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63)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64화(463/482)
현승은 늘 그랬듯 페리스의 개인 연습실을 찾았다. 역시, 장비는 이곳이 가장 좋았다.
“혼자 설 생각하면 안 떨려?”
페리스는 헤드셋을 목에 걸친 채 레코드판을 조작하고 있는 현승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뭐라고?”
하나, 현승은 음악 소리 때문에 물음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아니다.”
페리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현승의 태평한 얼굴을 보니,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근데, 정말 이 곡을 할 거야?”
대신 다른 물음을 던졌다.
“어, 왜?”
현승의 대답과 동시에 손이 멈췄다. 턴 테이블이 헛돌며, 음악이 점차 멎어 들었다.
“네 곡도 있는데 굳이 왜 이 곡을 하나 싶어서.”
“꼭 하고 싶었거든.”
“그래? 근데, 디제잉 하기엔 꽤 까다롭지 않아?”
페리스의 질문에 현승이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고민하기도 잠시.
“그래봤자, 어차피 다 같은 곡이잖아.”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그 모습에 페리스가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맞지.”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저 녀석에게 있어선, 그렇겠지. 모든 곡이 손쉽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같겠지.
한 영역에서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페리스 또한 그중 하나였다.
디제이 업계에 데뷔한 순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라며, 페리스를 칭송했다.
그러나.
자신은 작곡이라는 영역에 있어서 천재는 아니었다.
같은 음악이라고 한들, 엄연히 구분이 있는 일이니까.
그러나.
제 앞에 앉은 현승은 달랐다. 음악이라 뭉뚱그려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뭐든 먹어 치울 수 있는 괴물이었다.
불세출의 천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
그런 건 허울 좋은 수식어일 뿐, 녀석 앞에 갖다 붙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녀석은 괴물이다. 이렇게 짧은 사이에 페리스만의 필살기랄 수 있는 기술을 집어삼킨 것도 모자라, 본인의 것을 더해 나가고 있질 않은가?
─ ♬ ♬ ♬
현승은 다시 한번 헤드셋을 뒤집어쓰곤 레코드판을 조작하기 시작했고, 페리스는 그런 현승을 지그시 바라봤다. 저, 괴물 자식.
‘웃네?’
저 녀석을 괴물이라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즐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하는데, 즐기기까지 한다니.
그런 자를, 그 누가 이길 수 있겠나?
현승이 맘먹고 디제이로서 활동을 이어 나간다면, 어쩜 머지않아 자신의 자리마저 집어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계하고 질투한다는 건 아니다.
되레 고마웠다.
이번 슈퍼볼 하프타임 쇼 무대에 같이 오르며, 자신의 이름이 더욱 널리 퍼진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디제이라는 직업에 대한 위상이 높아졌다.
덩달아 느슨했던 마음이 팽팽하게 당겨졌으니, 원동력 삼기엔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은 셈이었다.
똑, 똑.
페리스는 디제잉 부스 판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현승이 헤드셋을 끼운 채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던 탓에, 못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왜?”
그러자, 현승이 귀찮은 내색 가득한 얼굴로 헤드셋을 벗었고.
“내 장비들 좋지?”
페리스가 그런 현승을 향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어, 그래서 귀찮아도 여기로 오는 거잖아.”
물론, 현승은 그런 페리스를 이상하게 바라만 볼 뿐.
성의 없이 건조한 어투로 대답했다.
‘하여간.’
연습 시간 방해했다고, 귀찮은 티나 팍팍 내고 말이야. 누가, 괴물 아니랄까 봐.
“너 가져가.”
“어?”
“가져가라고.”
그래도,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하던가?
“턴테이블이랑 믹서, 플레이어 다 가져가라고.”
페리스가 인심 쓰듯 덧붙였다.
“네가 원한다면 스피커까지 모조리 가져가도 돼.”
“이거, 너한테 맞춰서 특수 제작해 준 거라며.”
그래, 현승이 설마 돈이 없어서 같은 장비를 못 샀겠는가?
디제잉 장비를 전문으로 만드는 저명한 모 기업에서 페리스를 위해 맞춤으로 제작해 준 장비들이었기에 현승이 살 수도, 구할 수도 없었던 거였다.
물론.
같은 이유로, 페리스 또한 현승이 제 장비를 보며 군침을 삼켜도 모른 척해 왔던 거고.
“괜찮으니까, 가져가.”
하지만, 이젠 마냥 흐린 눈하고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대신 그래미 찢어놓고 와.”
어쩌면, 녀석이라면 장르의 대중성조차 바꿔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래.
음악 업계의 판 자체를 뒤집어 버릴지도 모르지.
“디제이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 하우스 뮤직 또한 대중가요만큼 좋다는 거 네가 나 대신 제대로 한 번 보여주고 와.”
페리스의 말에 현승이 놀랐는지, 눈을 천천히 깜빡이기도 잠시.
“쉽지.”
한눈에 반할 만큼 근사하면서도 거만한 미소를 띤 채 답했다.
* * *
그래미 어워즈 수상을 앞두고 1차 심사 진행이 완료되었다. 한마디로 거를 사람은 다 걸러지고, 노미네이트 될 사람만 남은 셈이다.
그래미상은 NARAS 회원으로 등록된 이들이 1차 심사 진행을 한 뒤, 남은 이들을 두고 2차 심사 진행하여 결정 난다.
물론 NARAS의 회원이 되려면 여러 조건이 붙었으나, 크게 까탈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미처럼 거대한 시상식의 심사를 그들에게만 맡길 리 없었다.
다소 폐쇄성을 띠는 특별 심사단과 후보 지명 위원회의 의견이 모두 맞아떨어진 후에야 최종적으로 수상자가 결정된다.
특히, 본상일 경우엔 더더욱.
이러한 모종의 이유로, 그래미에 대한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논란이 왕왕 벌어지고는 했으나, 하늘이 두 쪽 나도 변치 않을 방식이었다.
숱한 은원과 이해관계가 엉망으로 뒤엉킨 이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실.
그런 이해관계가 수반되지 않았더라면, 그래미가 미국 내 가장 권위적인 수상식으로 자리 잡지도 못했겠지.
‘흐음….’
리암은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이따금 개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다소 노골적인 선정 방식을 보게 될 때면 모른 척하기 어려울 만큼.
올해 또한 다를 게 없었다.
대중적인 장르의 곡이라던가, 백인 위주에 아티스트를 후보 지명 위원회에서 임의로 1차 합격자를 추가 노미네이트 시키질 않나.
1차 투표에서 노미네이트되었어도, 최종 수상자로는 누군 이래서 안 되고, 누군 이래서 안 된다며 이미 콕 집어 제명하고 있었다.
“쯧, 쯧….”
리암은 그래미 어워즈의 CEO로 위임하고 있으면서, 이러한 부정부패에 불만이 많았으나 종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탓에 쉬이 관여할 수도 없었다.
만약 자신이 판을 뒤집으려고 한다면, 들고 일어날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고, 그들의 권한이나 힘을 모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저 허울뿐인 CEO.
리암은 자신의 처지가 애처롭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꽈─악.
하나, 이제 주름 잡힌 눈살을 억지로라도 떠내야 할 때라는 직감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아니.
굳은 결심을 세웠다.
“어차피 다니엘은 이제 고인이고, 프로듀서도 동양인이잖아? 노미네이트만 하더라도, 충분해.”
“썩 내키진 않지만, 민현승이 요즘 화제성이 좋으니까, JS 앨범도 노미네이트만 시켜놓자고.”
후보 지명 위원회가 떠드는 말들을 듣게 되었고.
그 말들은, 리암이 오랫동안 묵혀왔던 불만이라는 불씨를 키워 줄 기름이 된 까닭이었다.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지금은 어엿한 유니스 뮤직 그룹의 대표가 된 민현승은 본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만큼.
여러 부문에 단독 또는 아티스트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그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아티스트가 고인이라는 이유로 수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젠, 또 그가 화제성이 높으니 그가 참여한 앨범을 노미네이트 시켜놓겠다고 하다니.
그래.
아마 JS라는 래퍼만 놓고 본다면 ‘힙합’이라는 비주류 장르인 만큼 1차 심사마저 통과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니, 흑인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불가능했을 테지.
아직도 인종 차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바닥이니.
물론, 예외도 있다지만.
여하튼, 민현승이라는 자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끔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것도 모자라….
최근 그의 하프타임 쇼 무대가 화제 되자, 발 빠르게 그를 특별 무대에 세운다지?
구역질이 났다.
어쩜, 그리들 노골적으로 치졸할 수 있는 건지.
물론.
이뿐만이었다면, 리암도 이런 결심을 내리진 못했을 거다. 무언가를 결심하려면, 잃을 각오를 해야 할 테고 설령 잃지 않더라도….
불필요한 피를 흘려야만 할 테니까.
그래.
며칠 전, 그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각오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
.
.
“이게 누구신가?”
리암이 액정에 뜬 반가운 이름에 화색을 띠며 전화를 받았다.
─ 잘 지냈나?
상대는, 리암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면서 그래미 어워즈에 가장 오래된 특별 심사위원단 중 한 명이었다.
─ 요즘 통 정신없겠어.
평상시 연락을 하고 지내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의 안부가 퍽 낯설었지만, 리암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뭐 하는 일이 있겠나.”
리암은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했으나, 그 웃음소리에는 묘한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 그럼, 염치 불고하고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리암의 말속에 담긴 저의를 못 알아들었을 리 없는 그였다. 그러나, 그는 애초에 안부가 목적이 아니었는지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네가 부탁이라니, 벌써 무서운데?”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진 않았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사사로운 걸로 서운해할 만큼 나이가 적지 않았다.
넉살을 부리자, 눈가에 잡힌 주름살이 반증이었다.
하나.
머지않아 주름이 깊게 팬 리암의 눈가가 매섭게 굳어졌다.
─ 이번 수상에 네가 힘 한 번만 써 줄 수는 없겠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던 이유였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심사위원단과 위원회를 통틀어 가장 청렴 수렴한 자였다.
오죽하면 융통성도 사회성도 없다며 욕을 먹을까.
그런데.
그가 자신에게 지금 청탁 아닌 청탁을 해 오고 있질 않나?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리암은 본인이 부디 잘 못 들은 것이기를 바랐다.
─ 이번 올해의 앨범상 수상에 관여해 줄 수 있냐고, 묻는 것일세.
그러나, 그는 리암의 간절한 바람을 깨부수듯 수상 부문까지 콕 집어 힘 써줄 것을 청해 왔다.
“자, 자네…!”
리암이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으며 입을 열려던 그때.
─ 모두 고인이라 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하네.
상대편에서 바스러질 듯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 모두 동양인이라 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하네.
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 세상 모두가 그들의 앨범이 최고라 인정하지만, 그런데도 상은 줄 수 없다고 하네.
그는 올해의 앨범상에 노미네이트된 다니엘의 유작 앨범.
그리고.
민현승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앨범을 얘기하는 거였다.
“어차피 다니엘은 이제 고인이고, 프로듀서도 동양인이잖아? 노미네이트만 하더라도, 충분해.”
위원회가 떠들어 대던 말이 리암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 그러나, 내 힘으로는 한계가 있어.
이내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간절히 그 속을 파고들었다. 리암은 얇아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리암, 이제 방관하지 말아 주게.
그는 계속해서 리암을 종용했다.
─ 부디 바로 잡아주게.
그러기도 잠시.
─ 만약, 자네가 도와주기 어렵다면 나는 죽은 다니엘을 위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부정을 막아 낼 거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힘을 실어 마지막 결정타를 덧붙였다.
─ 그러니 말리지나 말아 주게.
아무래도.
오랜 친구는 자신을 대신해서라도, 다니엘을 대신해서라도, 불필요한 피를 흘릴 각오를 한 모양이다.
“마테오….”
리암은 무거운 숨과 함께 그의 이름을 불러 세웠고.
한동안.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리암은 파르르 떨리는 눈을 굳게 떠내며 덧붙였다.
“자네나 말리지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