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3화(43/482)
“이거 오늘도 꽝인가….”
계진성은 무려 일주일이 넘어가도록 ‘LS 엔터테인먼트 사옥’에 출근 도장을 찍는 중이었다.
사옥 1층 카페테라스가 제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편히 앉은 채로 커피 한 잔을 들이켜고 있는데….
“어―?!”
저 멀리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김우현 실장.
LS 엔터테인먼트 실무진 중 가장 영향가가 있는 인물을 한 명만 꼽으라면 그를 꼽을 터였다.
“실장님! 어디 가요!”
문제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상대방은 자신을 그리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일 터였다.
정작 김 실장을 “휙!” 하고 뒤돌아 사라져 버리는 모양새를 보니 확실했다.
“거, 잠깐만 서 봐요!”
계진성은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개진상’, ‘풍산개’, ‘독종’을 비롯한 흉흉한 별명으로 불리곤 하는 악질 중 악질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말하자면 매니지먼트의 관계자 입장에서는 계진성을 만날 바에, 외나무다리에서 부모의 원수를 만나는 쪽이 훨씬 더 낫다고 할 정도였다.
“잠깐만! 서 봐요!”
그렇게 두 사람의 추격전이 이어지기를 잠시.
“내가 입 열면 곤란해질 텐데!”
그 말에 김 실장이 일순 멈칫했다.
“얼마 전에 2팀 소속 애 중에 사건 하나 있었을 텐데? 여기서 이렇게 크게 말해도 되는 건인가?”
매니지먼트 2팀 소속 아이돌 그룹의 리더가 대마초 흡연도 아닌 ‘구매 미수’로 조사를 받은 바 있었다. 비록 직접 관리하는 친구는 아니라지만 자신이 관리하는 2팀 소속인지라 처리 과정을 들으며 몇 년은 늙었을 거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덮어 무난하게 지나간 줄 알았건만, 개진상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어찌 정보를 입수한 모양이었다. 이대로 돌려보냈다간 어떤 화가 돌아올지 모를 노릇이니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따름이었다.
“하아, 씨―”
결국 김 실장이 걸음을 멈췄고….
“담배 한 대 태웁시다.”
마지못해 건넨 제안에 개진상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저는 LS 옥상에서 피우는 담배가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 * *
계진성은 언젠가 매니지먼트사 건물 내에 도청기를 설치할 수 있다면 어디에 설치해야 좋을지를 고민했다. 물론 정말 그런 짓을 했다가는 쇠고랑을 면치 못할 테지만 그냥 남들처럼 괘씸한 상상 한번 해 본 셈인데….
‘흡연 구역이지.’
그가 고른 곳은 대표실도, 이사실도, 홍보부나 매니지먼트 팀이 사용하는 사무실도 아닌 흡연 공간이었다. 연예면은 물론이거니와 9시 뉴스 토픽이 될 만한 주제의 대화가 가장 자연스럽게 오가는 공간이 바로 흡연 구역이 아닐까?
“것참, 듣고 있어요―?”
그런 이유로 김 실장과 대화를 나누는 지금 역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참이었다.
“예, 예, 집중해서 듣고 있습니다.”
“이 양반아, 그럼 대꾸해야지.”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봐! 이봐! 안 듣고 있었잖아요!”
김 실장이 눈매를 좁히며 채근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 말에 계진성이 답했다.
“뭐, 그냥 하던 대로 알아냈죠. 냄새 맡자마자 경찰에, 검찰에, 매일 전화 넣고 발품 팔고. 퇴근도 경찰로 했다가, 검찰로 했다가. 난리도 아니었어요.”
“대단하시네.”
“대단하긴요? 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희생하는 거죠. 연예부 기자가 퇴근이 어디 있어요? 나는 죽으면 천국 갈 거야. 실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 말에 김 실장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원하는 게 뭔데요?”
계진성 같은 기자가 그 정도 규모의 사건을 당장 보도하지 않고 애지중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언젠가 ‘더 큰 정보’를 얻기 위한 물물교환의 화폐 정도로 쓰기 위함일 확률이 농후했다.
이제 원하는 무언가가 생겼으니 굳이 찾아와 자신이 쥐고 있는 정보에 대해 언급한 거겠지.
그때.
계진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실장님은 말이 잘 통해서 좋아.”
“원하는 정보나 말씀하세요.”
“아니, 그냥, 별건 아니고….”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HS 한 번 만나게 해 줘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 나오자 김 실장이 “켁, 켁!” 하고 기침을 하며 매캐한 담배 연기를 뿜어 댔다.
그러고는 따끔거리는 목을 어루만지며 저게 미쳤나? 하고 묻는 것 같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왜요? 내가 못 할 부탁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한번 얼굴 보고 마주 앉아서 인터뷰 딸 수 있게 해 달라는 건데 뭐 그렇게 놀라요?”
취재하는 과정에서 느꼈는데 LS 엔터테인먼트 전체가 유독 ‘HS’라는 작곡가에 있어서 만큼은 지나치리만큼 폐쇄적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범죄자인가? 아니면 구설수에 휘말려 은퇴한 작곡가가 이름을 숨기기라도 한 건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모든 정보를 숨기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을 따름이었다.
“HS는 왜요?”
김 실장의 물음에 그가 답했다.
“왜긴, 팬이라서 그래요.”
“하, 씨, 정말….”
“진짜 팬이라서 그래요.”
계진성이 재차 능글맞게 답했다.
“이번 앨범 듣고 완전 팬 됐다니까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몰라도 꽁꽁 숨겨 놓으려고 애쓰시는 것 같은데, 앨범 홍보는 해야 하지 않아요? 더군다나 동시기 음원 차트 경쟁자가 제이블인데….”
반면, 김 실장은 여전히 그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이러시니까 더 이상하네? HS, 혹시 전과자예요? 아니면 구설수 휘말렸다가 은퇴한 작곡가가 세탁해서 활동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기사 잘 써 줄 테니까 자리 한 번만 만들어 줘요. 서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제안하는 건데 대체 왜 그러시는데요?”
김 실장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술을 깨물어 댔다.
‘하, 거참….’
사실 계진성의 제안은 제법 상식적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닌 현승인지라 반사적으로 날 선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장담컨대 현승에게 인터뷰 이야기를 꺼내 봐야 길길이 날뛰면서 거절할 터였다.
“본인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편이라 장담할 순 없습니다.”
그 말에 계진성이 되물었다.
“아니, 미성년자인 아이돌 그룹 리더가 대마초 구매 시도하다가 입건돼서 검찰 조사까지 받고 판결 기다리고 있는 게 말이 되나? 알려지기라도 해 봐요. 사실상 그룹 해체까지 거론될 만한 사안인데 같이 연습실에서 썩었던 멤버들은 대체 무슨 봉변이람?”
그렇지, 그놈은 완전히 미친놈이다. 지하 연습실에서 썩고 썩다가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인기 좀 얻고 돈 좀 벌더니 관심 둘 곳이 없어서 마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 모종의 이유로 김 실장은 현승에게 더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다. 싸가지가 없을 뿐이지 헛짓거리는 안 하니까.
김 실장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열받게 하지 말고 본론만 말해요.”
“아니, 시도라도 해 보라는 겁니다.”
계진성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재차 덧붙였다.
“이런 보도를 인터뷰 한 번으로 참아 준다는데 뭘 망설입니까? 어디로 봐도 내가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제안 아닌가?”
맞다, 계진성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제안이 맞기 때문에 더 뒤가 구리게 느껴졌다. 저 독종이 팬심 하나로 이토록 후한 제안을 할 리 없다고 확신했으니까. 김 실장이 선뜻 답하지 못하고 거듭 망설이던 찰나였다.
“저, 멀리 보는 놈입니다. 어차피 유야무야 잘 덮인 사건 들추며 LS 같은 대기업이랑 척져 봐야 기자 생활 힘들어지기밖에 더 합니까? 물론 보도 못 할 사안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좋게 가자는 거죠.”
그러고는 김 실장의 어깻죽지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실장님, 나한테 빚진 겁니다?”
그 말에 김 실장이 심호흡하고는 답했다.
“일단 오케이.”
그러고는 강경한 투로 부연했다.
“대신 본인이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연락드릴 테니까 기왕이면 사옥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 실장이 옥상을 먼저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계진성이 그의 등 뒤에 대고 물었다.
“에이, 실장님도 저 좋아하시면서 괜히 또 서운하게 말씀하시네! 당사자가 싫다면 터뜨려도 된다는 걸로 이해하고 있겠습니다?”
반협박에 가까운 말이었다.
우뚝―.
옮기던 걸음을 멈춘 김 실장이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래, 그럼 터뜨려.”
“예?”
“그럼 터뜨리라고.”
치명적인 사안이라지만 현승으로 인해 생긴 문제는 아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애걸복걸해서라도, 안 되면 강제적으로라도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 줬겠지만 현승에게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전달해 본다고 했지? 분명히 말하지만, 당사자가 싫다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렇게 되면 터뜨리든, 평생 주물럭거리며 살든 당신 맘대로 하라고. 괜히 앵앵거리면서 사람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말을 마친 김 실장이 “개자식이, 열받게 하고 있어….” 하고 중얼대고는 곧장 계단실로 사라져 버렸다.
“어유….”
이내 홀로 남겨진 계진성이 박수를 치며 중얼댔다.
그리고는.
김 실장의 마지막 말을 넌지시 따라 해 봤다.
“개자식이, 열받게 하고 있어….”
많고 많은 연예기획사 중 LS 엔터테인먼트가 남달리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김 실장과 같은 실무자 겸 실 결정권자들이 지닌 태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대표건, 이사건, 실장급이건, 호락호락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이돌 그룹 리더의 마약 구매 미수 같은 핫한 토픽을 쥐고 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어후, 카리스마 있어….”
어찌 됐든,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네, 좋아요.”
현승에게 인터뷰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돌아온 답이었다.
“어차피 얼굴만 안 팔리면 되잖아요?”
“그건 그런데….”
“남들은 홍보 때문에 방송도 나가잖아요?”
덕분에 치명적인 보도는 막을 수 있었다지만….
“미치겠네….”
문제는 약속된 인터뷰 당일에 생겼다.
신호음이 울리기를 잠시.
수화기 너머에서 현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태연하기 그지없는 팔자 좋은 목소리였다.
“야, 너 어디야? 지금 난리 났잖아!”
― 예?
“그 개 같은 기자 놈 난리도 아냐.”
김 실장이 재차 부연했다.
“회의실에서 두 시간 넘게 기다렸대. 자기가 햇병아리도 아니고 길들이기 하는 거냐고 열 바짝 올라서 난리니까 얼른 가 봐.”
전화를 마친 김 실장이 휴대폰 액정에 뜬 저장명을 바라봤다.
「 금쪽이 」
이 녀석, 잘할 수 있겠지?
* * *
사실 인터뷰는 내키지 않았다. 애초에 음악은 다시 하되 절대로 대중 앞에 서지는 않겠노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다만 수락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김 실장에게 일련의 사연이 있어 보인 까닭이다.
“해 줄 수 있을까?”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 어지간한 이유로는 제안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뭔가 지독하게 얽힌 일이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을 꺼낸 것처럼 보였기에 수락했다. 연예계라는 허울 좋은 곳의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큰일이네.’
덜컥 수락하고 별생각 없이 차일피일할 일을 하며 지내다 보니 인터뷰 당일이 된 채였다. 기자 양반은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는데 모자 하나, 마스크 하나 준비하지 못했다. 얼굴을 가릴 게 없을까 싶어 작업실을 둘러보다가 마땅한 게 없어 곧장 작업실을 나섰다.
“흠.”
그래, 어차피 두 시간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닐 터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사옥 근처 마트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던 찰나였다.
“어?”
문이 열리자 안에 선 배달 기사를 발견했고.
“예?”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말했다.
“혹시 저한테 헬멧 파실래요?”
“예? 제가 이걸 왜 팔아요?”
“한번 얼마인지 들어나 보시죠.”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얼만데요?”
“10만 원.”
“안 됩니다.”
배달 기사가 단호한 투로 덧붙였다.
“요즘 단속이 얼마나 심한데….”
“20만 원.”
“거참! 일해야 한다니까요?”
“25만 원.”
“안 돼요, 얼마를 줘도 안 돼요.”
“30만 원.”
“돈이면 다 되는 줄 아세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더 안 불러요?”
“29만 원.”
“왜 줄어들어요?”
“시간이 돈이라서.”
이내 현승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28만 원, 27만 원, 26만 원….”
그 말에 배달 기사가 소리쳤다.
“30만 원! 처음 부르신 대로 30만 원에 팔겠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아세요?―라고 호통치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 같았으나 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하다 싶었다.
자신에게 있어 이 헬멧은 자존심이다. 고작 30만 원의 돈으로 자존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 가져가시죠.”
정답이다.
“잘 생각하셨어요.”
현승이 곧장 지갑에서 오만 원권 지폐 여섯 장을 꺼내 건네줬고.
“예, 고객님.”
돈을 받아 든 배달 기사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가내 평안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렇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거래가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