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21)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22화(421/482)
“오빠 덕에 편하게 가네!”
현승은 조금 전과 달리 신나 보이는 현아를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에게 눈치가 없다고 했던가?
‘그럴 리가.’
현승은 사실 여동생이 새벽에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페스티벌을 보러 갈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설령 정말 눈치가 없다고 한들, 그를 대신할 요령과 촉이라는 게 있으니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다 방법이 있지.
스륵, 스르륵.
뉴튜뷰 아이디를 같이 쓰는 와중에 이렇게 증거를 잔뜩 남겨 놓았으니 모를 수가 있나.
검색창은 온통 월드 일렉트릭 뮤직 페스티벌 또는 WEMF와 관련된 것뿐이었고.
간간이 자말이나 JS를 검색한 흔적.
추가로.
이번 월드 일렉트릭 뮤직 페스티벌 라인업에 자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여동생은 자말을 보러 이번 페스티벌을 갈 것이라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하물며.
뉴욕에서 4시간 이상 떨어진 라스베이거스를 가는 거라면, 새벽 일찍 출발할 테고.
그러니.
그 먼 길을, 그 사람 많은 곳을 여동생 홀로 보낼 수 없는 노릇이지 않나?
일정도 미루고, 자말에게 연락해 초대권도 받고, 급하게 전용기도 예약한 것이다.
아니.
근데 왜 하필 그 녀석을….
스─윽.
현승은 잔뜩 들떠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 현아를 바라보다 가볍게 꿀밤을 넣었다.
“야.”
팬으로서 좋아할 수야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 왜 때려.”
“너 때문에 무게 쏠려서 비행기 기울잖아. 중앙으로 가서 가만히 앉아 있어.”
그래도 열받는 건, 열 받는 거다.
“참나!”
제 말에 현아는 뱁새눈을 뜨고 째려보기도 잠시.
“가면 되잖아!”
얌전히 중앙 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이제 안 기울지?”
설마 비행기가 기운다는 말을 진짜 믿은 건가?
저렇게 순수하고 잘 속아 넘어가니, 어떤 놈을 만난다 해도 영 불안할 것 같은데….
“하.”
한숨 소리를 들은 현아는 혹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자세를 고쳐잡았고.
피식.
그 모습에 현승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뭐….
자말 덕분에 여동생과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니 넘어가 줘야지.
* * *
현아는 지금, 이 순간 뜨거운 무언가가 단전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열정적인 음악과 체험 부스 그리고 맛있는 냄새와 연기가 풍겨오는 푸드트럭까지.
거기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까지 한데 모여있으니.
대문자 ‘E’로서 안 뜨거워질 수가 없었다.
“와, 사람 많다.”
“입 좀 닫아.”
정식적인 공연은 저녁에 시작될 예정이오나, 벌써 페스티벌 장은 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그래서 혹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그건 단지 기우였다.
“근데 정말 헬멧이면 되는 거였네.”
“그렇다고 했잖아.”
“저 헬멧이 뭐가 멋있다고 쓰는지.”
지나가는 사람 몇몇이 불꽃 마크 헬멧을 쓰고 있는 건 물론이고, 팔뚝이나 팔목에 검은색 천을 묶은 채 돌아다녔다.
아마 ‘HS’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간 것도 있을 테고.
더불어.
자말의 MV가 유명해지면서 유행하게 된 모양이다.
한마디로….
불꽃 마크 헬멧을 쓰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HS’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
꼬─옥.
현아는 오빠의 옷자락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놓치면, 누가 오빠인지 찾을 수가 없겠는걸.
그때.
현승이 소매를 잡은 현아의 손을 바라보기도 잠시.
“너 밥알 보러 왔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밥알?”
“어.”
“밥알이 누군데?”
현아는 되레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고.
“자말… 아니, JS 말이야.”
“어? 아, 그게….”
“내가 눈치가 느리다고 했나?”
이내 현승이 승기를 잡은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여동생이 무척 보고 싶어 하는 자말을 당장이라도 만나게 해줄 수 있지만 눈치가 느린 나는, 그런 여동생의 마음을 다 알 수 없기에 가만히 있을 생각이야.”
“오, 오라버니? 왜 또 삐딱선이실까? 내가 언제 오빠 눈치 없다고 그랬어? 아니, 우리 오빠는 눈치 백단이지. 그럼!”
하나, 그건 미끼였나보다.
“어라? 진짜 보고 싶은가 보네?”
미끼를 덥석 문 순간, 오빠의 표정이 오묘하게 구겨지기 시작한 걸 보면 말이다.
“갑자기 왜 강하준에서 밥알로 넘어간 건데? 차라리 망아지를 좋아한다고 하면 이해라도 할 텐데.”
“아, 그런 거 아냐!”
“그런 게 아니면, 뭐 하러 걔를 보러 여기까지 온 건데?”
그 물음에 현아는 무어라 말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다 말고 꾹 다물어 버렸다.
자말을 보러 이곳까지 온 건 사실이지만.
‘하준이 오빠를 좋아하는 마음과 같은 건 아니란 말야!’
자말은 아주 순수하게 팬으로서 좋아하는 거다.
남자로서, 이성적으로서, 본능적으로서 가슴 떨리는 감정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그냥….
동질감 같은 거였다.
그냥 늘 그랬듯 오빠가 작업한 곡이니 들었고.
곡이 좋아서 계속 들었고, 곡을 듣다 보니 이 곡을 부른 JS라는 사람이 궁금해졌고.
궁금해서 알아보다 보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
어머니가 청각 장애인이라는 사실까지 말이다.
흑인이고, 과거가 어둡고, HS를 짝사랑하는 게이라던가 하는 소문이나 사실보다.
청각 장애를 지닌 엄마를 모시고 산다는 사실과, 그런 엄마를 위한 콘서트를 하고 싶다던 인터뷰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그래서.
더 알고 싶어졌을 뿐이다.
공연장에서건, 인터뷰장에서건, 본인의 인생을 바꿔준 ‘HS’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레미어워즈에서 꼭 상을 받을 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그 사람이.
정말 상을 받게 될 것인지.
어머니를 위한 무대를 어떻게 선보일 것인지.
“여하튼, 그런 거 아냐!”
마음이 쓰이고, 궁금할 뿐이었다.
“응?”
말하고 나서 무언가 이상한 기분에 주위를 둘러봤고.
“아니, 물어봐 놓고 그냥 가냐!”
현승은 이미 저 멀리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좀 같이 가!”
현아는 그런 오빠를 향해 소리치는 바람에….
찰칵, 찰칵.
주변에서 들려오는 셔터 소리를 듣지 못했다.
* * *
헤리는 일렉트릭 뮤직 페스티벌의 보안을 맡은 엘리트 경호원이었다.
바깥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경호원이 아닌, 가장 핵심이 되는 이곳.
바로….
대기실 출입구를 통제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면 가장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일렉트릭 뮤직 페스티벌에서도 가장 메인이랄 수 있는 코너는 역시, 공연이었고.
그 공연 무대에 오르는 건, 당대 인기 아티스트라 인정받는 이들뿐이었고, 그런 이들이 편하게 쉬는 대기실인 만큼 더욱 외부인에 대한 통제가 엄격했다.
“헤이.”
그때 끝자락에 있던 대기실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자신을 불러 세웠다.
헤리는 자신이 벨보이라도 된 것 같은 상황에 기분이 상했지만.
“부탁 하나만 하지.”
그의 외형이 워낙 험악한 터라, 불쾌한 티를 내진 못했다.
그는 최근 들어 부쩍 잘 나가기 시작한 흑인 래퍼인 JS였다.
본명이 자말이라던가?
그는 험악한 외형뿐만 아니라, 들어보니 꽤나 흉흉한 과거사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게 현재 진행형일 수도 있고.
그래서 다른 동료 경호원들 또한 웬만하면 자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라며 충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쫀다는 건, 특수 교육을 받고 엘리트 경호원이 된 헤리로선 있을 수 없는 일.
“네, 말씀하시죠.”
최대한 심기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되, 정중보단 퉁명스러움에 가깝게 대응했다.
“귀 좀 내줄 수 있나?”
그러자, 자말은 낮고 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
‘잠시만….’
귀를 내달라고? 귀를 잘라서 가져가겠다는 건가?
이래서 동료들이 다들 자막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 건가?
쿵쾅쿵쾅.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쳤지만, 짐짓 태연한 얼굴로 까딱거리는 자말의 손을 따라 귓가를 가져다 댔고.
훅 들어온 땀 냄새에 움찔하며 곁눈질로 살펴보니, 대기실에서 대체 뭘 했는지는 몰라도 땀으로 흠뻑 젖은 채였다.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
이내 자말은 작지만 정확한 딕션으로 말을 이었다.
“혹시 정말 만약 불꽃 마크 헬멧을 쓴 남자가 찾아와서 밥알을 만나러 왔다고 하거든….”
어느 순간 자말이 말을 멈추고,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는 이내 알 수 없는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꿀꺽.
그러기도 잠시.
“귀찮게 굴지 말고 바로 내 대기실로 정중히 모셔주도록.”
자말은 어딘가 흉흉함이 감도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불꽃 마크 헬멧을 쓴 남자가 대체 누구길래 그러지?
밥알은 또 대체 누구고.
설마….
조직 간 암호 같은 건가?
꿀꺽.
여러모로 알 수 없는 기운이 팽배하게 흘렀고.
헤리는 눈알을 굴리며 고민을 이어 나갔다.
그냥 대충 알겠다고 할까?
하지만.
그의 단단한 성벽 같은 신념을 깨부술 수는 없었다.
“그건 어렵겠습니다.”
헤리가 딱 잘라 일축하며 부연했다.
“보안상 이곳을 출입하는 분의 인적 사항을 기재해 놔야 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와 동시에 자말과 공중에서 시선이 맞아떨어졌고.
“내 말 못 알아들었나?”
자말의 표정이 급속도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험악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그분을 귀찮게 굴지 말라고.”
지금껏 살면서 이런 중압감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
낮고 음침한 목소리에 살기마저 더해져, 헤리는 숨을 쉬는 것조차 까먹은 채였다.
과거가 꽤 흉흉하다더니….
아무래도 그 말은 그저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나 허세 따위가 아니었나 보다.
“아, 네….”
헤리는 마주하고 있던 눈을 아래로 지그시 깔며 답했다.
그래.
사람이 우선 살고는 봐야지.
“수고.”
자말은 그 말은 끝으로 다시 대기실 문을 닫고 들어갔다.
“하아….”
헤리는 그제야 참아왔던 숨을 몰아쉬었다.
대체 ‘불꽃 마크 헬멧을 쓴 남자가 찾아와 밥알을 찾거든’은 무슨 말인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뒷 세계에서 통하는 암호명 같은 것 같은데….
미리 보고해 놔야 하나?
아니.
그런 사람이 오긴 하는 걸까?
딱, 딱, 딱.
헤리가 구두 앞코로 바닥을 일정한 간격으로 두드리며 빨리 시간이 흐르길 기도했고.
“뭐야, 아무도 안 오네.”
공연 시간이 다 되어가도 ‘불꽃 마크가 새겨진 헬멧을 쓴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약에 취해서 헛소리라도 한 건가.”
헤리가 그저 헤프닝이라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그때.
끼이이익.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 적힌 두꺼운 문이 열렸고.
“어떤 일로 오, 오셨습니까?”
자말이 말했던 불꽃 마크가 새겨진 헬멧을 뒤집어쓴 남자가 유유히 안으로 들어왔다.
‘진짜 왔잖아?’
족히 183cm는 되어 보이는 길쭉한 남성은, 자말처럼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쉬이 다가가기 어려운 아우라를 품고 있었다.
‘이 사람이 보, 보스인가….’
헤리가 마른침을 삼키며,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고.
“음….”
남성이 침음을 흘려대기도 잠시.
“밥알을 보러 왔는데.”
레인보우 선팅이 짙게 처리된 고글을 올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그윽하면서도 부드러웠으나, 왠지 그게 더 흉흉하게만 느껴졌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헤리는 확신했다.
“이, 이리로 오시죠.”
이 남자는 분명 자말이 소속된 조직에 보스가 분명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