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1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20화(419/482)
오스틴은 유니스 뮤직 그룹에 대표가 되기 이전부터 줄곧 해오던 버릇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당일 유통 계약한 곡은 들어보기.
그게 응당 유니스 뮤직 그룹을 이끄는 대표로서 해야 할 덕목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고작 3분에서 4분에 달하는 곡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아티스트가 얼마나 밤잠을 설치고 노력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 ♬ ♬ ♬
정해놓은 루틴을 엇나가는 법이 없던 그였기에, 그 버릇 또한 한결같이 지켜왔다.
그러나.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아쉬웠다.
왜 요즘 가수들의 목소리는….
죄다 밋밋한 단색으로 이뤄진 걸까?
색청(*coloured hearing)
공감각의 일종이라는 색청을 지닌 오스틴으로서는 그 점이 늘 아쉽게만 느껴졌다.
이 나이에 희망이라면 웃기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정말 독특한 색을 지닌 목소리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물론.
자신이 대표 자리에 앉아있는 동안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마음은 청춘이라지만, 신체가 늙는 것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 ♬ ♬ ♬
그렇게 사색에 잠겨 멍하니 거리를 거닐던 때였다.
─ ♬ ♬ ♬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뭐지?’
몇 음절도 안 되지만, 곧장 머릿속에 묘한 색이 연상되며 절로 걸음을 이끌었다.
중증 수준의 결벽증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드는 걸 죽어도 싫어하지만.
이 색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 Everyone’s going to die anyway.
그렇게 어렵사리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게 된 사람이 바로, 사라 스튜어트였다.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전혀 손질되지 않은 머리칼이 바람에 아무렇게나 흩날렸고.
더러운 건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바닥에 대충 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던, 그 모습.
─ There’s nothing to be scared of.
분명 많은 인파 속에 앉아 잔잔히 노래하고 있었음에도, 홀로 외딴섬에 앉아 절규하는 것 같은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처음이었다.
색을 뛰어넘어 구체적인 이미지가 그려진 것은.
“유니스 뮤직 그룹에 와서 마음껏 노래해 보시죠.”
오스틴은 곧장 사라 스튜어트에게 캐스팅 제안을 했고.
“싫은데요.”
예상과 달리, 단번에 거절당했다.
“왜 싫어요?”
“그냥.”
처음에는 경계심이 많아 거절한 것이라 여겼다.
유니스 뮤직 그룹이라고 하니, 믿기지 않겠지.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찾아갔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지칠 법도 했으나, 지칠 수가 없었다. 매일 같이 들어도, 질리지 않았으니까.
전혀 억지스럽다고 느껴지지 않게 내려가는 저음.
단단한 목소리.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표정까지.
하물며, 곡도 자작곡이라지.
이런 인재를 놓쳤다간 죽는 날 곱게 눈 감지 못할 게 뻔한 일인데, 어떻게 포기하겠는가?
“가수가 돼서 무대에 서보고 싶지 않아요?”
“여기도 무대고, 노래하면 가수 아닌가요?”
거칠면서도 맞는 말만 하는 당돌함까지.
“그 말도 맞는데, 이런 곡을, 이런 가수의 노래를, 더 많은 사람이 못 듣는다는 게 너무 아쉬워서요. 생각해 보고 연락주세요.”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결국.
한 달을 쫓아다닌 후에야 사라 스튜어트와 전속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 망설인 만큼, 깐깐하게 따지고, 요구할 줄 알았는데….
“계약서 더 안 봅니까?”
“더 본다고, 뭘 아나요.”
사라 스튜어트는 여타 다른 아티스트들과 달리 계약금이건, 정산 비율이건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계약서를 훑어보지도 않고 사인했다.
물론 유니스 뮤직 그룹은 업계 평균 이상 조건을 자랑한다고는 하지만, 보통 독소조항은 없는지 한 번 정도 크로스 체크할 법도 한데….
그때까진.
어려서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모양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금 지내본 결과,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라 스튜어트라는 아티스트는….
허영심이나 인기, 명예 따위보다 오로지 좋은 곡을 만들고 좋은 곡을 부르는 것에 대한 욕심만 가득한 사람이라는 걸.
그런 사람이 곡을 만들고, 부르니 그 속에 얼마나 많은 마음과 생각과 경험이 녹여져 있겠는가?
오스틴이 색이 아닌 이미지를 자연스레 연상시킬 수 있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사라 스튜어트가 하는 행동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결벽증이 있는 나로서 이해할 수 없는 흐트러진 모습들도, 가끔 히스테리를 부리고, 난동을 피우고, 장비를 부시더라도.
그러던 어느 날.
첫 앨범이 세상에 발표되고, 빌보드를 휩쓸었을 때.
신나서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얘기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사라 스튜어트가 뭐라고 한 줄 아는가?
호화스러운 포상 휴가를 보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전용기를 사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정산 비율을 올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콘서트나 열어주세요.”
한마디로 노래나 더 부르게 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런 사라 스튜어트가….
처음으로.
원하는 바를 얘기했다.
“한국에 가서 작곡가 HS와 작업하고 싶어요.”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원하는 바를 얘기했다.
“저 HS한테 가고 싶어요.”
흔쾌히 허락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HS한테 갈래요.”
그 말을 딱 들었을 땐,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래서 재차 물었지만, 사라는 그저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차라리.
연애한다거나, 결혼한다고 했으면 흔쾌히 허락은 물론이고 축복해줬을 텐데.
“VINCIS, 가고 싶다는 거구나.”
오스틴은 애써 모른 척하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네, 맞아요.”
사라 스튜어트는 절대 꺾이지 않을 기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HS가 오라고 한 거야?”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HS가 빈센트와 함께 레이블을 설립한다고 했던 순간부터 예상하던 일이었다.
그래.
사라 스튜어트와 HS의 사이가 가깝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사라 스튜어트는 HS가 아니면, 다른 작곡가의 곡은 부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니요, HS는 저보고 오지 말래요.”
“음?”
“따로 곡 줄 테니까, 그냥 있으래요.”
그렇게 말한 사라는 진심으로 속이 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냥 저는 가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덤덤히 제 의견을 덧붙였다.
“HS한테 가고 싶어요.”
적잖이 충격을 받은 오스틴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사라가 간다는 것에 충격받은 건 아니다.
사라의 그런 표정을 보는 게 처음인 탓이다.
“우선 다음에 얘기하자.”
오스틴은 사라 스튜어트를 돌려보낸 뒤, 곧장 HS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사라, 데려가시죠.”
사라를 데려가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아마 누군가 들으면 미친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사라 스튜어트의 속상한 표정을 보는 게 더 속이 상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오스틴이 얼마나 사라 스튜어트를 아껴왔는지는 알겠네요.”
HS의 말에 속은 더 쓰려왔다.
그래.
이 정도로 아끼는 줄은 몰랐으나, 그랬던 모양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한 명쯤 있지 않나?
의도한 건 아닌데….
어느 순간 속 안에서 아주 각별하게 스며든 사람.
별일 없어도 걱정되는 아픈 손가락 같은 사람.
오스틴에게는 사라가 그런 사람이자, 식구였다.
“예, 우리 회사의 번영이나 이윤 같은 것을 고려한다면, 사라 스튜어트 정도 되는 아티스트는 무조건 모셔 오는 게 맞죠.”
그래, 지금 HS의 말처럼 회사 입장만 고려한다면 사라 스튜어트를 놓쳐선 안 된다.
보내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고.
HS도 아는 것을, 오스틴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물며.
오스틴은 사라 스튜어트의 발을 묶어둘 수도 있고, VINCIS는커녕 이 바닥에서 아예 활동을 못 하게 만들 힘도 있었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곁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솔직히 털어놓은 사라에게.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저.
HS가 사라 스튜어트를 자신만큼은 아니어도, 소중히 대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라고 생각하던 찰나.
“근데, 진정 회사가 올바른 길로 가기를 원한다면 당장 눈앞에 이윤 때문에 소중한 아티스트를 뺏어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HS에게 돌아온 뜻밖의 대답에 오스틴은 별안간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듯 힘차게 뛰었다.
쿵쾅쿵쾅.
나이가 들면서 심장이 고장이라도 나버린 건가?
쿵쾅쿵쾅.
심장 소리는 도무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오스틴은 최대한 차분하게 호흡하며 지금 심장이 뛰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처음.
HS가 사라를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유니스와 관계 유지를 위함이라 생각했다.
그래.
이 업계 바닥에서 유니스 뮤직 그룹과 사이가 틀어지는 걸 좋아할 곳은 없을 테니.
그러나.
HS는 단순히 그런 모종의 이유로 거절한 게 아니었다.
그래, 그래서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리는 모양이었다.
“오늘 처음 봤을 땐, 대표실에 앉아있는 모습이 퍽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오스틴은 그런 HS를 눈에 담았다.
불세출의 천재.
그래서.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사람.
절대 대체될 수 없는 실력으로 다른 모든 점을 압살시켜 버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게 바로….
오스틴이 여태껏 바라봐 온 HS였다.
“지금 보니, 누구보다 잘 어울리십니다.”
“오스틴도 오늘 수트 잘 어울리십니다.”
그러나 확실히 잘 못 생각했다.
“그럼, 다른 원하는 바를 말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말씀하셔도, 사라 스튜어트는 안 데려간….”
그는 모든 것을 압살시키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아우르는 힘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
오스틴이 생각했던 ‘대표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갖추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태껏 유니스 뮤직 그룹과 맺어온 협업 관계는 이제 그만하시고, 아예 합병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렇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제안해도 되겠지.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아닙니다.”
“저희 설립한 지 일 년도 안 지났습니다.”
“설마 제가 그걸 모르고 얘기하겠습니까?”
같은 뜻을 지닌 사람이, 내 뒤를 잇길 늘 바라왔으니까.
줄곧 생각은 해 왔던 일이다.
물론, 이렇게 빨리 결정될 줄은 몰랐지만.
“저는 이제 좀 쉬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저는 이제 곧 은퇴하려 합니다.”
그래도 그에 걸맞은 사람을 발견했으니 기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