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54)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55화(454/482)
슈퍼볼 하프타임쇼는 전미가 열광하는 이벤트 중 하나이다.
대형 경기 중간에 진행되는 쇼인 만큼, 가수들이 합동 또는 단독으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인다.
으레.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당대 인기 가수들이 말이다.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 하프타임쇼는 밴드나 치어리딩 팀이 무대를 꾸몄다.
하나.
전 담당자가 최초로 당대 인기 아이돌 그룹을 무대에 세웠고.
그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하프타임쇼에 한 획을 그었다.
이후.
하프타임쇼에 오른다는 건, 당대 인기 가수라는 증표가 되었고.
어느덧 ‘뮤지션’이라면 꼭 서고 싶은 무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러한 무대에 세울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건….
“페리스한테 연락이 왔어?”
총담당자인, 데이지 라일리였다.
“네, 그런데 사전 미팅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데이지의 후임 격인, 조이는 격식을 차린 자세로 조금 전 통화한 내용을 전달했다.
“갑자기 사전 미팅? 언제?”
“오, 오늘 원하신다고.”
“당장, 오늘?”
“네, 시간과 장소를 얘기해 주시길래 받아 적기는 했는데….”
그러고는 멋쩍은 양,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데이지는 조이가 내민 쪽지를 받아 들며 코웃음을 쳤다. 갑작스러운 사전 미팅 요청도 황당한데, 임의대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통보할 줄이야.
“아무래도….”
그렇게 말한 데이지는, 쪽지를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페리스가 큰 무대만 올라서 그런지, 담도 큰 모양이네.”
마음 같아선, 시간과 장소를 다시 잡아, 페리스에게 도로 통보하고 싶었으나 궁금해졌다.
섭외 요청을 넣은 게 언제인데, 잊을 때쯤 연락이 와서는 대뜸 사전 미팅을 하고 싶다니.
어떤 연유인지 궁금했다.
물론, 다 들어줄 생각은 아니다. 페리스가 필요한 건 맞지만, 없어선 안 될 존재도 아니니까.
“다시 시간과 장소를 조율해서 연락할까요?”
조이는 심각해 보이는 데이지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으음.”
그 물음에 데이지가 고개를 좌우로 내젓기도 잠시.
“세계적인 디제이께서 내게 뭘 원하는지 들어나 보지, 뭐.”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 * *
외곽에 허름한 재즈 바 안으로는 노랫소리가 잔잔히 흘렀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EDM 디제이가 보자고 할 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클럽이나 라운지라면 또 모를까.
다른 테이블에 앉은 여성의 옅은 웃음소리마저 다 들릴 것 같은 이곳에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딸랑─!
궁금증으로 내달려온 걸음을 다시 돌려야 하나 싶을 때쯤 한적한 바 안으로 한 여성이 걸어 들어왔고.
“데이지 라일리 씨, 맞으시죠?”
그 여성은 자신을 알아본 것인지, 곧장 앞까지 다가와 물었다.
“네, 페리스 씨.”
페리스야, 당장 포털 사이트에만 검색해도 대문짝만하게 얼굴이 걸려 있으니 못 알아볼 수가 없다지만.
“제가 데이지라는 걸 바로 알아보셨네요?”
제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본 것인지?
다른 테이블에도 혼자 온 손님이 몇몇 앉아 있는데.
“일하실 적에 까칠한 성격이라고 하길래, 가장 까칠해 보이는 분에게 왔을 뿐입니다.”
페리스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요량인지, 속을 뒤집어 놓을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는 맞은편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디제잉 하실 때처럼, 언행도 거침이 없으신 편이네요.”
“네, 묻는 말에는 솔직하게 대답하는 편이어서요.”
“오늘 이곳에서 사전 미팅을 요청하신 연유가 뭐죠?”
데이지는 그런 페리스의 태도가 퍽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말아쥐는 것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리스가 당대 인기 스타는 아니라지만, 세계적인 디제이라는 점 때문에도 있지만.
데이지는 아이돌 그룹을 무대에 올린 지난 담당자처럼 하프타임쇼 역사상 한 획을 긋고 싶은 원대한 꿈을 지닌 까닭이었다.
모두 ‘가수’를 올릴 때.
처음으로 디제이를 단독 무대로 올려서, 세계적인 페스티벌 같은 무대를 선보이고 싶었다.
다른 디제이도 아니고….
‘페리스’라면 화제성도 충분히 끌 수 있을 테니까.
“아무래도 이곳이 딜하기 딱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때 페리스가 기억을 복기시키는 양, 바 내부를 천천히 훑다 말고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덧붙였다.
“특히, 이 자리가 말이죠.”
그러고는 싱긋 웃음을 보탰다.
“딜이라면, 혹 출연료를 더 올려달라는 겁니까?”
데이지는 눈매를 좁히며 그런 페리스에게 따지듯 되물었다. 자신을 따로 불러내, 할만한 딜이라고는 그런 것밖에 없었으니까.
러브콜에도 여태 연락을 안 하던 이유가 이거였네.
“제가 처음으로 누굴 가르치고 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생각했으나, 페리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나아갔다.
“그 친구도 이번 하프타임쇼에 함께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출연료는 그대로 동결하셔도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방향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고.
“아무나 올릴 수 있는 무대가 아니라는 걸, 아실 텐데요?”
데이지는 더 이상 페리스에게 끌려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패는 맞지만, 버리지 못할 만큼 간절한 패는 아니니까.
“디제이를 올리는 것 또한 우리 측에선 도전과 같은 일입니다. 이번에 페리스 씨 섭외 건도 윗선에 간신히 허락을 맡아낸 겁니다.”
“그럼, 간신히 허락 한 번 더 맡아보시는 건 어때요?”
특히, 이렇게 나오면 빨리 버리는 쪽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페리스 씨─.”
데이지는 고압적인 어투로 페리스를 불러 세웠다.
“무언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우리는 굳이 페리스 씨가 아니어도 됩니다. 하프타임쇼 무대에 오르고 싶어서, 대기표 뽑고 목 놓아 기다리는 아티스트가 한 트럭인데.”
그러고는 이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덧붙였다.
“굳이 그런 딜을 받아들이면서까지, 페리스 씨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자존심 상할 만한 이야기를 고르고, 골라 한 말이었는데….
“하실 얘기는 다 끝나셨나요?”
페리스의 얼굴 위로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되레 다 얘기했냐며 여유롭게 되물어오기까지 했다.
“네, 뭐.”
그러기도 잠시.
“민현승.”
“예?”
“HS.”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덧붙였다.
“그게 무슨….”
데이지는 그런 페리스를 집요하게 바라보았으나, 차마 말끝을 잇지 못한 채 흐렸다.
물론.
그 이름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이름이, 그 필명이, 왜 지금 이 자리에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저와 함께 하프타임쇼 무대에 오르게 해 달라는 이가, 만약 그라도 안 되냐고 묻는 겁니다.”
묻는 말에 대답을 솔직하게 하는 타입이라고 했나?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인 민현승이라고, 저명한 작곡가 HS여도 안 될 문제일까요?”
그런 것 같았다. 그녀는 거침없이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설명과 함께 되짚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는 현재 한 그룹의 사업가이지, 아티스트도 아닐뿐더러 한국인….”
데이지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지우며, 부정했고.
“그에 대해 잘 모르시나 봅니다.”
이미 기세가 당당해진 페리스는 거침없이 데이지의 말허리를 자르며 말을 이었다.
“그는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아티스트입니다. 무엇보다 하프타임쇼 무대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오르는 곳이지, 미국인만 오르는 무대는 아니지 않나요?”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모습이 꽤 얄미웠으나.
“그럼, 윗선에 간신히 허락 맡는 척 손쉽게 승낙받아서 연락 취해주실 거라 믿고, 무대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데이지는 당장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애꿎은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 * *
한편.
주말을 이용해 한국에 잠시 들어온 현승은, 양쪽으로 남자를 낀 채 밤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이러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었는데….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자꾸만 클럽 입구에서 입장 거부를 당한 까닭이었다.
이름 좀 날렸다 ─하는 디제이들이 공연하러 온다는 클럽부터 연예인들과 웬만한 돈 좀 있다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비밀스러운 라운지까지 죄다 돌아다녔으나.
“당최 이해할 수가 없네.”
계속해서 가드들의 손에 의해 제지당할 뿐이었다.
“아니, 왜 안 된다는 거지?”
현승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답답함에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그 모습조차, 지나다니는 이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부족함 없이 잘생겼을 따름이었다.
그래.
그러니, 클럽 문도 밟지 못하고 거절당한 이유가, 절대 저 녀석 때문은 아닐 거였다.
그렇다는 건….
김우현은 고개를 돌려, 건물 유리창에 비친 자신과 박 전무를 번갈아 쳐다보다 말고 입을 열었다.
“현승아, 피곤하니까 이쯤에서 들어갔다가 우리 내일 다시 나와보는 건 어때?”
김우현은 차마 너 때문이 아니라, 우리 둘의 용모와 나이 때문에 못 들어가는 거라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물러설 수 없는 남자의 자존심이니까.
“아니요. 한 군데만 더 가보는 걸로 하죠.”
그런 속도 모르고, 현승은 계속해서 당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현승이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때 박 전무가 김우현에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저야, 그렇다 치더라도 전무님이….”
“나야, 나이가 많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꼭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 같….”
이내 진실을 덧붙이려던 김우현의 옆구리를 팔꿈치를 찌르고는 앞서 걷던 현승을 불러 세웠다.
“현승아.”
그러나, 현승은 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우리는 아마 오늘 어떠한 클럽에도 들어갈 수 없을 거야. 나이트라면 또 몰라도.”
박 전무는 그런 현승에게 다가가 어깨를 잘게 다독이며 덧붙였다.
“그러니, 어디 한적한 포장마차에 가서 간만에 셋이 술잔이나 기울이는 건 어….”
그러나, 현승은 그 말 또한 전혀 듣지 못했다.
대신, 갑자기 결연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돌아가죠.”
“어?”
“미국으로.”
한국에 도착한 지, 아직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시차 적응도 안 된 이 마당에, 다시 돌아가자니?
“내일 가는 거 아니었어?”
뒤따라온 김우현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고.
“지금 가야 해요.”
현승은 이럴 시간 없다는 듯, 큰길로 걸음을 돌렸다.
“현승아!”
“금쪽아!”
둘은 영문도 모른 채, 그런 현승을 따라 걸음을 옮겼고.
페리스한테 디제잉 배우고 있다는 기사가 났는데 사실이야? 하프타임쇼에서 합동 공연한다는 소문은 또 뭐고.. 혹시 페리스랑 사귀는 건 아니지?..
현승의 손에 들린 휴대폰 액정 화면 위로는 사라 스튜어트로부터 도착한 문자가 떠오른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