쿡쿡.
현아는 계속 자신을 옆눈으로 째려보며 옆구리를 찔러댔다. 아버지를 말려보라는 사인일 터였다.
“큼, 흠.”
현승은 괜히 멋쩍게 헛기침해대고는 소불고기 한 점을 아버지 밥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스윽.
그와 동시에 놀라서 고개를 든 아버지와 시선이 맞부딪쳤고.
─ 아버지, 게임은 좀 재밌어요?
잔잔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 응, 시간도 빨리 가고 손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
아버지의 대답에 현승과 현아는 동시에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자식들의 부재 속에서 아버지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을 거다. 무언가를 해 보려 해도 청각 장애인에게는 다 힘든 일이었을 테고.
그러니.
더더욱 게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시간을 죽이기도 좋고.
귀로 듣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현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애꿎은 밥알을 깨작거렸다.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새 친구들을 사귀느라.
일하느라 바쁜 오빠를 걱정하느라.
이런저런 핑계들로 아버지에게 소홀했던 것에 대해 죄송스러워서 눈물이 난 까닭이었다.
‘으유.’
현승은 그런 현아를 옆눈으로 훑어보고는, 아버지 몰래 조용히 티슈를 뽑아 건넸다.
그때.
아버지는 무언가 더 하실 얘기가 있는지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모두 착한 것 같아.
─ 네? 친구도 만드셨어요?
─ 응, 다들 부모님 안부도 물어주고 뭐 하고 사는지 근황도 물어주고, 요즘 애들답지 않게 우리 아들처럼 착한 애들 같아.
─ 아버지, 그건….
현승은 현기증이 나는 듯 눈앞이 노래져서 말끝을 맺지 못하고 손을 맥없이 내려놨다.
‘안부나 근황을 묻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뒷말은 냉수 한 입과 삼킨 채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 저희 오랜만에 바람 쐬러 나갈까요?
아버지에게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드려야겠다.
* * *
현승은 오랜만에 아버지와 단둘이 집 밖을 나섰다.
오전이라 그런지 공원 산책로는 한적했다.
저벅, 저벅.
걸을 때마다 고운 모래 자갈이 발에 밟혔다. 두 부자는 아무런 말 없이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바람이 불었고.
땀을 흘리며 러닝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까지.
이따금 여러 사람이 부자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저벅, 저벅.
그러나 쉽사리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게임을 하지 마시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버지는 게임으로 그나마 홀로 고독하고 적막뿐인 시간을 이겨내고 계신 걸 텐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혹시 산책 같은 취미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고 말을 해 보려 했지만….
움찔.
이따금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인기척에 놀라는 아버지에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별안간 아버지는 걸음을 우뚝 멈춘 채, 벤치를 가리켰다. 잠시 앉아서 쉬어가자는 말이었다.
털썩.
현승이 그런 아버지를 따라 벤치에 앉자, 아버지는 특유의 인자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 아빠가 게임만 하는 게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자신이 왜 뜬금없이 나와서 걷자고 했는지.
현승은 무어라 대답 대신 멋쩍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 이제 안 하마.
그러자 아버지가 먼저 다시 손을 휘저어 말을 이었다.
─ 아빠가 돼서, 자식들을 너무 걱정시킨 것 같아 부끄럽구나.
─ 아니요, 게임 하셔도 돼요.
현승은 그런 아버지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 대신 건강을 해칠 만큼은 말고요. 밥은 제때 드시고, 잠도 제때 주무시고.
그러고는 주름진 손을 맞잡으며 덧붙였다.
─ 가끔은 이렇게 저랑도 같이 걸으러 나오고.
아버지가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기도 잠시.
─ 그래, 그러마.
내리쬐는 햇살처럼 따사롭게 웃으며 답했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은 꽤 근사해 보였다. 누군가의 아빠로만 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 혹시 아버지는 재혼 생각은 없으세요?
이내 현승은 오랫동안 묵혀왔던 물음을 건넸다.
절대로 하지 못했던 물음이기도 했다. 먼저 간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 아버지 또한 그랬을 거다.
─ 저는 괜찮으니까, 이런 데 가끔 나와서 마음에 드는 여성분 만나면 같이 걷기도 하시고, 커피도 한잔하시고 그래요.
그러니 현승이 먼저 말을 꺼내 든 거다. 분명 아버지는 자신에게 죄스러워서라도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이니까.
─ 아들이 다 컸나 보다.
그런 제 말에 아버지는 제법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그런 제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마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종일 게임만 하는 아버지를.
집에만 있는 아버지를.
자식만 기다리는 아버지를.
걱정해서 해 보는 소리라고.
─ 돌아가신 엄마 때문에 재혼은 못 하시겠다면 연애라도 해 보시는 건 어때요?
하지만 진심이었다. 아버지에게 늘 아버지이기만을 바라는 건 자식들의 욕심이니까.
─ 너희 엄마 아니면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단다.
하나, 아버지의 얼굴 위로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는 건 오직 자식들 때문만은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여 더욱 맘이 쓰였다.
─ 아버지, 혹시 모르잖아요.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해 줄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죠?
자식들에게 옭아매며 사는 것도 싫지만 고작 그까짓 이유로 아버지가 움츠러드시는 건 보기 싫었다.
다시 돌아온 이상.
그 꼴은 절대 보지 않을 거다. 그러니 연구소를 찾아갔던 거고, 막대한 투자금을 대는 것이다.
그래.
혹여나 희망 고문을 하는 꼴이 될까 봐 아버지에게 지금 당장 말할 수는 없지만.
─ 그리고 또 기적처럼 아버지 청력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 그것참 기적 같은 일이구나.
─ 제가 살아보니까, 기적이라는 게 참 불현듯 일어나기도 하더라고요.
어디선가 기적을 만들어 내기 위해 힘쓰는 이들이 있다.
현승은 그들이 기적을 이뤄내기 위해 힘쓰고 있고.
─ 그러니 가끔 이렇게 공원에 나와 걷기도 하시고, 게임도 하시고, 맛있는 것도 드시면서 기적을 기다려보자고요.
미약하지만 그 힘이 모여 기적이라는 형태를 점차 갖춰가고 있는 단계였다.
─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머지않아….
내가 다시 살아갈 기적을 선물 받은 것처럼.
아버지에게도 꼭 기적을 선물해 드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