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a Crazy Genius Composer RAW novel - chapter (472)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73화 (완결)(472/482)
현승은 미국에 온 이후로 자주 찾는 프라이빗한 양식당을 찾았다. 사실 이곳에 올 때마다, 한국에서 자주 찾던 한식집이 생각났다.
‘맛있었는데.’
하나 표정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자기 비서인 미셸과 함께 식당을 찾은 까닭이었다.
“생각해 보니, 같이 일한 지 좀 됐는데 둘이 식사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더군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 난 김에 식사 자리를 마련했는데, 혹시 불편하시진 않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미셀은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세와 톤을 유지했다. 정말 로봇인가?
어쩌면….
자신이 그저 밥이나 먹자고 부른 게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그녀였으니까.
“우선, 드시죠. 여기 음식이 참 맛있습니다.”
현승은 눈앞에 호화스럽게 놓인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올렸다.
칼 각으로 들어 올린 손이,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자르고 있는데 어째선지 식기가 부닥치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진짜 로봇인가?’
현승은 덩달아 포크질 한 번 할 때마다 소리를 낼까 봐 눈치를 살펴야 했고, 덕분에 달그락거리는 소리 하나 없는 장내는 적막만 흘렀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의 식사가 이어졌고.
“이미 눈치채셨을 것 같긴 하지만, 저는 요즘 조용히 지분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내 현승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차기 대표로서는, 조슈아를 추천해 볼 생각입니다.”
“조슈아 씨, 괜찮으시겠나요?”
“그도, 그의 인생에선 주인공일 테니 잘 해내겠죠.”
비서인 미셸이 몰라서는 안 될 일이다.
“아직 결정 난 건, 제 마음뿐입니다.”
미셸의 동공이 아주 조금 흔들린 걸로 보아, 놀란 모양이지만.
“아마, 빠르면 한두 달 내로 모든 걸 정리하고 저는 대표직에서 내려올 생각입니다.”
그녀는 늘 그랬듯 제 말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경청했다.
그러기도 잠시.
궁금증을 참지 못했는지,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럼, 혹시 다시 빈치스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누군가의 아들로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한 현승이, 물 한 모금을 크게 들이켜 바싹 마른 목을 적셨다. 그러고는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작게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퇴직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마십쇼.”
이 얘기를 빼먹었네.
어찌 보면, 미셸의 입장에선 갑작스러운 해고 통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그런 미셸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 둘 요량이고.
“조슈아 이사에게 잘 얘기해서, 미셸 씨가 계속 비서로서 일할 수 있게 할 거고, 연봉도 인상….”
하나, 미셸은 원하던 내용이 아니었는지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는 처음으로 현승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럼, 이제 대표님의 곡을 듣지 못하는 겁니까?”
그런 그녀의 행동도 놀라웠으나, 물음 또한 놀라웠다.
현승이 생각한 미셸은, 자신의 얘기를 듣자마자 조슈아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넘버링을 매겨 정리하고, 연봉 협상부터 해 올 줄 알았다.
“그 질문은 의외네요. 미셸 씨가 제 곡을 좋아하실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는데….”
미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내로라하는 대기업 임원들의 비서로서 일했습니다. 사실 빈치스에 올 이유가 없었죠.”
“이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늘 의문이었는데, 드디어 이유를 알게 되는 건가요?”
“네, 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치스에 이력서를 넣은 건 오로지 대표님의 곡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진짜 모르고 있었네.
“조용하고 적적하고 별 탈 없이 흘러가던 제 삶에, 대표님의 곡은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감정을 실어 주기도 했습니다. 안 하던 일탈이란 것도 해 보고 말이죠.”
“음? 아무래도 저와 함께 일하게 되신 게, 미셸 씨에게는 생애 첫 일탈인 모양입니다.”
“네, 그런 셈이죠.”
미셸은 담백하게 말을 끝냈으나, 그 말은 깊이 파고들었다.
로봇처럼 일절 사담 하나 없이, 묵묵히 일만 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제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니까.
더군다나.
미셸의 얼굴 위로 미세하게 그늘이 진 걸로 보아, 진심으로 아쉬운 모양인 것 같은데.
아.
이럴 땐 뭐라고 말을 해야 하려나.
“음.”
현승이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음악은 그때를 기억하는 매개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내 손수건으로 물기 어린 입술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 음악은 미셸 씨의 기억에서 영원할 겁니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미셸의 푸른 눈은 자신을 정확히 응시해 왔다. 놀란 건지 아니면 이해를 못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럼, 됐네요.”
미셸의 얼굴 위로 졌던 그늘이 맑게 개었다.
“늘 그랬듯 마지막까지, 잘 보필하겠습니다.”
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 * *
사라는 요즘 연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현승에게 생떼(?)를 부려, 받아 낸 곡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큰 성공을 거뒀고, 덕분에 온갖 방송과 콘서트 일정으로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스케줄이 비는 오늘, 개인 작업실을 찾았다.
사실 마음 같아선 집에 틀어박혀, 밀린 잠을 해치우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탁, 타다다닥, 타닥.
그건, 바로….
탁, 타다다닥, 타닥.
현승을 위한 곡을 만드는 거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승에 대한 마음을 담은 곡을 만들 거다.
인정하기는 죽어도 싫지만.
현승이 다니엘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 이상.
다른 이도 아니고, 리세에게 곡을 줬다는 말에, 형용하기 어려운 질투심을 느낀 이상.
더는 자신의 마음을 외면할 수도, 모르는 척할 수도, 더는 거부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
나는 민현승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음악으로 전할 생각이다.
탁, 타다다닥, 타닥.
하물며, 지난번 피처링 해 준 가사로 현승의 마음도 자신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란 확신도 생겼고.
“Just wanna be by your side.”
문득, 현승이 자신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던 말이 떠올라, 사라는 작업하던 손을 멈추곤 부끄러운 양 얼굴을 가렸다.
(물론 현승은 그냥 가사를 읊조린 것임)
“아니, 그렇게 고백을 해 버리면 어쩌냐구우….”
아예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리던 그때.
“누가 고백을 해 버렸는데?”
작업실 문 쪽에서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에, 사라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고.
“술 마셨냐?”
그곳에는 한쪽 눈썹을 구긴 채, 서 있는 내 남자….
아니.
현승이 서 있었다.
“얼굴이 토마토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
“술 안 마셨거든?”
“그럼, 진짜 고백이라도 받아서 얼굴 붉히고 있던 거야?”
그렇게 묻는 현승의 한쪽 눈썹이 묘하게 들썩거렸다.
뭐야?
저 녀석, 저런 표정을 지을 줄도 알았던가? 사라는 왠지 모를 기대를 품은 채 물었다.
“왜? 혹시 내가 고백받았다니까, 신경 쓰여?”
“아니,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인가 싶어서.”
그래, 그럴 리 없지.
“민현승, 당장 나가.”
사라가 토라지려던 그때, 현승이 등 뒤에 숨겨놓았던 쇼핑백 하나를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선물 사 왔는데, 진짜 나가?”
“서, 선물? 갑자기 무슨?”
“이번에 빌보드 차트 1위 했다며.”
“뭐, 당연한 일 가지고.”
“그럼, 이건 반품하러 가야겠다.”
그러고는 이내 휙 몸을 돌리려는 걸, 사라가 다급히 붙들었다.
“아, 잠깐만!”
그러자, 현승이 승기를 잡은 사람처럼 웃으며 쇼핑백을 건넸다.
“너, 너, 이, 이게 뭐야?”
그 모습이 꽤 얄미웠으나,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선물을 사 왔다는 게, 가장 중요했고.
그 선물이 다른 것도 아니고, 목걸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화려한 보석이 반짝거리는.
그래.
새하얀 드레스에나 어울릴 법한 목걸이였다.
“그냥, 뭐, 현아한테 뭐 사야 하냐고 물어봤더니, 이런 거 사 주면 좋아할 거라고 하던데?”
지금, 이 순간 사라의 눈에는 현승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모습마저 근사하게 보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사라는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목걸이를 빼서, 곧장 착용했다. 직접 걸어 줬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저 성격에 이런 걸 사 왔다는 게 어디냐.
여동생은 핑계겠지.
부끄러워서 댄 핑계 말이다. 하여간, 가만 보면 귀엽다니까?
“잘 어울려?”
이내 사라가 수줍게 웃으며 물었고.
“문득 한국 속담이 떠오르네.”
“뭔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나가.”
그 웃음을 얼마 가지 못했다.
“그래, 고생해라.”
저 녀석이, 그럼 그렇지. 뭘 기대해.
그리고.
또 저렇게 미련 없이 돌아서겠지.
“그래, 고생해라.”
사라는 자신이 지는 싸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잠깐만!”
별수 있냐고, 좋은데.
“왜, 또.”
저렇게 귀찮다는 듯, 고개만 까딱 돌려 바라봐도 잘생겨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쩌겠는가.
“나 조만간 내가 작사 작곡한 곡, 발매할 건데….”
이내 사라는 현승의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네가 제일 먼저 들어 봐 줄 수 있어?”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어렵겠는데? 조슈아랑 킬리언한테 부탁해.”
“치사하다, 치사해! 너만 쏙 빼고 들려 줄 거야!”
하나, 현승은 고민하는 기색 하나 없이 딱 잘라 거절했다. 진짜,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섭섭함으로 사라가 씩씩거리던 찰나.
“사라.”
현승이답지 않게, 다정히 불러왔다. 별명도, 풀네임도 아니고 ‘사라’라고 부른 적이 있던가?
꿀꺽.
사라가 마른침을 삼키며, 그런 현승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고.
“대신, 곡 발매되면 첫 번째 순서로 들을게.”
머지않아, 현승이 사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덧붙였다.
“목걸이 잘 어울려. 잃어버리지 말고, 꼭 차고 다녀.”
사라는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탓에, 돌아서는 현승을 몰래 훔쳐보며, 목걸이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 * *
현승의 대표 퇴임은 생각보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모든 이들이 바라왔던 일이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다들 그 소식을 듣고, 아쉬워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조슈아는 후자에 속했다.
현승이 오랜 시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준비한 터라, 조슈아에게 있어선 통보에 가까운 일이었다.
콰앙!
이내 조슈아는 입구를 막고 선 경호원들을 뿌리치고, 대표실 안으로 단박에 뛰어 들어왔다.
“대체 이게 다 무슨 말입니까? 퇴임이라뇨?”
듣고 온 말이 사실이라는 양, 대표실에 놓여 있던 개인 물품들은 이미 정리된 채였다.
안 그래도 거대한 대표실이 휑하니, 더 넓어 보였다.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아니, 너무 좋아서 뛰어오신 건가?”
“지금 농담이 나오십니까?”
“근데,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이가, 조슈아 이사님일 줄은 몰랐거든요.”
별일 없다는 듯 태연해 보이는 현승을 바라보다, 어이없다는 양 헛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하, 이유라도 들어 봅시다.”
조슈아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그런데, 조슈아 이사님은 처음부터 줄곧 제가 나가길 바라셨던 거 아닙니까?”
“그, 그건…!”
그러나 되돌아온 현승의 말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래.
현승이 처음 왔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도해서 따돌렸던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
그래도 지금은 아니라고.
“그래도 이런 식으로 나가기를 원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너무 섭섭해하진 마세요. 다음 차기 대표로, 조슈아 이사님을 추천할 겁니다.”
현승은 그런 조슈아의 말문을 더 막아 버릴 작정인 건지, 계속해서 예상외의 말을 늘어놓았다.
“욕심 많으신 분이니, 잘 해내시리라 믿습니다.”
원래 같으면, 또 허풍이 너무 심하다며 구박하거나 훈수질한다고 생각했을 텐데….
“다만, 뒤를 돌아봤을 때 후회할 만큼 욕심내진 마세요.”
현승이 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심장 위로 내려앉았고.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조슈아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에게 사과할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나 보다.
“조슈아 씨를 보면서, 정해진 미래라도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현승은 그런 조슈아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마냥 말갛게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괜찮다고 다독여 주는 듯, 따스한 미소였다.
* * *
현승이 떠났다.
아니.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매절 곡을 판다며, 제 인생에 얼렁뚱땅 찾아와 놓곤 이젠 쪽지 하나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 이번 생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 가족 여행 떠남 』
그래. 고작, 이 짧은 한마디로 일방적인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그렇게 현승과 연락이 끊겨 버린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녀석에겐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었는지, 꽤 철저히 준비했던 모양이다. 유니스 뮤직 그룹이 아무런 흔들림 없이 운영되고 있는 걸 보면.
아.
사라는 히스테리가 더욱 심해진 탓에, 곡 발매만 할 뿐 아예 방송이나 무대엔 서지 않는다던가?
그리고, 빈치스는….
아주 흔들렸으나, 무너지지 않았다. 이두석은 언제든 현승이 돌아왔을 때,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내실을 다지기 위해 힘썼고.
박 전무 또한 운동에 더욱 미쳐 살 뿐, 빈치스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김우현은 여전히 현승이 사 준 손목시계를 볼 때마다 속이 끓었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미팅까지 시간이 좀 남았네.”
애매하게 시간이 뜨는 바람에, 회사에 들르지 않고 미팅 장소에 가기로 맘먹은 김우현은, 카페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곳은.
뉴욕에 중심가인, 타임스퀘어가 있는 곳이었다.
반짝이는 거대 광고판을 보다 보니, 문득 사라가 현승의 생일날 전광판에 광고를 띄운 것이 떠올라 웃음이 피식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현승의 생일을 거창하게 한번 챙겨 준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니, 또다시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조금 더, 잘 해 줄걸.
조금 더, 신경 쓸걸.
조금 더, 찾아갈걸.
알게, 모르게 현승에게 받은 것들이 참 많았다.
어찌 보면, 김우현의 인생은 현승을 만나기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현승 덕분에, 미국 땅에 번듯한 집에 살면서 어머니를 더욱 좋은 의료 시설에서 치료받게 해 줄 수 있는 능력까지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누구에게 기대지 못한 채, 홀로 살아오던 인생에 처음으로 누군가와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눴다.
그것만으로도 현승은, 김우현에게 의미가 아주 큰 존재였다.
“이 금쪽이 녀석은 대체 얼마나 멀리 여행을 갔길래, 이렇게 안 돌아오는 거야….”
김우현이 전광판을 향하고 있던 고개를 떨구던 찰나.
─ 긴급 소식입니다. 돌연, 유니스 뮤직 그룹 대표 자리에서 퇴임 후 잠적했던 작곡가 민현승 씨가 오늘 단독 인터뷰를….
전광판 위로 다급해 보이는 기자의 얼굴이 떠올랐고.
“미, 민현승?”
김우현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천천히 전광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그렇게 몇 걸음을 더 나아가던 그때.
‘저, 뒷모습….’
화면 위로 아주 낯익은 남자의 뒷모습이 떠올랐고.
그가 앉은 의자를 천천히 돌릴수록, 김우현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래, 저 확신의 배우상….
─ I’ll be back.
그래, 저 재수 없는 말투까지.
“그, 그, 금, 금쪽이, 저, 저 녀석이 저기 왜…!”
김우현이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뒷걸음을 치던 그때.
“엄마.”
등 뒤에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사이에 힘겹게 농사지은 무를 전부 도둑맞아서 몹시 슬픕니다.”
금쪽이, 아니. 현승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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