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2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24화(423/482)
현승은 시원하게 뚫려버린 대기실 문을 한 번.
손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채로 자신을 넋 놓고 바라보는 자말의 얼굴을 한 번.
바닥을 뒹굴고 있는 얼굴 하얀 남자를 한 번.
그리고.
겁을 먹은 채 자신의 등에 매달린 현아를 한 번.
“밥알.”
쳐다보고는 자말을 매섭게 불러 세웠다.
“이 상황을 좀 설명해봐.”
자말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손을 등 뒤로 가리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냥, 이 사람과 말다툼이….”
“요즘은 주먹이 말도 하나?”
“아니, 이 주먹은, 그러니까….”
랩은 곧 잘하더니, 변명에는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쟤, 배디 아니야?”
현승은 바닥에 어정쩡한 자세로 엎어져 있는 배디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네, 맞습니다. 형님.”
자말은 곧장 공손히 뒷짐을 진 채 대답했다.
한편.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배디는 떨리는 팔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이건, 그러니까….
그냥 문에 밀려 넘어지면서 놀라서 그런 거다.
절대.
자말에게 쫄았다거나, 겁을 먹어서는 아니다.
이윽고.
배디는 몸을 일으켜 자말을 죽일 듯 노려봤다.
“웃기는 놈이네.”
그러고는 기가 찬 듯 웃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 어린 눈을 한 채 달려들더니, 갑자기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내숭을 떤다고?
“얘 안 웃긴대.”
그때 헬멧 쓴 남자가 껴들며 말했다. 설마 이 남자 때문에 자말이 온순해진 건가? 키만 크고, 별로 세 보이진 않는데….
“얘, 진짜 재미없어.”
자말과 아는 사이면, 같은 후드 출신 양아치 정도 되려나? 그런 거라면 쫄 거 없지.
지금 밖에는 경호원이 잔뜩 깔려있을 테니까.
“넌 빠지고.”
배디는 헬멧 쓴 남자를 살짝 밀치고는 자말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역시, 사람 본성은 쉽게 바뀌질 않는다니까?”
그러고는 자말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덧붙였다.
“이번 일 그냥 안 넘어가.”
안 그래도 점차 거슬렸는데 잘된 일이지. 이렇게 된 거 눈앞에서 치워버려야겠다.
“당장 공론화시켜서, 다시 음지로 돌아가게 해줄게.”
물론, 그냥은 말고.
“그게 싫으면, 아까 했던 말 취소하고 빌어봐.”
배디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너 신 좋아하지? 갓배디 님, 멍청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라고 빌면 그냥 넘어가 줄게.”
그 말에 자말이 발끈하던 찰나.
“저기요, 왜 아까부터 사람을 툭툭 쳐요?”
헬멧 쓴 남자 뒤에서 튀어나온 여자가 매섭게 달려들며 물었다. 이 여자는 또 뭐지?
생긴 건 제법 예쁜데….
“동양인이네.”
배디가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리기도 잠시.
“난 동양인이랑 할 말 없으니까 좀 빠져.”
여자를 툭 밀치며 다시 자말을 닦달했다.
“내가 누굴 욕보여서 죽는 거라고 했었지?”
“하….”
“갓, 뭐? 갓치스? 그 사람이 얼마나 갈 것 같아?”
자말의 매끈한 이마 위로 핏줄이 솟아올랐고.
“형님.”
이내 헬멧 쓴 남자를 바라보며 정중히 말했다.
“아무래도 쓰레기를 좀 치워야 할 것 같은데, 잠시만 나가 있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헬멧 쓴 남자는 자말을 가로막았다.
“아니, 그냥 넌 좀 가만히 있어.”
“그래도….”
“너 그래미에서 상 받을 거라며.”
자말은 남자의 말에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글썽거렸다.
둘이 드라마를 찍고 있네?
“피식.”
배디가 그 모습을 보고 조소를 흘리던 찰나.
“으아아악!”
별안간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 손으로 내 여동생을 밀쳤었나?”
헬멧 쓴 남자의 손에 의해 팔이 꺾여버린 탓이었다.
그저 키만 멀대처럼 큰 놈인지 알았건만, 붙들고 있는 손아귀에서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아니, 이 손이었던가?”
이내 남성은 반대편 손을 꺾으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보였다.
“내가 웬만한 건 귀찮아서라도 넘어가겠는데.”
다시금 말을 잇는 그의 목소리가….
“자꾸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내 사람을 툭툭 건드리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어?”
아까와 달리….
“계속 숨어있으니까 다들 내가 만만한 거야.”
살갗이 따가워질 만큼의 살기를 띠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앞서 물은 말은 언어가 달라서 못 알아들어서 반박할 수 없었고.
마지막으로 되물은 말은 영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할 수 없었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태디가 인상을 찡그리며 언성을 높였다.
“이 손 안 놔? 동양인 양아치 주제, 어딜 감히…!”
그럴수록 손목에 가해지는 압력은 점차 심해졌고.
“윽.”
참으려 했으나, 비틀린 입술 사이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최대한 빠져나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생긴 거랑 달리, 왜 이렇게 힘이 센 거야?
이윽고.
남자가 쓰고 있던 헬멧이 시야를 가렸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무 표정 없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동양인.
그것도 아주 뚜렷하게 잘생긴 동양인이었다.
‘개 같은 동양인 새끼들….’
배디는 동양인을 혐오했다. 그건 어릴 적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혐오였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했으며.
그렇게 믿었다.
백인은 우월하며, 특별한 존재이고 그 외는 모조리 다 불필요한 인종일 뿐이라고.
“깔끔하게 이 헬멧으로 한 대 맞을래 아니면 내 변호사한테 고소장으로 받을래?”
그런데, 지금 이 동양인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뿐이랴?
남성의 얼굴은 어쩐지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의 주도권을 모두 다 저 남자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고소?”
더 이상 놀아날 수는 없었다. 그것도 한낱 동양인 양아치 따위에게 순순히 맞춰줄 수 없었다.
자신은 백인이자, 래퍼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탑스타니까.
힘으로는 다소 밀리긴 해도, 딱히 무서울 건 없었다.
어차피.
이런 놈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협박과 폭력뿐.
“대체 뭘 고소할 건데?”
여자 앞이라고 폼이나 잡으려는 거겠지.
“그건 걱정하지 마. 털면 나올 먼지야 많겠지.”
그래, 입만 살아서 그냥 떠드는 말이다.
그런데….
대체 이 중압감은 뭐지? 저 얼굴이 왜 이렇게 낯익지?
“먼지 안 날리게 청소 열심히 해봐.”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남성의 손에 떠밀려 대기실 밖으로 쫓겨났고.
“한참 찾았는데, 여기 시원한 물 사 왔어요.”
어리바리한 매니저가 뛰어와 물을 건넸다.
꽈아악.
배디가 물병을 우악스럽게 잡기도 잠시.
“하나도 안 시원하잖아!”
이내 매니저를 향해 집어 던지며 고함쳤다.
배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기가 가라앉지 않아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씩씩거렸다.
* * *
아주 어릴 적, 오빠에게 종종 다리가 아프니 업어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오빠도 체구가 작고 말랐었는데….
그냥 그런 오빠의 등에 업혀 있노라면 새삼 단단하고 따듯하다고 느껴져서였다.
그리고.
지금 오빠의 등이 또 새삼 단단하고 따듯하게 보였다.
“괜찮냐?”
이내 등을 보이고 서 있던 오빠가 몸을 돌리며 물었다,
“웅…!”
현아는 그제야 긴장을 놓으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오빠도 따라 웃으며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하기야, 그 정도는 거뜬하지?”
“그게 무슨 말이야?”
“안 다쳐서 다행이라는 말이지.”
이내 오빠의 얼굴 위로는 장난기가 가득 떠올랐다.
아마 또 고새를 못 참고 장난치고 싶은 모양인데.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 줄까?
그래.
오늘은 좀 멋있었으니까.
“이 손으로 내 여동생을 밀쳤었나?”
그 말 한마디로 오빠가 왜 평상시와 달리, 격하게 대응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항상 놀리고 장난은 치더라도….
동생이 다치는 꼴은 절대 그냥 못 지나치는 오빠였으니까.
‘집에 돌아가면 맛있는 거 해 줘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고.
“에?”
현아는 저도 모르게 이상한 탄식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게.
“혀, 형니임….”
자말이, 아니, JS가 잔뜩 붉어진 눈을 거칠게 비벼대며.
“저를 위해서….”
울고 있던 까닭이었다.
“저놈을 상대해 주시다니, 흡….”
뭔가 커다란 오해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아닌데.”
역시나, 오빠는 딱 잘라 일축했다.
“다 압니다. 제가 저런 놈 상대하다가 괜히 일이 커지면, 그래미에서 상을 못 받게 될지도 모르니 대신 나서주신 거잖아요.”
“그게 아니라….”
“형님의 그런 바다처럼 넓고 깊은 시야와 용암처럼 뜨거운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현아는 그런 자말을 경악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분명 살벌한 표정을 한 채 흉측한 주먹에서는 새빨간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는데….
“저는 앞으로 형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겠습니다.”
“됐다고.”
“거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혈서라도 쓸까요?”
“그만, 좀.”
사람이 저렇게 단번에 돌변할 수 있는 건가?
“그래미에서 말할 수상소감도 정해놨습니다.”
“뭔데?”
“이번 제 타이틀곡이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명곡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담아?”
“갓치스여, 영원하라.”
“지랄.”
자신이 생각해 온 자말과 사뭇 다른 모습에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 * *
공연이 곧 시작될 거라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고.
밥알은 계속 백스테이지에서 편하게 보라고 했지만….
“됐다고.”
현승은 재차 거절하고는 인파 속에 섞여 들었다.
확실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직 페스티벌인 만큼 발 딛고 서 있기 어려울 만큼 사람이 많았다.
그때.
현아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어왔다.
“오빠, 헬멧 쓰고 있어서 뭐가 보이긴 해?”
“노래를 귀로 듣지, 눈으로 보냐?”
“그건 그렇지만, 귀로 즐길 거면 여길 왜 와?”
현승이 그 물음에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그 말도 맞네.”
일리가 있는 말이라며, 바로 수긍했고.
탁!
헬멧에 달린 고글을 위로 젖혀 올렸다. 설마 이 정도만으로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
어차피 다들 공연 보느라 정신도 없을 테니까.
이윽고.
거대한 스크린에 [ JS ]라는 글자가 떠오르고.
화려한 레이저 조명이 무대 곳곳을 밝혔다.
─ ♬ ♬ ♬
그러고는 이내 반주가 흘러나왔고, 동시에 밥알이 천천히 그루브를 타며 걸어 나왔다.
매일 듬직한 바보 같던 놈이었는데, 저렇게 거대한 무대 위에 서 있으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확실히.
녀석은 무대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 HS의 곡이 내겐 마약이거든. 그가 내 곡을 듣는다면 황홀경에 젖겠지.
걸음걸이, 제스처 그리고 표정과 시선 처리까지.
정식적으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라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저런 건 타고나는 거다.
누가 어떻게 디렉팅해 준다고 될 일도 아니며.
제아무리 현승이라도 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노래 실력과 또 다른 재능.
─ 나는 HS의 뒤를 따라, 어느샌가 무대 위로.
그래, 저런 게 바로 재능이다.
─ 갓치스, 갓치스!
무대를 휩쓸며, 관객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 갓치스, 갓치스!
단숨에 단독콘서트처럼 느껴지게 해버리는 재능.
─ 갓치스, 갓치스!
그런 재능 때문일까?
“갓치스, 갓치스!”
자신의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연신 밥알을 따라 소리쳤다.
─ 갓치스, 갓치스! 이젠 그를 먹고 더 높이 올라가.
현승에겐 다소 수치스러운 현장이기야 하지만….
─ 갓치스, 갓치스! 이젠 그를 먹고 더 높이 올라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제이에스! 제이에스!”
어쩌면 그래미에서 상을 받을 거라고 떵떵거리는 밥알의 말이 허풍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