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2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23화(422/482)
배디는 공연 시작 10분 앞두고 와서 간단한 드라이 리허설을 끝마친 뒤 대기실을 찾았다.
어차피 공연의 가장 마지막, 하이라이트 순서이니 편하게 쉬다가 나가면 될 일이니까.
“물이 좀 미지근한데?”
배디는 생수병을 손으로 잡았다 놓기도 잠시.
“근데 왜 가만히 있어?”
멀뚱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는 매니저를 향해 물었다.
“물이 미지근하다니까?”
“아, 미안해. 얼른 다시 사 올게.”
매니저는 그제야 부리나케 대기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여간, 답답하긴.”
배디는 그런 매니저를 눈으로 좇으며 혀를 찼고.
이내 널찍한 소파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평화로운 휴식을 방해하는 소음이 들려온 건.
“뭐야.”
배디는 푹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들치며 인상을 찡그렸다. 꿀 같은 휴식 시간을 방해하는 소리가 상당히 거슬린 까닭이었다.
특히….
그게 요즘 가장 거슬리던 목소리라 더더욱.
“JS?”
그래, 지금 옆 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JS의 목소리다. 요즘 길거리에서 그의 곡이 수도 없이 들려오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공연을 가도 마주치니 모를 수가 없었다.
당일 공연의 게스트 가수 라인업에도 JS가 있었으니….
옆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JS일 터였다.
“시끄럽게.”
배디는 미간을 확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대기실에서 가수들이 연습하는 거야 흔한 일이라지만, JS라는 점에서 거슬렸다.
그놈의 JS, JS, JS.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래퍼’ 하면 ‘배디’였는데.
요즘은 어딜 가나 온통 JS 또는 그의 본명인 ‘자말’이라는 이름만 들려왔다.
잠시뿐이겠지.
잠깐 불어오는 산들바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JS의 행보는 거침없었고.
어느 순간 빌보드 차트를 무섭게 치고 올라오더니….
이제는 본인이 그레미 어워즈에서 상을 타는 일이 마치 기정사실인 양 떠들고 다녔다.
그 꼴이 퍽 거슬렸고.
눈살이 찌푸려졌고.
점차 신경이 쓰였다.
음반 업계 내에선 가장 권위 있는 그레미 어워즈에서, 고작 신인 래퍼가 상을 받겠다?
가소로웠다.
흑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랩’이라는 장르를 섭렵한 유일무이한 백인 래퍼.
따라올 수 없고, 범접할 수 없는 래퍼.
그게 바로 나, 배디였고.
매년 쉬지 않고 앨범을 내 왔고, 당연하게도 매년 상을 받았다. 그래, 그게 당연한 거다.
이거야말로, 기정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JS는 본인 실력으로 뜬 것도 아니지 않나?
한창 뜨고 있는 작곡가의 인기에 편승한 것도 모자라, 래퍼로서 체면도 없이 작곡가를 찬양하며 활동명마저 따라 하는 꼴이라니.
그래.
고작 그런 뜨내기 래퍼가 그레미 어워즈를 운운하다니.
레드 카펫이나 밟을 수 있으면 천운인 거다.
“아, 씨.”
배디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대기실을 박차고 나가 옆 방으로 향했다.
“갓치스, 갓치스….”
이내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 콧방귀를 끼었다.
유치하게, 갓치스는 무슨.
* * *
한편.
자말은 자신이 다닌 수많은 공연과 페스티벌 중 이번 페스티벌이 자신의 이름을 알릴 장소로는 단연 일등이라 생각했다.
[ 일렉트릭 뮤직 페스티벌 ]일명, WEMF.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이 ‘WEMF’는 현재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렉트로닉 댄스 페스티벌이다.
하우스, 테크노, 드럼앤베이스, 덥스텝, EDM 등 당연한 일렉트로닉 뮤직을 DJ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가수들의 무대 또한 함께 즐길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
작년에는 15만 명이 왔다지.
올해는 얼마나 올지 모르겠으나, 우선 ‘JS’라는 이름과 더불어 ‘G.H.S’를 널리 알릴 만한 곳으로는 가장 최적의 무대라는 거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대기실을 찾았다.
하물며, 오늘은 HS가 보러 올지도 모르니까 더욱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야 한다.
물론, 자신의 공연을 볼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래도 페스티벌 초대권을 달라고 연락이 온 건, 자신의 무대도 보겠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
이건 분명 테스트일 거야.
“HS의 곡이 내겐 마약이거든. 그가 내 곡을 듣는다면 황홀경에 젖겠지.”
자말은 거울 앞에 서서 연습을 시작했다. 수도 없이 부른 곡이지만, 이상하게 떨려 왔다.
“큼, 흠.”
목소리를 다시 한번 가다듬고 제스처부터 동선까지 체크하기 위해 대기실을 활개 치고 다녔다.
“나는 HS의 뒤를 따라, 어느샌가 무대 위로.”
땀으로 옷이 젖어 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연습했다.
공연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심장을 터질 듯 뛰었다.
쿵쾅쿵쾅.
혹시 몰라 HS가 찾아오거든 대기실로 안내해 달라고 일러두긴 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뭐… 딱히 기대한 건 아니다.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찾아왔다면, 떨려서 연습을 못 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가 공연을 보든, 안 보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번 공연 무대는 JS라는 이름과 더불어 곡을 통해 위대하고 고귀한 갓치스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줄 테니까.
모든 걸 쏟아붓고 올 생각이다.
“갓치스, 갓치스, 이젠 그를 먹고 더 높이 올….”
한참을 그렇게 연습에 매몰되어 있던 그때.
끼이익.
별안간 대기실 문이 열렸고, 자말은 어딘가 기대감이 서린 얼굴로 문 쪽을 바라봤다.
“뭐냐?”
하나,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건 기대했던 바와 달리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뭐? 사람 보고 뭐냐니?”
아니, 달갑지 않은 인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지.
배디.
그는, 굳이 따지자면 선배랄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나.
마주친 적은 있어도 말은 해 본 적 없는 사이였고.
개인 SNS에 자신을 저격하는 듯한 글을 종종 올려, 썩 반갑게 맞이해 줄 수 없는 사람이다.
뭐라고 저격했더라.
음지에서 태어났으면 음지에서나 살라던가?
남의 인기에 편승해 가려는 건 래퍼가 아니라고.
래퍼가 누굴 숭배하는 것 자체가 수치라던가.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따위 저격 글에 반응해 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직접 자신을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여긴 왜.”
자말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네가 내는 소음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있어야지.”
그러자, 배디는 마치 여기가 본인 대기실이라도 되는 양 유유히 걸어와 소파에 앉았고.
“그건 그렇고, 사람이 왔으면 인사를 해야 하지 않나?”
이내 거만히 턱을 치켜들며 물었다.
“내가 불청객한테 인사를 해야 하나?”
자말은 곧장 그의 물음을 튕겨 내듯 되물었다.
배디 또한 인사나 나누자고 온 건 아닐 테니까.
“듣던 대로 인사성이 안 좋네.”
아니나 다를까, 배디의 어투에는 적대심이 가득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머리채를 잡아서라도 쫓아내 버리고 싶었지만, 이곳은 공연 대기실이다.
여기서 난동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이 들이닥칠 테고.
이제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활동하는 만큼 참아야지.
그래.
참긴 할 건데, 할 말은 해야지?
“그쪽은 인성이 안 좋다던데.”
“뭐?”
“이 바닥에 소문 자자하던데, 인성이 시궁창급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배디는 필명에 걸맞은 행실들을 일삼아 왔고, 늘 갑질 논란이라던가 폭력적인 언행으로 문제가 많았다.
그런 사람에게 지적받는 일은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누굴 나무랄 수 있겠냐마는.’
자신 또한 성격이 그리 온순하진 못하니까.
“요즘 조금 잘나간다고 입 놀리는 게 험하시네.”
“이 정도에 쫄지는 말고.”
“후드 출신이라 깡다구가 달라도 뭐가 좀 다르네.”
배디는 그런 자신이 재밌다는 듯 실실 웃기도 잠시.
“아, 아니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을 튕기며 되물었다.
“갓치스 믿고 까부는 건가?”
그 말에 자말의 턱 근육이 “아득” 하는 소리와 함께 볼록거렸다.
“아니, 근데 유치하게 갓치스가 대체 뭐야. 그가 신이라도 돼?”
자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 갓치스한테 그레미 어워즈 상 좀 받게 해 달라고 빌어 봐.”
배디의 조롱은 끝나지 않았다.
“또 혹시 모르잖아. 그는 신이니까 이뤄 줄 수도?”
자말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고, 단단한 주먹 위로는 핏줄이 시퍼렇게 날이 섰다.
참아야 한다고 계속해서 최면을 걸었지만.
부들거리는 정도로 보아, 얼마 가지 않을 거다.
“하고 싶은 말 다 했나?”
자말이 음침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아직.”
배디는 그런 자말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깔깔거리며 말을 이었다.
“근데 동양인과 흑인끼리 뭔가 통하는 거라도 있나 봐?”
“뭐?”
“아니, 운으로 좀 뜬 거 가지고, 거만 떠는 게 닮아서.”
자말은 고개를 숙였다.
“그 작곡가도 아티스트 덕분에 운 좋게 뜬 거잖아?”
배디의 입에서는 뚫린 구멍에서 물이 새 나오듯 쉴 새 없이 말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라 스튜어트부터 빈센트, 다니엘까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는 가수들 데리고, 그 사람 곡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처럼 다들 너무 떠받들어 주잖아.”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너도 그런 작곡가 인기에 편승한 거고 말이야.”
그냥 지금 당장 HS가 대기실에 오지 않아서 참 다행이란 생각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내 말이 틀려?”
땀이 차갑게 식고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폭풍우가 내려치기 직전처럼.
이윽고.
자말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배디와 눈을 맞췄다.
“유언은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고.”
배디는 그제야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마치 초식동물처럼 보였으나, 봐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도, 흑인이라고 조롱하는 것도.
다 참을 수 있지만.
HS를 깎아내리고,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꼴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꽈악.
자말은 두툼한 주먹을 쥔 채로 배디에게 다가갔고.
“오, 오지마.”
배디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툭.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등에 문이 닿았고.
휙.
자말은 살기가 띤 눈을 한 채 주먹을 높이 치켜올렸다.
“네가 오늘 여기서 죽는 이유는….”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이미 통제 영역을 벗어난 이후였다.
“감히 갓치스를 욕보였기 때문이야.”
“뭐?”
“알고는 있어야지, 네 사인 정도는.”
“허업!”
배디가 놀라 몸을 움츠리던 찰나.
콰앙!
굉음과 함께 별안간 문이 열렸고.
끼이익.
배디는 열린 문에 밀려 힘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자말의 주먹은 배디를 빗겨 나가, 애꿎은 문에 꽂혔다.
“여기서 힘자랑하고 있었냐?”
쩌억 하고 금이 가 버린 문 너머로 들어온 사람은….
“혀, 형님…!”
바로 HS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