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56)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57화(456/482)
현승은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를 얼추 끝낸 이후에야 소파에 몸을 뉘며 묵힌 숨을 토해 냈다.
“하아….”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멀미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만하지.
요즘 부쩍 일과 연습에 치여, 거의 못 잤으니까.
특히나.
슈퍼볼 하프타임쇼라는 거대한 무대에 오르게 되었으니, 연습량을 두 배로 늘렸고.
그 탓에 잠은커녕, 숨 돌릴 틈도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현승이 페리스가 짜놓은 판에 기꺼이 오르기로 마음을 먹은 뒤, 가장 열심히 한 건….
디제잉 연습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자신이 디제이로서 무대에 오른다고 하면, 반발하고 일어설 사람들이 한 트럭일 테니까.
그들에게 책을 잡히고 싶진 않았다.
그래.
본디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완벽히 해낸다면 자격에 대해 논할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그래도, 유니스의 품위나 명성을 떨어트리는 일이라며, 나무라고 수군대는 사람들은 있을 테지만.
거기까지는 자신이 막아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일도, 무대도 끝내주게 잘해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오해부터 풀어야겠지.
“대표님.”
그때 미셸이 조심스레 곁으로 다가왔고.
“사라 님에게 연락했는데, 그, 그게, 작업하는 중이니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오라고….”
현승은 그 말에 “아아.” 하고 대충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표가 되었다고 한들, 미숫사라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어줄 리가 없지. 오스틴 말도 안 듣는데, 내 말이라고 들을 리가.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연락 넣어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지난 문자에 대한 답변 듣고 싶으면 당장 오라고.”
현승 또한 그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 금쪽이였다.
* * *
사라는 미셸의 연락을 받고는 이를 아득 갈았다.
바드드득.
날카로운 송곳니가 부드럽게 갈릴 듯, 살벌하기 그지없는 마찰음이 장내를 가득 채울 만큼.
바드드득.
지난 문자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으면, 당장 대표실로 오라고? 참나, 누가 듣고 싶대?
아니.
그것보다, 개인 연락처로 하면 될 일이지.
왜 본인 비서를 통해서 오라, 가라 하는데?
선 긋는 거야, 뭐야.
마치 공적인 일이라는 양 비서를 통해 연락해 왔다는 점에, 사라는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사귄다는 거야, 뭐야!
쿠웅─!
사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작업실 문을 부술 듯 열어젖혔다. 자존심이야, 상하지만.
별수 있냐고.
궁금한데.
신경이 쓰이는데.
그리고, 보고 싶기도 하고….
“헙!”
사라는 저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입을 틀어막으며 기함했다.
그러고는 누군가, 제 생각을 읽으면 어쩌나 하는 말 같지도 않은 걱정을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터벅, 터벅.
사라의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으며, 금세 대표실 문 앞에 당도했다. 당장 문을 열라는 듯, 두드리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현승의 비서인 미셸이 자신을 마주했다.
“들어가 보시죠.”
미셸은 그런 사라에게 가볍게 목인사를 전하고는,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사라는 그런 미셸을 지나쳐, 대표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문득─.
미셸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매일 같이 볼 테니까.
“와서 앉아.”
본인이 불러놓고, 무심한 얼굴로 손짓하는 저 남자를 말이다.
“굳이 답변이 듣고 싶어서 온 건 아니야. 그래도 대표의 체면이 있으니, 와 준 거야.”
“그런 걸로 해.”
“그런 걸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거야!”
“알겠다니까?”
사라는 자신의 속을 들킨 것만 같은 기분에, 괜히 씩씩거리면서도 상석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따듯한 걸로 줄까, 시원한 걸로 줄까.”
그때, 현승이 찻잔을 들며 물었다. 사라가 그런 현승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잠시.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걸로 부탁해.”
괜히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한 이유로, 현승이 소리 없이 웃음 짓는 얼굴은 보지 못했다.
사라가 이토록 뾰로통하게 구는 이유는, 단순히 문자에 대한 답변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현승이 유니스 뮤직 그룹 대표로 취임한 지도 어언 몇 개월이 흘렀다. 적응하느라, 힘들겠지.
개인 앨범 발매도 있었고.
대체 자신에게 피처링을 요구한 의미가 무엇일까.
─ Just wanna be by your side.
특히, 가사의 의미가 궁금했지만, 바쁠 테니 재촉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에 대한 대답을….
현승의 진심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고분고분히 기다렸다.
사실….
현승의 발매와 동시에, SNS에 홍보하고,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챌린지를 미국에 유행시키기 위해 발 빠르게 챌린지까지 참여했지만.
멋없게, 생색내진 않았다.
그런데─.
돌아온 소식은, 현승이 페리스라는 디제이에게 디제잉 교육을 받고 있으며 함께 슈퍼볼 하프타임쇼에 합동 공연을 오르기로 했다는 거였다.
하물며.
현승의 입이 아닌, 기사를 통해 듣게 되었고.
홧김에 연락했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별안간, 그 답을 해 주겠다며 대표실로 부른 것이다. 그것도, 비서를 통해서 말이다.
여기서 가장 화나는 건─.
타인에 의해 이토록 감정이 오락가락한다는 거였고.
두 번째로 화가 나는 건─.
자신이 현승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는 거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 화나는 건─.
달그락.
제 앞에 유리컵 하나를 내려놓는 이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마셔.”
이쯤 되면 인정해야겠지.
“그리고, 아무 사이 아니야.”
저, 말 한마디에 안심하는 걸 보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라고.”
저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그것도, 아주 많이.
“큼! 뭐, 엄청 궁금한 건 아니었어.”
근데 왜 말은 이렇게 나오는 건지.
“그래? 그럼, 이만 가 봐.”
그의 냉담한 말 한마디에 이렇게 서운할 거면서.
“슈, 슈퍼볼 하프타임쇼!”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으면서.
“나, 나도 하기로 했어.”
“그래?”
“응, 그래서 말인데 혹시 편곡 좀 봐줄 수 있어?”
“음….”
결국 애간장이 타는 건, 내 쪽 일 걸 알면서도.
“바빠서 안 되나?”
그래도 좋으니, 별수 있냐고.
“아니, 도와줄게.”
저 말 한마디에, 주체할 수 없이 입꼬리가 씰룩거리는데.
“고, 고마워.”
사라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고.
“별거 아냐.”
그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한 현승의 얼굴 위로는 옅은 붉은 기가 떠오른 채였다.
* * *
현승은 요즘 점심조차 먹을 시간이 없어, 자리에서 샌드위치 같은 걸로 배를 때우곤 했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제공해 주는 건, 비서인 미셸이 아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입니다. 끼니는 거르지 마시죠.”
킬리언이었다.
“예, 감사합니다.”
현승은 이제 익숙하다는 양, 그가 주는 샌드위치를 순순히 받았다.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고.
험악한 인상이나 거대한 풍채만 보면, 박 아빠를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지만, 하는 행동은 꼭 김 엄마 같았다. 매번, 끼니 걱정해 주는 걸 보면 말이다.
둘을 섞어 놓으면 이런 느낌이려나?
현승이 시답잖은 생각을 이어 나가던 그때.
“매일 연습하시러 가죠?”
“네.”
“한번 구경 가도 됩니까?”
킬리언이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실질적으로 엔지니어 업무에서 손을 떼어냈다고는 하나.
그는 아직 음악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소녀처럼 초롱한 눈을 하고 있질 않은가? 그 모습에서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은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도움이나 조언을 주기도 했고.
“뭐, 안 될 거야 없….”
현승이 흔쾌히 대답해 주기도 잠시.
“대신, 저도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나요?”
킬리언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을 바라보면서.
“무슨 일이시죠?”
그 물음에, 킬리언이 잠시 당황하더니 사뭇 진지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마, 먼저 도움을 청한 적은 없기에, 놀란 것이겠지.
보통은 킬리언이 먼저 돕겠다며 나섰으니.
“편곡 한번 도와주시겠어요?”
현승은 킬리언이라면 흔쾌히 도와줄 거라, 생각했다.
사라의 편곡을 봐주기엔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유니스 뮤직 그룹 내에서도 전설이라 불릴 만큼 실력이 짱짱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러나.
현승의 예상과 달리 킬리언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고.
“그건 어렵겠습니다.”
처음 보는 딱딱한 얼굴로, 완강히 거절했다. 다만, 눈동자만큼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왜죠?”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나 줄 현승이 아니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이제 엔지니어가 아닙니다.”
“엔지니어 팀을 총괄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인원 관리만 할 뿐, 손 뗀 지 오래됐습니다.”
“그렇다고 한들, 실력이 어디 가겠습니까?”
현승은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들 들썩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킬리언이 편곡을 봐주면 안 되는 이유가 없질 않은가?
같은 사내 이사인 조슈아는, 아직도 디렉팅을 봐주고 있고.
직접 작곡한 곡을 발매하고 있질 않은가? 성적은 영 별로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킬리언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음악을 사랑하는 그가, 왜 엔지니어로서는 활동하지 않는 것인지 늘 의문이었다.
오늘, 그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고.
“저 말고 다른 실력 좋은 엔지니어로 붙여드리겠습니다.”
“그건 싫습니다.”
“분명 대표님이 만족할 만한 실력을 지닌 이가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은 싫다니까요?”
둘이 창과 방패처럼 말을 주고받기도 잠시.
“제게 중요한 사람의 곡을 맡기는 것이라, 킬리언 씨가 아니라면 의미 없습니다.”
떼를 쓰듯 칭얼거리던 현승이 사뭇 진지한 어조로 덧붙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간곡했으며, 정중했다.
킬리언이 그런 현승의 태도에 꽤 난처하다는 양, 아랫입술을 잘근거리기도 잠시.
“아무리 그러셔도, 그 부탁만큼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현승이 잡아 볼 새도 없이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아니.
잡을 수 없을 만큼, 킬리언이 씁쓸한 눈빛을 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 * *
대표실 문을 나선 킬리언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물론.
가녀린 여주인공처럼 바닥에 픽하고 쓰러지진 않았다.
탁.
튼튼한 두 다리가 멀쩡히 바닥을 잘 짚어 준 덕택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현승의 비서인 미셸이 킬리언을 부축하려는 듯 다가와, 물었고.
“괜찮습니다.”
킬리언은 저도 모르게, 그런 미셸의 손을 내쳤다.
“당신, 이러다 건강 다 상해요. 끼니는 챙겨가면서 해야죠.”
미셸의 얼굴 위로 그녀의 얼굴이 겹친 까닭이었다.
그와 동시에.
불현듯 지난 기억들이 필름처럼 빠르게 “파르륵” 소리를 내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아무리 일이 좋아도 그렇지. 저건 병이야, 병.”
“이래서 원, 킬리언 아래 있다간 앞길 다 막히겠어.”
“혼자 저리 잘 났으면, 개인적으로 활동하라지.”
떠오르기 싫은 기억부터.
“아내 임종도 제대로 못 지킬 만큼, 음악에 미친 사람을 우리가 무슨 수로 제칠 수 있겠어? 안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음악이 사람보다 먼저일 수야 있어?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지.”
“그래, 저런 미친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야. 상종하지 말자고.”
잊지 말아야 할 기억까지.
그래.
이 기억들이, 오늘 현승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