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59)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60화(459/482)
조슈아는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불편했다.
물론 자신이 찾아온 걸음이라고는 하나….
꾸울꺽.
어찌 되었건, 십몇 년을 함께 생활한 회사 동료와 물 한 모금 마시는 일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마치 물에 갈퀴라도 달린 양 목구멍을 긁으며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네 집무실에는 물이 없나?”
그때, 킬리언이 불편한 기색을 한껏 비추며 비아냥거렸다.
하기야.
갑작스레 찾아와서는 십분 넘도록 물만 마시고 있으니.
“물이야, 내 집무실에도 차고 넘치지.”
“그럼, 거기서 마시지, 왜.”
“내가 설마 물 마시자고 왔겠니?”
정말이지, 그래도 말투는 영 아니꼬웠다. 저 녀석은, 꼭 말을 저렇게 해야만 속이 시원한가?
그래, 예전부터 저랬다.
되레 자신을 귀족 놀이하는 가식덩어리로 치부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본래 제 성격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어느 정도 가식도 깔아야 하고.
잘 보여야 할 사람에게는 생글생글 웃기도 하고.
필요한 걸 쥐고 있는 이에게는 아부도 좀 해야 하는 법이다.
그게, 사회고.
공동 운명체에서는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조슈아는 그런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나.
킬리언은 그렇지 못했다.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야장천 혼자 일만 해 댔다. 어떠한 소속도 없이.
혼자만, 아주 잘.
조슈아로선 그런 킬리언이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혼자 고고한 척, 하는 꼴이 영 마뜩잖았다.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
홀로 도주마처럼 내달리니, 그의 주변 사람들은 얻어먹을 쌀알조차 없지 않았던가?
그러던 중.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그가, 모든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신 만년필을 잡았다.
그러나.
다들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엔지니어실을 독차지하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하나.
그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케줄이나 인원 관리만 터치할 뿐. 엔지니어 업무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관망했다.
예상외의 행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회력 떨어지는 성격마저 바뀐 건 아니었다,
본업을 관망하듯.
사내 이사들의 밥그릇 싸움 또한 손 놓고 관망만 했다.
홀로 그렇게 고고한 척하더니….
별안간 어린 대표에게 넉살을 부리며 대놓고 라인을 타더니, 이젠 그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며칠 전, 우연히 본 그 장면이 꿈이 아니라면 확실했다.
“할 말 있으면, 빨리해. 바쁘니까.”
킬리언은 정말 일정이라도 있는 것인지 계속 손목에 채워진 낡은 가죽 시계를 바라보며 채근했다.
“뭐 때문에 그렇게 바쁜데?”
그런 킬리언을 관찰하듯 바라보던 조슈아가 넌지시 물었다.
“내가 일일이 보고해야 하나?”
킬리언은 그 물음을 날카롭게 받아쳤다. 본래 같으면, 알 거 없다며 성의 없이 대꾸했을 텐데.
공격적인 어투로 보아, 자신이 예상한 게 맞는 모양이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너 오늘 미팅이나 회의 없잖아. 다 확인하고, 오는 길인데?”
“알 거 없잖아. 개인적인 용무일 뿐이야.”
“네가 개인적인 용무 같은 걸 보기도 했었던가?”
킬리언은 자꾸만 자신을 떠보는 듯한 조슈아의 태도에, 표정 따위를 숨길 생각이 없는 듯 미간을 구겼다.
“대뜸 찾아와선 뭐 하자는 거야.”
조슈아는 분위기가 더 살벌해지기 전에, 순환시키기 위해 특유의 넉살 좋은 미소로 대응했다.
“뭘 하자는 건 아니고, 그저 궁금해서 말이야.”
사실, 본인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막무가내로 찾아와, 시비를 걸고 있는 모양새로 비칠 것도 알고 있다. 모르고 온 길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 건, 못 참겠단 말이지.
“왜 갑자기 다시 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지.”
죽은 듯, 지내던 킬리언이 무엇에 동요했는지.
“트집이라도 잡으러 온 건가?”
킬리언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 대표의 모습처럼 보였다.
“자꾸 그러면, 애써 잡은 마음이 삐뚤어질지도 몰라.”
다들, 나만 보면 트집 잡는다고 하네. 이쯤 되면 진짜로 트집을 잡아 줘야 하는 건가.
“뭐라는 거야?”
킬리언은 조슈아의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그 모습에 조슈아가 아주 작게 한숨을 내뱉기도 잠시.
“말뜻 그대로 궁금할 뿐이야.”
다시 한번 강조하듯 덧붙였다.
“네 개인적인 궁금증 따위를 풀어 줄 마음도 없고, 네 트집에 발목 잡혀 줄 생각도 없어.”
하나, 감정의 골이 깊은 사이인 만큼 킬리언의 입을 쉬이 열리지 않았다. 대신, 경고하듯 덧붙였다.
“나는 앞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할 거고, 네가 그토록 싫어하는 어린 대표를 잘 보필해 볼 거야.”
“내내 사내 정치에는 관심 없는 척하더니, 때를 기다리며 몸을 웅크리고 있던 것뿐이었나?”
조슈아는 왠지 모르게 지금 웃음이 흘러나올 뻔했다.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알 수 없는 쾌락 같은 것이 불쑥 목울대를 쳤다.
킬리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늘 혼자 고귀한 척 굴더니, 킬리언도 별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
“때를 기다린 게 아니라, 걸맞은 사람을 기다린 거야.”
조슈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리가 없는, 킬리언은 그의 말을 정정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유니스 뮤직 그룹 대표라는 자리에 진정으로 잘 어울리는 사람을 말이야.”
조슈아는 그 말에 눈썹을 들썩거렸다. 마음 같아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바로 반박하고 싶었으나.
얼마 전, 어린 대표의 모습 위로 오스틴의 모습이 겹쳐 보인 까닭일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대표로서 큰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있다고는 하나, 자꾸만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이야. 음원 발매부터 시작해서 이번 하프타임 쇼 무대에 오르는 것만 봐도 그렇지.”
이내 조슈아는 킬리언을 회유하듯 차분한 어투로, 부연했다.
“그래, 그 사람은 ‘뮤지션’이라는 말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지.”
킬리언은 예상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마치 음미라도 하는 듯한 얼굴로 고개까지 끄덕거렸다.
그러기도 잠시.
“하지만.”
맹렬히 눈매를 번쩍거리며 덧붙였다.
“그렇기에 유니스 뮤직 그룹 대표라는 자리에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해.”
머지않아 킬리언의 눈매가 본 적 없는 호선을 그리며 휘었다.
“이곳은 물품 따위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널리 알리는 곳이잖아.”
물론 기분 좋은 미소가 아니라, 조소가 가득한 비웃음이었지만.
“물 그만 축내고, 이만 가 봐.”
조슈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
어느덧.
슈퍼볼의 개최일이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전미는 흥분으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만하지.
미국 미식축구 대표팀들이 단판으로 승부를 가리는 날이다.
더군다나─.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경기 스포츠 이벤트인 만큼 미국에서는 연례적인 대행사로 손꼽힌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날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지위나 신분을 이용해서라도 앞다퉈 참석했고.
안 된다면 집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시청하거나.
술집에 친구들과 어울려,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즐겼다.
덕분에.
슈퍼볼이 하는 날이면 여타 방송은 시간을 옮겨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시청률을 자랑했고.
덩달아 하프타임 쇼에 오르는 가수 라인업에도 관심이 쏠렸다.
오죽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슈퍼볼 본 경기보다 하프타임 쇼를 보기 위해서 시청한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런 와중에….
올해 하프타임 쇼는 이례적인 라인업을 공개했다.
가창력으로 전미를 사로잡은 윈터스.
세계적인 디제이라 불리는 페리스.
빌보드의 블랙엔젤, 사라 스튜어트.
그리고.
작곡가로 더 유명한,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 민현승까지.
그러니.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좀처럼 노출하지 않는 사람이, 그것도 작곡가로 유명한 사람이 갑자기 하프타임 쇼 무대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으니 말이다.
대체 어떤 무대를 보여 주려는 걸까?
사람들은 기대로 부푼 가슴을 껴안은 채, 하프타임 쇼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다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쓰읍….”
이번 슈퍼볼 개최지의 주지사인 아이저는 영 마뜩잖은 듯 미간을 좁힌 채 침음을 흘려 댔다.
그도 그럴 게─.
그는 고지식하기로는 세상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꼰대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별안간 하프타임 쇼에서 디제이 쇼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주 크게 개탄했다.
이번 개최지가 자신이 주지사로 맡고 있는 텍사스로 결정되었을 때는, 환호를 부르짖었다.
슈퍼볼이 진행되는 동안 해당 개최지는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시.
명성 높고, 모두의 우상이 되는 가수들이 와도 모자랄 판에 별안간 디제이라니.
그것도 작곡가는 갑자기 왜 무대에 서는 거지?
불만이 가득했으나….
아이저는 그저 슈퍼볼 개최지의 주지사일 뿐.
이미 확정난 라인업을 뒤바꿀 만한 권한은 없었다.
현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도 아니니까.
‘쯧.’
그는 세상이 말세라며, 혀를 끌었고 곧 시작될 하프타임 쇼를 보기 위해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남들은 밖에 앉아, 경기를 관망하고 있을 테지만.
자신은 주지사인 덕택에 경기장과 가까운 내부에서 볼 수 있었고.
그곳에는….
주지사인 아이저를 비롯해,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인사들이라고는 하나, 서로 처음 보는 사이다.
장내는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고.
머지않아.
하프타임 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장내에 설치된 거대한 TV 화면으로만 볼 뿐, 엉덩이를 일으키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포털에 검색하면 바로 인물 정보가 나오는 사람들인 만큼, 체면치레가 중요한 탓일 거다.
팡! 팡! 팡!
유리창 너머로는 무대 첫 순서를 맡은 윈터스가 요란스러운 폭죽 사이로 등장했다.
아이저는 윈터스를 구경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자리에 엉덩이를 딱 붙인 채 고고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리세를 눈에 담았다.
그녀는 누구도 비빌 수 없는 세계적인 팝스타이다. 지금을 기점으로 십 년 전부터 그러했고, 아마 앞으로 십 년 뒤에도 그럴 것이다.
그런 리세를 보며, 아이저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저런 세계적인 인물이 무대를 빛내 줘야 하는 건데….
아쉽다고 한들, 별수 있나.
팡! 팡! 팡!
돈이 남아도는지, 폭죽 소리가 견고한 강화 유리를 뚫고 연신 들려오기도 잠시.
윈터스의 무대가 끝이 났는지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줄어들기는커녕, 점차 거세지더니 귀를 찢을 듯 이어졌고.
─ ♬ ♬ ♬
아이저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망스럽기 그지없는 비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디제이 무대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TV 화면 속에도 무대 중앙에 설치된 디제잉 박스 앞에 선 페리스가 보였다.
“쯧.”
아이저는 거의 헐벗은 것과 다름없는 페리스의 인상착의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관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페리스의 공연에 열광해 대는 모습이 스크린에 가득 잡혔지만.
‘요즘 사람들은 저게 무슨 음악이라고들 좋아하는 건지.’
아이저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얼른 디제이인지 뭔지 하는 공연이 끝나고 사라 스튜어트 공연이나 시작되길 바랄 뿐이었다.
페리스보다야, 작곡가보다야.
빌보드의 공주라 불리는 사라 스튜어트 쪽이 더 나을 테니까.
─ ♬ ♬ ♬
아이저의 바람대로, 페리스의 무대는 곧 끝이 날 듯 보였다. 가장 뜨겁고, 가장 격양된 하이라이트인 만큼 머지않아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뭐, 뭐야?’
비단, 아이저만 놀란 것은 아니었는지 장내에 앉은 이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꽂혔다.
그래.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건, 세계적인 팝스타 리세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음 무대가 시작되자 창가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은 리세의 모습이었다.
“가, 갓치스─!”
리세는 그러거나 말거나, 알 수 없는 말을 감탄사처럼 중얼거릴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