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3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37화(436/482)
이솔은 곡이 끝날 때까지 두 눈을 깜빡거렸다.
이전과 달리 어떠한 호응도, 감탄도 할 수 없었다.
탁.
이내 자동으로 재생이 멈추고.
“자신 있어?”
현승이 의자를 돌려, 정면으로 마주해 오는 순간까지.
깜빡, 깜빡.
멍청한 얼굴로 눈만 연신 깜빡거릴 뿐이었다.
“예, 예?”
현승이 그 모습에 미간을 찡그리며 재차 되물었다.
“이 곡에 피처링 할 자신 있냐고.”
이솔과 한슬기는 난처한 얼굴로 성우영을 바라봤다.
그러나.
성우영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황이 가득 섞인 얼굴로 그런 한슬기와 이솔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다들 왜 눈치만 살피지?”
그러자, 현승이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이솔은 그 말에 헛숨을 들이켰다.
까딱하면 딸꾹질이 나올 뻔했다.
이솔은 꾹 참아내듯 가녀린 손가락을 꽉 말아쥐었다.
덜덜 떨리는 손끝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시험하시려는 걸까?’
이솔은 바닥 타일을 따라 눈알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현승이 들려준 곡은….
‘부를 수 있는 곡이 맞나?’
비록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지만, 흔히 클럽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곡이었다.
으레 ‘EDM’이라 불리는, 강렬하고 빠른 비트가 귀를 사로잡는 그런 곡 말이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섹션별로, 구간별로, 지닌 바이브가 다 다르다는 거였다.
그래.
한국 전통 악기 소리 같은 게 들려오는가 하면.
별안간 로우파이 기법을 사용해,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듣는 듯 변화구를 주었다.
하지만.
원초적으로 강렬한 비트 사운드가 주를 이루는 곡인 만큼 어디에, 대체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곡이 싫다는 건 아니다.
이런 장르를 평상시에 잘 듣지도 않는 사람일뿐더러, 단 한 번밖에 듣지 않았지만, 귓가에 잔잔히 맴돌 만큼 중독성이 강했다.
다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사람의 목소리보단, 기계음이 어울릴 것 같은 곡이지 않나?
아니면, 오튜튠으로 만들어진 목소리라던가….
그래서.
이솔은 현승의 말이 진심인지 혹은 감사한 마음이 진심인지 시험하려는 건지 헷갈렸다.
“이솔, 네가 말해봐.”
다만, 겨울 한복판에 서 있는 듯 차가운 현승의 눈매를 보았을 땐, 그저 테스트하려고 던지는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하, 할게요.”
이내 이솔이 두 눈을 꽉 감으며 대답했다.
“할게요. 말고, 자신 있냐고.”
현승은 그런 이솔을 몰아세우듯 다시 물었다.
이솔은 그런 현승과 공중에서 시선을 마주했다.
이건 테스트다.
“자, 자신 있어요!”
이솔은 현승이 지금 자신을 테스트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더욱 굳세게 답했다.
“그렇게 나와야지.”
그러자 현승이 만족스럽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휴우.”
이솔은 그제야 안심하며 묵힌 숨을 토해냈다.
아주 살짝.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나, 감사한 마음에 뭐가 되었건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니.
자신 없더라도, 해내야지.
그것도.
아주 잘 해내야지.
.
.
.
라고 결심한 지, 딱 5시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허억, 허억….”
부르는 파트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숨이 벅차오르는 걸까. 마치 탈출구가 없는 지옥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우욱….”
이솔은 밀려오는 헛구역질을 억지로 참아내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아 상체를 일으켰다.
“버티지 말고, 한슬기랑 바꿔.”
현승은 토크백을 통해 이솔에게 미련 떨지 말고 이만 나오라고 지시했지만….
“아니요.”
이솔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마음대로 해라.”
현승도 그런 이솔을 딱히 더 말릴 생각은 없었다.
녹음이 시작된 이상, 악기에게 따스한 인정을 베푸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 윽….”
이솔은 알 수 없는 탄식과 함께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사실 한편으로는 현승이 다시 한번 말려주길 바랐으나.
별수 있나.
잘하기로 했고, 잘 해내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비록.
연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물 한 병만 주고 5시간 동안 부스 안에 세워놓고 있다지만.
그래.
변태처럼 기계음으로나 낼 수 있을 법한 소리를, 생목소리로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해내야 한다.
“밴딩 빼라고, 그게 어려워?”
아무리 구박하더라도.
“목 근육 수축도 마음대로 못 해?”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해도.
“내가 목으로 악기 소리를 내라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보다 호흡 더 하고, 다시.”
계속 반복, 또 반복되더라도.
“다시, 다시!”
버텨내고, 해낼 것이다.
그때.
지직하고 토크백이 연결되는 소리가 헤드셋을 통해 들려왔고.
“다, 다시 한번 해볼게요.”
이솔은 군기가 바싹 든 일병처럼 자동반사적으로 허리를 다시 곧게 펴고 섰다.
“나와.”
“네?”
“나오라고.”
“왜….”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외였다.
“이쯤 하면 됐으니까, 나오라고 하겠지. 너 자꾸 사람 몇 번씩 얘기하게 할래?”
“나, 나갑니다요.”
이솔은 혹시나 말을 바꿀세라, 허겁지겁 녹음 부스를 뛰어나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출소하면 이런 느낌일까?
콧속을 파고드는 공기의 질이 다르게만 느껴졌다.
“후우….”
그렇게 공기를 만끽하며 좋아하기도 잠시.
“한슬기, 들어가.”
멤버가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듯, 부스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에 고개를 돌렸다.
차마, 볼 수 없었다.
오랜 비행으로 피곤했을 텐데, 목 잠긴다며 자지도 말고 기다리라고 하는 바람에 거의 6시간을 멀뚱히 앉아서 대기하는 것도 모자라.
현승이 디렉팅하는데 거슬릴까 봐 연습마저 벌서는 사람처럼 복도에 서서 했다지.
‘하지만, 슬기야….’
이 언니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단다.
꽈악.
이솔은 부디 동생이 저 감옥, 아니, 지옥에서 살아나올 수 있도록 두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 * *
박 전무는 운동이 끝나고 오랜만에 현승의 작업실에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하체 운동만 1시간을 넘게 한 덕택에, 근육들이 피부를 찢고 나올 듯 난리였지만….
“아, 맛있다.”
박 전무는 그마저도 좋다는 듯, 아주 흡족해 보였다.
“녀석, 뭐하려나?”
그것도 모자라, 현승이 별다른 일이 없다면 2차로 같이 상체 운동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포웨이 사건도.
배디 사건도.
얼추 잘 마무리되었으니.
기념 삼아 운동도 좋지 않겠나?
가만 보면.
한국에 있을 적에는, 그저 의무적으로 운동을 했었다.
그도 아니면….
마음이 복잡하거나 일이 제대로 안 풀릴 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운동을 하곤 했었는데.
미국에 오고 나서는.
보통 기분이 좋거나, 일이 술술 잘 풀려서 여유롭게 운동을 한 기억뿐이었다.
아마.
그건 현승이 녀석 덕분일 테고.
그래.
현승은 어떻게 보면 VINCIS의 거대한 기둥 같은 존재로서 모든 걸 도맡아 하고 있었다.
물론.
사무적인 일을 담당하는 건 아니라지만.
음악을 만드는 회사에 걸맞게 좋은 곡을 만들어 내고, 그 곡으로 자신을, 그리고. VINCIS라는 기업의 이름값을 높여 세웠다.
그 결과.
단기간에 유니스 뮤직 그룹처럼 세계적인 유통사와 인수 합병까지 해낼 수 있던 거고.
특히.
기자회견 이후로 현승에 대한 입지는 점점 더 높아졌다.
단순히 팬이 많아졌다는 뜻이 아니다.
HS라는 이름에 대한 신망이 높아졌다.
곡에 대한 신망은 물론이고, 대중들에게 한 사람으로서 신망까지 얻어낸 것이다.
↳ 단순히 곡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넘어와서 VINCIS도 차리고 유니스 뮤직 그룹까지 차지하게 된 거 아니겠어?
그럼, 녀석은 날 닮아 수완이 아주 좋지.
이름도 아예 민수완으로 개명하라고 할까?
↳ 사실 인종차별 당하고도 말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렇게 당당히 대응하는 거 멋있다
어딜 감히 현승이한테 먹히지도 않을 차별을 하고 말이야.
↳ 저 사람은 단순히 외모만 멋진 게 아니라, 자기 사람까지 챙길 줄 아는 진정한 사나이라니까.
그럼, 그럼, 우리 현승이가 제 사람은 아주 잘 챙기지.
물론.
진정한 사나이가 되려면 아직 근육량이 모자라지만.
“쯔읏.”
박 전무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기도 잠시.
“역시 끌고서라도 데려가서 운동시켜야겠어.”
그렇게 결심한 찰나, 작업실 앞에 도착했고.
띠리리릭.
잠금장치를 풀고 작업실 문을 열었다.
─ 둥, 둥, 둥!
그러자 안에서 끈적한 공기가 훅 빠져나옴과 동시에, 귀를 때리는 비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박 전무는 녹음실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빈 물병이 구겨져 테이블 위를 굴러다녔고.
‘누구지…?’
정체 모를 여자 둘이, 머리카락을 이불 삼아 소파에 늘어져 자고 있었다.
‘저 녀석, 사라 스튜어트랑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었나? 웬 여자를 둘이나….’
박 전무가 현승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고.
─ 둥, 둥, 둥!
이내 작업실 구석에 놓인 디제잉박스 앞에 헤드셋을 낀 채 서서 무아지경으로 레코드판을 돌리고 있는 현승을 발견했다.
녀석이.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빌보드 차트에 오를 곡을 다시 만들어도 모자란 판에 운동도 빼먹고, 저런 거나 하고 말이야.
하여간, 김우현이 애를 너무 오냐오냐한 탓이지.
‘저건….’
그러나 박 전무는 차마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DJ 같은 형색을 한 현승의 모습이 어색한 탓도 있었고, 너무 몰두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오랜만이네.’
박 전무는 새삼 그런 현승의 모습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작업하는 모습을 본 적도 드물기도 했고.
저렇게 머리칼이 땀에 절어, 샤워하고 나온 듯 축축한 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시하고 온 신경을 곡에 집중하고 있는 건….
더군다나.
그 작업이 디제잉이라, 너무 생소하고 낯설었다.
광적.
그래, 몹시 광적인 그 모습에 홀린 듯 바라보던 그때.
─ 지지지지직.
레코드판 스크래치가 이뤄지고, 젊은 시절 즐겨듣던 곡과 비슷한 느낌의 바이브로 변했다.
‘이건?’
박 전무는 마음속 깊이 묻어났던, 갱스터와 같은 거친 사나이의 낭만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그래.
이건 90년대에나 들었던, 웨스트코스트 힙합이다.
─ If you can kill him, kill him
이내 앳되지만 그렇기에 패기가 가득 묻어나는 여성이 비트를 찢어버릴 듯 랩을 뱉었다.
‘대체 무슨 곡을 만들고 있는 거야?’
박 전무가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디제잉 박스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때.
─ 둥, 둥, 둥.
다시 한번 곡은 변화구를 맞이했다. 북소리인가? 거센 북 치는 소리와 세련된 비트가 아주 빠른 속도의 엇박자로 교차했다.
‘진짜 대체 뭐야?’
다시금 비트에 맞춰 빠르게 쏟아지는 여성의 추임새 같은 목소리는, 사람인지 기계음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혀, 현….”
박 전무가 궁금증을 못 참고 현승을 향해 인기척을 낸 찰나.
“어?”
현승이 고개를 들어, 박 전무를 발견했고.
쉿.
소파에 늘어진 여자들을 눈짓으로 가리키고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소리 없이 웃었다.
끄덕끄덕.
박 전무가 그 모습에 홀린 듯 주억거리기도 잠시.
이윽고.
현승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래.
녀석이라면, 이런 곡이든, 저런 곡이든 무슨 상관이겠나.
어차피 잘될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