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48)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49화(448/482)
조슈아는 출근길부터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기분에, 썩 유쾌하지 못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이내 주차를 끝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향한 조슈아는 전광판에 빠르게 변하는 숫자를 바라봤다.
그때.
자신의 등 뒤로 세한 기운이 감돌았고.
“이른 시간에 출근하시네요.”
동시에 퍽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뭐, 일이 바빠서요.”
슬쩍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지금 이 불쾌한 기분의 주인공인 민 대표가 서 있었다.
“그 자리까지 오르셨음에도 이리 열심히 해주시니, 대표로서 참 든든할 따름입니다.”
누구 놀리는 건가?
“다행입니다.”
민 대표의 말은 언뜻 예를 갖춘 듯 보였으나, 조슈아의 속을 뒤집어 놓기 딱 좋았다.
“타실까요?”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저벅, 저벅.
민 대표는 앞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쯧, 오늘도 재수 없는 낯짝을 봐야 한다니.’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듯한데, 사람을 하대하는 게 익숙해 보이는 모양새가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대표가 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삐익.
민 대표는 대표실이 있는 맨 꼭대기 층 버튼을 누르고는, 여유롭게 뒷짐을 지었다.
“대표라는 자리가….”
조슈아는 그런 민 대표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참 드높지 않습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민 대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올라가는 데만 시간이 꽤 소비되더라고요.”
그 모습에 조슈아는 조소가 섞인 비웃음을 흘리며, 비아냥 섞인 어투로 덧붙였다.
“그래도 이 엘리베이터처럼 제법 빠르고, 쉽게 오르셨으니 꽤 좋지 않으십니까?”
취임식과 회의에서 본 민 대표라면, 이 정도 말을 알아들었겠지. 알아들으라고 한 말이고.
“음….”
역시나, 민 대표는 마뜩잖은 듯 눈썹을 들썩이기도 잠시.
“그렇게 보이신다면, 그런 거겠죠.”
다시금 평온해진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계속해서 HS라는 이름을 사용하실 겁니까? 그래도 명색이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되신 몸인데.”
그 모습에 더욱 심기가 불쾌해진 조슈아는 꽤 노골적으로 적대심을 담아 말했다.
하나, 뜻과 달리 민 대표는 얼굴색 하나 변치 않았다.
“그것뿐입니까?”
“뭐가요?”
“저를 협박할만한 게, 그것뿐이냐고 묻는 겁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만, 목소리는 살벌하게 내려앉은 채였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극도로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다기에, 예민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는데….
‘뭐, 그리 대단한 신분이라고.’
그러한 현승의 변화를 예리하게 발견해 낸, 조슈아는 짐짓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고.
“그저 회사의 입장으로 얘기드린 겁니다. 제가 감히 대표님을 어찌 협박한다고….”
머지않아 말머리를 잘렸다.
“조슈아씨.”
민 대표는 고저 하나 없는 목소리와 한 치의 변화도 없는 얼굴로.
“제 신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그쪽이 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혹 무기를 쥔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차갑게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럴 일 없으니, 저번에 드렸던 얘기처럼 본인 일이나 열심히 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러고는 이내 수고를 덜어주듯, 곧장 뒤이어 덧붙였다.
“이번 개인 앨범은 민현승으로 발매하거든요. 그래서 다소 떨리는데, 잘 지켜봐 주시죠.”
그와 동시에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가서 일 보시죠.”
조슈아의 얼굴이 당황으로 얼룩지기도 잠시.
“그럼, 이만….”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한편.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홀로 남은 현승은 발에 맞지 않아 불편한 구두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쿠웅!
괜히 허세 한 번 부린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 버린 까닭이었다.
“왜 그런 말을 해서.”
자연스레 머리칼을 흩트리려던 현승은, 왁스로 고정된 걸 깨닫고는 손을 떨어트렸다.
“민현승입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냈고.
“이번 개인 앨범, 원작자 이름을 변경하고 싶은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HS 말고, 민현승으로.”
전화는 아주 짧게 끝이 났다.
“하….”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이미 입 밖으로 흘려보낸 말이니 무를 수도 없다.
지금 앉게 된, 대표직처럼.
그래.
다시 한번 결심했으니까.
“그래도 이 엘리베이터처럼 제법 빠르고, 쉽게 오르셨으니 꽤 좋지 않으십니까?”
조슈아가 비아냥거리며 던졌던 말처럼 결코 쉽고, 빠르게 올라온 자리가 아니니까.
바닥을 치고, 시간을 거슬러, 어렵사리 오른 길이다.
버튼만 ‘띡’하고 누르면 편리하고 빠르게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게 아니라.
돌에 긁혀, 생채기도 나고, 낭떠러지를 구르면서.
암벽을 타고, 악착같이 다시 돌아온 걸음이다.
그러나.
높이 올랐다는 건, 그만큼 사방이 내리막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 신중을 다해야겠지.
이번 생은, 달라야 하니까.
띠링!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거대한 대표실의 문이 현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눈 깜짝할 새, 현승의 개인 앨범 발매일이 다가왔다.
“아니, 근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민현승으로 발매를 한다는 거야? 지금껏 숨겨와 놓고.”
그러한 연유로, 현승은 퇴근하는 길에 빈치스 사옥을 찾았다. 사실, 찾았다기보단 김우현의 성화에 못 이겨 끌려온 참이었다.
발매일만큼은 놓칠 수 없다나?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본명으로 활동한다는 소식에 몹시 놀란 듯 보였다. 아니, 삐진 건가?
“이제 유니스 맨 꼭대기 층에 들어앉았으니, 언제까지고 숨길 수도 없으니까요.”
“그럼, 여태껏 왜 보물단지처럼 그렇게 꼭꼭 숨겨왔대?”
“어차피, 이름 하나 알려져도 친구 하나 없는 몸이라 괜찮아요. 사적으로 아주 깔끔하단 뜻이죠.”
“그렇게 말하면 좀 속상하잖냐.”
멋쩍어진 김우현이 뒷머리를 긁적이다 말고, 괜스레 패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튼 온 김에 같이 모니터링이나 좀 할까?”
“굳이 모니터링까지 해야 해요?”
“너 유니스로 가고 나서 적응한다고 얼굴도 못 봤는데, 이런 핑계 삼아라도 봐야지.”
현승은 김우현의 말에, 겸연쩍다는 양 입술을 달싹이기도 잠시.
“그래서, 반응은 어때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아직, 뭐….”
김우현은 말을 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그의 반응으로 보아, 폭발적이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HS가 아닌 이상,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대대적으로 홍보를 낸 것도 아니고, 정체를 밝힌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대중적인 장르도 아니니까.
속이 쓰리지만, 인정해야지.
퓨전 하이엔드 EDM은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엔 아직 너무 앞서 나가긴 했으니까.
“현승아.”
김우현은 점차 어두워지는 현승의 얼굴을 살피다 말고, 나지막이 불러 세웠고.
“네가 좋아하는 말 있잖아.”
“제가요? 혹시 쫄?”
“그거 말고, 이 초딩아.”
못 말린다는 듯 이마를 짚기도 잠시.
“낭중지추.”
현승의 눈을 따사롭게 마주하며 덧붙였다.
“분명, 이번 곡도 세간에 널리 알려질 거야. 그럴 수밖에 없잖아? 네가 만든 곡인데.”
이런 분위기는 영 간지러운데.
“이 자식!”
그때 마침 집무실 문이 발칵 열리고, 박 전무가 열을 뿜어내며 당차게 들어왔다.
“내 연락은 다 무시하더니…!”
그러고는 방금 막 운동을 끝낸 것인지, 잔뜩 펌핑된 팔 근육을 자랑하며 현승을 들어 올렸다.
“아, 당장 내려요.”
현승이 질색하며 발버둥을 쳤지만, 박 전무는 땅바닥에 다리를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일렀거늘. 이렇게 근육 다 빠진 몸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어?”
얼핏 들으면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는 것 같겠지만.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았기에, 정색할 수는 없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유니스로 가서, 꽤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걸 알겠지.
그러니.
몸을 단련하라는 걸 거고.
“정신력은 체력에서부터 나오는 거야. 이 바닥을 체력 하나로 버텨온 사람으로서, 보증하지.”
박 전무가 줄곧 해오던 말이 있으니, 알 수 있었다.
치열한 사내 정치.
그 속에서 살아남으라는 응원의 메시지라는 것을.
“아, 진짜 아빠한테 땀 냄새 나요. 얼른 내려줘요.”
하지만, 땀 냄새는 못 참아주겠다.
“주 3회 운동하러 온다고 약조하면 내려주지.”
“제가 주 3회씩이나 어떻게 와요?”
“뭐든 다 의지의 문제다. 하려면 할 수 있어.”
현승은 우선 멀미가 나기 전에 이 놀이기구에서부터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고.
“알겠어요, 알겠어.”
“그래, 그래야지.”
약속을 받아낸 박 전무는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띠며 현승을 가뿐히 내려놓았다.
‘대체 어떻게 된 몸이길래 계속 커지는 거야?’
현승이 그런 박 전무의 몸을 흉기 보듯 보기도 잠시.
“이두석 선생님은요? 오늘 연락해 오셨었는데….”
둘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지금, 시간을 봐라. 어르신은 아까 들어가셨지.”
그러자, 박 전무는 안 그래도 묻고 싶었다며 곧장 되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 어떻게 이두석 어르신을 꾀어낸 거냐? 전 대표님이 다시 복귀해 달라고 애걸복걸해도 안 된 일인데.”
“제가 전무님과 이사님을, 어떻게 꼬셨었는지 잊으셨습니까?”
그 물음에 현승이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질문했고.
“승부욕?”
“싸가지?”
둘은 곰곰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양, 동시에 대답을 내놓았다.
“…….”
현승이 할 말을 잃은 듯, 조용히 고개를 숙이기도 잠시.
“실력.”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익살스럽게 웃어 보였다.
“실력으로 꾄 겁니다.”
둘은 그런 현승의 얼굴을 바라보다 말고, 피식 웃으며 그것도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 이번 앨범도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박 전무가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현승의 등을 두드렸고.
“네, 물론이죠.”
현승은 그 말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이 아직 주머니 안에 송곳이 있는 걸 모른다면, 주머니에 손을 넣게끔 만들면 될 일이니까요.”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어, 흔들어 보였다.
“물론 제가 그렇게 하면 좀 볼품없으니까, 남의 입을 통해서.”
화면 위로는 이두석이 보낸 문자가 떠올라 있었고.
이모티콘의 정체는 아직 묻지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