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6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63화(462/482)
현승은 출근길부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도로도 자신의 기분을 알고 있는 걸까? 신호 한 번 걸리지 않고, 쌩쌩 내달렸더니 금세 유니스 뮤직 그룹 사옥에 도착했다.
주차마저 한 번에 끝낸 현승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띤 채 매끄럽게 잘 빠진 세단에서 몸을 꺼냈다.
만약 출근길부터 조슈아를 비롯해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을 만나더라도 인자하게 웃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손도 좀 흔들어 주고.
“안녕하십니까.”
생각이 씨가 된 걸까. 정말,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에 조슈아를 딱 맞닥트렸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현승은 생각만큼 인자한 웃음과 손짓을 곁들이진 못했지만, 제법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음?’
조슈아가 그런 현승을 곁눈질로 살피기도 잠시.
“대표님,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엘리베이터 문에 시선을 고정해둔 채, 말을 이었다.
“공연 반응이 좋으니, 그럴 만도 하시겠습니다.”
비아냥이 섞인 어투였으나, 현승은 그마저도 마냥 귀엽다고 느껴졌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탓인지.
혹 비아냥 속에 큰 악의가 느껴지지 않은 탓인지는 모르겠다.
“네, 뭐.”
현승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대를 성공적으로 해낸 것도, 기분 좋을 일은 맞지.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그래.
현승이 이토록 기분이 좋은 건 그래미 시상식에 특별 무대를 요청받게 된 까닭이었다.
─ 혹시 올해 그래미 특별 무대를 꾸려 주실 수 있을까요?
거기다….
─ 파이어마크맨, 짜앙─!
처음으로 파이어마크맨이라 불리질 않았는가? 어느 정도 강제성이 동반된 장난이었다고는 하나.
‘웃겼지.’
만족스러웠다.
그때.
투명하게 비치는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눈이 마주친 조슈아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자신 넘치게 대답하시더니, 허풍이 아니었나 봅니다.”
자신이 그리 반갑지도 않을 텐데, 말은 왜 이리 걸어오는지. 가만 보면, 조슈아도 참 말이 많은 작자다.
“허풍?”
현승이 대충 맞춰주듯 어깨를 들썩이며 덧붙였다.
“저는 허풍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보통 지금 하시는 걸, 허풍이라고 부릅니다.”
“그런가요? 오늘 이사님에게 하나 배워갑니다.”
조슈아는 오늘따라 넉살을 부려오는 현승을 이상하다는 양 바라보다 말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저에게 하나씩 차곡차곡 배우시면 됩니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이내.
대표실이 있는 층의 버튼을 대신 누르며, 덧붙였다.
“허풍도, 회사 일도.”
* * *
한편.
사라는 현승과 달리, 저기압 상태였다. 만약 게임 캐릭터였다면, 머리 위로 먹구름이 두둥실 떠다닐 만큼.
“후우….”
애써 진정하고,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묵힌 숨을 토해내기도.
“으, 으!”
억눌린 신음을 내지르기도.
“아니, 아닐걸?”
미친 것마냥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러기도 잠시.
작업실을 찾아온 앤드류가 그런 사라를 발견하고는 멈칫거렸다,
“사라야, 네가 부탁했던 거 찾아왔….”
잠을 세우기라도 한 건지, 그녀의 낯빛이 어두웠던 까닭이었다.
“사, 사라야?”
앤드류는 그런 사라의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원래 작업할 때마다 예민해지는 사라였기에,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콰앙!
하나, 그것만은 아니었는지 사라는 책상을 내려치고는 분기 섞인 콧바람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살벌한지….
사라의 코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슨 일 있어? 작업이 잘 안돼?”
앤드류는 그런 사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 포효하기 직전의 짐승을 달래듯, 아주 살살.
“아니에요.”
사라는 그런 앤드류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부터 앤드류가 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누군가를 달갑게 맞이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모른 척했던 것뿐이다.
“감사합니다.”
이내 앤드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받아 들곤, 인상을 와그작 구겼다.
‘하아….’
쇼핑백이 무거운 만큼, 괜스레 더욱 화가 났다.
그 녀석이 뭘 이쁘다고, 이런 걸 준비한 건지.
“fuck….”
중얼거린 욕설과 달리, 사라는 쇼핑백이 구겨질세라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이, 이만 가 볼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앤드류는 그녀의 욕설에 흠칫 몸을 떨고는, 다급히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이럴 땐, 모른 척하는 게 최고다.
다시금 작업실에 홀로 남은 사라는 쇼핑백과 한참 눈싸움을 벌였다.
‘저걸 가져다줘? 말아?’
사라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도로 쇼핑백을 집어 들고는, 작업실을 나섰다.
걸음걸이가 얼마나 씩씩한지, 사라를 마주친 사람들은 쉬이 인사조차 걸지 못했다.
그렇게 나선 걸음은….
“안에 있죠?”
현승의 대표실 앞에 도착해서야 차분히 멈췄다.
“네, 그렇긴 합니다만.”
미셸은 그런 사라를 막아 세우고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대표님은 개인적인 일로 페리스 님과 통화 중이오니, 여기서 잠시만 대기해 주시겠어요?”
“페리스? 하….”
사라는 대표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호실 사람들을 곁눈질로 살피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맘 같아선 당장 문 열라며, 생떼를 부리고도 남았을 사라지만.
현승은….
현재 이들이 모시는 유니스의 간판이자 얼굴이자 대표이다. 그런 현승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차분히 기다려 볼 요량이었다.
근데.
누구랑 통화를 하길래, 맨날 옆에 찰싹 붙어 있는 미셸까지 밖에서 대기 중인 거지?
설마….
‘페리스? 그도 아니면, 리세인가?’
사라는 단전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애초에 그녀가 오늘 저기압인 이유도 이와 같았다.
페리스와 리세.
왜 하필 두 사람은 이름마저 비슷한 건지.
그 이름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사라는 이런 감정을 느껴보는 건, 처음이라 ‘짜증’이라는 단어 말고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뭐 이렇게 통화를 오래 해?’
기다린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사라가 느끼기엔 족히 30분은 흐른 듯했다.
현승이 직접 페리스와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는 했다지만, 하필 지금 통화 상대가 페리스라는 사실이 손톱에 거스러미가 난 것마냥 거슬렸다.
대체 왜 거슬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사포로 박박 문대버리고 싶을 만큼 거슬려서 참기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리세라는 인물까지 등장해 버렸으니, 미쳐버릴 지경이다.
왜 뜬금없이 현승을 태그해서, 직접 러브콜을 한 건지.
하물며.
팔로잉을 안 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현승이, 리세와는 맞팔을 맺어주지 않았던가?
‘참나!’
결국 현승도 남자인 것이다. 나이 차이가 족히 10살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한들, 리세는 30대 중반이 된 여태껏 많은 남성 팬을 거느릴 만큼 섹시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니.
현승 또한 그녀를 여자로서 바라볼 수 있는 노릇.
‘안 돼!’
사라는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리세의 아름다운 사진을 향해 손바닥을 내려치기도 잠시.
“아직도 통화하고 있어요?”
미셸을 재촉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그 물음에 미셸이 대표실 문틈 사이로 상황을 확인하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비서로 직업을 전향해야 하나.’
사라의 이성이 점차 흐려지면서, 말도 안 되는 판단을 내리던 무렵이 돼서야 대표실 문이 열렸고.
“들어오시죠.”
미셸이 대표실 안쪽으로 손짓했다. 사라는 대표실에 들어서자마자, 집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현승을 향해 눈짓했고.
현승은 눈치껏 미셸에게 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 나가보라며,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둘만 남은 대표실 안으로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사라야, 잔뜩 흥분해서 찾아온 길이었기에 차분해지기 위함이라지만.
현승은 어째선지 온 이유를 캐묻지 않고, 괜히 딴청을 피웠다.
창가를 내다본다던가. 애꿎은 만년필을 만지작거린다던가.
‘왜 갑자기 내외하는 거지?’
사라의 분노는 별안간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그런 현승의 모습은, 왠지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는 양 보인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런 현승의 얼굴 위로 왠지 모를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좋은 일이라도 있나?
설마….
조금 전 페리스와 통화했다고 저리 신난 건가?
“페, 페리스랑 무슨 얘기 했어?”
사라는 짐짓 관심 없는 양, 넌지시 물었다.
“아, 그냥 디제잉 관련해서 자문 좀 구하려고.”
“본격적으로 공연 다닐 생각인가 봐?”
“그것까진 아직 잘 모르겠는데, 이번 그래미 어워즈 특별 무대에서 공연하게 됐거든.”
그러고는 그저 ‘일’이 목적이었다는 말에 한 번.
그래미 공연에 현승이 오른다는 말에 또 한 번.
“그래미 무대에? 네가?”
화색이 밝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혹시 또, 페리스랑 같이 합동 공연하는 거야?”
눈매를 좁히며 되물었다.
“아니, 나 혼자.”
“혼자?”
이내 현승이 혼자 한다는 대답에 다시 한번 눈을 번쩍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럼, 같이 하는 건 어때? 혼자보단 둘이 낫잖아. 어차피 내가 피처링한 곡으로도 공연할 거잖아.”
“아니, 그 곡으로 공연 안 해.”
“어? 왜 안 해? 혹시 그럼 자말이랑 한국 여자애들이 피처링한 타이틀 곡으로 공연하게?”
사라는 애처롭다고 느껴질 만큼 다급히 현승에게 다가가 물었다. 사라와 가까워질수록, 현승의 두 뺨이 옅은 홍조를 띄웠으나.
“그 곡으로도 안 해.”
“그, 그럼?”
“본 공연에서 확인해.”
고개를 돌린 탓에, 사라는 보지 못했다. 대신 딱딱하기 그지없는 현승의 어투에, 사라는 입술을 잔뜩 삐죽거리며 도로 몸을 돌렸고.
“치사해.”
이내 소파에 몸을 축 늘어트리며 투덜거렸다.
그러기도 잠시.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괜히 “아, 맞다!” 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근데, 리, 리세랑 작업하기로 했어?”
최대한 관심 없는 척 넌지시 물었다.
“탐나는 악기이긴 한데, 당분간은 시간이 없어.”
사라가 그 말에 “그래?” 하고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런 와중에도 시선은 일부러 창가 너머에 둔 채였다. 최대한 관심 없는 척을 하기 위함이었다.
‘음.’
현승은 눈매를 늘어트리며 그런 사라를 바라보았고.
머지않아.
책상 위에 쌓인 결재판 하나를 펼쳐 들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물론, 이미 오전에 서명이 완료된 결재판이었다.
“리세랑 아무 사이 아냐.”
“누가 뭐래?”
“그냥, 궁금한 것 같길래.”
“아니거든?”
속마음을 들켜 씩씩거리는 사라의 모습에, 현승이 결재판 뒤에 얼굴을 숨긴 채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 웃음은 사라를 더 약 올리게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진짜, 짜증 나.”
사라가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갈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잠시.
“이번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은 들었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쇼핑백을 툭툭 치며 부연했다.
“이건, 뭐, 너 그래미에서 창피하지 말라고 챙겨주는 거야. 처음 가 보는 걸 거 아냐.“
그 말에 현승은 하마터면 더 크게 웃을 뻔했다.
‘처음이라….’
이번 생에는 처음이니,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게 뭔데?”
현승이 가까스로 웃음을 참아낸 뒤, 물었고.
“열어 보던가.”
사라는 그런 현승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영 마음에 안 드는지, 퉁명스레 답했다.
누군가 들으면 ‘날 싫어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날카로웠으나, 현승은 사라의 화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러니, 그런 그녀의 화법이 아니꼽게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삐지고 서운한 게 있나 보다 싶었다.
그래.
진심으로 본인을 싫어했다면, 이런 하이엔드 브랜드 슈트를 손수 사 올 리도 없지 않은가?
“색이 영 내 취향이 아닌데?”
물론.
그럴수록 더 놀려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