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1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19화(418/482)
현승은 모두가 떠난 작업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사라 스튜어트가 한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어지럽힌 까닭이었다. 대체 무슨 말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라 스튜어트는 VINCIS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스틴이 사라 스튜어트를 한낱 상품 정도로 취급했다면, 제 발로 알아서 나오겠다는데 구태여 말릴 이유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스틴은 사라 스튜어트라는 아티스트 자체를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실.
세계적인 유니스 뮤직 그룹을 이끄는 대표로서 회사의 번영과 이윤을 좇을 수도 있을 텐데.
그만큼 사라 스튜어트를 아낀다는 방증이겠지.
그런데.
그런 사라 스튜어트를 어떻게 데려올 수 있겠나.
성우영의 낡고 펄럭이는 정장 소매를 본 이상….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성우영과 오스틴의 상황은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성우영에게 포웨이는 자신의 전부일 거다.
없는 와중에도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
반면.
오스틴은 사라 스튜어트가 전부는 아니었다.
그가 이끄는 유니스 뮤직 그룹에는 유명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유니스 뮤직 그룹을 통해 많은 이들이 곡을 유통하고 있으니까.
사실.
사라 스튜어트 한 명 빠진다고 해서 큰 타격도 없을 테지.
하지만.
직접 발굴해 내고, 키워냈다는 사실은 성우영과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을 썼을 테고.
“휴, 복잡하네.”
현승은 사라 스튜어트를 어떻게 잘 타일러야 할지,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별안간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추후 다시 얘기하자며 보내긴 했지만.
좀처럼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네 옆에 있고 싶어서 그래.”
근데 이 말은 왜 계속해서 떠오르는지.
똑, 똑.
별안간 들려온 익숙한 노크 소리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 들어오라고 대꾸했다.
“대표님.”
미셸일 테니까.
“급하게 연락이 들어왔는데, 혹시 지금 바로 대표실로 연결해 드려도 될까요?”
미셸의 물음에, 현승은 아무런 물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머릿속이 복잡해,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럼,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현승이 집무실 책상에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던 찰나.
“대표님, 외람되지만 한 마디 올려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시죠.”
미셸이 물러나려던 걸음을 멈춰 세운 채 현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현승은 이미 정신이 빠진 채였기에 대충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를 울리지 마세요.”
“예?”
“너무 기다리게도 하지 마시고.”
“그게 무슨….”
그렇게 말한 미셸의 얼굴이 한층 부드럽게 풀려있었다.
사람 외형을 한 로봇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한결같은 표정만 짓던 미셸이었는데.
저런 얼굴은 본 적이 있던가?
“한 마디만 올린다는 게 다소 길어졌네요. 이만 나가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이내 미셸은 다시금 상투적인 모습으로 대표실을 나섰다.
대체 무슨 말이지?
설마 사라 스튜어트에 관해 얘기하는 건가?
미셸이 내 개인적인 일에 첨언한 적이 있었나?
따르르르릉.
전화 벨소리가 아니었다면 한참이나 넋을 놓을 뻔했다.
딸칵.
머지않아 현승이 전화기를 귓가에 가져갔고.
─ 오랜만입니다.
상당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휴대폰으로는 연락이 닿질 않아서, 혹 조만간 찾아뵙고자 하는데 일정 괜찮으실까요?
오스틴 데이비드.
“예, 오랜만이네요.”
사라 스튜어트가 소속된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였다.
* * *
현승은 오스틴으로부터 온 연락을 받고, 바로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가 왜 돌연 만나자고 연락이 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사라 스튜어트.
그녀로부터 이적하겠다는 얘기를 들어서겠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건만, 그 급한 성격에 결국 참지 못하고 얘기한 모양이다.
“큼, 흠.”
자신이 꼬드긴 것도 아니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이 자리가 좌불안석처럼 느껴지는 건지.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오스틴은 늘 그랬듯 멀리서도 보일 만큼 화려한 수트를 입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푸른색 수트에 은은한 회색빛이 반짝거리는 넥타이라.
‘눈부시네.’
저 나이에 소화하기란 영 쉽지 않은 차림이다.
물론.
내 나이라고 할지라도, 용기가 좀 필요하고.
칙, 칙.
오스틴은 앉으라는 내 말에 별안간 작은 스프레이 통을 꺼내 소파에 뿌리더니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아.
잊고 있었다. 오스틴은 지독한 결벽증이라는 걸.
늘 그에게는 향수 냄새 대신 알코올 향이 진동했다.
오죽하면 ‘알코올’이라고 번호를 저장해뒀을까.
“미리 소독 좀 해둘 걸 그랬습니다.”
현승이 그런 오스틴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아냥은 아니고,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그만큼 안 본 지 오래되었기에, 결벽증이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닙니다. 직접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요.”
이내 소독작업을 끝낸 오스틴이 소파에 앉았다.
아직 제대로 얘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 달리 조금 더 무게감이 실려있었다.
아니.
본래 무게감이 있던 사람인데, 자신에게만 다소 가볍게 대해준 걸지도 모르지.
그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던 처지였고.
지금은….
자신으로부터 뺏기지 않게 지켜야 할 테니.
물론.
빼앗아 가지 않을 테니 걱정말라고 할 참이다.
사라 스튜어트는 곡 준다고 잘 타일러 맘 다잡게 할 테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사라, 데려가시죠.”
오스틴이 꺼낸 첫마디는, 사라를 데려가라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되물었다. 그에게 사라 스튜어트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다.
그런데 넙죽 데려가라고 직접 찾아와서 얘기한다고?
그렇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사라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려는 거거나.
혹은,
데려가되, 이후 유니스 뮤직 그룹과 연도 다 끝이라고 으름장을 놓거나.
차라리 전자면 좋을 텐데.
예전에야 아쉬운 거 없으니,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지만.
미국에서 레이블을 운영하게 된 현시점으로 유니스 뮤직 그룹과 척을 치는 건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만한 일이었다.
작곡가일 적 맺었던 터무니 없는 유통 계약 비율을 계속 이어와 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사실 꼭 유니스 뮤직 그룹이 아니라도 받아줄 유통사는 많겠지만.
유니스 뮤직 그룹이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따라갈 곳이 없을 터.
이제 개인이 아닌, 한 회사의 대표가 된 이상 리스크가 갈 만한 행동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 계산도 못 할 만큼 앞도 뒤도 없는 놈은 아니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사라 스튜어트를 VINCIS에 영입해 달라고 부탁드리러 온 겁니다.”
그렇게 말한 오스틴의 눈동자에는 정말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말간 탓에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랄까.
“사라 스튜어트가 유니스에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되었지, 짐짝은 아닐 텐데요.”
“그렇습니다. 사라는 회사에 많은 도움과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굳이 제게 데려가라고 부탁까지 하신다니.”
현승은 그런 오스틴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원하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눈빛에 적대심이 드러나지 않는 걸로 보아, 으름장이나 놓자고 찾아온 건 아닌 것 같고.
“원하는 바라….”
오스틴이 말끝을 흐리기도 잠시.
“사라는 새로운 앨범 작업할 때, 상당히 예민해지는 편입니다. 갑자기 물건을 집어 던지는 통에 장비가 자주 박살 나니까 웬만하면 싼 걸로 세팅해 주세요.”
“예?”
“가끔 잠수를 탑니다. 그런데, 아마 돌아가신 엄마 보러 간 걸 테니 믿고 기다려주세요.”
기다렸다는 듯 술술 부연했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시다시피 SNS에서 가끔 악플러와 직접 싸우는 편이라, 잘 단속해 주시고.”
“아니….”
“콘서트는 본인이 연출하는 걸 좋아합니다. 최대한 의견 많이 반영해 주세요.”
현승은 손을 들어, 오스틴의 말머리를 잘라냈다.
“잠시만요.”
오스틴의 바람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까닭이었다.
진정 원하는 게 이런 것뿐이라고?
둥지를 떠난 자의 안녕과 무운을 바란다는 건가?
세계적인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답지 않게 너무 물렁물렁한 모습을 보이는 거 아닌가?
아니지.
어떻게 보면 진정한 대표의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오스틴이 얼마나 사라 스튜어트를 아껴왔는지는 알겠네요.”
고개를 들어 바라본 오스틴의 얼굴 위로 별안간 성우영 대표의 얼굴이 겹쳤다.
“네, 많이 아꼈죠. 제가 직접 캐스팅한 아이니까요.”
오스틴과 성우영은 내가 바라온, 그리고, 되고 싶은 대표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그러니까요. 저는 그래서 더욱더 사라 스튜어트를 이곳에 데려올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배제하고 다시 생각해 보시죠. 사라는 VINCIS로 오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
“아니요, 저는 대표님만큼 아낄 자신이 없거든요.”
그런 대표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전생에서 수십 번도 넘게 들어온 투자 제안을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거였고.
“조금 전에 말씀드린 부탁을 다 들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VINCIS는 VINCIS만의 룰이 있을 테니까요. 사라도 그 정도는 감수할 각오로 가겠다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 이번 생에서는 레이블을 설립했고 대표직에 앉게 되었으니 별수 있나.
“예, 우리 회사의 번영이나 이윤 같은 것을 고려한다면, 사라 스튜어트 정도 되는 아티스트라면 무조건 모셔 오는 게 맞죠.”
이왕 대표라는 걸 하기로 했으니 제대로 해야지.
그래.
제대로 된 대표.
“근데, 진정 회사가 올바른 길로 가기를 원한다면 당장 눈앞에 이윤 때문에 소중한 아티스트를 뺏어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에 놀랐는지 오스틴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뭘, 그렇게까지 놀라시나. 이런 말 한 사람 민망하게.
“오늘 처음 봤을 땐, 대표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퍽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오스틴은 한결 부드럽게 풀린 얼굴 위로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지금 보니, 누구보다 잘 어울리십니다.”
“오스틴도 오늘 수트 잘 어울리십니다.”
현승이 그런 오스틴을 향해 손을 뻗어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고는 엄지를 들어 올렸다.
덕분에 착 내려앉았던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럼, 다른 원하는 바를 말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말씀하셔도, 사라 스튜어트는 안 데려간….”
이내 오스틴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으려는 걸, 현승이 잘라냈고.
달그락.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리던 찰나.
“여태껏 유니스 뮤직 그룹과 맺어온 협업 관계는 이제 그만하시고, 아예 합병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오스틴의 입에서 정말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 흘러나왔다.
쨍그랑.
테이블 위는 이미 엎어진 찻잔으로 더럽혀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