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30)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31화(430/482)
웨일스가 뱉은 말은 도박이었다.
“저를 VINCIS에 채용하세요.”
처음부터 이런 제안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이건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이었으니까.
“꽤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그래서인지, 앞에 앉은 현승의 얼굴은 당황으로 얼룩진 채였다.
아니, 당혹스러워 보인다고 하는 쪽이 더 맞으려나.
“내가 뭘 믿고, 당신을 채용하라는 거지?”
일순 현승의 날카로운 눈매가 웨일스를 향했다.
“동생의 안위나 들먹이며 협박하던 사람인데.”
“그러니까요. 이왕 협박할 거, 돈 말고 조금 더 이득이 되는 걸 요구하는 겁니다.”
그 말에 현승이 무슨 뜻이냐는 듯 “이득?”하고 중얼거렸다.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아주 긴 얘기가 될 테니까.
.
.
“선배가 먼저 쫓아다니라고 하셨잖아요.”
살면서 그토록 애절하게 매달렸던 적이 있었나?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는 정말 열심히, 그저 열심히 한 것밖에….”
그러나.
탐욕스러울 만큼 달큼한 말로 살살 구슬릴 때는 언제고.
“너도 동의한 일이잖아.”
날카로운 창처럼 변한 혀로 가장 아픈 곳을 찔러왔다.
“이 정도면 너한테도 아쉬운 제안은 아니잖아? 아픈 어머니 생각해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
그 뒤에 말들은 들리지 않았다. 대충, 퇴직금이라던가 위로금 같은 걸 챙겨줄 테니 사업을 준비해 보라는 말이었다.
그저 허울 좋은 위로일 뿐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기자질밖에 없는데.
대체 뭘 하라는 걸까?
그냥 이 바닥을 떠서, 조용히 살라는 말이지 않나?
“상황에 따라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줘야, 이 사회가 평화롭게 굴러가는 거 아니겠냐?”
“네, 맞죠.”
하나, 나는 그냥 묵묵히 수긍했다.
“안녕히 계세요.”
어차피 이미 윗선에서 다 결정된 일이었고, 덤벼든다고 해서 다치는 건 나뿐이다.
나는 그 정도도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억울해도, 별수 있나.
그렇게 청춘을 모두 받친 회사에서 쫓겨났다.
명예도,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한 채로.
단지.
기사 하나 썼다는 이유였다.
하필.
그 기사 속 주인공이 대단한 나랏밥 먹는 분의 애인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던 거지.
그것도….
자신에게 퇴직 요청한 상사가 지시한 일이었다.
그래.
이번에만 잘하면 바로 편집장을 달아주겠다는 말에 죽자고 따라붙었던 내가 바보였다.
날 지켜줄 보호구 하나도 없이.
악으로, 깡으로 덤비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래, 대중들은 진실을 알아야 하는 거니까.
대중이 사랑한, 그 가수가….
사실 유부남인 상원의원의 애인이라는 것을.
그것도 모자라, 상원의원이라는 점을 이용해 본처를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어느 순간, 진실은 바뀌었다.
나는 승진 욕심에 눈이 멀어, 단독으로 허위 보도를 낸 사람이 되어 있었다.
BNC 언론사의 모토는….
‘늘 진실만을.’
이었거늘,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아들, 엄마는 항상 아들을 믿어.”
불치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는,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아마, 허튼 길로 빠지지 말라는 어머니의 염려가 담긴 걱정이었을 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리 없이 웃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고는 속으로 대답했다.
‘믿지 마세요.’
그토록 충성을 다 해온 회사로부터, 존경하던 상사로부터 배신을 당했는데 뭘 믿을 수 있겠나.
세상은 원래 이런 거 아니겠나?
권력이 있는 자가 유리한 패를 쥐고 있는 거 아니겠냐고
“이 정보를 세상에 알리기 전에,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그때부터 나는 권력을 쥐기로 했다.
기자로서의 소신.
기자로서의 신념.
기자로서의 결심.
이런 것 따위가 중요하겠는가?
당장 내일 먹고살 걱정부터 해야 할 판인데.
어머니가 당장 하루라도 치료를 못 받으면 위험한 상황인데,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래.
누군가는 상황에 따라 악역을 해야 하는 거잖아.
“잘 한번 생각해 보시고, 후회하지 않을 쪽으로 선택하세요.”
나는 그동안 쌓아온 정보로, 사람들 위에 섰다.
“섭섭지 않게 드릴 테니, 제발 삭제해 주세요.”
그들은 내가 가진 정보를 두려워했으며,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모자라 천문학적인 돈다발을 들이밀었다.
그러다 보니….
이전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동료들도 소식을 듣고 연락이 와서 정보 하나만 흘려달라며 애원했으며, 레코드사들은 타 경쟁 기업을 무너트리기 위해 의뢰했다.
고작 정보 하나에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가수 사라 스튜어트와 세계적인 작곡가 마테오가 부녀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 남 사생활이나 팔아먹는 파파라치 주제, 우쭐하지 마.
사라 스튜어트는 자신에게 일침을 날렸다.
“흠, 사생활이나 팔아먹는 파파라치라….”
맞는 말이라 속이 쓰렸다. 그러나, 그런 말은 귀가 닳도록 많이 들었기에 괜찮았다.
다들 앞에서는 쩔쩔맨다지만….
결국 뒤에서는 파렴치한 인간이라며 욕할 테지.
하지만….
어차피 당신들도 돈이 안 되면, 다른 사람을 팔아서라도 내 입을 막으려고 할 거잖아.
─ 아니면, HS에 대해 아는 정보 하나만 흘려주면 당신과 마테오에 대한 정보는 아예 모른 척해드릴게요.
결국, 다 상황에 따라 악역이 되는 것뿐이야.
뭐, 다르겠어?
인간은 본래 악한 심성을 타고나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이지.
─ HS에 대한 정보? 그래, 딱 하나 알려줄게.
사라 스튜어트, 너도 결국….
─ HS는 너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는 거야.
“제가 잘못 들은 거죠?”
─ 마테오랑 내가 부녀지간이라는 사실, 지금 당장 언론사에 가서 뿌려도 돼.
이럴 리가 없는데.
─ 근데, HS는 건들지 마.
그럴 리가 없는데.
“진심이십니까?”
─ 응.
“재미없어졌네요.”
혼란스러웠다.
─ 넌 이게 재밌어? 사람이 최소한 보장되어야 할 사생활을 두고 거래하는 이 상황이, 넌 재밌냐고.
차곡차곡 쌓아온 탑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진 기분이었다.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잘못 쌓아온 탑이었을지도 모르지.
부정했다.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그 기분을 애써 부정했다.
그날부터 HS에 대한 모든 걸 알아내기 위해 몰두했다.
나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고?
그 사람이라고 다를 것 같아? 결국 그 사람도 똑같을 거야.
봐봐.
배디에 대한 사건을 여동생 이름으로 고소했잖아? 지는 불리하면 빠지려는 거겠지.
거기까지 다 계산한 거라고.
돈으로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전부.
─ 알겠으니까, 당장 금액을 말…!
결국 얘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 이런 걸로 저희 오빠 협박할 생각 마세요. 어차피 저야 얼굴 알려지면 완전 땡큐거든요?!
이 인간 하나가 뭐라고 다들 이러는 거야. 본인의 안위보다, 이 사람이 중요하다고?
부모를 들먹이면 표정 하나 숨기지도 못하는 이놈이.
여동생 얘기 한 번 꺼내면 당장 덤벼들 것 같은 이놈이.
대체 뭐라고.
이러면 나만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 거잖아.
나도….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단 말이야.
기자로서, 인간이라는 탈을 쓴 인간들의 민낯을, 제대로 된 진실을 알리고 싶었어.
제대로 된 직장에서….
제대로 된 기자 노릇, 그리고 엄마에게 제대로 된 아들 노릇을 하고 싶었어.
하지만.
이 업계는 아무도 날 받아주지 않았단 말이야.
나도….
처음부터 악역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란 말이야.
.
.
“그냥, 이제 저도 악역 역할은 지쳤거든요.”
상념에서 깨어난 웨일스가 짤막이 대답했다. 그런 그의 얼굴 위로는 잠시지만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그럼, 악역을 안 맡으면 되는 거 아닌가?”
“네. 저도 그러려고 지금 요구하는 겁니다.”
“당신을 채용하면, 대체 어디에 쓰는데?”
웨일스는 현승의 퉁명스러운 반문에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제 이름까지 아시길래, 저에 대해 다 아시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파파라치라는 것 정도는 알고 왔지.”
날카로운 지적에 헛기침을 터트렸다.
아.
사람의 제일 아픈 곳을 아무렇지 않게 찌르는 건, 사라 스튜어트랑 똑같네. 누가 연인 아니랄까 봐.
“그렇다면 틀렸습니다.”
이내 웨일스는 짐짓 태연한 얼굴로 양손을 쫙 펼쳐 그럴싸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제가 쥔 정보라면 현재 미국 연예계 생태계 자체를 뒤흔들 수도 있거든요.”
“내가 당신처럼 양아치도 아니고, 남 사생활로 협박하며 생존할 필요는 없는데.”
물론 현승은 어림도 없다는 듯 바로 일축했다.
웨일스는 다시 한번 헛기침을 터트렸다.
“쿨럭! 쿨럭!”
이렇게 단번에 잘라 낼 거라고는 생각 못 한 까닭이었다. 이러면, 오기가 좀 생기는데….
“그런 게 아니라. 아무도 VINCIS를, 당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할 힘을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웨일스는 제법 근엄한 얼굴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래, 이 정도까지 말했으면 구미가 좀 당기겠지.
아니나 다를까 공중에서 마주친 현승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나는 그럴듯한 직장을 얻고, 당신은 힘을 얻고….”
웨일스가 쐐기를 박기 위해 말을 덧붙이려던 찰나.
지이이이잉!
테이블 위에 올려둔 현승의 휴대폰이 울렸다.
[ 알콜중독자 : 내일 법무팀과 찾아가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은가? ]오스틴으로부터 온 문자를 확인한 현승의 입가에는 아주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니.
승기를 잡은 듯 몹시 여유로운 입꼬리였다.
“근데 말이죠.”
현승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는 힘이라는 건, 정보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실력으로 쌓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시만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보도 곧 힘의 일부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데, 저를 협박하려던 사람과 손을 잡을 만큼 정보가 필요한 입장이 아니….”
그러나 다시 한번 휴대폰이 크게 진동했고.
지이이이잉!
현승이 휴대폰을 집으며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그런 현승을 바라보는 웨일스의 표정은 삽시간에 여유를 잃은 채 초조해 보였다.
마치 주인이 자신을 두고 가버릴 듯 불안해하는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 김엄마 : 자말이 공연하고 돌아오다가 뺑소니를 당해서 입원했다는데, 같이 가 볼래? ]이내 문자를 확인한 현승이 미간을 확 좁혔고.
“급한 일이 생겨서 갑니다.”
곧장 외투를 챙겨 일어나기도 잠시.
“이건 가져갑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필름을 낚아챘다.
왠지….
이게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든 까닭이었다.
“저, 저기, 잠시만!”
웨일스는 그런 현승을 다급히 불러세웠지만.
딸랑.
맑은 종소리와 함께 bar를 나가 버렸고.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웨일스는 그런 현승의 등 뒤로 목청껏 소리쳤다.
살면서….
두 번째로 애타게 매달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